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03

우리들의 노래3


BY 러브레터 2017-09-11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통이 숨 쉴 틈도 없이 동이 나 버릴때까지

노인은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한 채 한참동안 서러운 눈물만 흘렸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치료를 마치고 따뜻한 죽과 국물을 테이블에 놓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오랜 침묵이 흐를뿐이다.

 

아들도 먹여야 하는데 늙은이 뱃속만 채우고 있으니 한심하지?”

늙으면 죽어야 한다지만 아들 때문에 맘대로 죽지도 못해!”

젊어서 죄를 많이 짓고 살아서 그런가 낳자마자 장애인이 되었더라고!”

 

 

다른 자녀분들은 안계세요?”

 

 

죽은 아들도 있고 집 나간 딸도 있고 그래!”

생각해 보니까 내일이 아들 기일이야!”

제사상에 올릴게 물밖에 없으니 걱정이네!”

살았을때는 그렇게 효자였고 성실한 녀석이었는데.......”

갑자기 자살을 했어!”

 

추춤하던 비가 요란한 굉음소리를 내며 발악을 한다.

 

왜 자살을 했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그놈의 돈이 뭔지!”

아파서 누워 있는 동생 병 고쳐 준다고 사채까지 빌려 쓰다가 그만...!”

아들이 다니던 회사가 갑자기 부도가 나는 바람에 빚을 다 못갚았지 뭐야!”

빚 갚는걸 조금만 늦춰 달라고 그렇게 애원을 해도 안봐주더라고!”

맨날 집에서 술만 마시더니 갑자기 가버렸어!”

눈만 뜨면 사채업자들이 쳐들어와서 문짝을 부수고 난리를 쳐서 지옥같았어!”

 

아드님이 생전에 뭘 좋아하셨어요?”

저희가 시장에 동행취재를 하러 다녀도 될까 여쭈어 보려고요!”

아들녀석이 살아서는 그렇게 고생을 하더니 죽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구만!”

먹을게 없어서 못먹었지! 아무거나 잘 먹었어!”

특히 과일을 참 좋아했는데 많이 못사줘서 미안했어!”

시장에 가면 널린게 과일들인데 왜 우리가 먹을 수 있는건 없나 몰라!”

시장에 박스 주우러 갈때마다 그냥 그렇게 눈물이 나올 수가 없어!”

저 녀석 데리고 시장에 가면 사달라는게 많아서 골치가 아파!”

남의 가게 장사하는데 가서 맘대로 집어 먹고 난리를 피워서 욕먹은게 한두번이 아니야!”

 

장사들이 안되서 하루가 멀다 하고 문 닫는데가 많아져서 인정도 말라 버렸어!”

 

 

장을 보려던 사람들로 북적이던 재래시장은 재개발이라는 이름 앞에 추억을 묻어 버리고

어울리지 않는 새 옷을 갈아 입을 준비에 한창이었다.

마트에 진열된 과일들을 신기한 듯 바라보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노란 빛깔의 망고 앞을 서성이며 임안 가득 군침을 삼킨다.

 

 

 

색깔도 이쁘고 맛있게 생겼네!”

아들이 참 좋아하겠어!”

과일이름이 뭐랴?”

 

 

망고예요! 물렁물렁해서 할머니도 드시기 편할거예요!”

빨간것도 망고예요! 아드님이 맛있다고 좋아하실거예요!”

 

카트 가득 망고와 사과 배가 담긴 상자를 싣는 모습을 보며 눈가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아들의 첫 제사상이 초라하지 않아 다행이라며 안도의 숨을 쉬는 입가의 잔주름이 구슬프다.

 

 

사진속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에는 눈물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고달픈 지난 시간을 회상하기 싫어 몸부림치면서도

아들과의 힘든 시간들을 미안해 하며 연거푸 술잔을 기울이셨습니다.

