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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끝의 희망가8


BY 러브레터 2017-09-11

흙수저의 먼지를 털어 내면 평범하게 살 수 있으리라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흙수저는 더 더러운 흙밭을 뒹굴 뿐이다.

가슴 가득 품어 두었던 푸른 꿈들이 빛이 바래 사라진지 오래전이다.

이제 떠날 시간이 된 것 같다.

다시는 마시지 못할 마지막 술잔을 기울이며 잠을 청하려 한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아들의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의 어머니는 충격으로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주인 아줌마는 한동안 그 방에 사람을 들이지 않았다.

다시 또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내일은 또 누가 죽어 나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고시원 앞 골목 음식물 쓰레기통속 넘쳐나는 쓰레기들을 한동안 멍하니 쳐다본 적이 있다.

먹을 것 조차 없는 텅 빈 냉장고를 떠올리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깔깔대고 웃었다.

편의점 창밖으로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 모습들이 보인다.

누군가는 시간이 없어 도시락을 먹는다지만,

누군가는 시간이 있어도 돈이 없어 도시락조차 사먹지 못한다.

문틈 사이로 솔솔 풍겨져 오는 음식냄새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춰졌다.

날짜 지난 도시락이라도 얻어 먹을 수 없을까 하는 마음에 그 앞을 한참동안 서성이다

발견한 문구 하나가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저녁 아르바이트 구함

오늘부터 가능하신 분 환영

 

 

수백 통의 이력서들 중에서 유일하게 일자리를 허락하는 순간이었다.

 

비정규직이면 어떠랴!

 

지금은 그저 한 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일자리만으로도 충분하다.

냉장고 가득 진열된 먹을것들을 보면서 입가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지어진다.

허름한 고시원 텅 빈 냉장고만 바라보며 우울하게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

모두 치유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날짜가 오늘이 지나면 버려야 하는 도시락들을 바구니에 넣는척 하며

몰래 쇼핑백에 골라 넣었다.

누군가는 오래 된 음식이라고 인상을 찌푸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돈이 없어 먹지 못할 생명의 양식이다.

빈 주머니를 탓하면서 침 흘리며 쳐다보기만 했던 날짜 지난 샌드위치와 햄버거를

몰래 뜯어 한 입 베어 물었다.

목이 메어 기침을 하는 사이 바로 날짜가 어제까지인 요구르트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처음으로 만찬을 즐기는 이 순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

어느덧 다가오는 점심시간을 대비해 얼른 더 먹어 두어야 한다.

곧 교대시간이 다가오면 이 짧은 행복도 끝나기 때문이다.

날짜 지난 요구르트를 먹으며 진열대를 둘러 보는 사이

빛깔 고운 딸기 주스 하나가 손짓을 한다. 날짜가 지나지 않아 먹을 수가 없다.

오늘 갓 들어온 신선한 주스가 다 팔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교대시간을 기다린다.

 

꼬르륵!

 

주책없이 울려대는 배꼽시계에 놀라 배를 움켜쥘때마다 더 요란스럽게 난동을 부린다.

쇼핑백에 몰래 숨겨 둔 도시락들은 내일가지 아껴 먹어야 한다.

점심 교대시간이 한참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지친 업무를 뒤로 하고 잠깐동안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몰려든 직장인들 덕에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갔다.

저마다 하나씩 손에 든 도시락과 사발면은 가난한 주머니를 위한 진수성찬이다.

의자에 앉자 마자 한숨을 내쉬며 정규직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들을 담아냈다.

비정규직이라도 어디 하나 손짓하는 곳이 없었기에 그들의 푸념마저 사치로 들릴뿐이다.

컵라면 하나에 허기를 달래며 이력서 뭉치에 꾹꾹 눌러 소망을 담아내는

취준생들의 모습들이 애처롭게 눈에 띈다.

그래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밝은 해가 뜨리라는 희망을 품고 산다.

 

편의점 구석 의자에 앉아 사발면 하나 마주하며 이력서를 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짓을 한 지도 어느덧 1년이 지났습니다.

아침도 아니고 점심도 아니고 저녁이라고 처음 먹는 한끼가 겨우 사발면입니다.

도시락을 사면 사발면을 준다고 하지만,

도시락 사 먹을 돈이 없어 주머니에 담긴 마지막 잔돈을 탈탈 털어 산 컵라면에

물을 붓고 익기를 기다립니다.

오늘따라 탁자 한쪽이 많이 허전해 보입니다.

목이 매일까봐 라면국물을 마시면서 먹는 도시락 마저 가까이 하기 힘든

꿈의 음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꾸만 흘러 나오는 서러운 눈물을 억지로 꾹꾹 눌러 참으며

창밖에 내리는 눈발을 멍하니 쳐다 봅니다.

