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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바람과 비와 행복.


BY 빨강머리앤 2004-07-05

일요일 하루, 가평야생수목원에서 참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태풍 이름치고는 참 이쁘고 여린듯해 보이는 '민들레'가 북상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아침, 여장을 챙기고 길을 나설때만도 구름 낀 하늘사이로 엷은 햇살이 번지고 있었습니다. 길을 나서도 될것 같았고, 또 비가 온다고 해도 빗속을 헤집고 다니며 숲을 산책하는 일도 나름대로 괜찮지 않을까 싶어 나선 길이었습니다.

경기도 가평에 있는 '꽃무지 풀무지'라는 이쁜 이름의 수목원을 가는 길입니다. 그곳에 가면 '꽃'이 한무더기, '풀'이 또 한무더기 서로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꽃과 풀들의 세상을 이루어 놓을것 같았습니다. 이름이 참 중요하구나, 싶은게 지금까지 들은 수목원 중 가장 잘 지은 이름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청평댐을 지나 가평에 이르는 길로 들어서 얼마를 달리자, 차창 밖으로 금계국이 피어 있는 길이 나타났습니다.잘은 모르겠만, 어쩐지 그 길은 꽃무지.. 수목원 식구들의 손길같아 반가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서 오라고, 비에 젖는 금계국이 주홍빛 선명하게 늘어선 길과 데이지꽃길을 만나고 색색의 백일홍이 피어 있는 길을 지났습니다.

길가에 핀 꽃들을 보자 마음이 벌써 설레어 옵니다.그것들은 앞으로 만날 우리꽃들에 대한 전주곡이 되어 줄 것이었습니다. 비는 내리고 바람이 불어 풀들이 누웠다 일어서는 길 저편으로 계곡으로 쏟아져 내리는 물이 콸콸 대며 거대한 도랑을 내고 흘러 갑니다.  계곡을 끼고 수목원 반대편에 있는 산에 골프장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여 그곳이 분명 산지가 확실한 곳인데 그곳만 나무가 없어 훤하게 드러나 있는 모습이 눈에 거슬립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고, 바로 아래 계곡물이 우렁차게 흐르고 있어 혹시라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수해피해가 나지 않을까 염려되었습니다.

나무의 역활 중 가장 중요한게 아마도 홍수나 가뭄을 조절하는 능력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나무가 베어지고 숲이 하나 훌러덩 벗겨진 골프장이 들어선 산의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던 게지요.

수목원 주차장 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 아예 차를 아래에 두고 걸어서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식구수 대로 우산을 하나씩 챙기고 비포장길을 걸어 가는 동안 풀냄새에 섞인 비냄새와 흙냄새가 진하게 퍼져 왔습니다. 그 향기를 맡으며 걷는 흙길, 가까운 숲에서 올여름 첫 매미가 맴맴 거리고 한쪽으로 흘러가는 도랑으로 빗물이 쿨럭 거리며 흘렀습니다.

수목원 가는길 풀섶에 보라색 패랭이 꽃이 보입니다. 비를 맞고 함초롬이 피어 꽃길을 마중나온 패랭이꽃이 반가웠습니다. 곧이어 주홍빛 선명한 원추리꽃이 피어 어서오라 꽃송이를 흔들어 주었습니다. 

태풍속을 뚫고 오는 이가 없었는지  혹은 아직 여름꽃들이 덜 피어난 시기라 그랬는지 매표소에 아무도 없습니다. 입장료도 안 내고 (일부러 그런것도 아닌데)매표소앞에 막 피어나고 있는 동자꽃을 신기한듯 들여다 보았습니다. 작은 느티나무 아래, 주황색 분홍색 동자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동자꽃 이란다'하고 설명해 주니, '옥동자 꽃~' ?? 아이들이 웃음보를 터트렸습니다. '아니, 왜, 어린스님을 동자승이라고 하잖니? 동자승 할때 동자꽃이야' 그래도 아이들은 깔깔대며 웃습니다. 아무튼, 아이들은 동자승을 떠올리든, 옥동자를 떠올리든 '동자꽃'은 확실하게 기억 할것 같습니다.

 

탐방로 맨 첫관문에 세개의 둥근 언덕이 있습니다.  패랭이꽃, 술패랭이꽃, 원추리꽃이 가득핀 꽃무지 세개가 나란히 여름을 불러 들이고 있었지요. 보라색이든, 주황색이든 비속에서 보는 색깔들은 유난히 선명하게 도드라져 보입니다. 난원에 들어서 우리나라 자생종이라는 난들을 살펴봅니다. 때마침 원장님을 그곳에서 만나 여러가지 난에 관해 얻어 들었습니다. 바위에 비스듬히 붙어 사는 난을 착상시키기 위해 접착제를 쓴다는 사실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렇게 접착제를 바른 뿌리가 희생양이 되어 다른 뿌리가 바위에 안착할수 있도록 해준다니 식물의 세계가 새삼 흥미롭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잎새가 가는 소엽란은 낮에 향기를 내품고, 잎새가 넓은 대엽란은 밤에만 향기를 풍기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난원을 나와 다시 탐방로를 따라 이번엔 비닐하우스에 들어섭니다. 그곳은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열대성 식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꽃이 핀 석류나무, 꼭 한그루가 서서 열매를 달고 있는 무화과 나무가 반가웠습니다. 비닐하우스를 뒷쪽에 조성된 습지원을 감싸고 꽃창포가 보라색 꽃을 달고 있습니다. 창포물에 머리감고 단오절 축제를 즐기던 옛여인들의 삼단같은 머릿결을 떠올려 보게 하는 꽃입니다.

