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아이들을 데리고 할머니 병문안을 간다. 일요일이었던 어제도 아이들과
국도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아이들은 '얼른 할머니가 나아서 우리 집에도 오시고
우리들하고 놀아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기도 하다가,
곧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하면서 아이들 특유의 순진무구함을 보이기도 한다.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는 남편이나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 표정이 매 한가지가 된다. 오늘은 또 어머님의 병세가 어떻게 되었으려나
지금으로선 최선을 다 한다는게 한없이 부족한 작은 손길에 지나지는 않는건 아닌지 ...
그런 생각으로 착찹한 마음 가눌길이 없어 서울가는 내내 에프엠 라디오만 혼자
떠들고 우리 부부는 줄곧 묵무부답이다.
아무말 없는 엄마아빠의 너무도 조용한 분위기가 어색했는지
차를 타면 멀미를 하곤 하는 딸아인 어느새 잠이 들고 아들녀석은
아빠를 코치하느라 바쁘다. 신호등을 점검하고 저보다 길을 더 알텐데
아빠에게 안내하듯 이정표를 읽어 준다며 부산을 떨곤한다.
차창밖에 펼쳐진 겨울의 풍경이 스산하다. 단지 겨울이라서, 옷을 벗은 겨울나무들이
황량한 바람을 맞서고 있어서가 아니다. 뭔가 의뭉스럽고 눈살이 찌뿌려지는 이
기분나뿐 이미지는 무엇인가 싶어 밖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서울을 벗어나면 적어도 푸른들판을 마주하며 달리고 싶었다.
회색빛 도시를 감싸 도는 스모그에서 벗어나 푸른숲, 파란하늘을 맘껏 우러르고 싶었다.
그러나 보이는 밖의 풍경은 여기저기 타워크레인이 올려지고 철골구조물이 한층한층
쌓아 올리고 있는 아파트를 짓고 있는 현장들로 부산하다.
어디 한군데 조용한 들과 산을 볼수가 없다. 언제 부터 그리되었는지
여기 남양주도 한창 개발붐이 불고 있다. 서울외곽도로를 따라 청평가는길과
그리고 춘천가는 길에 위치한 곳곳에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초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느라 멀리 펼쳐진 산능선의 장한 모습이
조금씩 건축물에 먹혀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미 완공 단계에 있는 아파트, 이제막 기초공사가 한창인 아파트,
길을 내느라 가로수 뿌리는 아랑곳 하지 않고 도로를 파헤치는 공사현장이
적나라하게 한눈에 들어온다. 잎새도 다 떨구고 열매도 다 내어준 겨울나무에게
조용한 동안거는 언감생심 인듯해 보였다.
머잖아 이곳도 서울의 복잡함과 회색도시에 늘상 피어나곤 하던
스모그에 휩싸이게 될것 같아 그날따라 찌뿌둥한 하늘처럼
마음이 우울하기 그지 없었다.
언제가 본 영화가 생각난다. 런던 외곽지역이 배경이던 영화 속에서
남자주인공이 홀로 국도변을 달리는 장면이 나왔다. 차를 따라가며 펼쳐지던 푸른공간,
자유로운 자연의 날것들이 기쁘게 펼쳐진 초록의 공간을 보며 그 길이
참으로 아름답고 부럽게 다가왔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잎떨군 나무들이 숙연히 서있는 산능선을 바라보며
늘상 인간에게 끝없이 짓밟히면서도 묵묵한 자연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스키철이라고 스키리조트 앞에서 차가 밀렸다.
가까운 산은 깎여 아파트를 짓고 있고 멀리있는 산중턱엔 도로가 뚫리려는지
실날같은 하얀선이 길게 뻗어 있다. 사람들은 자연을 다듬고 깎아서 보기좋게
만들고는 차를 달려 자연을 정복하러 가는것 같았다. 몇몇의 유명한 스키리조트가
있는 동네의 산의 한가운데는 하얀눈길이 나있다. 장발을 금하던 시절
머리를 자르라고 바리깡으로 머리 한가운데를 밀어버린것 같은 산길이 종종
눈에 띈다.
차창 밖으로 눈길을 돌리면 땅을 파헤치는 공사장의 모습만 보여
그만 눈을 감아 버리고 싶었다.
시어머님이 눈에 띄게 병색이 나빠졌다. 이야길 하고 싶으신지 계속해서
말씀은 하셨지만 그 가느다란 목소릴 듣기 위해 귀를 바싹 갖다 대야 했다.
얼마전에 어머님도 병명을 아신 모양이다.집으로 오신지 이틀만에 다시 입원을
하셨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물마저도 잘 못넘기는 상태다. 병원에서 내온 죽은
먹기 싫다 하시고 녹두죽을 조금씩 드시나 그양이 새모이 만큼이다.
이젠 어머님은 조금씩 '하늘로 돌아갈것'같다는 걸 숨기지 않으셨다.
남편의 손을 잡고 '마음 단단히 먹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
가느다란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있었다. 남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내손을 잡고 '너 우리집에 시집보내줘서 네엄마한테 고맙다고 전해라'하시는 말씀에
마음 약한 며느리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조금씩 준비를 하시는 모양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모양인지 이것 저것 챙기려 드신다.
평생 당신몸 호사 한번 못해 본 어머님의 손을 본다.
늘상 거칠고 투박했던 손이 아기손 같이 부드럽다.
하얗게 보드라운 어머님 손이 오히려 슬프다. 투박하고 거칠었던
손이 어머님껜 더 어울렸는데 누워 계시는 지금의 이
하얗게 보드랍기만 손은 어머님 손이 아닌것 같다.
힘없이 아래로만 자꾸 떨구어지는
어머님의 보드라운 손이 왜 그리도 서러운지 그 손을 닦는데
자꾸 눈물이난다.
'아이들 잘 키우라'고 강조를 하시는 어머님께서 식사를 권해도
'조금있다'먹겠다 자꾸 미루셔서 끝내 식사 하는걸 못 보고 와서 서운하다.
어머님 곁에서 손발이 되어 주시는 쌍둥이이모님이 걱정 하지 말란다.
어머님은 쌍둥이 이모님이 조금만 안보여도 성을 내셨다. 잠깐 어디
다녀온다면 이모님이 오실때까지 안절부절이다. 이모님은
성화가 대단하다 하면서도 기꺼이 어머님의 손발을 자청하셨다.
두분의 모습이 그마나 훈훈하여서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누구보다 형제자매가 중요하니라' 어머님의 말씀이셨다.
형제 자매가 없는 남편에게 강조하는 말도 니처형과 처제들한테
잘해라 였다. 어머님은 아들 혼자만 이세상에 떨구어 놓은게
영 마음이 언짢은 모양이었다. 안심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잘난체 하는 며느리가 나섰다. '어머님, 걱정 마세요. 저를 믿는다
하셨잖아요?' 희미하게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래, 네 걱정은 안한다'
그말씀에 속으로 '고맙습니다'그랬다. 어머님께 믿음을 주어서 그나마
헛살지 않았구나 싶었다.
다시 스모그낀 서울 거리를 벗어나 아무렇지 않게 흙이 파헤쳐지고
있는 국도변을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병원에 다녀와 밥을 먹다가도
눈자위가 붉어 지는 남편을 자주 안아주었다. 일요일의 하루가 바쁘게 지나갔다.
다음주 일요일도 바쁘게 지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