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군 정신전력 교육 기본교재에 독도를 영토분쟁 진행 중이라고 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99

세상끝의 희망가


BY 러브레터 2017-09-11

이 곳에서

누군가는 마지막 남은 삶의 흔적을 내려 놓은채 산산이 부서져 흩어지고

누군가는 월척의 꿈을 고대하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들뜬 기분으로 희망을 기다린다.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의 지독한 고통을 진심으로 느껴본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그냥 바다가 전해주는 시원한 바람을 머리칼 사이사이 쟁여두며

영혼을 정화시키려 할 뿐이다.

곱은 손을 억지로 펴고 더 이상 나올 뜨거운 입김마저 사라진 차가운 골방에서 느껴야 하는 처절한 삶의 몸부림은

그저 영화속의 한 장면일 뿐이다.

마지막 남은 한줌의 재를 움켜쥐고 억지로 웃으며 작별인사를 전한다.

 

 

가진 것 없어도 풍요로움을 자유로이 느낄 수 있다면 기꺼이 바다로 갈게

 

 

이미 이별의식을 치룬 듯

슬픔이 채 식지도 않은 그 곳에서 두 번째 이별의식을 치를 준비를 한다.

 

 

누군가는 이 곳에서 세상과의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고

세상에서의 마지막 자유를 누리지만

누군가는 이 곳에서 월척을 낚기 위해 낚싯대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아직 한떨기 꽃 한 송이조차 마음껏 피어보지 못한 채 그렇게 멀리 긴 여행을 떠난다.

부디 그 곳에서의 여행은 더 이상 억압받지 않고 서러움에 북받쳐 울지 않는

행복 넘치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유난히도 잔인한 겨울이다.

매섭고 찬 바람에 산산히 흩어지는 그의 영혼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마지막 한줌 남은 그의 흔적에 베인 온기에 기대어 한참동안 펑펑 울었다.

아직 완전한 이별을 허락하지 않은채 그렇게 떠나 버렸다.

저기 건너편 바위에서 월척을 크게 외치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조금전 치른 이별의식이 벌써 물고기들의 배를 채우고 또 누군가의 배를 채울 준비를 한다,

좁은 그물망 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모습이 애처롭다.

살아서 배부르지 못했던 한을 죽어서 누군가를 배부르게 할 수 있는것도 행복이라 말했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가난을 원망하기는 커녕 숙명으로 여기며 즐기려 했던 안일함에 지쳐 떠났던 시간들이었다.

아무런 희망조차 가지려 하지 않았던 그를 바라보기엔 버거웠던 한숨의 무게가 아직도

가슴 한구석에 멍애로 자리잡는다.

 

정리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단촐한 유품들이 온기 없는 고시원 방 한구석애

옹기종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 흔한 중국집 쿠폰 마저 사치였던 궁핍한 그의 일상을 파노라마처럼

되돌리기엔 숨이 막힌다.

낡은 냉장고안은 매서운 칼바람 만큼이나 차갑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을 자랑스럽게 내밀며 궁핍함을 세뇌시키려 했던

이기적인 그를 사랑한 이유를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켜켜이 먼지 쌓인 고지서들이 목숨처럼 소중하게 하던 책들과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새까만 손때만큼이나 도전하던 세월의 무게는 길어져만 갔고 세상과의 등진 담벼락은

점점 더 높아만 갔다.

그렇게 합격이라는 단어에게서 멀어져 갈때마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자기위로에 빠져 지낸 시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던 그였다.

곰팡이 슨 찢어진 벽지 사이로 서점 쇼핑백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민다.

아직 채 뜯어보지도 않은 새 책들이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를 십년째 반복하면서 해마다 새 책들을 차곡차곡 쟁여 놓는다.

김밥 한줄조차 사치라며 화를 내던 그가 몇 만원짜리 책들을 겁 없이 사들이는 모습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에서 공부할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어린아이처럼 웃으면서 말하는 그였다.

