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녀석이 노느라 시간이 없어 머리를 자르지 않은지 오래였다. 벌써 잘랐어야 할 머리를 자르지 않아 앞머리가 눈을 찌를 만큼 길어 있었다. 내가 하필 이녀석이 집에 올 즈음에 출근을 해야 하기에 자칫 시간을 놓치거나 이녀석이 서두르지 않으면 머리 자를 기회를 놓치기 일쑤다.
그날은 안되겠다 싶어 녀석이 올 시간에 맞춰 모든 출근 준비를 완벽하게 끝내고 녀석을 기다렸다. 오자마자 미용실에 데려가 머릴 자르게 할 생각이었다. 오늘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기도 했다. 참 이상스럽게도 녀석은 머리 자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막상 미용실에 데려가면 앞머리는 이렇게 뒷머리는 이렇게 설명해 가며 미용사를 코치(?) 까지 하는 녀석인데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은 미용실 가느니 머리가 길어 귀찮더라도 그시간에 노는게 훨씬 좋은 녀석인지도... 오늘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란 다름이 아닌 전날,녀석의 앞머리에 남겨둔 나의 서툰 솜씨가 잘생긴(?) 녀석의 얼굴을 일명 '옥동자'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퇴근해서 저녁무렵,가위를 들고 녀석을 내 앞에 잡아 앉혔다. 앞머리좀 자르자, 신문을 깔고 과감하게 앞머리를 잘라 놓았는데 나 역시도 내 솜씨가 맘에 드는건 아니였지만 옆에서 딸아이의 한마디에 아들녀석의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당장에 거울앞으로 튀어갔다.
'야, 너 꼭 옥동자 같다' 킥킥 거리며 이렇게 말하는 누나의 한마디에 용수철이 튀듯 거울앞에선 녀석이 하는말, '이게, 뭐야~~ 나 내일 학교 안가'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인 나는 정작으로 태연한채, '걱정 마라, 내일 아침에 무쓰도 바르고 드라이 해서 멋진 머리 만들어 줄테니 '라고 말하면서도 내가 봐도 옥동자 머리를 닮은 '바가지'모양의 아들녀석의 머리를 보자 터져 나오는 웃음을 멈출수가 없다.
자전거 도둑을 얘기하다 서두가 길어 졌다. 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미용실로 가자며 녀석의 손을 잡아 끌었다. 집앞에 두대의 자전거가 분명히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하면서 미용실엘 갔다. '시원하게 짧게 잘라주세요..'.'역시, 남자 아이들은 머리가 짧은게 좋아. 멋지다.'. '근데 지금 몇시죠?','네, 1시 30분 입니다'.. .. 두시에 녀석의 학습지 선생이 올것 이므로 시간을 확인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다 싶어 시원하게 머릴 자른 녀석의 손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기분좋게 집으로 들어섰는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감지된다. 이 기분나쁜 기운은 도대체 무엇인가,,, 아뿔사,분명 나갈때 확인했던 아들녀석의 자전거가 안보이는 거였다.
녀석의 자전거는 산지 한달도 안된 기아자전거. 녀석이 그 자전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우리가족도 또 이동네 꼬맹이들도 모두 아는터. 자전거의 행방이 묘연해 지면서 나름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 자전거를 누가 가져갔지? 그렇게 큰 자전거를 끌고갈 정도면 분명 어른일거야.. 참 나쁜 사람이네. 아이들 타는 자전거를 상습적으로 실어 가는 자전거 도둑이 있다던데 혹시 그런사람이 이 동네에도 뜬거아냐?
