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보이지 않는 긴 줄 사이로 들려오는 절박한 한숨소리가 장송곡을 듣는 듯 구슬프다.
무료급식 시간표와 오백원짜리 동전을 나누어 주는 성당과 교회 위치를 자세하게 그려 놓은 종이 한 장을
자랑스럽게 펼쳐 들고 시간을 체크하는 눈빛이 햇빛에 반사되어 더 반짝거린다.
형광펜으로 줄까지 그어 가면서 다음 이동장소를 체크하는 그들의 모습속에는 언제나
절박함이 묻어난다.
저들도 한때는 저마다 한 자리씩은 차지하고 살았으리라.
“ 주머니가 터질 것 같은데 괜찮으세요?”
“ 언제부터 다니셨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
“ 죄송하지만 인터뷰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
긴 줄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새치기를 하다가 시비가 붙어 몸싸움이 벌어지는건
더 이상 이상한 풍경이 아니다. 걸음이 더딘 노인들은 꼼짝없이 자리를 빼앗기고 다시 뒤로 밀려난다.
불편한 다리캇에 제대로 걷지 못하는 송노인은 오늘도 새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바닥에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송노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그만 인파에 휩쓸려
바닥에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
언제 문이 열릴지 모른채 기약없이 닫혀 있는 문을 향해 오백원을 갈망하는
그들의 절규는 언제나 처절하다.
끝없이 늘어선 긴 줄을 비집고 들어가 간신히 자리를 잡고 서서 멍하니 바라본 공원앞,
학원 셔틀을 놓쳤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야단치는 야박한 엄마의 모습이 눈에 띈다.
“ 왜 차를 놓쳐?‘
“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이 험난한 세상 살려고 그래?”
“ 오늘 학원 빠져서 공부 못하면 어떻게 따라갈 건데?”
“ 도대체 누굴 닮아서 그렇게 게으르고 공부를 안하는건데?”
“ 그렇게 공부 안해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 너도 저 사람들처럼 살려고 그래?”
“ 밥 사 먹을 돈도 없어서 저렇게 줄 서서 구걸하고 살거야?”
“ 저러고 사는거 다 공부를 못해서 그런거야!”
“ 공부 못하면 너도 저렇게 되는거야! 알았어?‘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은 정확하게 성당앞에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술병을 비우던 노숙자 하나가 벌떡 일어나 한걸음에 공원으로 달려가 여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죽일 듯이 쏘아보는 살벌한 눈빛에 벌벌 떨기는커녕 오히려 큰소리치는 그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흐린 하늘을 뚫고 지나간다.
“이 손 안놔? ”
“더러운 손을 어디다 함부로 들이밀어?”
“네가 그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눈을 찌를 듯 삿대질을 하는 손가락 사이로 살기가 묻어난다.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불어?‘
“네까짓것들이 감히 나한테 훈계하려고 들어?”
“너같은 구질구질한것들 때문에 이 동네 땅값 떨어지는거 몰라?”
“ 내가 저 성당 고소할거야!”
“ 늙으려면 곱게 늙을것이지 이게 무슨 추태야?”
“ 당신들 돈 없는게 누구탓인데?”
공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진 아들의 어깨는 관심도 두지 않른채
오로지 갑질에만 열을 올린다.
“ 당신들이 잘못 살아서 이렇게 되고서 어디다 화풀이야?”
“ 어디다 훈계냐고?”
“ 저 사람들한테도 엄연한 인격이 있어!”
“ 당신들처럼 돈 많은 사람들한테만 인격이 존재하는건 아니라고!”
“ 저 사람들 중에도 당신보다 훨씬 더 잘 살았고 훨씬 더 잘 나가던 사람들도 있어!”
“ 노숙자들한테도 나름대로의 말 못할 사정이 있는거라고!”
“그러니까 함부로 말하지 마!“
“ 당신집 금고에 얼마가 들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 돈이 저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가능했던 일일까?“
“ 당신 그 돈을 벌기 위해서 단 한방울의 땀이라도 흘려본적이 있냐고?”
