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이었습니다.
어머님의 병환이 더 깊어져서 의식불명 상태를 오락가락 하시는 가운데
서울갔다 일나갔다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몽땅
달아나 버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머릿속은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복잡하고 뭔가는 해야 할것 같은데
생각은 정지된듯한 느낌이 들었지요.
그래서 무작정 비디오 가게로 향했습니다. 새로운 비디오가 마땅찮아
예전걸 뒤졌습니다. 빌리 엘리어트... 그 영화를 보면 마음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는 그것들을 몽땅 수면위로 떠올리게 할수 있을것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수면위로 떠오른 문제들을 건져내선 하나하나 분리를 해둘수 있을것만
같았습니다.
이 영화는 두번을 이미 봤던 터였습니다.
영화에 한참 몰입했을 때는 한번 본 영화를 연거푸 두번 까지 보곤 했었습니다.
지지난 겨울 빌리엘리어트를 보고 나서 그 감동으로 가슴이 다 먹먹해 왔었습니다.
다시 한번 보지 않으면 후회할것 같아 내리 연속 본 영화였습니다.
그걸 새삼스럽게 다시 보고 싶더군요. 미운오리였던 빌리가
눈부시게 흰 날개를 달고 백조가 되어 비상하는 그 영화를 보면 내 상상속에서 나마
날개를 달고 어딘가로 날아갈수 있을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현실도피라 해도 좋고
예술작품감상이라는 고상한 취미라 불러도 뭐 나쁘지 않았을 겁니다.
1980년중반, 영국의 탄광촌이 그 배경입니다. 그때가 아마 영국은 지독한 경제난에
실업난이 겹쳐 있 때라는 군요. 빌리가 주인공입니다. 열두살,
한참 사춘기를 지나는 빌리에겐 꿈이 없어 보였습니다. 탄광촌은 똑같은 모양의
집들이 일렬로 들어서 있고 어른들은 탄광촌으로 일하러 가고 일을 할수 없는 노약자나
어린이들이 집을 지키고 있는 그저 그런 집중 하나인 빌리네 집인 까닭입니다.
빌리는 치매기가 있어 가끔 집을 나가곤 하시는 할머니를 돌보고
학교에 갔다 오면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권투도장에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다 빌리도 어른이 되면 형이나 아빠처럼 탄을 캐는 광부가
되어 살아갈테지요.. 그러니 탄광촌에 사는 아이들의 미래는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고 그곳에 사는 어른들도 그 생각에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남자아이들은 학교 갔다가 권투도장에 가고
여자아이들은 집에서 일을 하거나 그나마 조금 나은 집에선
권투도장옆에 있는 발레연습실에서 발레를 배웁니다.
탄광촌에선 임금인상 건을 가지고 노와 사가 첨예한 대립의 각을 세우고
노조는 해고 당할지도 모르는 위기속에서도 파업에 나섭니다.
어렵사리 마련한 돈을 빌리의 손에 쥐어주며 빌리의 아빠는
아들을 권투도장에 보내지만 빌리는 권투가 참 재미없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눈이 옆으로 돌아가 발레하는 여자아이들 틈속으로 들어가곤
합니다. 발레선생님(윌킨슨)은 빌리의 재능을 일찌감치 알아봅니다.
빌리의 마음속에 내재된 백조에의 꿈을 발레선생님은 키워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당시만 해도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편견은 발레하는 남자들은 죄다 게이정도로
치부해 버릴 정도였으니 당연히 빌리의 아버지는 사내가 할게 없어서
발레를 하느냐고 단칼에 빌리의 뜻을 꺽어 버리려 합니다.
하지만 빌리는 저도 모르는 새애 어떤 힘에 이끌리는걸 감지합니다.
그것은 발레리나였던 엄마에게서 받은 능력일수도 있고,
자신에게 부여된 천부적 재능일수도 있는 춤이었습니다.
빌리는 날고 싶었습니다. 사회적 편견을 깨는 일은 가능할것 같았지만
오히려 아버지와 형은 단단한 벽처럼 좀체 깨부술수가 없습니다.
빌리의 날개는 너무 작아 아버지와 형이라는 단단한 벽을 깰수가
없습니다. 빌리에게 커다란 날개가 필요했습니다.
윌킨슨선생님이 손을 내밀어 줍니다. 날개가 있는 곳을
향하여 비상할수 있는 의지를 길러주고자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빌리가 비상하여 날개를 얻기
위하여는 아버지의 눈물어린 포옹이 있어야 했습니다.
