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블록버스터 라는 장르의 영화를 보면 때리고 부셔서 쓰레기를 많이 만드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까 반환경적인 영화지요. 때리고 부시고 거기다 폭력까지를 가미하면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블록버스터 장르의 영화들이죠(물론 예외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영화들에 대리만족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우리 남편을 포함한 영화관객들이 있겠습니다만, 취향이 아닌데다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쪽이어서 블록버스터 장르를 되도록 보지 않았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대개가 내용도 별로이곤 해서 실망한 적이 여러번 있었으니까요.
영화 트로이를 결론 부터 얘기하자면 블록버스터이되 봐줄만한 영화였다고나 할까요? 영웅이 이끌어 가는 전쟁영화이고 보면 다분히 남성적인 이 영화가 여성관객에게 매력으로 다가올수 있었던건 어디까지나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아킬레스(브래드피트)와 헥토르(에릭 바나)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 반지의 제왕에서 명사수였던 올랜도 블룸까지 합세를 해서 이 세명의 배우들이 불꽃튀는 연기와 매력을 보여 주었으니 이 영화는 여성들을 위한 남성영화였다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아시다 시피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를 원작으로 해서 볼프강 페터슨 감독이 트로이 전쟁을 재현한 영화가 바로 '트로이' 입니다.
때는 그리스 시대,그리스의 가장 큰 강국인 트로이와 세력다툼을 벌이던 스파르타와의 평화조약이 있던 날로 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요. 스타르타의 왕은 트로이의 두왕자를 친히 접견해 술잔을 높여 '평화의 시대'를 위한 축배를 듭니다.
새롭게 시작될 평화의 시대를 전조하는 그 자리에서 두사람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바로 트로이의 둘째왕자 패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가 사랑에 빠진 것이지요. 두사람은 축제의 와중에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불안한 가운데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다 마침내 패리스는 헬레네 왕비를 몰래 빼내 트로이로 데리고 옵니다.
평화조약은 파기되고 스타르타 왕은 전의를 불태우며 아킬레스를 불러 들입니다. 신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태어난 이 두려움 없는 전사가 앞장을 서자 스파르타 군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듯 합니다. 트로이가 무참히 박살나려는 찰라, 트로이의 버팀목인 헥토르 왕자가 맞섭니다.
헥토르 왕자와 아킬레스의 피할수 없는 마지막 대결에서 아킬레스가 승리를 하기 까지 그리고 마침내 패리스 왕자에 의해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고 연인앞에서 죽어가는 아킬레스의 죽음과 트로이 멸망의 날까지를 보여주는 '트로이 전쟁'이 생생하게 재현된 영화였습니다.
누군가 장난스럽게 영화평을 이렇게 적었더군요.'브래드피트의 팔뚝은 굵었다'. 그랬습니다. 육중한 몸매 여전한 젊음을 간직한 빛나는외모 그리고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투혼까지 이 영화야 말로 브래드피트의 매력을 가장 절정으로 보여준 브래드피트에 의한 브래드피트의 영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브래드피트는 가을의 전설에서 가장 그다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만,트로이에서 발산되는 에너지 넘치는 매력또한 브래드피트의 배우역사를 다시 써야할 중요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요. 굵은 팔뚝(?)으로 칼을 휘두르며 거침없이 적진을 향해 진격할때 라든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역활까지 보는 내가 가슴이 콩닥거릴 정도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한편 아킬레스의 상대역인 트로이의 후계자역의 헥토르 왕자 역시 또다른 매력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니까 감독은 트로이건 스파르타건 둘다 패자도 승자도 아닌 기본 얼개에 충실한 것처럼 아킬레스와 헥토르 왕자 역시도 둘다 선한 입장을 가진 영웅으로 묘사했습니다.
청년이었던 아킬레스의 사랑이 정열적이면서 아름다웠다면 트로이의 후계자로서 일찌감치 아내가 있고 그 뒤를 이을 왕세자까지 있던 헥토르 왕자는 다정다감한 사랑을 보여 주었습니다. 아내를 아끼고 아들을 사랑하며 혹시 있을지 모를 위험한 상황에 대비시키기 까지 그는 진정 남편답고 아빠다운 가정적인 남자의 역활에 충실했으므로 매력적이었습니다.
아킬레스와 헥토르 왕자, 그리고 브래드피트와 에릭바나의 매력을 비교해 가면서 영화를 본다면 전쟁영화가 싫은 당신도 충분히 이 영화를 재밌게 볼수 있지 않을까 싶어 두배우에 대해 중언부언 말이 많아졌습니다.
또 하나, 전쟁이라는 본질을 짚어 보게 하는 대목입니다. 전쟁이 얼마나 단순한 이유에서 혹은 자잘한 자존심에서 시작되는가 하는 문제 입니다. 물론 아내를 뺏긴 남자(스파르타 국왕)의 심정이야 어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그것도 세기의 미녀인 아내(헬레네)를 가진 스파르타왕이고, 그 상대가 적군의 왕자였다면 남자의 자존심이 심각하게 구겨지는 일이 될테지만 꼭 그렇게 전쟁까지 불사해야 했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트로이의 경우도 참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지요. 인간의 예지를 무시하고 지나치게 신을 경배한 나머지 트로이가 결국엔 망하기 까지의 과정이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이던가요? 툭하면 전쟁이나 일으켜 무고한 백성들 피흘리게 하고 공포에 떨게 하는것이 위정자들이 할일이었는지요..위정자들의 간신과 모략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망라하고 역시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전쟁의 공포가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끝까지 신에 대한 경배로 석상앞에서 무릎꿇다 적의 졸개의 칼에 죽어가는 트로이 왕의 최후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불타는 제국, 트로이를 바라보며 공포와 허무로 가득한 눈을 커다랗게 뜨고 죽어간 트로이 왕은 그때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신이 트로이를 구원하리라.. 혹,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지..
영화가 줄곧 매끄럽게 전쟁과 영웅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 갔지만 아킬레스가 적군의 여자인 브리세이즈를 사랑하게 되는 대목에선 조금 과장된 면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그들이 급작스럽게 사랑에 빠진 장면이라든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스파르타 왕의 명령도 무시하고 불타는 적지에서 브리세이즈를 찾아 헤매는 장면이 조금 어긋나 보이더군요.
마침내 신의 석상앞에서 기도하는 브리세이즈를 발견하고 입맞춤 하려는 찰라 패리스 왕자의 화살에 아킬레스건을 맞고 쓰러지는 아킬레스의 최후가 너무 안타까웠던 것도 그의 무모하다 싶은 만큼의 열정이 빚어온 결과이기에 그랬습니다.
결국 아킬레스도 죽었습니다. 거인의 위력앞에서도 수많은 적군 앞에서도 결국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신의 전사였던 그가 단한발의 화살이 아킬레스 건을 뚫자 그만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단단하고 강건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약점은 있겠지요. 아킬레스건이란말 그래서 생겼다고 합니다만, 영웅의 죽음도 여느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도 역시 보통의 사람처럼 두눈에 저승갈 노자돈으로 동전 두개를 가지고 육신이 불에 태워졌습니다. 다만, 뒤에 남아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 의해 그가 위대한 신의 전사였으며 전쟁의 영웅이었고 뜨거운 피를 가진 남자였음을 상기시켜 줄 것이었습니다.
오래도록 인구에 회자되는 트로이 전쟁에 두남자 아킬레스와 헥토르, 두 영웅이 살아있었음을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스 도시의 이름과 그 도시를 에워싸던 지중해의 바다의 풍광의 아름다움이 여전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