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복권을 살 돈으로 도시학 하나 더 사먹는게 낫겠다 싶으면서도
주말이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복권 자판기 앞에 우뚝 멈춰 섭니다.
헛된 기다림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는 그저 머릿속에서만 생각할 뿐입니다.
꽝이 되어 버린 복권을 발기발기 찢으면서 다시는 안사겠다고 이를 갈지만
어디선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 오르는 보상심리에 또 복권을 사게 됩니다.
모두들 하나같이 1등이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복권을 사지만,
전 한 끼라도 배 부르게 먹을 수 있는 돈을 위해 복권을 삽니다.
편의점 도시락을 하나 사 먹고도 자판기 커피 한 잔 사 먹을 수 있는 돈을
오늘도 복권 판매점에 기꺼이 헌납을 합니다.
부디 다음주에는 당첨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사연을 보내 봅니다.
라디오를 듣는 내내 흘러 나오는 눈물에 가려져 하마터면 계산을 잘못할뻔 했다.
영수증 위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지고 만다.
아직도 우리 젊은이들은 진정한 꿈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계를 위해 하루를 몸부림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는데요
제가 방송을 시작하면서 단 한 번도 취직이 되어서 행복하다고 보낸 청취자가 없었습니다.
그게 과연 여러분들이 무능해서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절대 무능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하는 세상이 무능한것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시고 더욱 더 용기를 내셔서 희망의 날개를 활짝 펴 보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세상이 나쁘게 변해도 여러분들의 젊음을 탄압할 수는 없습니다.
아픈 상처들을 미련하게 혼자 끌어안고 아파하지 마시고 사연 보내 주세요!
인터넷 방송 ‘노을빛 희망가’ 에서는 여러분들의 사연들을 격하게 환영합니다.
24시간 열려 있는 방송이니까요 망설이지 마시고 모든 고민들을 털어놔 주십시오!
상자 가득 담겨진 물건들을 진열하느라 정신이 없다.
창밖에 함박눈이 소복하게 쌓이는 줄도 모르고 북새통을 이루던 편의점에
오랜만에 정적이 흐른다.
매대 가득 놓여 있던 이력서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진열해 놓기가 무섭게 텅 비어 버린다.
과연 그들이 애타게 써내려간 희망의 불씨들이 꺼지지 않은채 살아 있는것일까?
사천원도 되지 않는 도시락 하나를 사 먹지 못할만큼
가난에 허덕이면서 간절히 소원하던 일자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손목이 아프도록 바코드를 찍어대는 이 일자리가 얼마나 행복한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시계를 보니 이제 한 시간 뒷면 유통기한이 지나 버리는 도시락들이 눈에 띈다.
군침을 흘리며 눈으로만 스캔하던 그 도시락이 운좋게도 아직 팔리지 않았다.
벌써부터 두근두근 심장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 순간만큼 행복한 것은 없다.
요구르트는 날짜가 어제까지라 먹을 수 있다.
한가한 틈을 타 한모금 마시는 요구르트는 그야말로 꿀맛이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놀라 마시던 요구르트를 그만 쏟아 버리고 말았다.
어슬렁 어슬렁 교대시간이 한참이 지나서야 기어 들어오는 그가 얄밉기만 하다.
들어오지 마자 손에 들고 있던 요구르트 하나를 빼앗아 단숨에 들이켰다.
또 시험에서 떨어졌다면서 천장이 무너질 듯 연거푸 한숨을 쉬어댔다.
가난만큼 큰 죄는 없다면서 눈가에 그렁그렁 이슬이 맺힌다.
돈 앞에서는 누구나 공평할 수 없는 현실을 탓해봤자 돌아오는 건 눈물뿐이다.
밤새 마신 술기운에서 벗어나지 못해 사발면 하나로 속을 푸는 그의 뒷모습이 슬프다.
“ 이깟 컵라면 하나도 사치가 되어 버릴거라면 뭐 하러 그렇게 피터지게 공부하고
뭐 하려고 대학에는 간건지 원!“
그의 입가에 번지는 쓰디쓴 미소에 참았던 눈물이 주책없이 흘러 내린다.
투쟁하는 기분으로 밤새 공부하며 살았던 지난 시간들이 이렇게 억울할 줄은 몰랐다.
대학이 선물해준 건 태산처럼 높은 대출금과 닫혀 버린 취업문이었다.
아무리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두들겨도 좀처럼 문을 열어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언제가 끝이 될지도 모른채 그 문밖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가엾은 영혼들에게는 눈길 하나 주려 하지 않는다.
