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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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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의 푸르른 봄


BY 빨강머리앤 2004-03-25

목요일이라 분리수거가 있어 잠시 밖을 다녀오다 요란한 새소리를 들었다.

삐이리~ 삑, 날카롭게 또는 시끄럽게 울며 동네를 깨우는 녀석은 분명, 직박구리라는 새다

그 이름에서 왠지 '장난꾸러기'라는 인상을 주는 새를 이번에 확실한 친구로 만들었다.

저기, 완도의 난대성 상록수림 속에서... 그런데 녀석이 예까지 따라와 반갑다고 우짖으니

오늘 아침은 새소리 때문에 기분이 업그레이드 되는 느낌이다.

엊그제 다도해 해상 국립공원에 있는 섬, 완도를 다녀왔다. 일요일 출발해서 월요일에

돌아올 계획으로.. 아이들 학교엔 '체험학습보고서'를 제출하고 다녀온 길이었다.

토요일의 번잡함을 피해, 여유롭고 느긋하게 '봄 여행'을 하고 싶었다.

물론, 1박 2일의 짧은 시간안에 볼수 있는 것들은 한정이 되어 있겠지만

나름대로 시간을 잘 쪼개쓰면 완도의 면면을 살필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일요일, 아래로 내려 내려가 영암에 도착해 먼저 어머님 산소를 들렀다.

때를 입힌 흔적이 아직 그대로인 채 믿을수 없을 만큼 어머님 얼굴이 선명한데

그속에 어머니가 누워 계셨다. 아이들 역시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나타날것

같다고 했다. 어머님 산소를 쓰다듬는 남편의 손길에 서러움 같은것이 묻어있고

그걸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나 또한 서글프다.

어머님  산소에 성묘를 하고 영암을 왔으니 동백을 보리라 생각하고 '백련사'로 향했다.

백련사의 동백은 수령이 3백년이나 된 울창한 동백숲을 자랑한다.

동백꽃이 피어 있는가 하면 핀 모습 그대로 꽃송이를 떨구고 있는 것들도 보인다.

목하 동백꽃이 부른 남도의 봄은 그렇게 무르익고 있었다.

동백나무 부도숲에서 반가운 꽃을 발견하고 사진을 찍었다. 하얀 제비꽃이었다.

보기 드문 하얀꽃은 처음이다. 마치 보물이라도 발견한 양 들떠 아이들을

불러 세워 사진을 찍었다.  백련사가 중창불사 중이라 조금 소란스러워 대강 경내를

살피고 완도를 향했다.

완도 대교를 건널 때가 저녁무렵이라, 해안가 절경을

저녁햇살로 감상했다. 완만한 곡선의 산들이 섬을 감싸안고 리아스식 해변을

이룬 사이 사이로 평온한 바다가 펼쳐졌다. 그 사이로 점점이 떠있는 섬을 보자

내 마음에도 평화가 한줄기 흘러 드는 느낌이었다.

'전망 좋은곳'에 잠시 멈춰, 절경을 감상했다. 비릿한 바다내음이 저녁바람을 타고

콧끝을 자극한다.. 음... 그래, 여행자의 마음을 들뜨게 하는 바로 그 냄새다.

정도리해변를 아침산책 계획에 끼우고 근처에 민박을 했다. 바다가 보이는 민박집에 짐을 풀고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갓 잡아올린 싱싱한 회, 넉넉한 남도의 인심이

밥상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저녁을 먹고  밖에 나오니 비가 내렸다.

밤바다를 산책하려던 야심찬계획(?)은 아쉽지만 접는다. 다만, 내일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다행히 다음날 창가가 환하다. 비온 뒤

깨끗한 하늘이 맑은 햇살을 쏟아붓고 있어서 마음이 먼저 바다로 달려갔다.

정도리해변가에 가득 내린 햇살 말고 동글 동글한 갯돌 말고, 그리고 그 갯돌을 희롱하는

파도 말고.. 우리밖에 없었다. 아, 해변가에 우뚝 선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는 또

얼마나 인상적이던가? 

그 느티나무에 새잎이 돋는 날이 궁금했고, 파랗게 녹음이

일렁이는 여름날에 그밑에 앉아 멀리 '보길도''소안도' '청산도'같은  섬을 생각하는 일은

또 얼마나 멋질까를 생각했다. 아이는 나무에 올라가 사진을 찍어 달라고 그랬다.

정도리 해변의 공룡알 화석을 닮은 갯돌은 너무 예쁜 관계로 관광객들이 하나둘

가져가는 바람에 최근에는 갯돌 밀반출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쁜돌, 하나만 가져가면 안될까, 아이들은 거의 애원조다.. 나도 한알만 갖고 싶다는

생각 굴뚝 같았던 정도리 바닷가 갯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아침햇살을 먹고 있는 아름다운

정경 위로 또한가지 여행의 묘미를 만끽하게 해준 풍경이 있었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를 가진 완도만이 만들어 낼수 있는 난대성 수림으로 이루어진

방풍림이 그것이었다. 지금은 이른봄, 하지만 그곳은 여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잎푸른

상록수들이 지천이었다. 해변가 옆에 있는 상록수림도 신기했지만 숲탐방로를 만들어

아침산책을 하는 우리들을 선경의 경지를 이끌어 준다. 마치 숨바꼭질이라도 하듯,

한켠을 돌아서면'새우나무'가 파란잎을 손마냥 한들 거렸고, 다시 한켠을 돌아서면

'감탕나무'푸른 잎이 불쑥 나타났다. 그 사이에 노랗게 꽃잎을 벌린 생강나무를 발견하는

일은 또 얼마나 큰 기쁨이던지... 그 가지 하나만 꺽어 씹어 보았다. 아릿한 생강맛이

난다. 이번엔 팻말을 아이와 함께 읽어 보았다. 그 숲에 사는 새들이 이름을 달고

하나하나 그려져 있다. 직박구리가 그속에 있었다. 아까부터 유난히 시끄럽게 울던

녀석이 이름이 안그래도 궁금했던 차다..