연못엔 연꽃들이 한창입니다. 하얀색, 노란색, 보라색... 연꽃색깔도 다양합니다. 비에 젖어 더욱 고고한 연꽃 사이로 그곳에서나 볼수 있을 것 같은 무당개구리 몇마리가 뛰어 다녀 아이들에게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습지원 윗쪽은 보라색 도라지꽃밭 입니다. 울 할머니 생각나게 하는 도라지 꽃은 그 모양이 꼭 별을 닮았습니다. 활짝 핀 꽃도 그렇지만 피어나기 위해 꽃봉우리를 앙당 물고 있는 것도 꼭 별모양입니다. 할머니가 심어둔 텃밭에서 이맘때 즈음에 도라지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는데 보라색 하얀색 모두 참 예뻐 한참을 들여다 보게 만든 꽃이 바로 도라지 꽃입니다.

여기저기 나리꽃이 한창이고, 연보라색 비비추도 한창 피어 나는 계절입니다.우리가 흔히 보아왔던 버섯뿐만 아니라 희귀 버섯들이 자라고 있는 버섯원을 지나 국화원에 들어서니 화원 가운데 커다란 바위가 있었습니다. 그 아래로 줄지어 비비추가 보라색꽃을 피웠는데 어디서 왔는지 빗속에서 나비들이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비비추는 다른꽃보다 더 향기롭거나,꿀을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꽃인가 봅니다.

국화원을 둘러 보는데 비가 더 많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나무 숲길을 빠져나와 국화원의 한적한 산책길을 천천히 둘러볼 생각을 접어야 했습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아니한 국화원을 둘러 보다 뜻밖의 꽃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이제막 꽃송이를 하나둘 만개하기 시작한 수국꽃이었습니다. 아시다 시피 ,수국꽃은 작은꽃송이 하나 하나가 모여 커다란 꽃을 완성하는 풍성한 꽃잎을 자랑하는꽃입니다. 언젠가 사진에서 보았던 수국꽃 피어나는 장면을 현장에서 보며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보라색 점점이 박힌 꽃봉우리가 가장자리 부터 하나씩 꽃잎을 벌리는 모습이 마치 작은 나비가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모습 같았습니다.

범부채, 원추리, 패랭이 빼고는 여름꽃들이 아직 만개하지 않았습니다. 7월 중순쯤 되면 여름꽃들이 제법 많이 피어날 거라니 그때 수목원을 다시 찾으면 좋을듯 싶었습니다. 아쉬운 대로 수목원 입구의 비닐하우스에 전시된 꽃들을 둘러 보았는데 그 작은 전시관 안에는 식물원에 식재된 식물들 이외의 꽃들을 만날수가 있었습니다.

 

감탄사가 너무 커서 내 스스로 놀랄 뻔한, 금강초롱 세송이.. 어쩌면 그리 싱싱하던지요...우리나라에 얼만 남지 않아 보호종이라고 하고  사진에서나 몇번 보았을뿐 그곳에서 살아숨쉬는 금강초롱꽃은 처음이었습니다. 하늘말나리 두송이는 또 어떻구요... 만들어도 어찌 그리 앙증맞고 곱게도 빚어 놓았는지 넋을 놓고 바라보게 하던 꽃이었습니다. 분재된 고목 사이로 물망초 작은꽃망울도 빠꼼빠꼼, 물길을 따라 피어나 눈물겨웠습니다.   나리꽃중 유일하게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솔나리의 고고한 자태는 자못 엄숙한 아름다움을 줍니다.

이 아름다움을 주는 우리꽃들이 하나씩 사라져 지금은 '보호종'으로 특별히 관리 보호 되고 있다는 말에 씁쓸했습니다. 사라지는 아름다운 것들이 그곳에서 눈물겨운 모습으로 피어있어 눈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만난 수목원의 꽃들을 하나 하나 이름을 불러 주어 비로소 내 마음으로 들어와 '꽃'이 되어주었습니다.

 

 

해오라기를 닮은 꽃을 피우는 해오라기 난 화분을 하나 들고 식물원을 나서니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 악천후 였지만, 꽃과 바람과 함께 한 행복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