그 어떤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당문이 열리자마자 우루루 몰려가는 그들의 표정에는
오직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축 쳐진 어깨로 택시를 잡아타고 학원으로 향하는 모습이 누군가에겐 다가가지 못할
먼 나라의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송노인은 손주녀석이 학교에서 돌아오기 전 얼른 돈을 받고 폐지를 주우러 가야 한다며
낡은 유모차를 끌고 종종걸음을 치며 성당앞을 벗어난다.
오백원과 함께 받은 간식이 든 비닐주머니를 보물처럼 가슴에 품고 환한 미소를 짓는다.
오늘은 제법 수입이 좋은 날이다.
유모차를 끌고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송노인을 따라 카메라도 종종걸음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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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봐요!”
“ 손주한테 줄 간식이 생겼거든!”
“ 요즘은 과자도 비싸서 못사주는게 미안했는데 잘 됐지 뭐야?”
“ 먹고 싶어도 일부러 과자 싫어한다고 하는 애늙은이 손자야!”
“ 성당에서 간식을 자주 나눠 주나요?
“ 아니! 요즘은 경기가 안좋아서 자주는 안주더라고!”
“ 어쩌다가 운이 좋아야 이런것도 받는데 오늘이 운좋은 날이야!”
어제 부탁한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일찍 가지 않으면 누군가 낚아채가 버려 서두르지 않으면 안된다.
아침에 구멍난 운동화 사이로 발가락을 간신히 숨기며 집을 나서는 손주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려 눈물을 글썽인다.
마냥 아기일 것 같았던 녀석이 부쩍 자라 턱밑에 거뭇거뭇 수염이 나고 목소리가 변했다.
그러면서 남들이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보는걸 무척 싫어한다.
무릎에 딱 붙어 있어야 할 파스가 스르르 떨어져 버렸다.
동전을 나눠 주는 신부님과 수녀님의 손길은 항상 바쁘다.
신이 내린 선한 그들에게 늘 죄만 짓는 기분이다.
무조건 받기만 하는게 미안한 마음에 지난주 정식으로 성당에 등록을 했다.
굳이 줄을 서 있지 않아도 직접 방문해 주시겠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죄송스러워
오늘도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손주 녀석이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이 성당에 다닌다.
그 여자아이 이름이 세린이라고 한다.
세린이가 혹시라도 내가 할머니란 걸 알게 될까봐 걱정하고 있다.
세린이는 참 곱고 이쁘게 생겼다.
손주녀석이 반할만도 하다.
부잣집 곱게 자란 아이답지 않게 언제 보아도 항상 예의 바르고 착한 아이다.
요즘 애들처럼 어른들을 무시하거나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다.
엄마랑 같이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볼때마다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능력도 없고 가난한 할머니라는게 너무 부끄럽다.
아침마다 기자들이 와서 다큐멘터린가 뭔가를 찍는다고 인터뷰를 하자고 난리다.
혹시라도 손주가 나중에 보고서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다.
노인네가 어린 손주 인생에 방해만 되고 먹칠을 하는건 아닌지 모르겠다.
요즘은 폐지를 주워도 옛날처럼 돈이 되지 않는다.
하루 종일 주우러 다녀도 하루 한끼 먹기 힘든데 그것마저 못하게 하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하다.
손주가 창피하다고 투덜대는걸 무시하면서까지 주워 온 유모차를 쓸 일이 점점 줄어든다.
무릎도 점점 고물이 되어간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으면 덜 아프게 한다고는 하는데 돈이 없으니 참 슬프다.
관절염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매일 속이 쓰리고 아프다.
이러다가 아에 못걸어 다니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손주에게 매일 아프고 능력없는 모습만 보여서 미안하다.
이 동네 짝지가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져 죽었다.
어린 손녀 공부 잘 한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노인네였다.
손녀가 대학에 갈때까지 오래 살아야 한다고 매일 걱정만 하더니 그렇게 허무하게 가버렸다.
손주가 학교를 가고 방에서 혼자 뉴스를 볼때마다 눈물이 난다.
독거노인들이 쓸쓸하게 죽는걸 볼때마다 남의 얘기같지 않아 가슴이 무너진다.
더 나이 먹기전에 빨리 죽어 주는게 손주한테도 좋은 일일지도 모른다.
