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의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겠다고 하시며 환하게 웃고 계시는 할머니가 불쌍해 보였다.
도시락마다 세린이의 환한 미소가 보인다.
팽개치고 싶었던 숟가락을 억지로 꼭 잡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손주를 배 부르게 먹이기 위해 새벽부터 성당 앞에서 줄을 서서 받아 오신 도시락이다.
할머니한테 들킬까봐 몰래 눈물을 삼키며 억지로 밥을 먹어야 했다.
낡은 텔레비전 옆에 놓여 있는 빨간 돼지 저금통에 오늘 받아 온 오백원짜리 동전을
조심스럽게 저금하신다.
쌓여 가는 오백원짜리 동전만큼 무너져 가는 할머니의 자존심이 싸여 있다.
할머니는 아니라고 하시지만,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한 분이셨다.
그런 분이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그 센 자존심을 바닥에 내려 놓으셨다.
공짜로 지하철을 타고 성당과 교회를 돌아다니시며 얻어 오신 오백원이 쌓여 갈때마다
억장이 무너지신다면서 밤마다 몰래 눈물을 흘리신다.
할머니는 말씀하신다.
나를 위해서라면 억장이 열 번 무너져도 괜찮다고 말이다.
고물상이 문을 닫아 폐지를 줍는 일을 그만두셨다.
더 이상 아이들에게 트집잡힐 일이 없다고 신이 날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오히려 할머니를 더 고생시키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식당에서 일하시던 그 때가 좋았었다.
동네에서 음식솜씨가 제일 좋은 할머니는 어느 식당에서나 환영하는 분이셨다.
할머니를 서로 모셔 가려고 새벽마다 집앞에 서서 기다리는 식당 사장님도 있었다.
덕분에 난 맛있는걸 실컷 얻어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할머니가 일하시는 식당에 놀러가 가끔 일도 도와 드리고
맛있는것도 많이 먹었다.
‘우리식당’
이름만큼이나 정겨운 곳이었다.
그냥 단순히 밥만 먹는 곳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친목을 위한 공간이었다.
어른들은 어른들끼리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서로의 힘든 일들을 같이 나누고 이야기하며 친해질 수 있었다.
대학에 다니는 형과 누나들이 공부를 가르쳐 주는 야학같은 곳이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들은 비싼 학원을 가지 않고도 공부를 잘 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부잣집이라고 까불고 다니는 애들보다 성적이 더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날마다 ‘우리식당’에 모여 울고 웃으며 새로운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머니는 고생도 덜 하셨을지도 모른다.
재개발이라는 거지같은 이름 아래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를 눈물로 보내고 있다.
이 달동네를 밀어 버리고 거대한 고급 오피스텔이 들어선다고 한다.
골목 입구마다 으리으리한 설계도들이 대문짝만하게 붙어 있다.
벌써부터 투자자들이 몰려 신이 나서 기웃거리고 있다.
어느새 우리는 동물원 원숭이들처럼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버렸다.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저들의 외침에는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해가 뜨기가 무섭게 포크레인이 들이닥쳐 맘대로 밀어 버리며 협박을 하고 있다.
할머니와 나는 여기를 떠나면 어디에도 갈 데가 없다.
성당에서 임시로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갰다고는 했지만,
그렇게 반갑거나 고맙지가 않다.
오늘도 달동네 입구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하는 어른들의 외칩은 너무도 처절하다.
저기 멀리 구급차 소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올라오고 있다.
무자비하게 들이닥친 포크레인에 저항하다가 사람들이 많이 다쳤다.
피를 흘리며 차에 실려 가는 사람들의 모습에 화가 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우리들만의 희망사항인지도 모른다.
가난은 엄청난 죄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 밥을 못먹는 친구들에게 학교는 너그럽지 않다.
공짜로 밥을 먹는게 죄라도 되는것처럼 눈치를 보게 하는 학교가 싫다.
오늘 그런 학교의 차별에 분노한 친구 하나가 박차고 나가 버렸다.