점점 더 잔인하게 좁아지는 그 취업문은 왜 관대해질 수 없는걸까?
교대시간이 되어 문을 나서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다.
문틈으로 비치는 그의 초췌해진 얼굴이 더 슬퍼 보인다.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 쇼핑백에 담아둔 도시락 하나를 건네 주고 얼른 나와 버렸다.
아침부터 내린 눈이 얼어 붙어 언덕길을 오를 수 없었다.
손 벌리면 닿아 버리는 그 좁은 방에 들어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은 여정이다.
고시원 방세마저 내지 못해 쪽방촌으로 들어가는 사람에 비하면 배부른 소리일지 모른다.
오늘도 아래층 살던 대학생 하나가 쪽방촌으로 떠나 버렸다.
아버지의 노름빚을 감당하지 못해 가출한 어머니 대신 돌봐야 하는 동생들 덕에
점점 더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며 살아가고 있다.
가난이 지겨워 술집에 나가는 여동생을 붙잡아 오던 그 날,
밤새도록 울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다음날 여동생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끝도 없이 손을 벌리는 아버지의 억압을 이길 자신이 없다는 유서만을 남기고
그렇게 가버렸다.
그런 딸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힘들게 모은 돈이 든 통장을 들고
유유히 도박장으로 향하는 모습에서 사람의 탈을 쓴 짐승의 모습을 보아야만 했다.
오늘 또 한 생명이 스러져 갔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세상에 외면당한 배신감을 못이겨 영원히 떠나 버렸습니다.
가난은 추억이 될 수 없다는 걸 알아버린 순간, 더 이상의 희망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난이라는 그 단어 자체가 죄악이었습니다.
그 어떤것도 가난 앞에서는 무읖을 꿇어야 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지도록 치열하게 공부를 했고 장학금을 받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면제된 등록금 대신 조여드는 생활비와 방세에 대한 압박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습니다.
도박에 미쳐 망상속에 젖어 사는 아버지란 인간을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억지로 이어져야 하는 부자간의 그 징그러운 인연이 삶을 더 힘들게 했습니다.
도박으로 탕진을 해버리고 한밤중에 고성을 지르며 찾아와 당당하게 돈을 뜯어 갑니다.
자식이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아버지라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맥없이 털려야 하는 그 순간이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간신히 모아 둔 방세는 고스란히 아버지의 도박판에 뿌려지고 더 싼 방을 찾아 헤맵니다.
이제 이 고시원을 나가면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지하도를 지날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노숙인들의 모습이 낯설어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선택해야 할 제 모습이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인적인 생활비와 방세를 견디지 못해 거리를 선택한 친구녀석도 있습니다.
이젠 지하도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일이 어색하지 않다고 웃으면서 말을 하곤 합니다.
그래도 학교는 졸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대부분의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냅니다.
과 사무실은 선배들이 벌서 진을 치고 있어 감히 명함을 내밀지 못합니다.
하루하루가 빈곤의 악순환입니다.
가난이 지겨워 다단계 회사에 들어간 녀석들도 하나 둘 늘어납니다.
분에 넘치는 비싼 양복을 걸치고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의 꿈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씁쓸하기만 합니다.
배가 고파 방을 아무리 두리번 거려도 라면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방을 잠깐 비운 사이 아버지가 또 돈이 든 봉투를 가지고 나가 버렸습니다.
방바닥에 온기조차 사라져 버린 냉방에서 아무리 발버동쳐도 아무것도 달라지는게 없습니다.
가난은 점점 더 살이 붙어 더 지독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맙니다.
동생 녀석이 두고 간 소주 반병을 안주도 없이 벌컥벌컥 마셔댑니다.
울컥 쏟아져 내리는 눈물이 목에 걸려 콱 막히고 맙니다.
하루를 살아도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람쥐 챗바퀴 돌 듯 시간은 아프게 흘러갈뿐입니다.
“ 날짜 지난 도시락 하나 얻어 갈 수 있나요?”
허름한 옷차림의 앳된 남자의 간절한 속삭임에 그만 ‘네!’ 라고 대답하고 말았다.
라디오에 향하고 있던 귀가 자신의 목소리로 돌아올때까지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던 그의 모습이 더 애처롭게 느껴진다.
며칠을 굶은 듯이 허겁지겁 데우지도 않은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따뜻한 커피 한 잔은 건넸다.