말없이 술잔을 권하시는 할머니의 청을 거절하기 죄스러워

취재를 하면서도 한 잔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난은 늘 사람들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아무리 벗어나려 애를 쓰고 몸부림쳐 봐도

더 큰 죄로 부풀려져

기약할 수 없는 긴 수렁에 빠지게 해버립니다.

수백장의 이력서를 쓰고 방황하던 끝에 마지막으로 손을 내밀어 준

가난한 방송국의 수습기자라는 직업에 억지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직도 취직을 하지 못해 술잔을 기울이고

집안에서만 폐인처럼 지내고 있는 자식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마를새가 없습니다.

빚독촉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속에 허우적거리는 사람이

저 하나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 봅니다.

오늘도 엄마라는 사람이 돈을 맡겨 놓은것처럼 독촉하는 문자를 수십통씩 보냅니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타고 나는 본래의 성질을 져버리지 못해

변하지 못하는

절대 불변의 법칙이 존재한다는걸

알아야 했습니다.

엄마의 사치스럽고 뻔뻔한 성격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는걸 잊고 있었습니다.

제발 새롭게 변하고 반성하기를 간절하게 꿈 꿔 왔다는 사실에 기가 막힐 뿐입니다.

가난한 자신의 현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운 마음을

저 혼자 고쳐 보려고 애를 썼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잘못이었습니다.

사람은 절대로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변한다면 그건 죽을때가 된거겠죠

! 엄마는 아직 죽을때가 되지 않은 모양입니다.

자식에게 한결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돈을 요구하고 있고

뻔뻔스럽게 사치와 향락을 즐기고 있습니다.

자식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저는 바보처럼 그 거지같은 명령에 복종하면서 제 자신을 학대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자식에게 잘 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하는 분들을 볼때면 엄마를 생각하게 됩니다.

취재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귀담아 들으려 하지도 않은채 오로지 보내지 않은 돈에 대한 화풀이만 해댑니다.

저에게 더 이상 돈이 나올 수 없다는걸 깨달았을 때 엄마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를 대할지 문득 궁금해집니다.

엄마에게 저는 자식이 아닌

그저 돈을 벌어 바치는 자판기에 불과할뿐입니다.

세상에 저를 내보낸 그 순간부터 보상심리에 젖어

끊임없이

손해보상 청구소송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전 그 소송에 치어 지옥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항소를 해도 제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미리 계산된 엄마의 손해배상 청구액의 정확한 액수는 무한대인 것 같습니다.

통장에는 저를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켜 주는 돈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잉크가 채 말라 버리기도 전에 각자의 길을 찾아 바쁘게 떠나 버립니다.

월급날짜에 맞춰 붙은 차압딱지들이 하나씩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고도 모자라

핸드폰을 하루 종일 못살게 굽니다.

엄마의 멈출줄 모르는 명품백 사랑에 힘입어

저는 오늘도 마이크를 잡고 거리를 나섭니다.

 

 

협상없는 재개발에 절대 찬성할 수 없다!

보장받지 못한 생존권을 위해 끝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을것이다!

 

 

==차가운 바닥에 대자로 누워 저항하는 이들을 무시한채

거대한 포크레인은 사정없이 절박한 삶의 터전을 향해 엑셀을 밟는다.

어제까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던 순이네 집이 처참하게 무너지고

동네 노인들이 모여 앉아 십원짜리 화투를 치며 친목을 다지던 마을회관이 사라져 버렸다.

여기저기 탄식하는 이들의 한숨소리와 눈물이 먼지에 범벅이 되어 안개속에 잠들어 버린다.

 

 

주머니에 돈이 없어도 언제든지 따뜻한 미소로 맞아주던 우리식당은 무참하게 부서지고

거대한 고급 음식점이 들어선다고 합니다.

