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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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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심뽀를 잘 쓰야 하는겨....


BY 나의복숭 2003-07-16

외출 나갔다가 마악 닫기려는 엘리베이트를 탔다.
잠자리 날개같은 하늘 하늘한 옷차림의 여자애랑
젊은 엄마가 장난을 치는게 보였다.
14층 우리집 층수를 눌러는데 네댓살 먹은 여자애가
내 손을 탁 밀치며 발을 꽉 밟는다.
안그래도 더워서 땀 삐질 삐질 흘리며 들어오는데
이 무슨 일이람?

"얘. 왜 그러는데?"
발 아픈걸 참고 조금 교양있는척 애에게 물었다.
사실 교양은 뭔 얼어죽을 교양. 즈 엄마만 없었담
무대뽀로 머리통 한 대 쥐어박았겠구만...ㅎㅎㅎ
"내가 눌럴꺼야"
그리곤 14층을 눌러는게 아니고
층수마다 다 눌러고 있다.
짝수 엘리베이트라 한칸 건너 불이 켜지는데..
얼른 엄마를 쳐다봤다.
당연하게 야단 쳐주길 바래면서...밟핀 발도 아프니...
또 이럴땐 그러지 말라고 애를 붙잡아 당겨야 하지 않는가?

근데 어렵쇼?
"아유 우리 공주님. 숫자 공부하네요"
그러고는 그만이다.
아주 흐뭇한 웃음을 웃으면서 이뻐죽겠다는 듯...
지눈에는 이뻐죽을지 몰라도
난 한칸 올라가면 문이 열리고 또 열리니 열받아 죽겠구만...
으이씨....공주는 뭔 얼어죽을넘의 공주여.

엄마가 그러니 뭐라 말도 못하고
얼굴만 벌개서 속만 삭이고 있는데
이번에는 애가 엘리베이트 벽을 탕탕 손과 발로 번갈아 친다.
울 아파트 엘리베이트는 고물이라서
심심하믄 고장나는데....
탕탕 치는 소리에 엘리베이트가
흔들거리는거 같기도 하다.
엘리베이트라고 놀라지 말란 법있나?

"얘. 그러지마"
조금 화난 소리로 주의를 줬다.
내 발도 밟았으니 이판 사판 합의 육판으로
음성이 한옥타브 올랐을건 당연할꺼고.
양심껏 슬쩍 눈도 좀 꼴셨다.
"아니 왜 애한테 소리 지르고 야단이세요?"
"소리는 뭔 소릴 질러요? 엘리베이트 고장나서
여기 갇치면 댁이 책임질래요? 또 애가
내 발을 밟았음 미안하다고 해줘야 하는거 아니유?"
"애가 알고 밟았어요? 연세 있으신분이 참 별나셔"
저걸 콱~
졸지에 나는 별난 사람이 되어버리고
그녀는 애를 감싸않으며 나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하이구 지가 노려보믄 어쩔껴?
여긴 내 구역인데...킥킥킥...

14층이 열렸다.
그녀를 한번 팍 째려보고 내릴려는데 어라~
이 잉간이 한손엔 애 손을 잡고 한손엔 머리통만한
수박을 들고서 내 앞을 싹 밀치며 먼저 내리는거다.
엥?
14층 어느집에 오는 손님이여?
본의아니게 그녀의 뒤를 내가 절레 절레 따라가는 꼴이 되었다.
한집 지나고 두집 지나고...
아마 내가 남자였다면 저 인간이 지따라 온다고
얼마나 불안했을까? 캬캬...
드디어 두집 남았는데 마지막이 울집.
근데 그녀는 울집 못미쳐 옆집에 멈춰선다.

아하.
옆집 새댁을 찾아왔구나.
미안하지만 옆집 새댁 아까 외출하는거 내가 봤지롱.
근데 말 안해줄껴...메롱이닷.
벨을 눌러는 모녀를 핼끔거리며
울집 열쇠를 따고 실실 웃으며 들어왔다.

그려.... 지겹도록 벨 눌러라.
눌런다고 없는 사람이 나올까봐...
벌겋게 익은 얼굴을 씻고 대충 어질러진 집 치워놓고
그녀들이 갔나싶어
문을 핼끔 열고 고개 내밀어 쳐다봤드니
아이구 수박을 바닥에 놓고 애는 다리 아프다고
칭칭대고 젊은 엄마는 손수건을 부채삼아 붙여주며
칭얼대는 애를 달래고 있었다.

아까 고렇게 안땍땍 거렸음 내가 얼음물이라도 갖다 바치지.
안그럼 들어오라 소리라도 하든지...
그러게 심뽀를 잘 써야 하는겨...
근데
솔직하게 맘이 안편했다.
틀림없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방문한집에 쥔이 없으면
얼마나 당혹 스러우랴.
더구나 애 까지 데리고...
들어오라 할까? 말까?
미운넘 떡 하나 더 줘? 말어?
한참을 부처님 하나님 우짤까요? 생각해보는데
애가 복도를 이리 후닥닥 저리 후닥닥 뛰는 소리가 들렸다.
에구 얼마나 지겨웠으면 저러랴.
나이먹은 내가 참자.

"옆집 새댁 아까 어디 가든데...울집에 들어와서
기다릴래요?"
애는 레이스달린 원피스를 팔닥이며
아예 울집 현관속으로 얼른 들어와버리고 엄마는 미안한 듯
엉거추춤하며
"이 수박 좀 맡아 주실래요? 저가 수원서 왔거든요"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수박을 현관속으로 밀어넣는다.
아까일 때문에 미안한 탓인지 선뜻 들어오질않고
애에게 자꾸 나오란 손짓을 한다.
찬 사이다를 얼음에 넣어서 주니까 애는 단번에 마시고
엄마는 미안한 듯 쭈삣쭈삣~~ 그러나 달게 마셨다.

''아줌마. 아까는 죄송했어요"
결국 그녀는 사과를 하고 떠났다.
속으로는 떫어했을지 몰라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어쩌랴.
나에게 수박과 쪽지를 부탁하고 떠나가는 그녀에게
나도 괜히 미안했다.
그냥 암말 안했으면 좋았을껀데....
애들 버릇이야 지 엄마가 교육시키는건데
괜히 나서서 사건을 맹글고 있구만...

애구 몰라~
모두 이넘의 후덥지근한 날씨 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