어차피 오늘 재고정리 하는 날이라 짐을 하나 덜어 주었다는
반가운 마음에 보답을 하는건지도 모른다.
꾸역꾸역 쉬지도 않고 먹는 그의 도시락을 들고
전자렌지 앞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가슴에 커다란 돌덩이가 하나 박혀 있는 기분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따뜻한 도시락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이슬이 맺힌다.
며칠을 굶은것일까?
아무리 천천히 먹으라고 타일러도 들은척도 하지 않은채
밥알 한알이라도 달아날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열심히 허기진 배를 채우는 중이다.
“ 이번주에 처음 먹는 밥이라 그런지 아주 꿀맛이네요!”
“ 죄송하지만 하나 더 없을까요? 돈을 내야 한다면 대신 제가 일해 드릴게요!”!“
태얍이 감긴 로봇처럼 저절로 발걸음이 재고물건이 담긴 상자로 향한다.
제일 아껴 두었던 맛있는 도시학 하나를 덥썩 들어 뚜껑을 열고
따뜻하게 데우며 기다리는 시간내내 가슴에 박힌 돌덩이 하나가
더 아프게 짓누르는 기분이다.
“ 우와! 함박스테이크네! 처음 먹어봐요! ”
“ 남들이 몇억 들여야 들어가는 명문대 장학생으로 들어가면 뭐합니까?”
“ 이렇게 맨날 생활비에 허덕이고 방세에 허덕이는데 말이죠!”
“ 이럴바엔 차라리 그냥 대학 가지 말고 일찌감치 노동일이라도 할걸 그랬나 싶어요!”
“ 요새 누가 밥도 못먹고 굶어 죽냐고 떠들고 다니지만
지들이 우물안 개구리만 살아서 모르는거죠! “
“어제 친구녀석 하나가 한 마디로 굶어 죽었어요!”
“ 고등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 잘 하겠다고 밤 새워가며 코피 터지게 공부하고
효도하겠다고 서울대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등록금이 없다고 학교 낮춰서 장학생으로 가라는 거예요!”
“ 저쪽 강건너 아이들이 돈쳐부어 가려고 발버둥치는 서울대를 포기하고 돌아오던 날,
녀석하고 전 밤새 술을 마시면서 엉엉 울었었죠!“
그의 긴 하소연에 화답이라도 하듯 편의점은 이상하게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었다.
“ 이 거지같은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건 돈이라고 목청을 높여가며 욕을 해댔어요!”
“ 남들은 그럴지도 모르죠.!”
“ 네가 낮춰서 장학생으로 들어간 학교도 자기들한테는 꿈의 학교라고 말이예요!‘
“ 네! 밎이요. 그것도 남들에게는 꿈의 학교죠!”
“ 하지만, 피 터지게 공부하고 돈을 쳐부어도 못가는 학교를 그들보다 더 살인적으로 공부를 해서
얻어낸 티켓이라면 거기에 대한 보상은 받아야 하는거 아닌가요?”
“ 장학생으로 들어가 학자금 대출은 면했다지만, 그 다음이 문제잖아요!”
“ 아가씨도 이런데서 일하고 싶어서 일하는거 아니잖아요!”
“ 안그래요?”
한참동안 침묵이 흘렀다.
비수처럼 촘촘하게 가슴에 박히는 말들에 숨조차 쉴 수가 없었다.
도시락의 온기가 사라지고 말라붙은 밥알마저 사라지자 벌떡 일어나
대걸레를 집어 들고 매장 한바퀴를 휘휘 돌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 오늘 먹은거 대신 일해줄테니 좀 쉬어요!”
“ 한시간 반 일당은 되겠네요!”
“이래뵈도 제가 법좀 공부한 사람이거든요!”
“ 날짜 지난 도시락들 쇼핑백에 넣어두면 되는거죠?”
“ 여기 사장님은 맘씨가 좋으신가 봐요!”
“ 아는 후배 녀석은 일하는 편의점에서 날짜 지난 음식 하나 먹었다고 죽도록 맞았거든요!”
“그 편의점 사장이 조폭출신이었나 봐요! 일한거 한 푼도 못받고 그 날로 쫓겨났어요!”
수업이 끝난 여학생들이 우루루 몰려들어 와 눈에 띄려고 일부러 물건을 떨어뜨리고 물건을 찾아 달라며 아우성이다.