가장 의지하고 믿을 수 있는 하나뿐인 친구였는데 인사도 없이 떠났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는다.
집으로 찾아가도 반겨 주는건 술에 취해 헛소리하는 아버지뿐이다.
아들이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는지는 관심도 두지 않은채
처음 보는 아들 친구한테 소주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킨다.
엄마는 아버지의 술주정에 지쳐 집을 나가 버렸다.
그런데도 녀석은 누구보다 모범생이었고 우등생이었다.
하지만, 학교는 그런 녀석을 반겨주지 않는다.
담임은 언제나 눈의 가시처럼 생각하며 점수도 일부러 차별해서 주곤 했다.
그렇게 차별을 심하게 하는 담임이 나한테는 관대한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소문에 의하면 녀석의 아버지가 대학시절 운동권이었다고 한다.
그것도 아주 좋은 대학교의 엘리트였지만,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끌려가
고문을 당하고 감옥을 다녀온 이후로 저렇게 인생이 망가진거라고 한다.
녀석의 엄마도 같은 학교 후배였다고 한다.
같은 운동권에서 만나 결혼을 했지만,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그 녀석 아버지는 시험점수가 안좋은 날이면 가차없이 두들겨 팬다.
어떤 날은 다리가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학교에 온적도 있다.
그럴때마다 녀석보다 시험을 잘 본 내가 미안해질때가 많다.
녀석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자존심 때문에 무료로 나눠 주는 도시락은
절대로 먹지 않는다.
기초 수급자 신청도 하지 않았다.
남들은 가난하게 살면서도 자존심만 세다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난 녀석과 녀석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은 녀석의 아버지가 게으르고 자존심만 세다고 욕을 하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동네에서 제일 똑똑하고 공부 잘 하던 아저씨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이 세상이 더 원망스럽다.
만약 아저씨를 감옥에 집어넣지 않고
좋은 회사에서 일할 기회를 주었다면
매일 술만 드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녀석은 가끔 이야기한다.
도저히 알아 먹을 수 없는 두꺼운 책들을 공부하던 똑똑한 아버지가
버림받아야 하는 이유를 알 수가 없다고 울먹이곤 했었다.
대학 다닐때는 열심히 데모하던 아저씨가 동네 재개발 반대운동은 모른척 한다고
모이기만 하면 손가락질을 하고 욕을 하지만, 난 이해할 수 있다.
경찰차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기겁을 하며 숨어 버리시는 그 모습을 볼때마다
눈물이 날 지경이다.
고문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술로 달래고 있는 고통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공짜로 밥을 먹어야 하는 현실이 수치스러워 거부하는 그 심정을
남들이 어리다고 하는 어린 고등학생인 난 이해할 수 있다.
나도 할머니가 성당에 가서 자존심을 팔아가면서까지
오백원을 얻어 오시고 도시락을 얻어 오시는게 정말 싫다.
더군다나 세린이가 다니는 성당에서
세린이가 직접 주는 도시락을 얻어 와 먹는다는건
날 미치게 하는 짓이다.
하지만, 나보다 더 속상하고 자존심이 뭉개지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그냥 꾹 참고 먹어야 한다.
하루도 눈물없이 밥을 먹은적이 없다.
할머니한테 우는걸 들킬까봐 꾹 참다가 목에 걸려 고생한 적도 있다.
그 아픔이 할머니의 무너져 버린 가슴보다 더 한것일까 생각하면
감히 아프고 힘들다고 티를 낼 수가 없다.
추적추적 구슬프게 비가 내리는 차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며 송노인은 긴 한숨만 흘려 보낸다.
힘들게 살아 온 지난 시간만큼이나 긴 시간을 살아야 하는것도 죄가 되는 기분이다.
유일하게 우대해 주는 공짜 지하철을 타고 벌써 한 시간째 달려가고 있다.
오백원을 나눠 주고 무료급식을 하는 성당과 교회 위치를 빼곡하게 적어 놓은
보물 지도를 손에 꼭 쥐고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조는 모습이 애처롭다.