하루 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생존권을 위해 몸부림치는

저들의 함성소리는 무참하게 거절당한 채

그들이 꿈꾸는 화려한 도시를 향한 힘찬 발걸음은 멈추지를 않고 있습니다.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해 거리의 폐지를 모아 팔아야 했던 절박한 삶의 터전은 사라지고

으리으리한 상가건물이 들어설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간신히 몸을 누일 방 한 칸이 즐비한 산동네의 때묻은 가난은 사라지고

고급옷으로 꽃단장한 으리으리한 아파트들이 자리잡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단식농성을 하며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해 외치며 농성하던 천막들은

권력의 힘을 못이겨 갈갈이 찢겨져 바람결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은

처절한 아픔만 남겨줄뿐입니다.

아무리 벗어나려 몸부림쳐도 언제나 제자리만 맴돌뿐입니다.

월급을 받기 위해 저들의 눈물과 한숨을 취재하기 위해

마이크를 내미는 손길이 한없이 부끄럽습니다.

아무리 눈물을 참으려고 해도

어느새 뺨으로 흘러 내리는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곤 합니다.

어제 취재를 갔던 할머니가 다음날 다시 찾아 뵈면

쓸쓸한 죽음을 맞이해 안타깝게 할때가 많습니다.

자식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연락을 끊은채 힘들게 살아 가시는

그분들을 볼때마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이 사연을 쓰면서도 쉴새없이 돈을 요구하는 엄마의 문자에 진저리가 납니다.

단 한 번도 자식을 위해 헌신하지 않으려고 하는 엄마를 위해

전 오늘도 잔고가 비어 있는 통장에 또 다른 마이너스를 새겨 넣습니다.

벌써 여러 번 연체된 대출금에 마지막 대출신청을 하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엄마는 전생에 제가 은헤를 갚지 못하고 헤어진 은인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새로 생긴 남자친구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자꾸만 돈을 보내라고 보채고 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연애를 해보지 못한 딸보다 더 불타는 청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 이 낡고 허름한 단칸방도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아직 밀린 가스비와 전기세도 해결하지 못한채

다시 방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을 돌아다닐 생각에 한숨부터 나옵니다.

여기보다 더 싼 방은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당분간 찜질방에서 지내야 할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고시촌에 할머니와 둘이 살 곳을 마련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 모은 돈으로 간신히 방세는 밀리지 않고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리고 팔팔한 저는 계단을 올라다니는데 문제가 없지만

무릎이 안좋으신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아무리 부탁을 드려도 여전히 폐지를 주우러 다니십니다.

다시는 그런 일 안하시겠다고 약속을 하시더니

금세 잊으셨는지 다시 폐지를 주우러 다니십니다.

그것도 저한테 들킬까봐 몰래 다니시는 모습이 마음 아픕니다.

새벽에 학교에 가는걸 보시자마자 서둘러 손수레를 끌고 나가시는 모습을 볼때마다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산동네에는 언제 집들이 있었냐는 듯 포크레인으로 다 밀어버리고

철근작업이 한창입니다.

부동산마다 신도시 아파트 분양한다고 대문짝만하게 써 붙인걸 볼때면

속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아 미칠 지경입니다.

고시원 바로 건너편 모델 하우스가 생겼습니다.

여기저기서 고급 차들을 끌고 들어와 구경을 하느라 시끌벅적합니다.

분양권을 사고 판다는 천막이 쳐지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전단지를 들고

억지로 웃음을 팔아가면서 안내를 하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과연 저 사람들은 살기 위한 집을 구경하러 온것일까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을 처참하게 짓밟아 부수고 지어진

저 거대한 집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들이 흘려야 했던 피와 눈물을 이해할까요?

언제 그런 거지같은 동네가 존재했었냐는 듯

새 집에서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겠죠

아무런 예고도 없이 무작정 쫓겨난 우리들이 거리에서 절규하고 통곡하는 모습은

소음인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욕을 하고 손가락질을 해대겠죠

너무 아깝게 일찍 가버린 형들이 제 귀에 딱지가 앉도록 해주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공부만이 희망이고

공부밖에 할게 없고

공부하는게 돈 버는거라는 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새기며 책상앞에 앉습니다.