이 잔혹한 겨울이 지나면 저에게도 행복이 찾아 오는걸까요?

비정규직이라고 투덜거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소음처럼 들립니다.

정규직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몇 달만이라도 일할 수 있다면 도시락 하나는 사먹을 수 있겠죠?

언제부턴가 하루를 사는게 아니라 간신히 버티는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요즘 세상에 굶어 죽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하지만, 돈이 없어 굶어 죽는 사람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옆방에 살던 아는 형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근심 함께 걱정해 주고 욕을 해주던 그런 형이 갑자기 제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라면 하나조차 나눠 먹을 돈이 없어 물로 배를 채우던 날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씩씩하게 같이 버텨 내던 형이 갑자기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냉장고 어디를 뒤져 봐도 배를 채울 수 있는 그 어떤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곰팡이 낀 벽지 사이로 스며든 형의 눈물이 보입니다.

유난히도 키가 큰 형에겐 제대로 편하게 누울 수도 없는 좁은 방,

하지만, 형은 단 한 번도 절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주 가끔씩 소주병을 들고 와 오늘밤이 지나면

내일은 꼭 희망의 해가 뜰거라는 위로같지 않은 위로를 하곤 했었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간신히 모아진 소주 한병값으로도 웃을 수 있었던 그 날이 그립습니다.

안주가 없어도 깡소주의 달콤함을 공유하던 그 날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슬퍼집니다.

가난한 부모를 만나 고생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며 낙관적으로 살던 그런 형을

세상은 처참하게 뭉개 버렸습니다.

대학 4년을 장학금을 받으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하면 뭐합니까?

코피를 너무 흘려 빈혈에 시달리던 형에게 돌아오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을 뜨기가 무섭게 치솟아 오르는 방값과 물가앞에 무릎을 굻어야 하는

그 굴욕적인 순간에도 형은 절대로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부러워 하는 우수한 성적에도 웃을 수만은 없었던 슬픈 시간들이

소주잔만 자꾸 기울이게 했습니다.

형은 술김에 자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차라리 대학을 포기하고 일찍 일터에 뛰어 들었다면

지금의 고통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가난에 당해낼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맨땅위에서 시작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무조건 도전정신만 앞서 들이받은 땅에 남겨지는건 피 묻은 상처자국 뿐이었습니다.

휴학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시골에서 명문대 간 아들에 거는 희망이 너무 커 함부로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직도 어머니는 작은 밭에서 쪼그리고 앉아 나물을 캐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대학 간 아들이 대견스러워 빚을 내 잔치를 하고 대문짝만하게 플랜카드를 걸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에게 실망감을 안겨 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얼굴조차 모르고 살아 왔습니다.

태어나기도 전에 도박에 미쳐 전재산을 들고 나가 버린 뒤에 지금껏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부모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는 형 앞에서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형의 손을 보면 가슴이 무너집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고아원에서 자라고 나와 궂은 일을 하며

대학에 수석으로 입학을 했고 지금껏 씩씩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배달을 하다가 눈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져 큰 수술을 하고도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수 없는 형을 보며 능력없는 제 자신을 한탄했습니다.

가난의 끝은 어디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언제부턴가 과연 내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것이고

진정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며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가득 품었던 그 불타는 꿈은 어느새 사라지고

오직 생존본능만이 남아 있을뿐이었습니다.

지금 이 하루하루를 버텨 내는것만이 중요할뿐

그 어떤 다른 꿈을 위해 싸울 여력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현실은 그리 관대하지 않다는걸 깨달아야 했습니다.

편의점 앞을 지날때마다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모집 광고에 눈이 번쩍 하다가도

힘들게 공부한 시간들이 너무 아까워 쉽게 안으로 들어서지 못했습니다.

남들처럼 멋있는 양복을 입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해 큰소리치며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그저 단순한 저의 헛된 바램일 뿐이었습니다.

형은 배부른 짓 그만 하고 나날이 밀려드는 방세와 고지서들을 생각해 보라고 타일렀습니다.

이제 다음달이면 가스가 끊깁니다.

아무리 가스비를 아끼려고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고 해도 어김없이 고지서는 날아 옵니다.

형의 마지막 가는 길은 너무 쓸쓸했습니다.

떠날때는 모두가 그렇게 혼자가 되는거라고는 하지만, 형은 너무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 마지막 길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제가 너무 미웠습니다.

무능함을 아무리 탓해도 돌아오는건 비참한 감정뿐이었습니다.

냉장고에 남은 소주병을 기울이며 형의 가는 길을 슬퍼했습니다.