“ 안녕하세요! ”
“ 이번에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고 하는데 인터뷰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집에서 언제 나오신거예요?”
“ 새벽부터 나왔어!”
“ 늦게 가면 못받을지도 모르는데 큰일이야!
아직 도착하려면 한참 멀었는데 언제 가려나 몰라!“
의자에 앉아서도 뒤틀린 몸으로 뒤척이며 칭얼대는 모습에 한참동안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 늦게 얻은 아들놈인데 왜 이렇게 태어나 말썽인가 몰라!”
“ 그래도 내가 낳은 자식이니 품어야지 어쩔거야?”
“ 다른 자식들은 다 저 살기 바쁘다고 코빼기도 안보이고 연락도 안돼!
돈이라도 있었으면 얘를 요양원에라도 보내는데 ...........
입에 풀칠할 돈도 없으니 데리고 다녀야지 어쩌겠어?“
“ 아침부터 이렇게 힘들게 나오셔서 한군데만 들르시는건가요?”
“ 아니! 여러군데 다녀야 밥값이라도 생기고 병원비도 하고 그러지!”
“ 저기 지도같은거 들고 있는 사람 있지?”
“ 저 사람이 우리 정보망이야!”
“ 매일 어디서 뭘 주는지 다 표시해 놓고 아침마다 모여서 가거든!”
“ 오늘이 제일 바빠! 오백원 주는데도 여러 군데고 간식도 주고 밥도 준대!”
“ 내일 병원 가는 날이라 오늘 돈을 많이 받아가야 돼!”
창문이 부서질 듯 거센 비바람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오직 생존을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달려가고 있다.
종착역에 도착하자마자 우루루 몰려가는 이들의 얼굴마다 환한 웃음꽃이 피어 있다.
표를 끊고 밖으로 나서자마자 모락모락 김이 나는 커다란 냄비가 반갑게 미소 짓는다.
벌써부터 허기를 달래기 위해 식판을 들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는 모습이 안쓰럽다.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조바심내며 달려와 줄을 서 보지만
동이 나 버린 빈 솥단지들이 허무하게 맞아줄 뿐이다.
배가 고프다며 칭얼대는 아들을 간신히 달래며 돌아서려는 두 손을 꼭 잡고
기차역 입구에 자리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처음 보는 신기한 세상처럼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손에
커다란 막대사탕 하나를 쥐어 주고 자리에 앉혔다.
전자렌지에 만두를 데우고 죽을 데워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마자
허겁지겁 입속에 넣기 바쁜 한노인의 모습이 눈물로 그려진다.
“ 아침도 안드시고 나오셨나 봐요!”
“ 천천히 드세요! 맛있으면 더 사드릴게요!”
“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못먹었어!
아들녀석이 먹성이 너무 좋아서 내가 먹을게 없어!“
“ 무료 도시락 나눠 주는거 다 아들이 먹어 버려서 난 맛도 못봐!”
“ 저렇게 먹성 좋은 녀석을 배 부르게 못먹이는 것도 죄지! 죄야!”
“ 애미가 되어서 자식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하니 항상 죄를 짓는 기분이야!”
빈 만두접시를 한참동안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한노인 앞에 만두 한접시를 내려 놓았다.
“ 우리같은 가난한 노인한테 이런 만두 먹는건 엄두도 안나!”
“ 아들녀석이 오늘은 배가 안고픈가 보네! ”
“다른때 같으면 개눈 감추듯 다 먹어 버리는데 말이야!”
“ 아드님은 어렸을때부터 안좋으셨나요?”
불어 버린 만두 하나를 집으려던 젓가락질을 멈추고 멍하니 비 내리는 창밖만 바라본다.
“ 태어났을때는 엄청 똑똑했었어!”
“ 골목대장도 하고 씩씩하던 녀석이었는데...!”
“ 교통사고가 나서 다들 죽었다고 하는걸 간신히 살려 놨더니....!”