평생을 자식만 바라보고 살던 금주 할머니는 버려진 충격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죽은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무도 한씨한테 관심이 없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어서 한씨를 들여다 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자기 앞가림만 하고 살기도 힘든 사람들이다.
한씨의 쓸쓸한 죽음을 보면서 오래 사는것도 죄라는걸 알아야 했다.
골목마다 철거딱지가 붙고 재개발을 시작해도 여기를 떠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손주와 둘이 몸을 누일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세린이를 좋아하면서도 항상 기를 못펴고 고백도 못하는 손주녀석이 가엾다.
부잣집 녀석도 세린이를 좋아해서 비싼 선물만 안겨 준다며 속상해 하는걸
볼때마다 가슴이 아프다.
오늘 아침에 구멍난 운동화에 발가락이 튀어나와도 투덜대지 않는 착한 손주다.
그런 손주한테 할미라는게 상처만 주고 있다.
협상없는 재개발에 반대한다
갈 곳 없는 주민들의 생존권읇 보장하라!
원만한 합의없는 불법 철거작업을 철회하라!
재개발 건설사는 각성하고 반성하라!
부서진 벽돌위에져 세겨진 붉은 글씨마다 주민들의 처절한 눈물이 묻어난다.
저기 멀리 고물상에서 주워 온 너덜너덜해진 가방을 매고 내려서는 김노인의 뒷모습이 애처롭다.
밤새 술을 마신 듯 불그스름해진 콧날 사이로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아들이 공부를 잘 해서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던 웃음 가득한 모습은
어딘가 사라지고 쭈글쭈글 잔주름만이 가득할뿐이다.
졸업을 한 지가 한참전인데도 벌써 3년째 백수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배신당해 억울하다는 말들만 되풀이하며 방안에만 틀어박혀 은둔형으로 산지 오래다.
동네에서 미쳤다는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길 건너 부잣집 동네 학원에 악착같이 보내던
김노인이었다. 자식과 손주에게까지 가난을 물려주기 싫어 기필코 잘 살게 만들고 말겠다던 그 간절한 소망은 그 어디에서도 이룰 수 없었다.
아무리 이력서를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 쓰고 피를 토하며 열변을 토해도
세상은 그렇게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취업준비를 함께 하던 친구가 아사하고 자살하는 모습들을 지켜보기 버거워
서서히 현실의 공간에서 멀어져 혼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김노인의 어깨에 드리워진 고난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혜승과 유하는 암울한 달동네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학원비를 내고 공부하는 저 길건너 동네 아이들도 뚝뚝 떨어지는 서울대를
떡하니 붙어 산비탈 어귀에 대문짝만한 플랜카드를 붙이고 잔치를 벌였다.
자린고비 김노인이 늦둥이 고생 안시킨다고 악착같이 뒷바라지한 보람은 배신하지 않았다.
모두가 막걸리로 마른 목을 축이고 수육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고 있을 때 유하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혜승이에게 1등을 내어주었다는 억울함에 분노하며 방안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일등이 아니면 의미없는 합격이었다.
유하앞에는 언제나 혜승이 있었다.
아무리 넘어서려고 해도 절대로 깰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존재하고 있었다.
겉으로는 둘도 없는 친한 친구임에는 틀림없었지만, 속으로는 절대자가 되기 위해 칼을 간다.
학교가 끝나기가 무섭게 혜승은 학원에 가기 위해 셔틀버스에 오르지만,
유하는 터덜터덜 힘없는 발걸음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버스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 혜승의 여유로운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다
그만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고 말았다.
피가 철철 흘러도 다리가 아픈것보다 가난 때문에 학원에 가지 못한다는 처참한 기분이 더 상처였다.
약국에서 밴드를 사 대충 붙이고 절뚝거리며 가게로 향하는 사이 저기 멀리
행자가 폐지를 가득 싣은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이 보인다.
고개를 홱 돌리려는 사이 외제차에서 내리는 창수와 눈이 마주쳤다.
“ 야! 너 바지에 피 묻었어!”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아무것도 듣고싶지 않았다.
다만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뿐이다.
