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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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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報恩)


BY 빨강머리앤 2003-10-24

조금 있으면 손님이 오시기로 되었다.

아침의고요를 한껏 즐길 시간에 나를 찾아오는 손님은

보험회사에 다니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한건 올리고 난 한건 올려주기로 한날.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에 물어 보면 저도 모르게 가입한 보험이

발에 치일 정도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걸 보면 불확실한 미래를 사는 우리들이 그 불확실성을

금전의 가치에 두고 살아야 하는 슬픈 현실을 사는 것 같아

한편으론 씁쓸하다가도 개인의 힘으로서는 어쩌지 못하는

불확실한 미래를 그렇게 금전적인 걸로 나마 확보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기도 한다.

 

사실,불확실한 미래를 담보한다는 보험을 난 그닥 신뢰하지 않았다.

지금 이러저러한 보험상품에 꽤나 많이 가입된 현재로서도 별로

보험이 탐탁치가 않지만 어쩔수 없이, 나도 모르게 보험에 가입하게 될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

 

솔직히 주변에서 아는 친척, 친구, 그리고 이웃으로 부터 한건만

올려 달라는 부탁을 무작스럽게 거절할 만한 단호함이 없는 나로선

그냥 별 필요성도 못 느끼고 보험을 들곤 했던것 같다.

 

그래서 이왕에 우리가족이 들수 있는 기본적인 보험이 이미

포화 상태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또다른 보험 하나를 들 생각을 한것이다.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인연으로 인한것이었다.

지난 여름, 남양주 야회공연 축제가 한창인 어느 저녁의 일이었다.

다산생가에서 공연되는 '다산선생과의 하루'를 보기위해

다산생가를 찾았던 날.

저녁무렵에 있는 그 연극을 보고 나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아무리 긴 여름해라지만 저녁이 오면 여지없이 밤의 빛깔을

갖는것을.... 가야금 3중주단의 멋진 공연은 저녁노을이 지는

야외에서 감상을 하고는

다시 다산생가앞, 셔틀 버스가 기다리는 곳으로 갔을 무렵엔 버스가 오기로한

시각이 다 되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여름저녁이 푸르스름하게

저물어 가는데도 버스가 오지 않는 거였다.

어쩌나...

그때 우리와 같이 다산생가 앞에서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한가족이 있었다.

오늘 보험일로 만나기로 한 바로 그분의 가족들.

아빠는 고등학교 역사선생님이고,중학생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둘,

그리고 보통의 아줌마로 보였던 그분.

 

자연스럽게 왜 차가 오지 않는지, 오늘 공연감상은 어땠는지

그리고 우리처럼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은 이곳생활은 어떤지.. 등등을 놓고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하늘에 별이 하나둘 돋아 올때마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 올것 같아 고개를 쭉 내밀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했다. 북한강을 따라 한참이나 들어간 그곳엔

마땅히 들어가 허기를 채울만한 공간도 없었을 뿐아니라, 어두워 지기 시작하자

근처에 널려 있던 포장마차도 모두 물러 갔는데 세상은 온통 고요함 뿐이었다.

가끔  이차선 도로를 드문드문 차들이 생~하고 지나가면서 정적을 깰뿐이었다.

그리고 그길을 넘어가면 시골마을 이었는지

농작물을 싣고 경운기를 털털거리며 몰아가는 늙은 농군의 뒷모습이

간간히 보일뿐.

 

조금씩 저녁 푸르스름함이 깜깜한 밤으로 채색되어질 무렵,

아줌마인 우리는 떨던 수다를 멈추고 안되겠다 싶어

핸드폰으로 야외축제 프로그램 안내책자에 적힌 사무실로 전화를 넣었다.

버스가 오기로 한 지 한시간 반가량이 지나 있었다.

 

그들은 발뺌을 하느라 앞뒤 안맞는 변명을 늘어 놓으며 잠시만 더 기다려 보라고

그랬다. 지금 사무실에서도 셔틀버스와 통화가 불가능 하다면서 말이다.

정말 가관이다 싶었다. 그래도 더 기다려 볼 수밖에... 한 삼십분이 더 지났나?

안되겠다 싶었다. 지나가는 택시도 없고 무작정 그곳에서 밤을 새울수는 더욱

없는 일이었다. 배고프다는 아이들에게 그분은 자신의 배낭에 있는 우유와 초코파이를

한개씩 쥐어 주었다.