멧비둘기는 얌전히 멧세는 귀엽게 직박구리는

시끄럽게 울던 숲을 거니는 동안 해안가에선 끝없이 갯돌에 쓸리는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날은 또 얼마나 화창 했던가 !

이대로 여기 앉아 하루를 보내도 나쁘지 않을것 같았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길을 나선다.

완도 수목원을 가는 길도 한적했다. 양옆으로 붉은 황토흙이 키워내는 보리밭 초록빛

물결이 끝없이 펼쳐졌다. 수목원 입구에 오래된 동백나무들이 잎잎마다 햇살을

튕겨내는 모습이 숨막힐듯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왔다. 완도의 봄빛은 동백나무가

만들어 내는 짙푸른 녹색의향연이라 해도 좋을 것이었다.

완도 수목원은 내가 가본 몇안된 수목원중 그중 가장 멋진 곳이었다.

게다가 입장료도 받지 않는다.

국내최대의 난대성 희귀식물 자생지.. 라고 소개된 바대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나무 이름들이 즐비하게 서있고, 그것들이 하나같이 푸른잎을 자랑하는 상록수 들임에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나무에 대해, 그리고 꽃에 대해 조금 안다고 자랑하고

다녔던 내 오만함이 부끄럽게 드러나던곳... 저수지 물은 햇살에 반사되어 반짝이고

동백잎은 그 햇살을 튕겨내고 있는 수경데크를 걸어가니 또 다시 선경에 들어선

듯 마음이 설렌다. 호로롱... 수목원 반대편 상황봉에서 우는 새소리가 물위를

한번 구르고 메아리가 되어 들려온다. 그 소리를 듣던 아이가, '어, 지하철역에서

듣던 바로 그 새소리네!'한다. 그래 그 기계음이 만들어 내는 그 새가 이곳에 살아

너로 하여금 생생한 체험을 하게 하는 이곳, 참 좋다.. 참 좋다를 연발했다.

동백나무가 빽빽히 들어서 한낮인데도 어두 컴컴한 '죽림원'을 들어서

산책로를 따라 이곳 저곳을 돌아다 보니 다리가 아프다. 아직도 볼것이 한두가지가

아닌데...향기를 내는 식물이 있는 '방향식물원'도 궁금하고 '녹나무원'도 보고싶고

'수경식물원'도 참 궁금한데 벌써 다리가 아프구나... 진달래원엔 얼마나 진달래가

많이 피어있을까나.. 이곳의 아이들이 숲체험을 한다는 '숲탐방로'도 돌아보아야 하고

약용식물원, 식용식물원은 또 얼마나 새로운 것들로 가득찼을까, 모두 다 궁금하기 짝이없다.

 

끝내 다 돌아보지 못하고 돌아 나와 또 아쉬움이 컸다. 이번에 청해진유적지 탐방이다.

아들녀석이 존경하는 인물중, 장보고가 으뜸이다. 녀석은 여행을 오기전부터 장보고의

고향에 간다고 설레했던 참이다. 장좌리 앞바다의 장도. 그곳이 바로 청해진의 근거지

였던 바로 그 자리다. 평상시엔 물이 잠겨 섬이었다가 물때가 되면 바닷길이 열리는

신비가 연출되는 곳이다. 오후 두시경, 바닷길이 열렸다. 그 길을 조심스레 걸었다.

아주머니 몇몇이 그 자리에서 조개를 캐고 있다. 딸아이가 달려들어 저도 한번

해보자고 호미를 쑤셔 몇개의 조개를 캐고는 의기양양해 한다.  

먼저 장도바닷가를 따라

섬을 한번 둘러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해안의 경비를 목적으로 둘렀다는 해안가

목책흔적을 발견했다. 목책사이로 따개비만 무성해 세월의 무상함을 보여주는듯

했다. 그 길을 조금 가다 홍합이 한두개 있어 그걸 따느라 시간을 보냈다. 사실,

바닷가를 돌아보는 일보다 홍합따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따다보니 한바구니 가득찼다.

장도는 청해진역사복원 작업이 한창이었다.

그래서 다는 못 둘러 보고 거의 완성단계에 이른 토성에 올라 완도를 전망하고

내려왔다. 그 섬 중앙에 상록수림이 우거진 원시림이 있고, 그 안에 장보고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단다. 섬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정성껏 당제를 지낸다 들었다.

섬중앙, 동그란 상록수림엔  주인이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온갖 새들이 내 영역엔

침법하지 말라고 소란스럽게 우짖는다.  아이를 계속 따라오던 섬에 사는 강아지

두마리는 장도를 벗어나는 바닷길까지 오더니 되돌아 선다. 아이는 강아지에게

작별을 고하고 우리는 완도에 작별을 고했다. 상록수림 곳곳에 우거진 푸른섬,

완도의 모습이 지금도 손에 잡힐듯 선하다.. 숲에 대한 아름다운 영화 한편 잘 감상했으나

그 느낌을 표현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오늘 아침 요란스런 직박구리 새소리에 다시 한번 완도의봄을 떠올리며 미소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