질퍽해진 발바닥을 내려다 보니 운동화 속으로 피가 철철 흘러 내리고 있었다.
이미 너덜너덜한 걸레가 되어버린 반창고를 바라보며 동질감을 느껴보긴 처음이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어제보다 낙엽이 더 두텁게 거리에 내려 앉아 있다.
걸음을 옮길때마다 구멍난 깔창 사이로 달라붙는 낙엽의 무게가 삶의 무게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바람소리에 장단 맞춰 흩날리는 신문지를 놓칠새라 절뚝거리는 걸음걸이로
주우러 다니는 사이 새치기를 당하고 말았다.
몇 시간째 줄을 서 있던 보람도 없이 순식간에 자리를 빼앗겼다.
미안한 기색 하나 없이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소주를 꺼내 목을 축인다.
밤새 술을 마신 듯 초췌한 모습으로 동전 하나를 기다리는 저들의 모습이 안쓰럽다.
얼굴에 주름질 나이가 한참 먼 것 같은 인상인데도 새치기까지 해가며 비집고 서 있는 모습에
씁쓸한 미소가 번진다. 어제 저녁부터 욱신거리던 관절이 또 말썽이다.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줄을 서려고 한참을 걸어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차가운 칼바람이 머리칼을 스칠때마다 코를 찌르는 묵은 냄새에 현기증이 일어난다.
밤새 술에 절어 몸을 가누지 못하면서도 또 술값을 벌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고
악착같이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대단한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 하이애나처럼 몰려들어 사진을 찍어대는 기자 하나가
노숙자에게 폭행을 당했다.
산산이 부서지는 카메라 렌즈 사이로 허기를 달래려는 이들의 한숨과 눈물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머리가 깨져 피가 나는줄도 모르고 동전이 담긴 바구니를 향해 질주하는 모습은
생존본능을 넘어선 치열한 전쟁이다.
김노인은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받아든 동전과 간식 주머니를 그만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만다.
손주에게 먹일 간식이라면서 좋아할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송노인은 눈물을 흘리며 한참을 망설이다가 김노인에게 간식 주머니를 내민다.
“ 어제부터 굶었다며? 이거라도 먹어야 힘내서 간난쟁이 볼거 아냐?”
한참동안 울기만 하는 김노인의 두 손을 꼭 부여잡고 눈물만 흘린다.
“ 기자양반들! 나보다 이 불쌍한 노인네좀 방송에 내보내줘!”
“ 아들은 깡패한테 맞아서 죽고 며느리는 충격으로 죽고 간난쟁이 혼자 키워!”
“ 이제 돌도 안지난 애 분유도 제대로 못먹이고 있어!”
“ 분유값이 좀 비싸야지! 밥 해 먹을 쌀도 없어서 미음도 못먹인다고!”
강제철거에 분노하는 주민들의 아우성에 귀 기울여 달라!
우리에게도 살 권리가 있다!
협상 없는 이주와 철거는 허락할 수 없다!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천막에 둘러 앉아 처절하게 외치는 절규를 뒤로 하고
허름한 골목 흙벽길을 지나 대문도 없는 어두운 지하실 방앞에서 카메라가 한바퀴 돈다.
배고픔을 호소하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놀라 안으로 들어선 순간
아가의 울음소리가 뚝 멈춰 버렸다.
언제 울었냐는 듯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진다.
곰팡이 가득 핀 어두침침한 좁은 방에 난방을 한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마를줄 모르고 줄줄 흐르는 콧물이 희미한 불빛에 반사되어 유난히도 반짝거린다.
“ 엄마젖을 먹어야 하는데 어린 것이 저렇게 배를 곯고 있으니....!”
“ 아기 엄마는 언제 돌아가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마른 침을 삼키며 한숨을 짓던 김노인은 쉴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손으로 훔쳐내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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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일되기 며칠전에 아들녀석 따라 가버렸어!”
“ 사실 그 전에도 애한테 생전 젖 한 번 물린적이 없어!”
“ 왜요?”
“ 둘이 좋아서 결혼한게 아니거든!”
“ 아들녀석이 정신을 못차리고 건달짓만 하니까 매일 싸움만 하더라고!”