절대로 무너뜨릴 수 없는 골리앗의 자손같은 녀석들에 비하면

비싼 학원도 비싼 과외도 꿈꿀 수 없는 형편이지만

절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패기와 열정으로 도전해 보려고 합니다.

새벽부터 닳아 버린 무릎을 질질 끌며 수레 가득 폐지를 주워도

환영해 주는 곳이 없어 허탕치고 눈물을 흘리시는 할머니를 위해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주름지고 갈라진 손으로 손주의 친구가 쥐어 주는 오백원을 받기 위해

매일 성당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시는 할머니를 위해 책을 폅니다.

공짜로 지하철을 탈 수 있어 여기저기 구경 다닌다고 좋아하시지만

속으로는 손주의 끼니를 걱정하며 피눈물을 흘리고 계시는 불쌍한 할머니!

그런 할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습니다.

 

 

 

저도 여기 고시촌으로 이사를 온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요

바로 앞에 보이는 달동네에서 살았던 훈훈한 시간들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저렇게 서둘러 모델하우스를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걸까요?

아까 어느 고등학생이 사연을 보낸것처럼

저렇게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많은데

왜 우리들이 편하게 살 집은 없는걸까요?

참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아직도 재개발에 반대하는 붉은 팻말은 사라지지 않았는데

그걸 무시한채 거대한 아파트들이 서둘러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난해도 행북하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니, 이해하기 싫은거죠

그럼 거꾸로 부자는 다 행복한걸까요?

여러분!

드라마에 나오는 부자들은 다 행복해 보입니까?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이지 않나요?

물론 절대적인 진리가 될 수는 없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는거죠.

부자들만이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는건 .아닙니다.

사연을 보내시는 분들 중에서 가난해도 좋은 대학에 가신 분들 많습니다!

우리들은 지나친 고정관념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이 정해진 틀에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기닌히디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시당하고 소외당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한 성립되어서도 안되는 일입니다.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가난은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복불복같은 존재입니다.

저 으리으리한 집에 살던 시절이 그리워 술로 시간을 보낸다는 사연도 많이 옵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삶의 끈을 놓아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그런 삶을 살아 본 그 사람을 부러워 합니다.

행복과 돈은 비례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를 쓰는거죠

자신의 현실에 빗대어 고정관념을 만들어 버리는겁니다.

오늘따라 창밖에 내리는 겨울비가 더 구슬프게 느껴집니다.

비바람에 산산조각이 나버리는건 재개발에 저항하는 플랜카드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수집

 

새벽시장 상인들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

따뜻한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던 곳이었습니다.

캄캄한 새벽

제일 먼저 불을 밝히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커다란 솥단지에 육수를 우려 내고

직접 반죽한 부드러운 면발을 익혀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아 놓고

우리들을 반갑게 기다리던 정이 넘치는 공간이었습니다.

눈꼽을 떼고 헐레벌떡 뛰어 나와 국수 한 그릇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신세한탄을 하며 정을 쌓아갔습니다.

자식이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고 자랑을 하면

함께 기뻐하고 축하해 주고

자식이 좋은 짝을 만나 결혼을 하면 동네 잔치를 벌이며 기뻐해 주었습니다.

장사가 잘 돼서 더 큰 곳으로 이사를 가면 내 가게가 잘 된것처럼

함께 축하해 주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면

내 자식이 아파서 입원한것처럼 함께 아파하며 눈물을 흘려주었습니다.

도박에 미쳐 빚을 지고 도망가면 힘을 합쳐 잡으러 다니고

남편이 죽고 아내가 죽으면 함께 슬퍼하며 장례를 치러주었습니다.

