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표를 보여 드릴때마다 눈물을 흘리시면서
“ 엄마가 우리 아들 덕에 살 맛이 난다!”
“ 엄마는 하나도 힘들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
“ 우리 아들이 공부 열심히 해서 변호사나 검사 되면 소원이 없을것 같아!”
“ 우리처럼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한테 도움 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어머니는 갈라지고 피가 흐르는 손으로 제 두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불쌍한 어머니를 위해 전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가 어머니께 해드릴 수 있는건 그것밖에는 없었으니까요
제가 몇 년째 시험에 떨어지고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어머니 산소앞에 가서 엉엉 울었습니다.
사법고시에 꼭 합격해서 꼭 산소앞에 합격증을 놓아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저와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그리 쉽게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공부한다고 해서 모든걸 다 이룰 수 있는건 아니었습니다.
나날이 쌓여 가는 밀린 고지서와 방세를 감당하기가 벅찼습니다.
가난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함께 살던 친구들이 하나씩 죽어 나갈때마다
저도 함께 삶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었습니다.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수면제를 털어 넣을때마다
매번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물집이 잡혀 피가 흐르는 손으로 제 얼굴을 쓰다듬어 주십니다.
어제도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이제는 포기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만큼 노력을 했으면 된거라고 제 어깨를 토닥토닥 해주셨습니다.
죄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제 뺨을 어루만져 주시면서 미소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낡은 방안 가득 어지러이 쌓여 있던 십년 묵은 책들을 정리했습니다.
너무도 오랜 시간 함께 했기에 손때 묻은 책장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느껴졌습니다.
이제 책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의 새로운 출발이 두렵습니다.
그래도 죽으려고 결심했던 그 순간만큼 힘들지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창문 너머 으리으리하게 올라가는 거대한 아파트에 살만큼 부자가 되지는 못해도
방세 걱정없이 편하게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방 한칸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자가 되고싶은 간절한 꿈은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걸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그 꿈이 간절하더라도 다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산동네 고물상마저 재개발의 희생양이 되어버려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하나 남은 고물상으로 열심히 박스를 팔러 가시는 옆방 할머니를 위해
책들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리어커 가득 책들을 싣고 거리를 걷는 기분이 왠지 우울했습니다.
다리를 절면서도 리어커를 끄는 내내 즐거워 하시는 할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저울에 책들이 올라갈때마다 할머니는 조금만 더 값을 쳐 달라고 사장님과
한참동안 실랑이를 벌이셨습니다.
사장님은 오늘이 마지막 장사라면서 씁쓸한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종이를 줍고 박스를 주워도 받아주는 곳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오백원을 받으러 더 멀리까지 가봐야겠다고 하시면서 몰래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그래도 지하철은 공짜로 탈 수 있어 다행이라고 억지로 웃는척 하십니다.
우리 국수집
가난한 주머니의 아픔을 달래 주던 정겨운 국수집이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반갑게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으리으리한 상가건물에 기죽지 않고
새 옷으로 갈아 입지도 않은채
오랜 친구처럼 우뚝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낡은 책상 위에 놓 장부마다 꾹꾹 눌러 쓴 친구들의 이름이 정겹다.
예고도 없이 고물상을 정리해 버린 미안한 마음에 작은 나눔의 행사준비에 한창이다.
가게밖에 파라솔들을 놓고 미리 준비한 떡과 과일들을 예쁘게 올려 놓았다.
국수가 불어 버릴까 걱정되는 마음에 미리 우려낸 국물옆에 가지런히 칼질해 놓은
국수반죽을 놓고 기다리는 마음이 어린아이처럼 설레었다.
송노인은 가파른 고시원 계단을 내려가는 내내 무릎이 아파 주저앉기를 반복했다.
난간을 잡고 일어설때마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통증에 눈물이 날 정도다.
다시 이 계단을 올라 방에 들어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아찔해진다.
고생하는 손주를 생각하면 푸념을 늘어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어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이 고통스럽다.
오늘은 도시락을 받으러 성당에 가지 않아도 배 부르게 밥을 먹을 수 있는 날이다.
폐지를 주워 팔던 고물상이 문을 닫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고시원 바로 옆에 생긴 ‘우리 국수집’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기쁨보다 더 컸다.
벌써부터 국수집 앞엔 한끼가 간절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회포를 풀고 있다.
외상장부에 달지 않아도 마음 편히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기쁨에 취해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 개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고뭉상을 그만두신지 얼마 안되셨는데 힘들지 않으세요?”
전혀 힘들지 않아요!
오늘에서야 어르신들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덜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준비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렇게 많이들 찾아와 주시고
축하한다고 꽃도 사다 주시고
맛있게 드셔 주셔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앞으로 더 열심히 잘 대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에게 이런 기쁘고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게 도와 주신 사장님 부부한테
얼마낙 감사한지 몰라요!
찾아 뵙고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연락이 안되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까 바깥 사장님께서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요양원에 계시다고 하더라고요!
가게 자리 잡히면 한 번 찾아 뵙고 인사드리려고요!
“ 간판이나 가게 인테리어를 예전 가게 그대로 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손님들께 추억을 전해 드리고 싶었어요!
재개발한다고 예전건 다 부수고 무조건 새로 만들면 추억도 다 사라지잖아요!
돈 없고 배 고플 때 시장 국수집에서 따뜻한 국수 한 그릇 사 먹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해 드리고 싶었어요!
물론 더 깨끗하고 멋진 고급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고싶어 하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건 아니잖아요!
그래도 옛날이 더 좋았고 그립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을 위해 무언가 해드리고 싶었어요
저기 앞에 으리으리한 상가 건물이 생기고 비싼 레스토랑이 생긴다고 해서
모두가 다 맘놓고 먹을 수 있는건 아니잖아요!