그렇게 십년을 공부라는 재밌는 놀이동산에서 혼자만의 울타리를 만들고 산 것이다.

 

 

행복 고시촌

 

처음 이 곳에 짐을 풀었을 때는 이름만큼이나 행복한 일들만 가득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스스로 걸어야 하는 마법같은 주문에 불과했다.

이십년이 다 되어 가는 허름한 건물에 겨우 침대 하나 들어갈 만큼 작은 방 한 구석

억지로 쑤셔 넣은 듯한 낡은 책상

고물상에서 주워 온것만 같은 낡은 냉장고가 덩그러니 주인 없는 빈 방을 지키고 있다.

합격 이라는 거대한 꿈의 띠를 야심차게 머리에 두르고 자리한 이 곳에서

그들에게 내려지는 건 더 큰 절망과 가난의 잔재들 뿐이다.

구석에 겨우 마련된 낡은 화장실에 피곤한 얼굴로 줄을 서 있는 모습들 속에는

그 어떤 희망도 읽을 수가 없다.

몇 시간째 주머니 속 돈봉투를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있는 사이

훤칠한 키에 말끔한 양복 차림의 한 남자가 힘없는 발걸음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또 떨어졌어?”

이젠 포기할때도 된거 아니야?”

나이도 있는데 다른 일 찾아봐야지 언제까지 책만 붙들고 살거야?”

 

아들에게 야단을 치듯 잔소리를 늘어놓는 주인 여자의 목소리에 정겨움이 묻어난다.

거의 십년째 법조인의 꿈을 버리지 못한 의지의 사나이다.

아직 그의 표정에는 포기와 절망이라는 묵은 감정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희망 이라는 단어만 온몸 가득 품은 채 뚜벅뚜벅 자기 방으로 향했다.

승태의 방문이 완전히 닫힐때까지 멍한 눈으로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가난이 무슨 죄라도 되는건지 원!”

부모가 돈 없어서 학교도 죄다 장학생으로만 다니고 몇 년 막노동해 번 돈으로

저렇게 공부만 하고 있잖아!”

서울대도 수석으로 졸업한 놈이 왜 사시는 자꾸 떨어지나 몰라!”

차라리 대기업에 취직이나 할것이지 그 두꺼운 책 이고 있으면 지겹지도 않나 몰라!”

그놈의 금수전지 뭔지가 그렇게 대단한 모양이지?”

빌어먹을 망할놈의 세상이 아주 단단히 미쳐서 돌아가고 있으니 원!”

 

마치 아들을 걱정하듯 그녀의 눈가에 굵은 눈물방울이 맺힌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정을 처음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어머니.

그 단어 하나만으로도 심장을 짓누르는 고통과도 같은 존재다.

 

돈 왜 안부치니?

생활비 떨어진지가 언젠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야?

어떻게 된게 날짜 하나 제대로 못지키고 매번 구걸하게 만드니?

 

주머니속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려도 절대 확인하고 싶지 않은 문자들이

먼지처럼 소복히 싸여간다.

제발 살려 달라고 매달려 애원하고 싶다.

좀처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 땀이 베인 돈봉투를 얼른 꺼내 계약을 했다.

다시 주머니속 핸드폰이 요동을 친다.

 

너 때문에 카드 연체됐잖아!

네가 책임질거야?

찍어 놓은 신상 너 때문에 못사잖아!

얼른 돈 보내!

 

버리고 갔으면 그 날 이후로 엄마이기를 포기한거 아니야?’

제발 나좀 살려줘! 나도 숨좀 쉬고 살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제발 우리 서로 모른척 하고 살자!’

 

전송버튼을 누르지 못한채 얼음처럼 한참동안 그렇게 울분을 삭혀야만 했다.

그렇게 고민하는 사이,

낡은 고시원 출입문이 열리면서 업수룩한 머리의 한 남자가 저벅저벅 들어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방을 계약했다.