장사가 안되어서 문을 닫는 날이면 내 가게가 망한 듯 슬퍼해 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무서운 가스비에 밤새 냉골방에서 이불을 칭칭 둘러매고 잠이 든 언 몸을 녹여 주는건

그냥 따뜻한 국수 한 그릇만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따뜻한 정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모두가 가난했지만

서로를 보듬어 주고 걱정해 주는 따뜻한 마음이 더해져

더없이 정겨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 매상이 줄어들고 공을 치는 날이 많아도

언제든지 말없이 국수를 말아 주던 사장님의 온정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산동네에 사는 우리들에게 하나뿐인 소중한 공간이 재개발의 힘에 못이겨

사라지던 날, 밤새 서럽게 울었습니다.

사장님은 미안하다면서 한없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아직도 그 때의 그 눈물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대기업에 우리들의 소중한 추억의 맛을 팔아 넘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물상 홍사장님 덕분입니다.

페지를 팔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이 사라져 할머니 할아버지들께는 죄송하지만

다시 고향처럼 느껴지는 우리 국수집의 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십년째 고시공부에 지쳐 있을 때 먹는 국수 한 그릇은 언제나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아직도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지금,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건 우리 국수집에서 먹었던

따뜻한 국수 한 그릇입니다.

핑계같지만 이번에 시험에 떨어진것도 국수 한그릇에 대한 진한 향수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다시는 못먹을줄 알았던 그 국수 한그릇을 다시 먹을 수 있다는 소식에

저도 모르게 환호성을 질러 버렸습니다.

마치 오랫동안 찾지 못했던 고향에 다시 돌아가는것처럼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가난한 산동네에서 태어나 공부만이 살 길이고 유일한 돌파구라는 생각에

미친 듯이 공부해야 했던 지난 시간이었습니다.

아버지 얼굴도 모른채 절 낳으신 엄마는 손에 물이 마를 사이도 없이 저를 위해

미친 듯이 일만 하셨습니다.

새벽마다 공사판에 나가 남자도 하기 힘든 벽돌 나르는 일을 하시고

모래짐을 나르시며 저를 키우셨습니다.

밤마다 제가 잠이 들기가 무섭게 끙끙 앓는 소리를 하시면서도 늦게까지 손이 부르트도록

마늘 껍질을 까고 밤껍질을 까셔야 했습니다.

쌀독이 텅텅 비어 있어도 저는 항상 배 고프지 않게 먹이려고 애를 쓰셨고

잘 입고 다녀야 무시를 안당한다면서 항상 깨끗하고 좋은 옷만 입혀 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는 너무 철이 없어서 어머니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학교 갈 때 얼굴을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손바닥에 물집이 터져

피가 나는줄도 모르고 짜증만 내던 철이 없던 못난 아들이었습니다.

그런 못난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평생을 죄인처럼 헌신만 하다가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툭 하면 못나게 사는 모습만 보여줘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지독한 가난은 어머니를 잠시도 편하게 놔두지 않았습니다.

손가락 마디마다 물집이 생기고 상처로 범벅이 되어 있어도

겹겹이 장갑을 끼고 더 많은 마늘과 밤의 껍질을 까기 위해 밤을 새우셨습니다.

철이 없는 저는 방안 가득 마늘냄새가 난다고 욕을 하고 신경질을 냈습니다.

그럴때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시면서 연거푸 미안하다고만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야단을 치시거나 큰소리로 화를 내시는 일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바보라서 화도 못내고 소리도 못지르는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철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밤중에도 아들이 머꼬싶은걸 사다 주기 위해 아픈 다리를 이끌고 산비탈을 오르내리시던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가 어느날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아파트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르시다가 그만 미끄러져 추락사고로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처음에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여 주셨기에

그렇게 쉽게 돌아가시는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들이 배고플까봐

아들이 좋은 옷을 못입어 무시 당할까봐

벽돌 한 장이라도 더 나르기 위해 욕심을 부리다가

그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추락사고를 당하신겁니다.

응급실로 달려가 어머니를 안고 한참동안 엉엉 울었습니다.

아직 어머니의 사랑이 더 필요한데 너무 일찍 가버리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