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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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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봄


BY 오늘풍경 2019-11-18

따뜻한 봄날이 그리워집니다.
겨울이 다가온다고해서 봄을 그리워하거나 하진 않았는데 기다려진다기 보다 문뜩 그리워집니다.
아마도 올 해 봄이 제겐 특별했었나 봅니다.
매일 아침 남편 손을 잡고 산책길을 나섰던 5월의 기억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한달 간 휴가를 받아온 남편 덕에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하루 24시간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그 한 달이 제게는 무척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5월 첫날 돈만 생각한 제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늦은 밤 한강으로 홀로 산책을 갔었고,
너무 늦어지자 걱정스런 얼굴로 마중을 나온 남편을 동네에서 마주쳤습니다.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담긴 남편의 얼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얼굴이었는데 그 가운데 저는 딱 제가 듣고 싶은 말만 듣습니다.
-너 때문에 내 마음이 아파. 니가 힘들어할 줄 몰랐어. 나는 지금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 다만 니가 걱정돼

이런 자의적인 해석 때문에 결혼까지 할 수 있었죠.
사실 5년간의 연애기간 동안 이루말할수 없이 다퉜는데 내가 토라져서 쌩하고 갈 때마다 뒤따라와 예의 그 표정으로 날 지그시 봐줬습니다.  농담과 장난치는 말은 어디 학원이라도 다닌 사람처럼 너무나 잘하면서 진심을 전달하는 데는 서툰 남자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볼 때 결심했었죠. 그래 이 사람이랑 결혼해야겠다.
사실, 지금도 이 표정 때문에 같이 살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내가 편안하길 바라는 그 눈빛이면 제겐 100프로 입니다.

같이 산책하고 차 마시고, 반찬 만들고, 같이 예능프로보면서 웃는 게 전부였던 그 한 달이 무척이나그리워지는 것을 보니 제 마음이 요즘 많이 추운가봅니다.
겨울은 피부보다 마음을 차갑게 하는 묘한 계절입니다.
견딜만한 실내온도임에도 일부러 보일러를 세게 틀어놓고 있습니다.
살갗이 따뜻해지면 마음도 같이 데워질까해서요.

어제 남편한테 둘 다 백수가 되면 뭐하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런 걸 미처 생각해 볼 틈도 없이 바쁜 사람이라 고작 한다는 말의 배경에는 지난 5월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같이 산책하고 같이 밥 해 먹고 같이 책 읽고 차마시고....

제가 말했습니다.

세계여행을 갈 수도 있지. 전국일주를 할 수도 있고. 전국 도보여행이면 더 좋고. 도보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매주 한 번씩 단체에 끼어 도보여행 가고, 산악회 가입해서 전국 산을 다시 누벼보고,  나는 이미 마스터했지만 개헤엄밖에 못하는 당신은 수영을 배워도 좋고, 평소 하고 싶었던 목공일을 배워도 좋고, 세상에서 가장 마음 행복하게 하는 마법이 숨어있는 자원봉사를 다녀도 좋고, 나는 정말 이 보다 클 수 없다 싶은 캔버스를 사다가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  한달에 100만원 주는 알바가 있다면 그런 것도 해 보고 싶고... 소설을 죽을 때까지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힘들겠어. 아이디어는 넘쳐나지만 스토리와 구성을 멋드러지게 할 자신이 없어. 단편소설로 나름대로 권위있는 문학상 하나 받았으니 내 어릴적 꿈이었던 소설가의 꿈은 이룬 것으로 치고 이젠 접어야할 것 같아. 일상을 담는 글도 겨우겨우 쓰는데 무슨 소설...그리고 실패자들의 이야기인 소설은 인물과 사건을 생각할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그만 생각할까봐...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고,
남편 출근 후 겨울잠 자는 곰처럼 지속적으로 자다가 겨우 일어나 청소하고 씻었습니다.
이유가 있든, 없든 가을이면 가을이라고 겨울이면 겨울이라고 마음에 부는 스산한 바람의 정체는 도대체 어디서 기원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나만의 감수성이라면 이젠 그만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루어지기 보다 상상만으로 끝날 공산이 크지만 그래도 나중의 일을 행복한 모습으로 떠올려보는 것은 마음 데우는데는 그만인 것 같네요.

붕어빵, 호빵, 어묵이 그리워질 봄을 그리워하다 그리워하다 이젠 차분히 기다리기로 합니다.
곧 봄이 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