보다못해 발레 선생이 나섭니다. 당신의 아들은 발레에 천부적 재능이
있으니 빌리를 왕립발레학교에 보내자. 내가 도와주겠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쉽게 수긍할수가 없지요. 남자가 발레라니,그것도 내 아들이
하필이면 발레를 해야 하다니... 선생님의 결정적인 말한마디가 결국엔
아버지의 아픈심사를 찌르게 합니다. '그러면 빌리도 결국 탄광촌에서
광부가 되어 당신과 똑같은 그렇고 그런 삶을 되풀이 하길 바라나요?'
어느 부몬들 자신의 자식이 못되는걸 바라겠습니까?
어떤 부모가 내 자식의 재능을 그냥 썩히는걸 바라보고만 있을수 있겠는지요...
마침내 빌리의 아버지의 눈물겨운 포옹이 연출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빌리가 재능을 펼칠수 있도록 함께 싸운 노조원들을 뒤로 하고
탄광촌으로 합류합니다. 왕립발레학교에 갈수 있는 비용이 모아지고
마침내 빌리는 아버지 손을 잡고 난생 처음으로 런던으로 가는 버스에 오릅니다.
왕립발레학교의 위압적인 건축물에 주눅이 들고
권위적인 발레심사위원앞에서 너무 긴장한 빌리는 제 욕심껏
재능을 펼쳐보이지 못합니다. 게다가 옆에서 지나치게 말을 많이 걸어오는 녀석이
귀찮아 한번 밀친다는게 그만 녀석이 코피를 쏟아 말았네요..
징계감이라며 당장에 짐을 싸서 돌아가라는 엄포가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아쉽게 돌아서야 하는지 빌리는 마음이 한없이 착찹합니다.
그때 심사위원 한사람이 묻습니다. '빌리 춤을 출때 기분이 어떻니?'
갑작스러운 질문에 잠시 얼버무린 빌리가 대답합니다. '날아가는것 같아요.
내 안에 불꽃이 일어서 그것들이 밖으로 분출되는것 같은 기분이요..
아무튼, 춤을 추고 나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실기점수보담 어쩌면 면접점수(?)에 더 높은 점수를 받았는지 어쟀는지,
마침내 빌리는 합격통지서를 받아 듭니다.
아버지와 윌킨스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금빛나는 커다란 날개를
달게된 빌리... 탄부가 아닌 발레리노로서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아들을 배웅하는 아버지의 눈물을 봅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안아주는
아버지의 포옹이 눈물겹습니다. 비로소 형도 알게 됩니다. 빌리에게
빛나는 날개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 그래서 버스에 몸을 실은 동생을
향하여 울음섞인 한마디를 내뱉습니다. 네가 그리울거라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빌리의 발표회을 보러 시골에서 아버지와 형이
런던을 다시 찾습니다. 세월의 흔적은 아버지의 머리를 반백으로 물들여 놓았습니다.
꽝... 웅장한 피아노 음이 백조의 호수를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백조의호수를 연주음악으로 많이도 들었습니다만, 이 영화속에서 처럼
웅장미가 느껴지는건 처음이었습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느낌,
뭔가 새롭고 대단한게 펼쳐질거라는 의미심장한 그 첫음이 꽝하고
울리면 이젠 성인된 빌리가 무대로 튀어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희고 커다란 날개를 달았습니다.
두번째, 백조를 부르는 피아노 음이 꽝하고 울리자
동시에 커다란 날개를 펼치고 빌리가, 아니 백조 한마리가
우아하게 무대중앙으로 날아오릅니다.
그리고 막은 서서히 내렸습니다.
날개를 펼치며 무대로 날아오르는 빌리를 보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수 없었던 아버지 처럼 나도 따라 눈물이 흐르는걸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첫번째도 그랬고 두번째도 그리고 세번째도 역시 그 장면에선
웅장하게 감동이 밀려와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주말의 명화에 '빌리엘리어트'를 방영한다는 신문을 조금전에 보았습니다.
안보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번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빌리의 비상을 보면서 혹, 잊고 있었다면 새해 소망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는 것도 좋을듯 합니다. 더불어 탄광촌을 배경으로 파랗게 펼쳐진 바다를 보는
색다른 맛도 음미하면 좋을듯 합니다. 그건 생각지 못한 선물처럼 파랗게 펼쳐진
바다였습니다. 온통 검정색으로 도배되었으리라 생각한 탄광촌에 배경처럼 펼쳐진
투명한 파란색의 바다는 빌리의 발레학교 합격소식을 전할때 더 파란빛으로
일렁이는걸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