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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성


BY 세번다 2019-12-29

백제의 두번째 도읍지 웅진시대의 공산성
첫번째 왕도 위례성은 위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하남설 천안설
하남에 토성과 몽촌 토성이 있으니 아리수 한강변에위치한 수도였을듯 한데
고구려로부터 분리하여 남쪽으로 내려와서 한강변에 자리했다고 하니 천안보다는
한강변에 위치했을듯 짐작해본다
천안의 직산도 대두되고있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온조집단이 고구려에서 남하해 내려와 한강 유역의 위례성(慰禮城)에 자리를 잡고 나라를 세운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백제의 건국 과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기본사료인『삼국사기』백제본기(百濟本紀)의 초기기록과『삼국지(三國志)』동이전 한전(東夷傳 韓傳)의 내용이 상충하는 점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져야 한다. 영역과 관련하여『삼국지』동이전에는 3세기 중엽 무렵까지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마한(馬韓) 54국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백제는 그 중의 하나인 백제국(伯濟國)으로 나온다. 반면에『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서기전 1세기 초에 백제온조왕(溫祚王)이 전라북도 고부(古阜)까지 영역으로 확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지배체제와 관련하여 동이전에는 국의 지배자인 국읍(國邑) 주수(主帥)가 읍락(邑落)의 거수(渠帥)들을 잘 제어하지 못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반면에 백제본기에서는 3세기 중엽 경에 이미 6좌평(佐平)·16관등제(官等制)라고 하는 잘 짜여진 국가조직을 갖춘 것으로 되어 있다.
- 백과사전발췌-

공산성은 위례성시대에서 고구려에게 공격을 당한후 천도를 한것으로 보인다
그당시는 삼국이 치열하게 싸우던 시절
왕이  전사하는 전투도  나올정도였으니 참 치열했을듯하다
왕이 죽음  천도ㅡ를할수밖에 없었을것이다
고구려의 공격에 의하여 개로왕이 죽은 이후 웅진천도후 왕궁터가 공산성이다
 
공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