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일주일의 휴가를 나오는 남편을 따라 막내딸이 입국을 한다고 한다. 일주일이라고는 하지만 오는 날과 가는 날을 빼면 겨우 사흘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어서 온댄다. “에헤라 디여~♪♪” 반가움에 가슴이 쿵캉쿵캉. 얼마나 보고 싶었던 그들인가.
저녁 늦은 시간에 인천공항으로 입국을 해서 곧바로 호텔로 들었단다. 우리 집에 짐을 풀어도 좋겠으나 사위의 출근이 고생스러울 것 같아서, 회사 가까운 곳으로 호텔을 예약했다 한다. 잘한 일이지. 우리 집이 워낙 변방이라서 올 때마다 호텔을 잡는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먼 곳에서 지척으로 왔으나…. 어서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섭섭한 맘을 갖게 한다. 욕심이다. 참아야 한다. 내일이면 득달같이 달려 올 것이니까. 아마 저도 어서 오고 싶은데, 사정이 그래서 못 오겠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오잉~? 다음 날엔 시어머니를 만난다 한다. 아들 내외가 워낙 짧은 일정이라서 시어머니가 지방에서 올라온단다. 에구~. 당연한 일인데 내 마음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구태여 ‘출가외인’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일인데 말이지. 내 마음을 달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마침 내 시어머니의 제일(祭日)이라 그 저녁엔 꼼짝없이 달려왔다. 서로가 두 손을 벌려 포웅을 했다. 이렇게 좋은 걸 이렇게 좋은 걸. 저런~! 딸의 눈이 금방 벌겋게 충혈이 된다. 눈물을 감추느라 시선을 돌린다. 나도 울고 싶은데. 보고 또 봐도 또 보고 싶었는걸. 당연한 일이다.
시누이내외들이 모여 제사가 끝나고, 이제 막 일어섰는데 사위가 헐레벌떡 들어선다. 선 채로 인사들을 나누고 베웅을 마치고 다시 정식으로 해후(邂逅)를 한다. 이렇게 좋은 것을. 이렇게 좋은 것을. 내가 얼마나 산다고 이렇게 그리워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런 이런! 다시 호텔로 보내야 한다. 내일 아침 사위의 이른 출근이 걱정스러워서 이 야심한 밤에 호텔로 가야 한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너무 멀지 않은가. 암, 당연한 일이지. 그런데 마음 한 구석 쪼끔이, 조금은 아려온다. 당연한 일이라면서도 맘이 그렇다.
한 편으로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사위의 끼니가 언제나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제사를 지낸 뒤라서 찬거리야 충분하지만, 있는 것으로 아침을 차려도 될지 걱정이기 때문이다. ‘백년손님’이라지 않는가.
게다가 한식과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소지한 어머니의 외아들이니, 내가 무엇을 해 낸들 사위의 입맛에 맞겠는가. 어머니의 솜씨와 비교해서 흉 거리나 되지 않겠는가. 그래서 다른 일보다 사위의 끼니는 언제나 걱정스럽다.
내일은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난다고 한다. 죽고 못 사는 사이들이니 당연하지. 당연한 일이다. 어차피 직장엘 나가는 친구들이니 저녁 모임일 것이다. 낮에는 좀 자 두어야 할 것이다. 시차적응도 못하고 설쳤으니 피곤도 하겠으니 말이다.
그 다음 날에는 대학동창들을 만난다고 한다. 그네들도 친분이 유별난 사이들이다. 때맞춰 ‘신춘문예’에 당선이 된 친구도 축하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당연한 일이지. 낮에는 좀 자 둬야 저녁의 모임이 순조로울 것이다. 당연하지.
이제 딸아이의 일정은 끝이 났다. 내일 1시 반 비행기로 출국을 하게 되니 아침에 공항으로 나가야 한다. 나도 영감과 같이 공항으로 나가? 잠깐 그렇게 상면하고 이대로 헤어지기엔 너무 아쉽다. 그러나 딸아이는 한사코 마다한다. 우리가 돌아서는 그림이 오래도록 각인된단다.
이렇게 딸아이 내외는 출국을 했다. 꿈을 꾼 것 같다. 나라고 계획이 없었겠는가. 그동안 딸아이의 부재로, 혼자서 쇼핑을 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손잡고 쇼핑을 나가고 싶어서 목록을 적어놓기도 했었다.
남이 아닌 딸아이와 같이 다녀오고 싶은 병원도 있었다. 그동안 마다했던 눈썹문신도 예전처럼 손잡고 가서 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워낙 짧은 일정이라 내가 예정했던 일이 깡그리 망가졌다고 딴지를 걸 수는 없다. 그래도 맥이 빠진다. 정말 다녀가기는 한 걸까.
다시 혼자가 되었다. 요새로 부쩍 다가온 무기력증이 다시 밀려온다.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래서는 안 되는데. ‘당연하지’, ‘당연하지’하기는 했어도 마음이 너무 허전하다. 어서 마음을 추스르자. 그 아이가 결혼 전에 내 곁에 머물었던 시간이 너무 길었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