형의 존재도 잊혀진 채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피곤에 지친 몸을 위한 쉼터가 되겠죠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사진속의 형은 해맑게 웃고 있습니다.

너무도 잘못된 세상에서 외면당한 형의 뒷모습이 가슴 아프게 합니다.

가난은 그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 왔습니다.

이제 곧 이 고시촌과도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낮은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력서 뭉치에 아무리 정성껏 꾹꾹 눌러 써도 언제나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입니다.

다음달이면 방값을 내야 하지만, 그럴 돈이 없습니다.

변리사를 준비하는 앞방 동생 녀석과 같이 지낼 방을 알아 보기로 했습니다.

방세와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같이 지낼 사람들을 더 알아보려고 합니다.

먼저 떠난 형이 벌써부터 그리워집니다.

비 오는 날이면 좁은 고시원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창밖을 바라보면서

내일은 해가 뜰거라고 희망가를 목이 터지게 부르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쩌다 일이 생겨 한상 가득 소주와 안주들을 차려 놓고 배불리 먹을때면

너무 좋아서 괜히 눈물이 나곤 했습니다.

하루중 처음 먹는 한 끼라 해도 둘이 있었끼에 너무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비록 가난해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거라면서 위로를 해주던 그런 형이

이젠 떠나고 없다는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형이 머물렀던 방을 한바퀴 돌면서 내내 펑펑 울었습니다.

왠지 뒤에서 울지 말라고 어깨를 토닥거려 줄것만 같습니다.

가난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게 너무 많은 우리들의 씁쓸한 청춘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새겨집니다.

마지막 삶의 끈이 되어 주었던 형이 떠나 버린 지금,

도대체 어디에 기대고 무얼 위해 살아야 하는건지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때마다 형은 꼭 졸업은 해야 한다고 저를 다독여 주곤 했습니다.

꾸역꾸역 간신히 졸업한 현실은 졸업장 외엔 아무것도 가져다 준게 없습니다.

편의점에서는 먹음직스러운 도시락을 사면 사발면을 준다고 하지만

그 도시락을 살 돈 조차 없어 사발면 하나 겨우 사서 허기를 달랩니다.

언제쯤이면 배 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이 오는걸까요?

오늘의 이 불행한 시간들이 존재하는 건 먼 훗날의 행복을 위한 디딤돌이 되는걸까요?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거지같은 말을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요?

대학생활 내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고도 몇 년동안 취직이 안되어

공사장에서 일하던 한 선배가 지난 달, 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욕심에 벽돌을 무리해서 나르다가

그만 높은 계단에서 떨어지고 만것입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멋있고

실력도 좋은 형이 가난에 허덕이다가 희생되고 말았습니다.

도대체 이 세상에서 온전한 직장을 갖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가지고

태어나야 하는것인지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주변의 친했던 사람들이 가난이라는 사슬에 묶여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기가 무섭습니다.

같은 과 후배 하나가 돈이 없어 방을 구하지 못해 동아리방을 전전하다가

그만 결핵에 걸려 입원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건강하고 씩씩하던 녀석이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가난 앞에 용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취업 설명회라고 신이 나서 달려간 곳은 다름아닌 다단계 회사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간신히 빠져 나왔지만, 그 허탈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친구 녀석 하나는 연봉이 세다는 미끼에 걸려 들어 이상한 종교단체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초롱초롱 빛이 나던 눈빛이 언제부턴가 광기어린 무서운 눈빛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틈만 나면 저를 전도하겠다고 귀찮게 좇아 다닙니다.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는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처한 제 가난한 현실을 조롱하고 자존심을 뭉개면서까지 끌어 들이려는

그 녀석을 죽이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습니다.

오늘 한 녀석이 미끼에 걸려 들어 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녀석의 불행이 눈앞에 뻔히 보였지만,

주위에 늘어서 있는 보초병들에 기가 죽어 감히 빼낼 수가 없었습니다.

취직도 못하고 백수로 사는 제 처지를 비아냥거리며 자존심을 무너뜨려 버리는

녀석의 면상을 후려 갈겨주고 싶어도 참아야 했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가난에 찌들어 살았기에 이성을 잃어 버린지 한참 된 것 같았습니다.

가난은 모든걸 잃게 합니다.

그리고 더 지독하게 인생을 부패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력서를 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지금, 수많은 유혹들이 몰려 옵니다.

소주값 모아모아 망설이다가 산 복권은 언제나 엉뚱한 사람들에게만 행운을 안겨 줍니다.

다시는 사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그래도 다시 기대게 되는 복권의 행운에 마약처럼 중독되고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