혼자 일할때는 알아서 척척 찾아서 계산하고 먹었던 아이들의 분위기는 어색할 정도로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냉장고에 진열된 음료수와 즉석식품들은 순식간에 동이 나버리고
그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기 위해 일부러 먹지도 않을 음료들을 집어들며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간신히 구한 일자리가 위태위태해지는 순간이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주에 바로 앞에 떡 하니 새로 자리잡은 편의점에
사장의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황에 그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한줄기 서광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참을 고민에 빠져 있는 사이, 사장의 고명딸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평소에도 남자에 민감한 그 눈빛에 한다발의 서광이 비치는 걸 지켜봐야 했다.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 버튼을 누르자마자 큰 소리로 외쳐댄다.
“엄마! 심봤다!”
그 한 마디에 그는 오늘부로 편의점을 떠나서는 안되는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앞에 생긴 편의점과의 생존싸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에 공을 들이기 시작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의 존재를 신적인 존재로 여기며 극진히 모시기 시작했다.
덕분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해 버린듯한 비참한 순간에도
밥줄을 끊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을 해야 했다.
순간, 그가 가진 지독한 생존본능의 힘과 지혜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영악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았으며
굴욕적이지 않았다.
어느새 푸석하고 칙칙하던 그의 얼굴에 광채가 나기 시작하고
그 광채에 환장한 여학생들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어와 안구정화를 한다.
편의점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부잣집 깍쟁이들의 지갑까지 단숨에 열어 버리는
그 마력에 사장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발한다.
드르륵!
“ 여보세요!”
“ 갚는다고 햇잖아요! 일자리 구했으니까 밀린거 다 갚는다고요!‘
“이번달까지만 좀 봐달라니까 자꾸 전화하고 그래요?”
“ 전화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편의점 앞에서 흉악한 얼굴 자꾸 비치지 말고 얼른 가세요!”
“ 매출 떨어져서 월급 못받으면 책임질거예요?”
“ 난 내장은 팔아도 술집에는 못가니까 그렇게 아세요!”
신적인 존재로 받들어지는 그에게도 빚독촉의 고통은 피해가지 않았다.
편의점 문밖에 듬직한 어깨들이 자꾸만 기웃거리며 그의 모습들을 감시하고 있다.
대놓고 안으로들 어와 시비를 걸지 않은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연거푸 미안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그에게 이상하게 동질감이 느껴진다.
저만치 앞서갔던 경계심과 미운 감정들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리는 순간이다.
드르륵!
“안갚는다는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자꾸 전화질이야?”
“ 일을 해야 돈을 갚을거 아냐? 자꾸 전화하면 제대로 일을 하고 돈을 받겠어?”
문밖에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검은 차 한 대에서 밀려오는 위압감에 소름이 끼친다.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끌어안고 해결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가 아닌 다른 아바타가 바쁘게 움직인다.
검은 차문을 열고 썬글라스를 쓴 누군가가 안으로 들어온다.
그를 스캔하듯 아래 위를 훑어 보고 나서 지갑에서 무언가를 꺼내 내팽개치고 나가 버렸다.
드르륵!
생각 있으면 연락해!
가장 쉽게 빚을 갚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거니까 잘 생각해 봐!
그렇게 편의점에서 코 묻은 돈 벌어서 언제 빚을 다 갚아?
정성스레 발기발기 짖은 명함을 한주먹 손에 들고
그를 기다리는 검은 차 위에 곱게 흩뿌려 준다.
지난달 유혹을 못이겨 미끼를 덥썩 물어 버린 그의 친구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일부러 신용불량자로 만들어 버리고 정보를 빼내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내쳐 버리는 그들의 만행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다.
실처럼 흩어진 명함조각들을 무시하고 달리는 차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분노가 가득하다.
연체일이 하루 지나버린 대출금에 허덕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지키고 싶은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았다.
오늘 친구녀석이 하늘나라로 가버렸습니아.
누구보다도 정말 열심히 살던 친구였습니다.
남들이 흔히들 말하는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늘 학교에서 장학금을 놓지 않았고
교수님들 사이에서도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수억을 들여도 가지 못하는 대학에 전액 장학생으로 들어가는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현실에 자책하곤 했지만,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도박에 미쳐 생계를 책임지지 않는 아버지와 암으로 병원에 입원헤 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가장노릇을 해야 했던 녀석의 어깨에 얹어진 무거운 짐은 하루가 다르게 더 무거워졌습니다.
수업이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앞 커피 전문점으로 달려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다시 수업시간이 다가오면 발바닥에 불이 나게 높은 계단을 몇 번씩이나 뛰어 다녔습니다.