확인하지 말았어야 하는 쓸데없는 문자들을 확인하는 사이 머무를 공간마저 잃어 버렸다.

긴 한숨을 다 들이쉴 사이도 없이 누군가가 가방을 싸들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전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 입은 바로 그 사람이었다.

 

어디 여행이라도 가는거야?”

갑자기 나간다고 하니까 아쉽네!”

책이 많아서 이사도 힘들텐데 그냥 계속 있지 그래?”

 

그 남자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참동안 멍하니 서 있던 남자는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동안 잘 해주셨는데 갑자기 나가서 죄송해요!”

생활비를 아껴야 돼서 더 싼 방으로 이사 가려고요!”

 

애틋한 어머니의 눈물이 그녀의 눈가에 가득하다.

 

 

허름하고 낡은 고시촌에 서서히 번져오는 가족의 정에 중독이 되는 기분이었다.

 

젊은 사람이 그렇게 공부만 하다가 세월 보내도 되는거야?”

아무리 하던 공부가 아깝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이는 무시 못하는거 아닌가?”

 

그런 주인 아줌마의 말도 무시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휑하니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아가씨가 운이 좋은가봐! 방 등록할거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만 잘 견디면 이 곳을 나갈 수 있다.

짐을 풀자마자 문구점에 들러 이력서 뭉치와 검정 볼펜을 사 들고 나오는 사이

반갑지 않은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다.

혹시라도 젖을까 옷속에 조심스레 넣고 고시원을 향해 전력질주를 했지만,

다 젖어 버린 이력서는 그 흔적을 영원히 지울 수 없었다.

드라이기로 잘 말려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걌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불합격 통보였다.

벌써 백통째 이력서를 쓰고 있다.

이번이 마지막으로 쓰는 거라고 주문을 걸어 보지만, 언제나 돌아오는건 배신감 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성실하게 공부를 했고 좋은 성적으로 졸업을 했지만,

사회는 그것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자기 소개서에 차라리 살려 달라고 쓰고 싶었다.

살려만 주신다면 온몸을 다 바쳐 충성을 다 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혈서라도 쓰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긴 한숨을 토해내며 천장위에 붙은 야광별들을 세고 있다.

어둠이 찾아 오자 별이 하나 둘씩 반짝거리며 방안을 별천지로 만들었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그녀가 가질 수 있는 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꺼진 핸드폰을 켜자마자 문자벨이 요란스럽게 울려댄다.

 

소리은행입니다.

이번주까지 카드대금을 갚지 않으면 바로 압류조치 들어갈 예정이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나를 데려가세요! 그럼 열심히 일해서 갚을게요!’

 

 

너 언제 돈 갚을거니?

진짜 너무하는거 아니야?

나도 돈 필요한데 빨리 갚고 핸드폰좀 켜고 다녀!

아니면 그거 팔아서 돈 갚던가!

 

 

오늘까지 돈 갚는다면서?

왜 소식이 없는거야?

네가 그러고도 친구니?

취직이 안되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갚아야 할거 아니야?

 

 

숨는다고 내가 못찾을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 때문에 나도 신불자 되게 생겼으니까 이 문자 받는대로 연락해라!

 

 

내가 갚기 싫어서 안갚는거겠니?’

그래! 알았다고 ! 갚는다고 ! 갚아!’

나도 니들 돈 다 갚고 싶거든!’

 

 

드르륵!

 

아직도 돈 안부치고 뭐하니?

너는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사는거니?

그렇게 말을 했으면 알아 먹어야지 엄마한테 생활비 주는게 그렇게도 아깝니?

넌 왜 그렇게 못돼 먹은건지 모르겠다!

 

 

그러는 당신은 그 나이 먹도록 뭘 한거지?’

내가 왜? 왜 당신 생활까지 책임져야 하는데?’

 

다시 방바닥에 벌렁 누워 버렸다.

밤새 이력서를 쓴 탓에 팔목이 욱신거린다.

