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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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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서기 연습


BY 이쁜꽃향 2003-08-20

오랜만에 재래시장을 가 보기로 했다.

낮엔 덥기 때문에 꼭 대형 마트로 가게 되기도 하지만

딱히 요리를 할만한 재료를 살 필요가 없으니

재래시장은 정말 큰 맘 먹어야만 발걸음이 옮겨진다.

 

예전에 엄마 살아계실 적에는

엄마는 물건을 살펴 고르시고 흥정하시면

나는 뒤에서 계산 치른 물건들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다니며

'엄마,저 나물은 이름이 뭐야?'

"저건 어떻게 해 먹는거야?'

마흔 넘은 아줌마가 노할머니 친정엄마에게

이제사 살림 익히는 새댁처럼 쫑알거리며 따라다녔다.

이따금 시장에 나와 있는 먹거리를 사 먹기도 하며

몇 바퀴고 빙빙 돌다가 집으로 향하곤 했는데...

 

엄마는 습관처럼 물건값을 깎으시곤 했다.

때론 한웅큼 더 달라고 억지를 부리시기도 하시고...

그러면 난 엄마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깎지마시라고 핀잔을 주었었는데...

신문지 한 장 크기의 바닥에

줄줄이 좌판을 늘어놓고 계신 시골 할머니들을 뵈니

돌아가신 엄마 생각에 눈물이 핑 돈다.

우리 엄마도 저 할머니 연배셨을텐데...

아니 우리 엄마가 더 드셨을라나...

오이, 호박,가지,상추,무...

갖가지 야채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다.

다 합쳐 봐야 값이 몇 만원도 안될 거 같은데

조급할 것 없으니 세월아 가거라

서로들 옆자리의 할머니와 담소하시며 손님이 오길 기다리신다.

 

시장을 한바퀴 휭 돌아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건 가짓수가 많은 내 또래의 아낙 앞에 섰다.

뭘 사야 할까...

나보다 먼저 와 있는 한 아낙이 콩나물을 사는데

봉지 가득 담아주는 주인네의 인심이 후하게 느껴진다.

"그게 얼마치나 되나요?"

"오백원이요"

세상에나... 콩나물 오백원어치가 한 보따리는 되겠네...

나도 오백원어치만 담아달라고 했다.

그리고 대파, 오이, 부추 한웅큼...

머릿 속엔 쫄면을 해 먹어 볼까하는 계산이 섰다.

엄마가 해 주신 가지 나물도 맛있었는데...

대여섯개씩 놓여 진 가지 한 웅큼에 천원이라고 한다.

요리 방법을 물어 설명을 들으면서도

도저히 맛있게 요리 할 자신이 없어 그냥 웃기만 했다.

부추는 몸에 좋다고들 하니 사긴 했는데

어떻게 해 먹어야 할지...

에이~

집에 가서 여동생에게 전화해 보면 되겠지 뭐...

 

주방에  들어가 잠깐동안에 마치 마술사처럼

금방 뚝딱 요리를 해 내시던 부지런하신 우리 엄마.

장바구니 들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돌아 나오는 내내

엄마 생각 뿐이였다.

기왕 사 온 거니 부추 겉절이라도 해야 겠는데...

내친 김에 여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액젓에다 새고추 갈아서 마늘도 넣고...

동생의 설명대로 일단 해 보자.

이건 가사 실습도 아니고

쉰을 바라보는 중년 아낙의 꼴이 말이 아니로새.

 

이젠 내 대신 해 주실 엄마도 안 계시니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야할 일.

아직도 냉동실 문을 열면 곳곳에 남아있는 엄마의 손길...

마늘 다져 놓으신 것도 가게에 퍼 주고 나니

이제 마지막 한 주먹 남았나...

이렇게 저렇게 엄마의 손길이

하나씩 하나씩 세월에 묻혀 사라져 가겠지.

내 손으로 하나씩 하다 보면 또 얼마나 엄마 생각이 날까...

엄마 생전에 말썽만 부리다

엄마 죽은 후에야 뉘우치던 청개구리 같은 딸. 

 

"엄마~

또 우는거야?

이젠 고만 좀 울어~"

엄마 사진 앞에 앉아 훌쩍거리다 코 푸는 소리를

거실에 있는 둘째넘이 들었나 보다.

보지 않고서도 내 마음을 알아차린 아들넘이 위로겸 소리를 친다. 

그래.

엄만 늘 내 마음 속에 살아계시는 거니깐.

나도 엄마처럼

내 아이들에게 정말 소중한 '엄마'가 되도록 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