가게에 손님이 많을때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먹어야 했고 그렇게 열심히 일해도
늘 빚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어쩌다가 몫돈이 생기는 과외 아르바이트 자리가 들어와도 어머니의 병원비를 내기에는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가난은 아무리 발버둥쳐도 늘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지나가는 포장마차에서 우동 한그릇을 나눠 먹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아 보자고 파이팅을 외쳐댔지만,
눈물을 들킬까봐 몰래 돌아서서 눈물을 훔치곤 했습니다.
불 꺼진 으리으리한 집들이 수없이 남아 돌아도 우리가 발 뻗고 잠을 청할 수 있는 곳은
언제 좇겨날지 모르는 낡은 쪽방이 전부였습니다.
세상은 가난한 우리에게 그리 관대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술에 절어 난장판을 만드는 사람들 속에서도 굳세게 살자고 주문을 걸어 보지만
문풍지 사이로 사정없이 불어 닥치는 매서운 찬바람에 펑펑 울어 버리고 맙니다.
라면 한봉지 조차 비싸다는 이유로 상상속에서나 끓여 먹어야 하는
빈곤의 악순환이 처절하게 느껴졌습니다.
수도가 얼어 며칠째 물이 나오지 않아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워 천장만 바라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수많은 음식들을 떠올리며 함박웃음을 짓습니다.
우리의 소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불판위에 삼겹살을 가득 올려 놓고
지글지글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거였습니다.
어느새 눈물이 핑 돌고 맙니다..
귀신같이 사는 곳을 알아낸 녀석의 아버지가 쳐들어와
방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 가버립니다.
아무리 뒤져도 돈이 될만한 그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한 번은 너무 화가 나 아버지의 도박장에 쳐들어가 불을 질러 버린적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녀석의 아버지는 도박에 미쳐 다른 하우스를 찾아 배회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대박이라도 맞는 날이면 술집에 들러 밤새 술을 마시고
여자들과 뒹굴며 모조리 다 써버립니다.
하루가 무섭게 싸여가는 어머니의 병원비는 신경도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향락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가증스러울 뿐입니다.
한 번은 추위에 지쳐 라면에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는 한밤중에 쳐들어와
칼을 들고 돈을 달라고 위협한 적도 있었습니다.
너무 당황스러워 할 말을 잃었습니다.
금수저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나 아무 걱정없이 학교에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는
복 받은 친구들과는 거리가 먼 처참한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노력하는 사람의 편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편에 서서
그 사람을 판단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내세울 것 없는 저에게 세상은 냉담하기만 했습니다.
누구보다 좋은 점수로 대학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대줄 능력이 안되는 부모를 둔 덕에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고
그 빚을 갚기위해 밤낮으로 뛰어야만 했습니다.
좀 더 싼 방을 얻기 위해 학교와 점점 멀어져야만 했고 아무리 일이 힘들더라도
돈을 더 많이 주는 데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갈비집에서 숯불을 옮기다가 발등에 떨어지는 바람에 화상을 입고 응급실에 실려가야 했고
치료비를 핑계로 일한 돈을 고스란히 날린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발을 디딜때마다 쓰라리고 아파 참기가 힘이 듭니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코피 터지게 공부를 하고 경쟁을 했는지 생각하면 허무하기만 합니다.
아직도 갚아야 할 빚은 산더미인데 좀처럼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빚을 견디지 못한 친구 녀석 하나는 신장 하나를 떼어 팔고 몸져 누워 버렸습니다.
누구보다 건강하고 밝았던 녀석이 어느날 갑자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전화해
한참동안 울었습니다.
한걸음에 달려가 마주한 녀석의 몰골은 처참했습니다.
돈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을 저리도 망가뜨려 놓을 수 있는건지 세상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파르르 떨리는 두 손을 마주잡고 서럽게 펑펑 울었습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피할 생각도 하지 않은채 그렇게 울기만 했습니다.
먼지 쌓인 두툼한 고지서 뭉치들을 해결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위로하는 녀석이 안쓰러웠습니다.
힘없는 손짓으로 가리킨 하얀 봉투안에 담긴 녀석의 목숨값에 서러움이 북받쳤습니다.
난생 처음 시켜 먹어 보는 치킨이 뚝뚝 떨어지는 눈물에 버무려져
무슨 맛인지도 모른채 먹어야만 했습니다.
뉴스에는 처지를 비관한 누군가의 죽음소식이 흘러 나옵니다.
