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재래시장을 가 보기로 했다.
낮엔 덥기 때문에 꼭 대형 마트로 가게 되기도 하지만
딱히 요리를 할만한 재료를 살 필요가 없으니
재래시장은 정말 큰 맘 먹어야만 발걸음이 옮겨진다.
예전에 엄마 살아계실 적에는
엄마는 물건을 살펴 고르시고 흥정하시면
나는 뒤에서 계산 치른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다니며
'엄마,저 나물은 이름이 뭐야?'
"저건 어떻게 해 먹는거야?'
마흔 넘은 아줌마가 노할머니 친정엄마에게
이제사 살림 익히는 새댁처럼 쫑알거리며 따라다녔다.
이따금 시장에 나와 있는 먹거리를 사 먹기도 하며
몇 바퀴고 빙빙 돌다가 집으로 향하곤 했는데...
엄마는 습관처럼 물건값을 깎으시곤 했다.
때론 한웅큼 더 달라고 억지를 부리시기도 하시고...
그러면 난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깎지마시라고 핀잔을 주었었는데...
신문지 한 장 크기의 바닥에
줄줄이 좌판을 늘어놓고 계신 시골 할머니들을 뵈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우리 엄마도 저 할머니 연배셨을텐데...
아니 우리 엄마가 더 드셨을라나...
오이, 호박,가지,상추,무...
갖가지 야채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다 합쳐 봐야 값이 몇 만원도 안될 거 같은데
조급할 것 없으니 세월아 가거라
서로들 옆자리의 할머니와 담소하시며 손님이 오길 기다리신다.
시장을 한바퀴 휭 돌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건 가짓수가 많은 내 또래의 아낙 앞에 섰다.
뭘 사야 할까...
나보다 먼저 와 있는 한 아낙이 콩나물을 사는데
봉지 가득 담아주는 주인네의 인심이 후하게 느껴진다.
"그게 얼마치나 되나요?"
"오백원이요"
세상에나... 콩나물 오백원어치가 한 보따리는 되겠네...
나도 오백원어치만 담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파, 오이, 부추 한웅큼...
머릿 속엔 쫄면을 해 먹어 볼까하는 계산이 섰다.
엄마가 해 주신 가지 나물도 맛있었는데...
대여섯개씩 놓여 진 가지 한 웅큼에 천원이라고 한다.
요리 방법을 물어 설명을 들으면서도
도저히 맛있게 요리 할 자신이 없어 그냥 웃기만 했다.
부추는 몸에 좋다고들 하니 사긴 했는데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에이~
집에 가서 여동생에게 전화해 보면 되겠지 뭐...
주방에 들어가 잠깐동안에 마치 마술사처럼
금방 뚝딱 요리를 해 내시던 부지런하신 우리 엄마.
장바구니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 나오는 내내
엄마 생각 뿐이였다.
기왕 사 온 거니 부추 겉절이라도 해야 겠는데...
내친 김에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액젓에다 새고추 갈아서 마늘도 넣고...
동생의 설명대로 일단 해 보자.
이건 가사 실습도 아니고
쉰을 바라보는 중년 아낙의 꼴이 말이 아니로새.
이젠 내 대신 해 주실 엄마도 안 계시니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야할 일.
아직도 냉동실 문을 열면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손길...
마늘 다져 놓으신 것도 가게에 퍼 주고 나니
이제 마지막 한 주먹 남았나...
이렇게 저렇게 엄마의 손길이
하나씩 하나씩 세월에 묻혀 사라져 가겠지.
내 손으로 하나씩 하다 보면 또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날까...
엄마 생전에 말썽만 부리다
엄마 죽은 후에야 뉘우치던 청개구리 같은 딸.
"엄마~
또 우는거야?
이젠 고만 좀 울어~"
엄마 사진 앞에 앉아 훌쩍거리다 코 푸는 소리를
거실에 있는 둘째넘이 들었나 보다.
보지 않고서도 내 마음을 알아차린 아들넘이 위로겸 소리를 친다.
그래.
엄만 늘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시는 거니깐.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엄마'가 되도록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