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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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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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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싸움.


BY 빨강머리앤 2003-09-30

어제 남편과 별일도 아닌일로 싸웠다.

문제의 발단은 내가 제공했으되, 그 문제의 발단 조차도

사랑으로 감싸주기를 원하던 나의 그 이중적인 심사는 무엇이었나?

하지만, 그는 내 생각을 일언지하에 뭉게 버릴듯 '그래? 너 잘났다'

고, 일축해 버렸다.

우, 배신감. 이 사소한 싸움에서 나의 존재를 인정받고 그의 사랑을 확인하려 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 그 길로 가출(?)을 결심했다.

좋아, 한번 두고 보라지. 내가 없어도 집안일이며 당신삶이 제대로 돌아가는지.

나는 큰소리를 치고 핸드백을 나꿔채듯이 집어 들고는 돌아서 버렸다.

 

싸움의 발단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리정돈을 못한걸 하루 이틀 본것도 아닌데 어젠 정말 왜 그토록이나 눈에 거슬리던지

한마디 하고 말았다.

그이는 그이 나름대로 전날밤 새벽에 들어와 잠도 못자고

여태 피곤이 덜 풀렸는데 마누라가 와서 따뜻한 위로는 못해줄망정

들어오자 마자 한다는 말이 '왜 이렇게 어지러 졌나?'니

그가 화가 날만도 한것이다.

 

획, 돌아서 나오기는 했지만 그가 뛰어와 나를 붙들어 주길

원했다. 그래서 자꾸 뒤를 돌아보는데 그이는 아니 나오고

나는 더욱 마음이 냉정해져 갔다.

좋아 ,이대로 어디든 가볼거야.

도도하게 턱을 치켜세우고 무릎을 똑바로 펴며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지만

생각해 보니 딱히 갈만한 곳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디로 가서 이 분통하고 화가나는 복잡한 심사를 달래 볼수 있을까?

혼자서 찻집에 가는 것은 너무 청승이 맞을것 같고,

그렇다고 무작정 거리를 걷는 것도한계가 있을것 같고,

눈앞에  서점이 보이긴 했는데 그집은 퍼질러 앉아 책을 읽을 만한 공간이

아니니 어딜간담.. 주변을 둘러 보다가 퍼득 생각이 났다.

 

얼마전에  시내에 도서관이 개관했다. 진작에 아이들과 가봐야지 했던걸,

뭐가 그리 바빴는지 아직 구경을 못해 보던 곳이었다.

잘되었구나, 싶었다. 오늘은 모든 집안일, 그리고 가족사 다 잊고 책이나

읽어보자. 이제 막 오픈한 건물답게 모든게 비까번쩍이다.

어라, 엘리베이터까지... 처음와서 뻘쭘하게 있다가 안내창구로 향하는데

줄이 길게 늘어나 있다. 도서관증을 발급받으려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고 있었다. 나도 처음으로 그곳에 왔기 때문에 증을 발급 받아야 하는데

거기서 서있을 시간이 너무 아까워 오늘은 구경만 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는

3층 열람실로 들어갔다.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책상에 띄엄띄엄 사람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분위기 딱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도

너무 없어도 어쩐지 그 자리에 앉기가 어색할것 같았는데...

근데, 도서목록이 하나도 눈에 안들어 온다.

얼마만의 도서관 나들이였는지.. 그간에 도서관에 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나마 서점 가는 일도 흔치 않았던건, 늘상 읽고 싶은 책을 남편이 퇴근길에

사오곤 했기 때문이다.

 

신문을 읽으면서 신간이 나오면 체크를 하곤 했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내 나름대로 내 기억의 저장창고에 채워 두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책들이 무더기로 쌓여있는 도서관 앞에 서니 하나도 생각이 안 나는 거였다.

아무려면 책 하나씩 뒤지다 보면 이거다 싶은게 나타나겠지 싶어

하나씩 훒어 보았다.

오픈한지 얼마 안된 깨끗한 도서관은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도서목록에서도

알수 있었다. 아직은 덜 채워진 서가가 더 눈에 띄었다.

하나하나 살펴가다가, 더 이상 기억창고만 뒤지면 안되겠다 싶어

여성학자인 오한숙희씨의 책을 골랐다. 제목이 눈에 확 띄어 진작부터

읽고 싶었던 책 '아줌아, 밥먹구가;...

 

언제가 텔레비젼에서 여성학을 강의하는 그녀를 본적이 있다.

잠깐이었지만 논리정연한 말솜씨가 참 맛깔 스럽단 생각을 한적이 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해왔던 그녀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고 싶어서 그녀의 책을 꼭 보고 싶었는데

잘되었다 싶었다. 그녀의 구수한 입담을 보는 듯한 구어체 문장이

머릿속에 팍팍 와닿았다.

 

김포에서 전원생활(농촌생활) 하면서 주변이야기에 덧입혀 여성의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편안한 얘기들을 읽으면서 책속에 잠시 빠져 들었나?

조금전 남편과 싸웠다는 사실이 현실이 아니게 느껴졌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해야 할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은 그러한데 도대체 손이 움직여 지지 않는다.

한편으론 내가 먼저 미안하다 전화를 하면 내가 스스로 잘못을 인정할 결과가

될테니 자존심 상하는 일이 될거란 생각도 들었다.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 내 안에서 스스로 해결점이 나올때까지 기다리자.

책이나 더 읽자. 의외로 책이 술술 넘어간다.

맛깔스런 그녀의 글솜씨에 함뿍 빠져서 나도 모르게 낄낄 웃어도 본다.

그러다가 누군가 나를 나무랄것 같아, 잠시 주변을 둘러 보았다.

다들 각자의 책읽기에 몰두해 있다. 유리창에 노을빛이 조금씩 스며드는걸 보니

벌써 저녁이구나 생각하는데 그때 도서관 마감시간임을 알리는 방송멘트가

흘렀다.

오늘은 부부싸움을 하고 혼자 몰래 도서관에 들어왔지만

이젠 아이들 손잡고 정식으로 도서관증도 받고 보고싶은 책도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부부싸움 때문이었으나, 어쨌든 오늘 하루 좋은 경험을 한것 같아

마음이 뿌뜻해 졌다. 벌써,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여러가지 봐 두었으니

다음엔 오늘처럼 헤매는 일도 없겠지 싶고 그간에 못 읽은 책들을 읽을 생각에

벌써 부터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들이 의아해서 쳐다보았다. '엄마, 어디갔다 왔어? 아빠가

엄마 어디갔냐고 전화 여러번 했어.'한다.

그 말을 듣고, 풋, 웃음이 났다.

이심전심, 미안하단 말 하고 싶었던 나와 그이의 마음이 통한거다.

 

오면서 장을 봐온걸로 오늘은 정성을 들여 반찬을 준비했다.

생각지도 않은 저녁 도시락 싸들고 그이에게 가봐야지.

미역국을 적당히 식혀 보온병에 담고 꽈리고추랑 멸치를 볶아 한켠에

담고 진짜 도시락처럼 보이고 싶어 달걀 묻힌 소세지를 구워 내고

그이가 진짜 좋아하는 두부김치를 만들어 흩어지지 않게 잘 담아 보았다.

직사각형 넓적한 도시락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갓 지은 밥을

퍼담고 그에게 향했다.

저녁바람이 차게 불고 있었으므로 밥이 식지 않도록 품에 꼭 안고서..

 

결혼, 십년... 신혼때에 비하면 그이도 나도 참 많이 변했지만,

우리는 어쩔수 없는 한쌍의 바퀴벌레다.. ^^

그리고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