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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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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바람난 가족-


BY 빨강머리앤 2003-11-09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은 영화였다. 영화는 바람난 한가족을 통해 우리 사회의 비리 내지는 가족체제의 몰락을 그려놓았으므로... 총체적 난국, 나라가 어지러운때 여지없이 등장하는 단어 '총체적 난국'을  보는 느낌이었달까?  현대에 이르러 서서히 개인주의 적인 경향이 있어온 이후, 급속도로 가족의 해체가 일어나고 사회는 급변화한 세태를 흡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는 중이다. 그중 개개인의 사고는 무한대로 확장되고 사회가 품을수 있는 사고의 저변이 이미 폭발되어진건 통신의 발달이 크게 한몫을 했으리라 짐작하는바...정치인은 선거를 통해 쓴 만큼의 자금을 회수하느라 비리를 저지르고 기업가는 정치인들과 짝짜궁이 되어 비리의 양 측면의 한축을 담당(?) 하고 있다.

사회는 인터넷의 발달로  온갖 정보들이 거름망 없이 마구 수용되고 있으며 미래를 담당해야할 청소년들은 순수한 만큼 여과없이 수용되는 갖가지 정보에 또한 오염되고 있으니 이는 바로 '총체적 난국'이라... 아마도 임상수 감독은 그걸 말하고 싶었으리라..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비리의 도도한 물결, 너를 찍어 누르지 않으면 내가 가 올라서지 못하리라 처절한 생존의식의 이 경쟁사회는 서로 돕고  양보하는 우리의 고유한 미덕을 내 팽개쳐 버렸다. 이렇게 적막할수가... 경작은 제법 잘나가는 변호사다. 영화의 내용하고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인권에도 관련을 하며 나름대로 사회 엘리트로서의 의무를 해내고 있다.

그에겐 번듯한 아내가 있으나 성적 매력을 상실한지 오래다. 당연하단 듯 여자를 사귀었다. 여기서 당연하다 함은 아내 이외의 여자와 실상은 동거를 하고 있으면서도 죄의식은 커녕, 그녀와의 사이를 철저하게 즐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은 그냥 즐기는 정도를 넘어선다. 그녀의 변태적 성행위에 기꺼이 동참을 하고 아내에게 늦게 들어갈 만한 이핑계 저핑계를 대지만, 어쩌면 영작보다 더 사회에 냉소적인 그의 아내는 남편의 바람기를 짐작하면서도 내색하지 않는다. 무관심이다. 사랑은 애초에 식었고, 어쩌다 하게 되는 부부관계는 썰렁하기 이를데 없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따로 없는듯 보인다. 영작과 그의 아내 둘이 주인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건 영화가 말하는 총체적난국이 이 사회를 고발하는 장치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영작의 어머니는 공공연히 옛남자를 만나고 다닌다. 시아버지는 고질병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피를 바가지로 쏟고 있는 중이다. 시어머니인 윤여정만 빼고 나머지 등장인물은 대체적으로 냉소적이다. 시아버지역의 김인문 역시 마찬가지여서 낼모레 죽을줄 알고 있으면서 그는 며느리와 술을 마신다. 삶의 희망을 놓친것도 아니요, 젊어 한때 바람을 피우고 마누라에게 못쓸짓을 한 회한도 아니요, 그저 삶에 연연해 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시어머니는 그런 늙은 남편에 개의치 않고 옛남자를 만나 새삼스럽게 열정을 불태운다.

시아버지가 죽은날, 시어머니인 윤여정이 아들부부와 나란히 누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야 사는맛을 알게 되었다고. 새남자 친구랑 같이 잘 살고 싶다고.이제서야 오르가즘이 뭔지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런 시어머닌 시아버지의 장례절차가 끝나자 새남자 친구를 따라 외국으로 떠난다. 영작부부는 그런 어머니를 따뜻히 배웅을 하고 새로운 삶의 희망과 사랑에 충만한 시어머니는 행복한 모습으로 비행기에 오른다. 영작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들의 입양한 아들만이 남은 공간이 적적하기 이를데 없다. 그 적적함을 못 견디고 영작은 애인을 만나러 가고 그의 아내는 언제 부턴가 옆집 고등학생의 끈적거리는 시선을 받아 들인다.