도대체 얼마나 더 써야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것일까?

도대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점점 가난의 늪속으로 빠져들어 허우적거리고 있다.

궁핍하고 피폐해지는 일상 속에서의 탈출구는 동화 속에서나 존재하는 것만 같다.

 

꼬르륵!

 

주책없이 울려대는 배꼽시계소리에 놀라 잠에서 번쩍 깨버린다.

밤 열 두시

한 끼도 먹지 않은 채 하루가 다 지나 버렸다.

코트 주머니를 뒤적뒤적 하다 보니 묵직한 무언가가 손에 잡힌다.

돈뭉치가 아닐까 하는 들뜬 기대감에 꺼내 든 건 꼬깃한 광고지들 이었다.

 

통장잔고는 마이너스 0,

 

 

배꼽시계 소리가 내장을 폭파할 듯 요동을 친다.

더 이상 돈을 빌릴 친구도 없다.

카드 이용한도는 초과한지 이미 오래전이라 김밥 한줄조차 사먹을 수 없다.

카드대출도 이미 한도초과

그 어느것 하나 한도초과가 아닌게 없다.

초과되지 않은 건 넘쳐 나는 일에 대한 욕망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 넘쳐나는 열정을 처참하게 뭉개 버린다.

 

꼬르륵

 

주책스러운 배꼽시계는 눈치도 없이 비어 있는 뱃가죽을 요란하게 울려 댄다.

책상 위에 수북히 쌓인 또박또박 꾹꾹 눌러 쓴 이력서들이 눈물로 가려진다.

 

금수저

 

글자만 바라봐도 허탈한 미소가 지어진다.

오늘도 그 무너지는 자괴감에 빠져 아까운 목숨이 바스라져 버렸다.

매일매일 반갑지 않은 뉴스들이 부여잡았던 마지막 희망의 끈에 점점 힘이 빠지게 만든다.

창밖 불빛들은 지치지도 않은채 늦은 시간까지 반짝거리며 발길을 유혹한다.

건너편 편의점에서 누군가가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 사이로 찬 공기에 섞여 스며드는 음식냄새에 빈곤의 아픔을 버무려 가슴에 새겨 넣는다.

 

 

너 때문에 카드 연체되었잖아!

신상 찍어 둔거 네가 돈 안부쳐서 못사고 놓친거 어떻게 책임질건데?

 

반사적으로 전화번호는 엄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언제부터 모녀사이라는 구질구질한 관계로 살아 온거죠?”

다시는 문자같은거 보내지 마세요!”

제발 알아서 굶어 죽던지 배터져 죽던지 하라구요!”

 

캔맥주 3 더하기 1

 

편의점 유리창에 붙은 반가운 세일 글귀에도 환하게 웃을 수 없었다.

다른 맥주보다 천원이나 더 비싸 쳐다보지도 못했던 캔맥주 하나만 집어 들고

즉석 떡복이에 뜨거운 물을 부어 렌지에 올렸다.

탁자에 음식을 가득 올려 놓고 웃음꽃이 만발하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 저절로 작아지고 초라해지는 아픔을 느껴야 했다.

덩그러니 비어 있는 마지막 탁자에 앉아 간신히 허기를 달랜다.

건너편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하나가 먹음직스러워 보인다.

아무리 주머니를 뒤져 봐도 만두를 사 먹을 돈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서러움에 북받쳐 간신히 쑤셔 넣은 떡볶이 국물에 사례가 들어 뜨거운 통증이

목구멍을 괴롭혔다.

아무리 맥주를 마셔 봐도 따갑고 매운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점점 바닥을 드러내는 맥주에 눈물을 채워 아픔을 가라앉힌다.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이 보도블럭에 걸려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말았다.

무릎에 난 상처보다 가슴에 남은 상처가 더 아파 견딜 수가 없다.