“ 저렇게 되고 말았어! 뇌를 다쳐서 회복이 안된대!”
“ 다 내가 죄를 많이 지어서 그래!”
“ 엄마! 나 사탕 하나 더!”
계산대에 놓인 사탕 하나를 가리키며 울먹이는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해맑아 보인다.
“ 그 끔찍했던 사고를 기억 못하는게 다행인지도 모르지!”
“ 얼마나 끔찍한 사고였는지... 말도 못해!”
“ 뺑소니 사고라 보상도 못받고 있던 집 날리고 재산 다 날리고...!”
“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지 뭐야?”
“ 아드님이 사고 나기전엔 무슨 일하셨는데요?”
“ 대학 졸업하자마자 운좋게 대기업에 들어갔어!”
“ 동네에서 유일하게 취직을 한 운좋은 아이였지!”
“ 이제 살만해지겠구나 싶었는데 바로 사고가 나버리더라고!”
“ 그렇게 맘고생해서 간신히 들어간 회사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원...!”
“ 남편분은 돌아가셨어요?”
“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 있는 재산 다 날린게 그 인간탓이 커!”
“ 가게가 잘 돼서 돈이 좀 모이나 싶으면 카지노 가서 날려 버리고...!”
“ 그냥 첩도 모자라서 둘 셋씩 거느리고 살림 차리고 살더니 집을 나가 버리더라고!”
“ 얼마나 노름빚을 많이 졌는지 가게 하나 넘어가는거는 순간이더라고!”
“ 나 몰래 빼돌린 돈도 죄 다 카지노 ,경마장 가서 날려 버리고 그러더라고!”
“ 살아 보니까 부자가 되는건 어려워도 폭삭 망하고 가난해지는건 쉽더라고!”
“ 처음 이 동네 이사와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적응이 안되더라고!”
“ 저기 저 사람들이 다 처음부터 가난했던건 아니야!”
“ 다들 가게 하나씩은 거느리고 먹고 살만큼은 되었었지!”
“ 그러다가 믿던 사람한테 배신당하고
사기 당하고
다 키워 놓은 자식한테 무시당하고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사는거지!“
“ 나도 밥 먹을래!”
“ 저기서 밥 준다! 나도 먹으러 간다!”
식판에 얼굴을 묻고 밥알들과 사투를 벌이는 모습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아들 손을
간신히 꼭 잡고 한숨을 쉬는 한노인의 이마에 근심이 하나 더 세겨진다.
몇 시간씩 기다려도 밥을 먹지 못해 돌아서는 이들을 위한 두 번째 밥상이 차려진다.
밥을 먹은지 얼마 안된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까만 비닐봉지를 들고 사정하는 모습에
차마 마이크를 들이대기 미안해 빈 카메라만 한참동안 몇 바퀴 돌아갈뿐이다.
두 번째 줄을 서는 노인에게 욕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노숙자들을 간신히 달래 보지만
그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 일주일동안 아무것도 못먹었어!”
“ 우리 아들이 아파서 누워 있는데 밥 한 숟가락이라도 얻어다 먹이려고 그래요!”
“ 식은 밥이라도 좀 주면 안되는걸까?”
어린 시절,
할머니도 저랬을까?
빈 카메라에 비친 멍하니 서 있는 모습도 잊어버린채
한참동안 눈물을 글썽이며 생각에 잠긴다.
손주의 자존심에 상처가 날까 조심스러운 마음에 성치 않은 다리로도 멀리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 도시학을 얻어와 먹이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눈물을 글썽인다.
화를 참지 못해 발길질을 당하면서도 생명줄보다 소중한 까만 비닐봉지를 부여잡고
사정을 하는 구부정한 허리에 지난 고된 세월의 눈물이 느껴진다.
바닥에 얼굴이 심하게 쓸려 피를 흘리면서도 한끼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놓지 않았다.
만신창이가 된 몸을 간신히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우루루 몰려 오는 인파에 치어
마이크를 놓쳐 짓밟히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