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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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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사랑 29장


BY 어지니 2003-08-09

 차라리 빽 소리라도 지르며 화라도 내면 마음이라도 편하련만...
입가에 거짓마소로 슬픈 표정을 감추고 돌아서는 일도의 팔목을 잡은 것은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다.
 이 남자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면 베갯잇을 적셔왔던가....
뜬구름을 잡듯이 좀체 다가오지 않는 남자로 인해 헤질대로 헤져 닳아버린 가슴을 부여잡은 나날이 얼마였던가....
 그와의 사랑은 시작부터가 자갈밭을 걷는 것 같았다.

 그 마음을 알기에 일도를 그냥 보내어선 안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그런 행동은 기혁의 화를 부추겼고, 꼬여든 마음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아!!"

 기혁은 있는 힘을 팔에 쏟아부어 일도의 팔목을 잡은 그녀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처연한 표정으로 돌아서려던 일도는 거칠게 몰아세우는 기혁의 태도에 격분하여 홱 돌아서 끌려가는 나경을 붙잡아주었다.

 "지금 해보겠다 이거요?"

 "그래야 한다면!"
 
 그저 온유한 성격만이 그의 전부인 줄 알았던 나경은 폭발하듯이 터져는 그의 단호함에 놀라 일도를 쳐다보았다.

 "그러시군. 그러시다면 나도 마다할 이유가 없지."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기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남자는 동시에 주먹을 휘둘렀다.
윽하는 비음소리를 내면서 두 남자가 서로의 주먹에 격타당해 두어걸음 물러섰다.
 
 "뭐하는 짓이야! 그만두지 못해!...그만하십시요."

 두 남자의 사이를 가로질러 영훈이 양팔을 벌리며 끼어들었다.
그러나, 영훈의 중재역활은 그다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오히려 두 남자의 주먹에 맞기만 했다.

 굼떠보이기만 하던 평소의 모습이 아니었다.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일도의 주먹이 기혁의 면상을 정통으로 후려쳤고. 기혁은 종이인간처럼 맥없이 바닥으로 나가떨어졌다.

 "이제...그만 하세요....."

 씩씩거리면서 작살을 내버릴 기세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기혁을 향해 달려드는 일도의 앞을 나경이 가로막았다.

 "그만....하세요."

 앙하고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선 나경을 한참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러죠....나경씨가 원하지 않다면....이쯤에서 그만하죠.....나경씨한테 지분거리는 놈이었다면....이 정도로 끝나진 않았어."

 자신의 주먹에 의해 바닥에 나뒹군 것은 기혁이었지만,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아픔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것은 일도였다.

 "내가 그토록 원하는 사람의 마음을 가진 당신이라 해도...한 번 더 나경씨를 아프게 하면...그땐 나도...."

 이어질 뒷말이 무엇일거라는 것은 기혁을 둘러싸고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점점 멀어져가는 일도의 뒷모습에 나경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서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두 사람의 기분을 또 내가 망쳐놓고 말았군....미안하다....미안해요.."

 입가에 흐르고 있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면서 기혁은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건네었다.

 "두 사람의 데이트를 위해서 우린 물러서주자구."

 멀어져가는 일도의 뒷모습을 쳐다보고 있는 나경의 팔을 잡았다.
왜그러냐고, 이러지 말라는 말도 하지 못한채.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모양새로 그의 팔에 이끌려 두사람의 시야에서 멀어졌다.

 "정민씨. 괜찮을 거에요....나경씨를 다치게 할만한 친구는 아니에요...."

 "하지만...."

 영훈의 만류에 나경을 따라가지 않은 것을 내내 후회하면서 본 영화의 내용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이만하면 됐어요...그만 놔줘요."

 "그래, 기분이 어떠신가? 김 나경씨...흑기사의 출현이 아주 감동적이었어."

 "그만 이죽거려요...."

 나경은 목이 메어 더 이상의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누구야?"

 "알바 없잖아요...."

 "뭐라구? 내가 듣기로 직장 상사라고 알고 있는데."

 "알면서 뭐하러 물어요?"

 "직장 사람이라면서 나처럼 느낌이라도 통했나보지?"

 “내가 기혁씨처럼 아무하고나 느낌을 나누는 사람인줄 알아요?"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그놈이랑 영화를 볼 생각을 해? 나를 제쳐두고 말야."

 "그 말하면서 뒤가 구리지 않아요? 늘 나를 제쳐둔 것은 기혁씨 쪽이었어요."

 "실없는 놈....감히 남자 있는 여자를 꼬드길 생각을 하다니."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기혁씨한테 그런 말 들을 만한 분 아니예요.“

 “저런 ...기분이 상하셨군, 그래.“

 “이런 되도 않은 말장난 이제 제발 좀 그만해요....나도 이제...지쳤어요."

 정말 지쳐버렸다.
정말로....지쳐버렸다.

 기분좋게 불어오는 바람에, 적당하게 내리쬐는 햇살아래에 선 나경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어깨의 움직임은 뇌신경을 건드렸고, 이내 그녀의 눈에서는 주룩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와 지쳤다는 말로 나를 떠날 셈인가 본데....그건 안돼!!"

 굳게 다문 입술, 살짝 찌푸려진 미간, 화가 나면 검은 눈동자가 반쯤은 치켜 올라가는 표정을 한꺼번에 자아내면서 기혁은 바락 소리를 질렀다.

 상심한 가슴안으로 비애만 깔리는 사랑.....그 사랑이 소리치고 있었다.

 “키스해 줘.“

 “뭐...뭘 해요?“

 “키스해달라고 했어. 당신 말처럼 그냥 직장 상사라는 걸 내게 증명 해보이라구."

 “싫어요!“

 다섯 살박이 조카랑 맞먹는 남자의 억지에 고개를 내리저었다.

 “싫어?“

 “왜 날 있는 그대로 믿어주지 않는 거예요?“

 “싫어?“

 “그래요. 싫어요..아주 끔찍할 정도로 싫어요!“

 나경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신경질적으로 돌아서버렸다.

 “아야!“

 돌아서 한걸음을 떼기도 전에 나경은 고통스러운 비명소리를 내었다.

 “넌 지금 날 화나게 하고 있어.“

 그가 신경질적으로 부여잡은 팔목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팔목은 아프게 죄어오기만 했다.

 “기혁씨만 화난 줄 알아요? 나도 화났어요! ...이 팔 놔요. 내가 당신을 만나러 왔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착각하지 말아요. 저 두사람 때문에 나온 거니까.“

  알레르기 체질이긴 했지만, 쉽사리 멍이 드는 약한 피부는 아니였다.
그런 그녀의 피부에 그가 아프게 잡았던 부위만큼 진갈색으로 보기 흉한 색채를 띄기 시작했다.
 
 싫다며 고개를 돌려버리는 그녀의 얼굴을 아프게 거머쥔 기혁은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대었다.
 조금도 흥분되거나, 부드러운 기 없는 그저 형벌에 가까운 무미건조한 키스였다.
앙다물고 있는 입술을 헤집고 들어온 그의 혀는 안된다며 도릿짓하는 그녀를 조롱이라도 하듯이 그녀의 입술안을 헤집어 놓았다.

 그의 혀가 제자리를 찾는 순간, 나경은 손을 쳐들어 그의 뺨을 후려쳤다.

 "이제 제발 그만해요! 이렇게 아무렇게나 날 아프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이렇게 자꾸 나를 아프게 하면....이젠 내가 용서 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