 이 고등학생 또한 사회에 정상적으로 적응하지 못한 비사회적 인물로 그려지는데 그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아버지의 강요에 의해 외국으로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이 학생의 취미는 영작의 아내 훔쳐보기다. 재미삼아 영작의 아내는 고등학생과 데이트를 즐긴다.같은 공간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각자 다른삶을 살아가고 꿈꾸는 이들의 슬픈 자회상 같은 주인공들... 그들을 들여다보는 관객인 나는 마음이 한없이 불편하다.

그런던 중 고등학생의 아버지는 영작의 아내(문소리) 와 아들의 불륜의현장(?)을 미행하고 그 사실을 들고 영작에게 찾아가 돈을 뜯어내려다 쫒겨나고... 영작은 자신의 불륜은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아내의 불장난을 참을 수가 없다. 문소리의 가녀린 몸이 남편의 손길에 사정없이 난타된다. 머리채가 흔들리고 뼈마디가 흔들리다 결국은 손가락 뼈가 삐그덕... 문소리가 남편을 향해 소리친다. '너나 잘해'.. 너나 잘해란 말의 울림이 자못 크다. 영작은 아찔해져서 무조건 차를 몰고 애인의 집을 찾아가지만 애인의 애인이 와있다. 미안하다며 돌아서는 영작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고 그의 존재가 작아 보인다. 그는 이시대를 대표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한 표상일수는 있겠지 싶어 이대목에서 어쩐지 일말의 동정심도 일듯 말듯.. 우리 개개인은 사회적 피해자 일수도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문소리도 뛰쳐 나간다. 그녀가 일하는 에어로빅교실로 옆집 고등학생을 불러들이고 남편이 불륜이라 이름지은 그 일을 저지를 생각이다. 남편과의 잠자리가 만족하지 않은날, 남편이 보는 앞에서 자위를 서슴치 않았던 그녀가 고등학생과의 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며 흐느낀다. 손가락이 아플때마다 유괴범에게 살해당한 아들과 자신의 존재따위엔 애초에 관심도 없었던 것 같은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정당한 부부였던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오르가즘을 느낄수가 없었던 그녀가 자신을 좋아한 고등학생과의 관계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던 장면은 참 복잡다난한 느낌을 갖게 했다. 억압받고 살아왔던 여성성의 분출로도 보이고 희생만을 강요당하던 아내와 며느리인 여자의 자유가 표출되어지는 것으로도 보이던... 단순히 저 불륜의 현장을 그냥 무심하게 들여다 보기엔 , 그장면을 도덕적으로 질타하기 이전에 여성성의 자유를 또한 생각해 보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녀의 모든 억압이 밖으로 분출되어지는 듯한 그장면, 영화내내 보는 관객을 다소 불편하게 했던 영화가 그나마 분출구를 마련해 주던 그 장면이 남편과의 극적인 화해를 통한 부부간의 잠자리 였으면 이 영화는 헤피엔딩이 되었겠지.. 생각했지만, 감독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결말을 내놓는다.

아이를 갖지 못해 입양해야 했던 문소리가 고등학생과의 관계에서 아일 갖게 되고 다 용서할테니 같이 살자는 영작의 제안을 뿌리치고 혼자 살아갈것이란걸 암시하는듯 그녀는 씩씩하게 일어서는 것으로 영화가 막을 내린다.

임상수 감독은 이영화를 도덕적 교훈을 주는 영화로 만들지 않았다고 본다. 앞서 얘기 했지만, 총체적 사회비리가 만연하고 가족해체가 불러오는 인간성 상실을 아프게 그린 영화가 아닐까 . 그래서 영화를 보는 내내 안타깝게 주인공들을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었다. 다소 과장된 측면도 있지만 현실을 반영한 그래서 이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을 아프게 들여다 보게 하는 그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디 이 세상은 이 영화의 반대의 속성으로 지속되어지길 그래서 더욱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생각보다 야하지도(?) 재미있지도 않다며 일찌감치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옆에 있는 남편과 아내에게 한발짝씩만 다가선다면 세상은 아름답고 바람직한 가족들로 살아갈수 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진 사랑 한줌 옆사람에게 나눠 주기를 주저 하지 말며, 옆사람이 내게 나누어주는 사랑한줌 기꺼운 마음으로 받는다면 이 세상 참 살아갈만 하지 않을까.. 바람난 가족을 반면교사 삼아 오늘밤 부부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 맺어져야 하는지 돌아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