==우리보다 더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을까 싶은 생각에
조금도 위로하고픈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천장이 무너질 듯 쏟아지는 빗줄기와 내기라도 하는 듯 녀석은 다시 또 울고 말았습니다.
신장을 떼어낸 녀석의 몸이 잘 버텨낼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장마도 아닌데 예고도 없는 비가 주륵주륵 내린다.
쉴 새 없이 울려대는 그의 빚독촉 문자와 전화벨 소리에 라디오 사연을 집중할 수가 없다.
저기 멀리 우산도 쓰지 않은채 멍하니 앉아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슬프게 그려진다.
매일 홍수처럼 쏟아지는 실업자 뉴스에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어제 이력서를 낸 회사가 부도가 나 버렸다.
그저께 이력서를 낸 회사가 대량해고를 준비중이라는 뉴스에 긴 한숨이 스며든다.
백장의 이력서들 속에 존재하는 회사들이 하나 둘씩 소리도 없이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온전히 살아 남아서 반가운 일자리를 전해 준다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다.
아직 해도 지지 않는 환한 시각
초췌한 양복 차림의 남자가 소주 한병을 계산대에 올려 놓고 허름한 지갑을 뒤적인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그의 눈빛에서 해고되었다는 무언의 메시지가 전해진다.
안주도 없이 맨입으로 소주병을 들이키는 모습이 안스러워 눈물이 맺힌다.
드르륵!
고객님!
카드납부기한이 지나 다시 연락드립니다.
빠른 시일내에 대금납부 부탁드립니다.
‘알았다고요! 내가 갚기 싫어서 안갚는줄 아나본데! ’
‘당신들 불쌍한 서민들한테 야박하게 그러기야?’
은행원에게 삿대질을 하며 큰소리치는 모습을 상상만 하는것만으로도 미소가 번진다.
돌려막기도 이제 더 이상은 힘들 것 같다.
이제 곧 신체 포기각서를 들고 방문할 반가운 손님맞이를 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창고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감고 온몸을 쓸어 내린다.
언제 어떻게 잘려 나갈지 모르는 장기들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는 중이다.
아직은 뜨거운 온기가 남아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옆방에 살던 대학생 하나도 학자금 대출금을 갚지못해 신장을 하나 팔아야 했다.
그러고도 모자라 온전치 못한 몸으로 막노동판에서 벽돌을 나른다.
그에게 더 이상 명문대생이란 감투는 의미가 없다.
그저 생존을 위해 하루를 버텨야 하는 현실을 비관하며 매일밤 서럽게 울고 또 운다.
가난이라는 죄는 면죄부가 없다.
영원히 그 죄값을 치러도 대를 이어 나머지 죄값을 치러야 할만큼 형량이 길다.
몇 번의 대를 이어 그 죄값을 치러야 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
금수저에는 자석이 붙어 있어 영원히 변하지 않지만
흙수저는 비바람이 불면 흙탕물이 되고 먼지가 되어 더 보잘 것 없는 쓰레기가 되어 버린다.
홀로 깡소주를 들이키다 잠들어 버린 외로운 샐러리맨의 모습이 안쓰럽다.
아ㄲㅏ부터 비를 맞으며 앉아 있던 노숙자가 터덜터덜 지하도 안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근심 가득한 그의 얼굴빛에 희망이란 단어는 사라진지 오래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찜통에서 맛깔스런 호빵들이 몇바퀴를 돌아도 찾는 사람이 없다.
아니, 그저 멍하니 감상만 하고 지나갈 뿐이다.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며 입맛 한 번 다시고는 사발면 하나 덩그러니
계산대 위에 올려 놓는다.
추억의 값어치가 너무 올라 슬픔만 더해져 갈 뿐이다.
아까부터 잠들어 있던 마지막 샐러리맨은 좀처럼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새벽을 달리는 시계바늘 소리에도 미동도 하지 앟은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도 연락처를 알만한 명함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흔한 핸드폰 조차도 없어 보인다.
일부러 놓고 다니는건 아닐까?
며칠을 못잔 듯 수척해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고함을 지르며 깨우기가 미안했다.
밑창이 다 떨어진 낡은 구두 사이로 발가락 하나가 삐죽이 고개를 내민다.
답답한 양말을 뚫고 나와 바깥공기에 심취해 있는 발톱 사이에 맺혀 있는 물집이 애처롭다.
냉장매대를 아무리 정리해도 날짜가 지난 도시락이 보이지 않는다.
