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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물


BY 선물 2011-05-31

엄마가 운다.

이번엔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여태껏 흘린 눈물은 아버지를 향한 것이었지만 지금의 눈물은 당신 자신을 향한 것이다.

아버지의 병을 알고 난 뒤부터 지금까지 엄마의 간호는 그야말로 극진했다.

당신도 허리 병이 있어 몸 추스르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도 얼굴 한번 찌푸리는 법이 없다.

처음 아버지 병을 알았을 때 엄마는 1년만이라도 더 시간이 주어지길 간절히 소망했다.

그것도 어려울 만큼 당시 상황이 나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충분히 감사한 마음이다.

항암치료를 받은 아버지는 단순한 연명 차원 이상의 치료 효과를 보여주셨다.

물론 구토, 설사, 통증 등의 부작용으로 심한 고통을 받기는 하셨지만 치료과정 중 좋은 컨디션을 보여주는 시간들도 주기적으로 갖게 되었다.

아버지는 여동생이 사는 곳에서 가까운 ㅅ병원에서 입 퇴원을 반복하며 치료를 받았다.

부모님을 가까이에서 돌봐드리겠다는 동생의 의지가 참으로 고맙고 대견했다.

다른 형제들도 나름대로 하느라 했겠지만 여동생의 수고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 아이의 수고로 인해 나머지 형제들의 마음은 한결 가벼울 수 있었고 우리의 관계는 힘든 와중에도 상처 없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생한 여동생의 희생도 전적으로 아버지 간호를 떠맡은 엄마의 수고에는 새 발의 피일뿐이다.

아버지가 연신 설사를 하며 고통스러워하실 때 엄마는 아버지 피부가 짓무르지 않고 보송보송하도록 극진히 보살폈다. 간호사가 이런 설사 중에 이토록 청결하게 피부가 유지된 환자는 처음 본다며 감탄할 정도였다.

한번은 아버지 용변 량과 상태에 대해 보호자가 적는 란에 <좋은 변>이라는 엄마의 글씨가 눈에 띄었다.

마치 글씨가 방글방글 웃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간호사가 그것을 보고 깔깔깔 웃으며 어떤 변이었어요, 하고 묻는다.

예쁜 변이었어요. 무르지도 않고 딱 적당히 예쁜 변이요.

허리가 아파서 아버지를 일으키고 용변을 받고 하는 일이 몹시도 고될 텐데 어떻게 그 와중에도 저토록 환히 웃을 수 있을까 입이 벌어졌다.

딸인 내가 옆에서 도와드리려 해도 엄마는 나를 나가게 하고 끝까지 혼자서 아버지 변을 처리하셨다.

딸 앞에서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보이게 하고 싶지 않은 맘에서다. 이 또한 아버지를 위한 배려이다.

아버지 또한 엄마를 최대한 배려하려고 애쓰지만 고통 중에 생겨나는 짜증이 간혹 표출되기도 한다.

특히 억지로 뭔가를 잡숫게 하려고 하면 아버지는 역정을 내신다.

곁에서 그것을 지켜보다가 엄마 맘이 다치지 않을까 걱정되었지만 엄마는 오히려 화낼 기운이 남아 있는 아버지가 좋다며 진심으로 기뻐하신다.

아버지가 화내셨어, 하는 말씀은 차라리 신바람 나 보인다.

오히려 아무런 감정의 표현조차 않는 아버지를 보면 엄마는 슬퍼진다.

어떻게 이렇게 입에 혀처럼 아버지께 극진할 수 있는지 슬쩍 여쭤보았다.

엄마는 답은 확고했다.

엄마가 아팠다면 아버지는 지금의 엄마보다 훨씬 더 극진하게 엄마를 간호했을 것이라고.

맞는 말씀이다.

다섯 살 아래의 엄마에게 첫눈에 반해 일평생을 예뻐하고 귀여워하며 엄마를 아껴주셨던 아버지다.

병환 중에도 엄마가 외출할 일이 생길 때면 어떻게든 손수 운전해서 함께 가시려고 애쓰시다가 작은 사고도 내신 분이다. 엄마 또한 아버지의 운전이 위험해서 어떻게든 말리려 했지만 그것이 아버지 마음을 다치게 하는지라 조바심 속에서도 조심조심 옆에서 애간장 태우며 끝까지 운전을 막지 못하신 분이다. 과장되게 표현하자면 목숨 걸고 아버지 기분을 맞춘 것이다.

물론 한 번의 사고 후에는 아버지도 당신의 몸이 맘처럼 움직여주지 않음을 아신 듯 더 이상의 고집은 부리지 않으셨다.

게다가 기어이 당신이 강하게 밀어붙여 엄마의 쌍꺼풀 수술까지 시키고 말았다.

아버지의 병을 알기 전, 엄마는 원래 있던 쌍꺼풀이 너무 심하게 처지는 바람에 시야확보조차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을 안 여동생이 수술하는 것을 권해드렸고 아버지 또한 강하게 엄마의 수술을 권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병을 알게 되면서 그 일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는데 그게 내내 아버지 맘에 걸렸던 것인지 몇 개월 전 아버지는 기어이 돈까지 마련해서 엄마의 수술을 명령하셨다.

병환 중에 있는 남편을 두고 사정이야 어떻든 성형을 한다는 것이 남 보기도 그렇고 해서 영 마뜩찮았던 엄마였지만 결국엔 아버지 맘을 편히 해 드리는 일임을 아시고 그리 따랐다.

엄마의 마음엔 이런 아버지가 얼마나 멋지고 고맙고 사랑스러울 것인가.

당연히 아버지 간호가 정성으로 가득할 수밖에.

노년이 되어서도 엄마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길엔 사랑이 가득했다. 참 귀여워하시는 구나, 하는 느낌을 자식들이 받을 만큼.

얼마 전 아버지가 잠시 치매와는 다른 섬망 증세를 보인 적이 있었다.

임종을 앞둔 말기 환자에게서 곧잘 나타나는 증세라고 한다.

그것을 곁에서 지켜 본 엄마는 너무도 놀라서 정말 애간장이 녹아내렸던 것 같다.

그러면서 생각하셨다.

곁에서 이렇게 환자를 극진히 돌보는 것은 사랑하는 부부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아무리 효자 효녀라고 해도 자식들은 한결같이 잘해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엄마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엄마의 눈물은 그것이었다.

당신을 향한 눈물이라는 말씀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후일 엄마가 아플 때 얼마나 아버지가 그립고 아쉬울 것인가.

미리부터 엄마는 서럽고 막막하다.

그 말씀에 걱정 마세요, 저희가 있잖아요, 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없다.

마음은 물론 백번도 더 그렇게 위로해 드리고 싶지만 말로 앞세울 일이 아님을 안다.

닥쳐봐야 알겠지만 내 마음만큼 현실이, 상황이 허락해줄 것인지도 알 수가 없다.

부부의 전생은 서로 원수였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우리 부모님을 보면 그 말은 틀렸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도 엄마도 고맙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아신 후, 엄마에게 정말 고생 많았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였다.

엄마 또한 그만큼 아버지께 감사하리라.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준 아버지에 대해서.

어차피 엄마가 감당해 내야 할 일.

사랑이 없었다면 엄마는 지금쯤 지쳐 쓰러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부모님을 보고 슬픔에 젖어 있는 내게 남편이 말한다.

당신 부모님은 그래도 잘 사셨고 행복하신 분들이라고.

그리고 진정으로 이별을 마음 아파할 수 있는 것도 복 받은 일이라고.

그 말에 나는 그저 고개만 끄덕이며 눈물을 떨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