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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빵굽는 여자


BY 손풍금 2003-07-31

얼마 전  신탄진 장날
더위를 쫓아볼 심산으로 신문을 접어 얼굴을 향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것을 보고 지나가던 손님이 멈춰서는 가방을 열고
접고 펴는 대나무부채를 건네며 "바람을 잘 일으켜 줄거예요."했었다.

4년을 함께 했다는 대나무살과 한지에 기름을 먹여 반들반들하고 잘생겼던 그 부채가 내 손으로 들어온지 달포 반이 지나서는 속살이 여섯군데나 부러지고 선면은 찢어져 그야말로 버려도 누가 주워가지 않을 부채가 되고말았다.
내 손에 들어오면 다 이렇게 된다.
(난 악마가 씌여나봐, 으흐흐)

부채주인이 알면 얼마나 서운해하고 괘씸해 할까 싶어 유리 반창고를 가지고 정성껏 수리해 들고다니는데 어찌 되었건 누더기 부채가 되고 말았다.

오늘처럼 장마끝난후의 본격적인 무더위에 대기열과 복사열로 신통했던 부채도 더운바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훅, 숨이 막힌다.
시원한 에어컨이 틀어져있는 농협도 수차례 들락 거리고 차가운물도 벌써 여섯컵째 들이 마시지만 대책없이 더워지는데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지쳐 앉아있는데 등 뒤쪽으로 승용차가 정차한다.
시동을 틀고 앉아 있는지 오분이 넘어서 이젠 등과 머리끝이 뜨거워지고 있다.

나는 차창앞에 다가서
'죄송한데요. 시동좀 잠시 꺼주시면 안되겠어요? 숨이 막혀서요."하는데
운전자는 저 아줌마가 무슨소리 하나 싶었는지 차창문을 열고 "뭐라구요?"하는데
차안에서 시원한 바람이 솔솔 나온다.
우와. 시원하다 . 나는 고개를 창문 가까이 대고 (하마터면 얼굴이 차안으로 들어갈뻔 했다)
"시동때문에 숨이 막혀요. 잠시 시동좀 꺼주세요."하니
"아.. 네, 죄송합니다. 더운데 생각을 못했네요"하더니 시동을 껀다.
참 감사한 운전자다.
좀전에도 차가 섰길래 부탁 했더니 들은척도 안하고 시동을 꺼지 않은채 20분이나 차를 세워놓고 앉아있어 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뻔(?)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예요.
6년전.
처음 거리에 나섰을때 한여름에도 빵을 구웠었거든요.
그것도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미련하게 말이지요.
생각해보세요. 작은 포장마차안에서 180도가 넘는 빵틀앞에서 빵을 굽고 있으니
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누가 내 모습 보면 빵 사먹고 싶겠어요?
나 라도 안사먹지..
그래도 계속해서 빵을 구웠어요.
못팔아 남기더라도 열심히 구워야겠다 생각했으니까요.
가끔씩 빵을 사러온 손님이 손수레 앞으로 다가오다가 뜨거운 열기에 몸을 뒤로 물러서며
"아이고, 아줌마, 그 안에서 어떻게 있어요? 안더워요?"할때
"네, 잘 모르겠어요."하면 신기한듯 바라보다
"더위먹어요. 조심하세요"하고 빵봉투를 받아들고 가고는 했다.

양옆으로 공간이 있으니 상가에 볼일 보러온 사람들이 차를 주차하고는 했는데
양쪽에 서서 시동을 켜고 정차해 있을때는 숨을 쉴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사람들에게 다가가 "시동 좀 꺼주세요. "하는 그 말을 하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다.
미련 곰탱이처럼...
(지금은 잘할수 있다. 엄청나게 독해져서 ㅡ.ㅡ;)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 목이 메이고 가슴이 서늘해진다.

이까짓 더위쯤이야 그때 비하면 에어콘 앞에 앉아있는것이지.
이 더위에 불평을 하다니,아직 고생을 덜했는가벼..
그런데 그 시절이 왜 그리 고요하게 비쳐지는걸까.
마치 오래된 흑백사진을 바라보는것 처럼 말이다.

서러워져야 하는데

시간을 되돌려보기 위해
한편 영화를 찍고 있었던 것처럼 말이예요

 

그런데 오늘 나 장사 하긴 했나요?
매일 먼곳 쳐다보고 꿈꾸듯 앉아있으니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