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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BY 만석 2019-01-01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
 
12월 31일. 시아버님 기일이다. 며느님은 벌써 어제부터 준비를 하는 모양이다. 이젠 당연히 제 몫인 양 묻는 일 없이 일을 진행한다. 제상에 올릴 제수며 손님 맞을 찬거리를 폰에 목록을 지어 저장하고 장만을 하니,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제는 내 입이 바쁘지 않아도 족하다.
 
그런데 10시가 지나자 전 지지는 일을 마치고, 다 지진 전 바구니를 들고 며느님이 올라온다.
“감기가 심해져서 병원 다녀오려고 서둘렀어요.” 아이가 감기가 심하다 한다. 그래서 새벽 4시부터 전을 지졌단다. 제사 준비에 차질이 생길 판이다. 내가 할 일이 많아졌다는 이야기지.
 
“나물은 병원 다녀와서 무쳐 올라올게요.” 걱정을 말라는 이야기지만 아이가 아픈 것도 걱정이고, 제사 준비도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늘 그랬던 것처럼 국이랑 탕이랑 몇 가지는 내가 준비를 해야 한다. 허긴. 전과 나물만 맡아주어도 한결 수월하긴 하지.
 
제사 준비를 할 때면 늘 시어머님 생각을 하게 된다. 친정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이라서, 제사를 모시는 일이 없었다. 나는 결혼을 할 즈음에 교회에 나가는 일을 게을리 해서, 시댁의 종교 따위는 거론을 하지 않았던 게 사단이었다. 결혼을 하고보니 제사는 달마다 지내야 했다.
 
제사를 지낼 때마다 일일이 시어머님의 하명을 받았다.
“탕이랑 국거리 무는 두꺼워야 자손이 잘 되느니라.”
“숙주나물 위의 다시마는 길어야 조상이 다녀가실 때 자실 것을 많이 짊어지고 가시느니라.”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시간관념은 서로 상반되기 마련이다.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고 빠르게 가는 것 같으니 말이다. 서너 시간이 지나자 며느님이 나물을 무쳐서 들고 들어섰다. 약효 덕분인지 아이의 열이 다소 내렸다 한다. 다행이다.
 
막내 딸아이 내외가 오고 막내아들이 마침 한국 출장 중이어서 참석을 했다. 다섯 시누이 중에 세 부부가 참석을 했다. 그 많던 제군이 이제 열네 명으로 줄어들었다. 제군들은 언제나 잡담이 많기 마련이다. 오늘의 화두는 시부모님 산소 이장 문제로 이어졌다.
 
이장문제는 별 탈 없이 영감의 뜻대로 모두 수궁을 했다. 사실은 걱정을 많이 했던 부분이다. 차세대의 산소관리 문제로, 시부모님을 추모공원으로 모시기로 한 일을, 혹시 누구라도 반대하는 일이 버러지지 않으려나 걱정을 했었다.
 
시누이들은 각자가 추렴해서 봉투를 만들어 건네주었다. 나는 늘 봉투를 수고한 며느님에게 하사(?)한다. 얼굴도 뵙지 못한 시조부모(媤祖父母)님의 제사를 모시기가 수월했겠느냐는 말이지. 해마다 마다하는 며느님을 대신해서 손주가 대신 받았으니 에미에게 잘 전해지겠지.
 
시누이부부들이 먼저 일어나고 이젠 내 식솔들만 오붓이 남았다. 큰아들의 재치로 그 많던 설거지가 끝나고 새해 맞을 준비들을 한다. 막내사위가 케이크를 사러 나가더니 거의 한 시간이 지나자 들어왔다. 케이크를 사려고 줄을 선 손님이 많아서 30분을 줄을 서서 기다렸다 한다.
 
케이크의 촛대에 불을 붙이고, TV의 보신각 타종 소리에 맞추어,
“Happy new year~!”를 합창하며 서로에게 덕담 건네기를 했다.
“와~! 2019년이다.”
 
서로의 건강을 빌며 사업의 성공을 빌며, 이렇게 우리는 새해를 맞았다.
하는 일마다 대박을 맞으라고도 덕담을 나누며, 이렇게 우리는 2019년을 맞았다.
에구~. 송구영신예배에 참석을 하지 못했네.
 
묵은해를 보내며 새해를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