꼬르륵!
한끼도 먹지 못한 탓에 주책없이 배꼽시계가 요동을 친다.
환한 조명에 샤워를 하며 바쁘게 돌아가는 은반위의 찜빵들이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색색깔 놓여 있는 농염한 자태가 침샘을 더 자극한다.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리 시선을 피하려 해도 눈동자는 어느새 찜통앞에 멈춰 있다.
찜통앞에 달려간 그가 피자호빵 하나를 꺼내 들고 환하게 미소 짓는다.
시간이 오래 지나 이제 꺼낼 시간이 되었다면서 안심시키는 그의 모습에 왈칵 눈물이 맺힌다.
그렇게 분주하게 돌아가던 찜통이 잠시 멈추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텅 빈 창자 속으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중이다.
편의점 가득 스며든 고소한 호빵냄새에 저절로 행복이 찾아오는 기분이다.
요란한 빗소리에 놀라 잠에서 깬 마지막 샐러리맨이 한걸음에 달려와
하나 남은 호빵을 덥썩 입에 물며 흐믓한 미소를 짓는다.
“ 이거 날짜 지난거니까 돈 안내도 되는거죠?”
“ 공짜로 먹는거라 그런가 더 맛있네요! 근데 어릴 때 먹던것보다 소가 좀 적네!”
“ 밀가루 반죽만 두껍고 맛이 영 아니야!”
“ 이런거 사먹던 날도 아! 엣날이여! 인데 그냥 한 번 봐줘요!”
“ 오늘 아니지! 이제 새벽이니까 어제네요!”
“ 어제 기를 쓰고 들어간 회사에서 가위질 당했어요!”
“ 남들이 더럽게 부러워 하는 대학 대출 받아서 졸업하고 대기업 들어갔는데
마흔줄 들어서니까 사정없이 잘라 버리더군요!“
“ 그래도 정규직이라고 고개 쳐들고 다녔는데 그것도 오래 못가더군요!”
“ 임원이라는 벽은 그야말로 넘사벽이더군요! ”
“ 퇴직금 받아봐야 대출금 간신히 갚고 방세 내고 밀린 공과금 내니까 남는게 없더군요! ”
“ 그래도 빚이라도 갚아서 다행이다 싶긴 하지만 앞으로 뭘 하고 살아야 하나 생각하니까
눈앞이 깜깜하더라구요! 안주값도 안남는 빈털터리 인생에 답이 뭘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모르겠더군요! 당장 다음달 방세 낼 돈이 걱정이예요! “
“ 나이 오십도 안되서 인생에 빛이 안보이니 살 맛이 나야죠!”
“ 죽는것도 쉬운게 아니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 통곡할거 생각하니까 맘대로 안되더군요!”
‘빚’과 ‘빛’의 엄청난 차이가 슬프게 한다.
“ 유통기한 지난 도시락 바로 폐기처분한다면서요?”
“ 남는 도시락 있으면 하나만 줘봐요!”
“당장 아침에 해장할 것도 없는데 잘 됐네!”
자기집 안방을 뒤지듯 정리해 놓은 물건들을 뒤적거리면서 쉴 새 없이 투덜거린다.
애써 각을 잡아 놓은것들이 어느새 뒤죽박죽 엉망이 되어 버렸다.
매의 눈으로 구석구석 뒤지던 그의 레이더망에 무언가 걸린듯한 눈치다.
냉장실 맨 뒷자리 가려진 자리에 유통기한이 한 시간 지난 도시락 하나가 놓여 있다.
월척을 건진 듯 흐믓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에 화가 나 도시락을 낚아채려는 순간
누군가의 손길과 말없는 눈빛이 느껴졌다.
‘그냥 가져가게 해요! ’
‘싫은데요! 내가 왜 그래야 하는거죠?’
‘ 아무리 손님이라도 이러는건 아니잖아요!’
‘오늘은 내가 하나 사줄게요! 아니 더 맛있는거 사줄게요!’
그의 눈빛에서 흘러 나오는 정감있는 언어들을 못이겨 그냥 모른척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신주단지 모시듯 품안 가득 안고 가는 그의 뒷모습에 또 다시 안스러움이 느껴진다.
요즈음 비 내리는 하늘을 보면 마치 대신 마음을 읽어 주는 것 같다고
사연을 보내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눈물을 대신 닦아 드리고 위로해 드리는 방송
‘노을빛 희망가’
오늘도 시작합니다!