 

걸어가자고 , 조금 걸어나가다 보면 아마 버스 정류장이 보일거라고 아이들이

있는데 걸을수 있겠냐고 물었다. 물론, 우리 아이들은 나보다도 오히려 더 잘 걷는데다

나도 걷는거라면 기꺼이 잘 할수 있었다. 걷는것 까진 좋았는데 길이 문제였다.

고속도로와 인접한 이차선은 주변에 논이랑 밭이 펼쳐지고 간간히 산길이 이어졌는데

사람들이 걸어다닐 만한 공간이 없었다. 논으로 빠지지 않게 또 지나치게 찻길로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면서 걷는 아슬아슬한 길..

 

여름밤하늘에 상현달인가, 하현달인가가, 조그맣게 떠올랐다. 그 여릿한 달빛이

좋다고 달맞이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개망초의 하얀꽃도 달빛을 받아

더 하얗게 반짝였다. 그것들이 어쩌다 한번씩 보이는 가로등을 대신해

길을 안내해 주었다.차가 싱싱 달리는 찻길 가까이 가려는 아이들을

붙잡아 가며 한 사십여분을 그렇게 걸었을까? 드디어 큰길이 나오고 흐므끄레하게

버스정류장의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만약, 나랑 아이들만 그곳에 있었다면...

택시도 한대 안다니고 버스는 더군다나 오지 않는 그

어두워지는 저녁에 우리만 달랑 그곳에 있었다면...

(물론, 다소 멀고 당장에 일에 묶인 몸이었지만 아이들 아빠가 차를 몰고

올수도 있었을 것이다. 번거롭게.)

그래서 우리 서있는 위치로 부터 사방1미터의 거리도 가늠해 볼수

없는 그곳에서 길을 따라 나서다 길을 잃기라도 했다면..

우리집이 아닌 어디 양수리쪽이나 북한강이 있는 곳으로

가버렸다면 저녁 물안개에 갇혀 버리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으로

몸이 오싹해져 왔다.

 

그런데 고맙게도 우리옆에 한가족이 있어

인도도 없는 이차선 찻길을 따라 한줄로 서서 버스정류장을 향해 갈수 있었던

불빛도 없던밤 그마나 버스를 탈수 있게되었던 것이다.

 

버스는 한참만에야 왔다. 버스노선을 잘 몰랐던 우리는

정말 다행히도 우리 동네서 별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던 그분들과

같이 버스를 탔다. 언제 준비하셨는지 우리분까지 버스비를 미리

버스동전 투입구에 쏟아 붓고 '얼른 타세요'했었다.

 

버스에 앉아 비로소 안도감이 몰려 오고 함께 했던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어느덧 그들이 마치 오래 알았던 가족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직행 노선이 아니었으므로 버스는 북쪽으로 난 북한강을 한바퀴를 다 돌아서

우리 윗동네에 섰고, 다시 우리집으로 오는 버스를 갈아탔다. 그 가족과 함께.

 

어느새 친해진 그집의 중학생 아들과 우리집 초등학생 아들은 둘이

앉아서 조분조분 이야길 나누고,

그집의 6학년 딸아인 우리집 3학년 딸아이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반

수다반 이었다.

 

버스가 집앞에 섰고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 그집의 6학년 아이가 수련회를 간다고 해서

난 그애에게 만원짜리 하나를 얼른 쥐어 주면서 그분의 가족을 향해

'정말 감사하다'고 깍듯이 고갤 숙였었다.

 

그분이 보험회사에 다닌다고 한 말을 어렴풋하게 새기고는 말이다.

 

오늘 그분이 방문을 했다. 굳이 보험을 들 이유가 없었지만

오늘 보험 한가지를 계약했다. 기꺼운 마음으로... 그분은 감사하다며

보여지는 그대로 조분조분 말씀을 나누시곤 아이들 주라며 빵을 한봉지 놓고 

가셨다.  서남쪽을 향한 베란다로 가을햇볕이 따사롭게 쏟아져 내려 방안 가득

햇살이 일렁이는 듯 하다.

 

이걸 보은(報恩) 이라 할수 있을까.

우리집 베란다에 가득찬 가을볕에 내 마음을 꺼내 보이니

너무 작기만 해서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