주머니에 천원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면서 살았어요
그래서, 이젠 더 이상 그런 슬픈 모습을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풍성하지는 않아도 그리움이 묻어나고 따뜻한 정이 묻어나는
그런 국수를 만들어 드리고 싶으 간절한 마음이예요!
꾸미지 않은 멋스러움에도 배가 부르고 정이 넘쳐나는 그 곳이 있어
사람들은 아직 살만한 세상이라고들 이야기합니다.
수백통의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봐도 반겨주는 회사 하나 없을 때
따뜻한 국수 한 그릇과 소주 한 잔으로 위로가 되어 주던 그 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오늘도 또 면접에 떨어졌습니다.
해를 넘겨도 여전히 저는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보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를 사는게 고통이었던 지난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견딜만 합니다.
‘우리 국수집’이 있기에 세상은 아직 견딜만 하고 도전해 볼만합니다.
삼촌같은 사장님은 언제나 돈이 없는 저를 구박하거나 싫어하지 않으십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하지 못해도 웃으면서 찾아와 주니 고맙다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죽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서 국수를 먹으러 와준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눈물을 글썽이십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국수를 먹던 녀석이
다음날 아침에 시체가 되어 눈물 흘리게 하는 현실이 싫다고 한숨을 흘리십니다.
두꺼운 장부에 더 이상 적을 곳이 없어도 싫은 내색 한 번 안하시는
그런 인심 좋은 사장님이 계시기에 아직은 따뜻한 세상입니다.
오늘도 정성들여 꾹꾹 눌러 쓴 이력서 뭉치들을 잔뜩 가방에 넣고
전단지를 돌리듯 회사마다 접수하러 갑니다.
어제 산 백장의 이력서를 벌써 다 써버렸습니다.
다시 또 밤새 이력서를 쓰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시야를 가리는 공사장 먼지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수많은 산동네 주민들의 눈물과 맞바꾼 흙가루들을 피하려 입을 가리고 코를 가려 보지만
얄밉게 비집고 들어와 페속으로 스며들어 서럽게 합니다.
사채빚을 갚지 못해 신장을 팔고 누워 있는 친구의 몸값이
저 아파트의 한평값과 맞먹는다는 말에 울분을 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든 아버지와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노릇을 해야 했던 친구에게
남겨진 어쩔 수 없는 선택 앞에서 전 한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공부했고 좋은 대학에 들어간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나날이 심해지는 아버지의 병세에
사채빚까지 써야 했던 그 처절함은
무엇으로도 대신 대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의 아지트인 ‘우리 국수집’에도 들르지 않아 사장님과 함께
고시원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굳게 닫혀진 문에 깜짝 놀라 억지로 따고 들어가 보니
배에 붕대를 감고 식은땀을 흘리며 누워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친구를 끌어 안고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줘서 고맙다고
한참동안 엉엉 우셨습니다.
아직도 그 친구 배에는 선명한 흉터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빚을 지고도 아직도 아버지의 병원비는 한없이 밀려 있습니다.
어머니는 능력 없는 부모는 일찍 죽어 주는게
자식을 위한 길이라며 펑펑 우셨습니다.
‘우리 국수집’에서 사장님과 친구 어머니는 한참동안 소주잔을 기울이시며
위로의 말을 건네셨습니다.
친구 아버지는 결국 빚만 남겨 두신채 돌아가셨습니다.
동네 어르신들은 고생하는 자식을 위해 잘 된 일이라고 한입처럼 말씀하십니다.
가방 가득 담겨 있던 이력서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 떠나고 가벼워진만큼
이 지독한 가난의 무게도 덜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우리 국수집’ 사장님은 우스개 소리로 일할데 없으면 와서 일하라고 하십니다.
국수집을 개업하자마자 맛있다고 소문이 난 덕분에
새벽부터 사람들이 국수를 먹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송할머니는 점점 심해지는 관절염에도 진통제를 드시면서까지 열심히 국수를 만드십니다.
손주에게 메이커 운동화를 사주고 싶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말씀하십니다.
국수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알아서 공부 잘 하는 손주를 둬서 부럽다고
칭찬을 늘어 놓으십니다.
거대한 아파트에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도
아들이 게임중독에 빠져 병원치료를 받는다고 속상해 하시는 손님도 계십니다.
송할머니는 스마트폰이 뭐냐고 물어 보십니다.
얼마전에 새로 산 보급폰을 보여 드리며 설명해 드렸더니
손주한테 하나 사주고 싶다고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 말을 듣기가 무섭게 애들한테는 절대로 사주면 안된다고 하면서
국수를 먹다가 말리는 손님도 계셨습니다.
송할머니 손주는 아직도 그 흔한 핸드폰 하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핸드폰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습니다.
가겡p 찾아 오시는 손님마다 신기한 듯 진짜 핸드폰이 없냐고
연거푸 확인하듯 물어 보십니다.
‘우리 국수집’ 사장님은 만약을 대비해 전화기 하나는 있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하나 사주기로 하셨습니다.
늦은 밤에도 ‘우리 국수집’ 은 환하게 불을 켜고 손님을 맞이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솥단지에 묻어나는 정이 그리워
늦은 시간에도 문턱이 닳도록 찾아 온다.
벽면 가득 적혀 있는 작은 낙서들을 읽는 재미에 빠져
국수가 불어 버리는것도 까맣게 잊어 버린다.
우리 국수집 최고예요!
짱 맛있어요!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그 맛!
주머니에 돈이 없고 가난해도 언제든지 환영하는 곳!
난 그 곳이 있어 행복하다!
오늘 또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래도 난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고?
그건 바로 우리 국수집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