흥청거리며 술을 마시고 싶어도 가난한 주머니는 그것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얼음이 얼것처럼 차가운 방안에 보일러의 온기 대신 헤어 드라이기의 따듯한 바람에 의지하며

 남은 이력서 칸들을 차곡차곡 채워 나갔다.

지쳐 쓰러져 잠이 들다 깨어나도 핸드폰 벨소리는 언제나 침묵모드다.

지갑을 뒤져 마지막 희망을 걸고 이력서 종이를 사러 힘없는 발걸음을 옮겨 본다.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빛 고운 찐빵들의 고문이 시작된다.

매대에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마지막 이력서 뭉치를 힘차게 집어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마음에 억지로 가볍다는 주문을 걸어 본다.

꺼내기조차 부끄러운 꼬깃한 마지막 지폐로 계산을 마치고 남은 돈을 내고 돌아서려는 순간,

잔돈을 받아 가라는 목소리가 마치 천사의 부름처럼 들렸다.

 

이 돈이면 컵라면 하나 사먹을 수 있다!

 

==열두시를 달리는 어정쩡한 시간에 여유로운 브런치를 즐겨 본다.

상다리 부러지게 놓인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은 배부른 컵라면을 국물까지 다 비워내고

행복한 미소로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는 틀림없이 될거야!

 

드르륵

 

지쳐 잠이 든 시간에 반가운 알람소리가 울려 퍼진다.

 

두성상사입니다!

서류심사 합격하셨으니까 내일 바로 면접 보려 오세요!

 

?

정말인가요?

 

 

질문을 할 사이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이제 가난과 빚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들뜬 마음에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이른 새벽 꽃단장을 시작한다.

세탁소에서 미리 빌려 놓은 정장을 차려 입고 거울 앞에서 마지막 다짐을 외쳐 본다.

명품이라 조심해서 입어야 한다며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다.

인터넷으로 가격을 검색해 보니 입이 쩍 벌어질 만큼 고가의 옷이었다.

언제쯤이면 이렇게 비싸고 예쁜 옷을 아무렇지 않게 사 입을 수 있는걸까?

당장 배를 채울 돈 조차 없다는걸 망각한채 쓸데 없는 망상에 빠져든다.

생각보다 허름한 건물에 실망하긴 했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아

요동치는 배꼽시계를 달래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 어떤것도 할 수 있다.

 

 

죽음을 심판하러 온 저승사자처럼 을씨년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면접관에

순간 주눅이 들어 버렸다.

죄를 짓지 않아도 자백해 버릴것만 같은 삭막한 분위기속에서 한참동안 서류를 살펴 보던

면접관의 질문은 말문을 막히게 한다.

 

나이가 응시자들 중에서 제일 많은데 그동안 뭐 하고 지낸거죠?

학벌이 그렇게 좋은것도 아닌데 불러주는 데가 없어서 그런 건가요?

 

물론 좋은 학교를 나오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 나이를 먹기전에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해 보고 싶어 늦었습니다!

 

 

어떤 일에 도전을 했었다는거죠?

 

작가의 꿈을 가지고 등단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면접관들의 눈빛에 그만 화가 나 울컥할뻔 했다.

 

그래서 등단은 했나요?

 

아니오!

 

왜 못한거죠?

 

본인의 글실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쉴 새 없이 심문하는 소리에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썩 잘 쓴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열정을 버리고 싶지 않아 계속 도전했습니다

 

열정이요?

세상 일이 그 열정 하나로 다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꼭 그런건 아니지만 빼놓을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 회사도 그 열정 하나만 가지고 도전한건가요?

솔직히 말해서 여자 나이 스물 여덟이면 시집 가서 남편 월급으로 살아도 되는 나이 아닌가?

 

꼭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해도 여자라고 일을 그만둬야 하는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결혼해서 애 낳고 조리할때까지 자리를 비워둘 만큼 회사가 너그럽다고 생각합니까?

 

저는 무조건 이 회사에서 꼭 일해야 합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비웃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이익단체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회사가 원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서 면접을 보는 것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