마흔줄이 다 되어서 끊겨 버린 동아줄에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었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살았습니다.
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는지 후회가 될뿐입니다.
어차피 갚지 못할 빚에 쫓기며 아까운 청춘을 낭비해 버렸습니다.
여전히 갑갑한 쪽방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관하며 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켜켜이 쌓인 공과금 고지서를 구제해줄 그 어떤 희망도 없어
소주잔만 연거푸 기울일 뿐입니다.
허름하고 낡은 이 곳 마저도 재개발의 횡포에 못이겨 곧 떠나야 하는 형편입니다.
그 어디에도 반갑게 맞아줄 곳이 없어
오늘도 근심의 무게만 더해갈뿐입니다.
더 이상 떨어질 나락은 없기에 잠시 가슴을 쓸어 내렸던
지난 시간의 나태함은 더 큰 절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무너져 내릴 듯 위태위태한 흙벽들마다 붉게 물들여진
가난한 서민들의 절규는 어디에서도 통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에 올리며 하소연을 하고
사정을 해보아도
절대적인 자본의 권력 앞에서
싸워 이길 힘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절망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도
그 끝에 매달려 잠시나마 위로받고 싶습니다.
매일 눈을 뜨기가 무섭게 이 암울한 세상을 등지고 떠나가는 젊은 영혼들이
눈물짓게 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가난한 주머니를 털어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고
우동 한그릇에 회포를 풀던 친구가 떠나 버렸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온
그들에게 세상은 온전한 보상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 배신감을 감당하지 못해 허무하게 가버리는 영혼 앞에
마지막 술잔을 기울일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희망은 절대 남의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난 시간들은
저 혼자만의 착각이란 걸 알아야 했습니다.
점점 사라지는 그 희망의 끈을 붙잡을 힘조차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 녀석이 그렇게 가버리기 전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가 아직도 선명하게 핸드폰에 남아 있습니다.
캄캄한 새벽
아직 어둠도 다 가시기 전
허름한 옷을 입고 벽돌을 나르기 위해 막노동판으로 향하는 녀석의 모습을 볼때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습니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 온 그 녀석에게 세상은 너무도 냉정하고 잔인했습니다.
배신감을 못이겨 매일 괴로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애처로운 모습이 아픔으로 남아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리도 치열하게 살아 왔고
무엇을 위해 그리도 처절하게 몸부림치며 살아왔던건지
오늘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날짜 지난 도시락 봉지를 들고 가는 뒷모습이
애처롭게 그려진다.
편의점에 오랜만에 찾아 온 한가로움을 마음껏 즐길 새도 없이 낡은 옷차림의
허리가 구부정한 노파가 접힌 박스 하나를 들고 들어와 애원하듯 눈치를 살핀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듯 핼쓱한 얼굴로 마른 침을 삼킨다.
“ 저 박스 가져갈 사람 있수?”
“ 없으면 내가 좀 가져가도 될까?”
“ 저거 팔아서 우리 손주 간식이라도 사주려고 하는데 말이야!”
“ 손주가 저기 앞에 있는 학교 다니거든!”
수업이 끝아고 아이들이 다 떠나고 난 빈 학교 운동장을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애원하는 눈빛에 가슴에도 비가 내린다.
“ 이 편의점에서 뭘 자주 사먹나 봐!”
“ 할미가 되어 가지고 손주 하나 배 부르게 못먹이는것도 죄인데 말이야!”
빗물을 간신히 피해 낡은 바퀴로 버티며 간신히 버티고 있는 유모차 가득
송노인의 허기를 의지해줄 박스들이 켜켜이 줄을 서 올라가고 있다.
“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먹었더니 뱃가죽이 달라 붙어 버렸어!”
“ 날짜 지난거라도 뭐 얻어 먹을거 없을까 몰라!”
꼬깃해진 지폐 한 장을 계산대에 집어 넣으며 냉장고로 향하는 그의 눈가에도
우울한 겨울비가 내리고 있다.
테이블 가득 놓여진 음식들을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짓는 송노인의 눈가에
따뜻한 겨울비가 내린다.
드르륵!
축하드립니다!
이기는 방송국 다큐멘터리 수습기자에 합격하셨습니다!
내일부터 출근하십시오!
드르륵!
밀린 방세를 내일까지 해결하지 못하시면 바로 퇴실조치하겠습니다!
굽이굽이 산비탈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그리 무겁지만은 않다.
다시 떠오르는 희망이 반갑게 미소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