아들녀석의 풀죽은 모습을 보며 내 마음은 더욱 짠하다. 벌써 몇번짼가? 아, 이 못믿을 불신의시대가 유감이라... 누굴 탓하랴.. 이제 영낙없이 작년에 내자전거에 이어 남편의 자전거까지 도난당한 일을 떠올리며 이왕에 잊어버린거 그냥 마음 편하게 갖자 싶은데...그게 마음 같지가 않았다. 아들녀석을 다그쳤다. 너, 그러게 열쇠 단단히 채우라고 했지? 그냥 말고 계단 난간에 채우라고 했는데 내말 안듣더니 이거 봐라.. 이렇게 말하다 괜한말 한다 싶어 그냥 두었다. 이제 와서 이런말 소용없고, 더군다나 네가 열쇠를 채우지 않아도 자기 것이 아닌이상 남의 물건은 손대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 어른들의 말의 모순을 확인시켜 주는 일이 아닌가 싶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러다가 경비아저씨를 찾았다. 어떻게든 나름대로 방법을 강구해 보고 그도 아니면 그때가서 포기하자 싶었다. 그때즈음 해서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와 아들녀석과 함께 경비아저씨를 찾아 물으니 오늘은 조경작업을 하느라 하루종일 밖에 있어 아무런 낌새를 못챘다고 하신다. 어쩌면 cctv에 찍혔을지 모르겠다고 없어진 시각을 물었다.아이가 머릴 자르고 미용실에서 가르켜준 시각이 1시 30분 경이니, +, - 10분 쯤,,,그 시간에 맞춰 비디오 화면을 돌리니 1시 27분에 딱, 그 화면이 잡힌다. 제 몸집보다 큰 우리아이의 자전거를 낑낑대며 끌고 가려는 사람은, 어이없게도 아이였다. 없어진 어른용 기아자전거 옆에 아이들이 타기 딱 좋은 어린이용 자전거가 있었는데 녀석은 기아자전거가 맘에 들었는지 커다란 자전거를 끌고 가려고 낑낑대고 있었다. 딸아인 지금이 어떤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모습을 지켜보다 낄낄대고 대강 범인(?)의 윤곽을 확인한 아들녀석은 다시 얼굴이 붉그락 푸르락이다.
그 길로 밖으로 나간 녀석이 동네꼬마들을 붙잡고 탐문 조사에 나섰다. 이러이러한 인생착의에 저러저러한 옷을 입은 아이 못봤냐, 혹시 라도 그 아이 보면 우리 경비실로 연락주라..며 앞장 섰다. 화면상으로 봐도 자전거 도둑은 9살 우리 아이보다 어린 8살 정도의 아이로 보였다. 그렇게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인상착의를 설명했지만 그 아이를 봤다는 아이는 안나타나고 지친 아이와 함께 집에 돌아와 더위를 식힌지 한시간여가 지났을까?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가보니 떡하니 아들녀석의 자전거와 함께 동네아이가 서있다. 아들녀석과 형, 동생하며 지내는 동네아이다. '이거, 길건너 아파트 게임장 앞에서 찾았어요' 한다.
아이의 자전거를 찾았다.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훔쳐 타던 아이는 제 몸에 비해 너무 크고, 열쇠가 채워져 잘 움직이지도 않은 자전거를 끌고 어디로 갈까 하다가 동네에서는 못타고 길건너 아파트로 간게 틀림이 없었다. 이녀석은 우리아파트에 사는 아이였으므로...그러다가 제 딴에는 무거운 자전거 끌고 한껏 멀리 까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나, 덥고 지친나머지 더이상 끌고 다닐 힘이 없어 주저 앉았는데 마침 그곳이 게임장 앞이었을 것이다., 에라, 오락이나 구경하자 싶어 오락기 앞에 정신을 팔았을 것이고.... 그러다가, 탐이 나서 끌고온 자전거고 뭐고 관심이 없어져 그냥 와버린 걸 거다.
다행히, 그걸 우리 아들녀석이 아는 형이 발견했고, 그렇게 해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자전거 도둑'사건이 일단락 지어졌다.
다행인 것은, 어쨌거나 자전거를 다시 찾았다는것이다. 아이는 다시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자전거.. 자전거에 오르면 아이는 자전거와 한몸이 될 정도로 아이의 친구가 되어준 자전거를 다시 찾아서 아이못지 않게 나도 기뻤다.
다행인 것은 자전거도둑이 꼬마아이였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닌 어른이 범인이었다면 아이는 이 사회를 불신하는 첫번째 고비를 맞았을 지도 모른다.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탐내면 죄악이다고 가르친 우리 어른들이 아니던가.
또 다행인 것은 이번 자전거 도난사건을 계기로 아이는 자신의 물건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다시 제 앞에 온 자전거가 반가운 아이가 싱긋 웃으며 그랬다.'이제부터는 자전거 안 잃어버리도록 잘 할께요, 엄마, 그 형아 너무 고맙다 그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