“ 죄송하지만 아드님이 생전에 무슨 일을 하셨나요?‘
“ 그냥 동네 깡패였지 뭐!”
“ 매일 쌈박질에 사고나 치고 다니고 그러다 감옥까지 갔다 왔어!”
“ 애엄마는 술집에서 만난거 같아!”
“ 어떻게나 담배를 피워대는지 폐병에 걸리는줄 알았어!”
“ 자기가 낳은 새끼한테는 정도 안주더라고!”
“ 하긴! 남편이라는게 돈은 안벌어오고 매일 사고나 치고 다니니 정이 안갔겠지!”
“ 다 내가 자식 잘못 키워서 벌 받은거야!”
침침한 형광등만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는 아기의 입에 공갈 젖꼭지만 연거푸 물린다.
집집마다 놓여져 있는 분유통은 아무리 둘러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빈 쌀독에서 비집고 나온 낡은 공기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 이불 앞에 멈춰 있다.
“ 아기가 배고파 하는 것 같은데요!”
“ 분유 먹을 시간 아닌가요?”
김노인의 눈가에 가득 맺히는 눈물방울에 지독한 가난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 분유값이 좀 비싸야지!”
“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만원 벌기가 힘든데 어떻게 사서 먹이겠어?”
“ 그럼 아기한테 뭘 먹이시는데요?”
낡은 소매자락이 마를새 없이 눈물이 흘러 내린다.
“ 무료 급식소에서 주는 밥 얻어다가 끓여서 밥물만 먹여!”
“ 붕사하는 아가씨가 맘씨가 착해서 가끔 우유도 사주고 해서 그것도 가끔 먹이고 그러지!”
“ 내가 죄인이야! 남들은 제대로 못먹이는걸 차라리 보육시설에 맡기라고 하지만...”
“ 그건 할미가 돼서 할 짓이 아니지!”
“ 저희들이 보기에도 보육시설에서 제대로 돌봐주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을까?”
“ 어제 하루 종일 굶고 처음 먹는 밥이 참 맛있구만!”
“ 늙은이가 주책이지?”
“ 살아 있는것도 죄인인데 밥만 축내고 있네!”
연거푸 헛웃음만 짓고 있는 송노인의 축 늘어진 어깨위에 묵어 있는 삶의 고단함이
한가득 묻어난다.
설거지를 한 듯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미안한 듯 미소를 짓는 모습에
다시 침묵이 흐른다. 유기자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즉석밥을 몇 상자 주문했다.
한달 식비의 3분의 1을 양보하는 순간이다.
카드 한도가 초과된 탓에 취소와 주문을 여러번 반복하다가 간신히 결제를 마쳤다.
꼬르륵!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 아기 먹던 분유 뭔지 아세요?”
“ 분유통 있으면 보여주실 수 있어요?”
“ 아무거나 먹이면 아기가 탈나거든요!”
씽크대 맨 구석에서 녹이 슨 분유깡통을 꺼내 보여주며 눈물을 글썽였다.
“ 태어나서 처음 먹여보고 돈이 없어서 못먹였어!”
“ 지금이라도 보육원에 맡겨야 하나 싶어!”
녹이 슨 깡통 주변을 깨끗이 닦아 내고 분유 이름을 적어 마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마트 진열대에 촘촘하게 놓여져 있는 수많은 분유들중 김노인의 손주가 먹을 수 있는건 없다.
가난은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도 서러움을 안겨 준다.
메모해 온 분유를 하나 카트에 집어 넣고 인터넷으로 몇상자 주문했다.
아기용품 매장안 가득 알록달록 진열되어 있는 것들을 스쳐 지나면서
씁쓸한 미소와 눈물이 뒤범벅되어 카트위에 얼룩진다.
저들이 그토록 소망하는 배고픔을 달랠 수 있는 한끼의 식사보다 훨씬 비싼
옷들과 장난감들이다.
젖병을 물리자마자 얼굴이 빨개지도록 사투를 벌이며 빨이 먹는 아기의 모습을 보는
김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바닥이 보이는것도 모른채 남은 배고픔을 달래고 있는 아기의 모습을 뒤로 한 채
다시 거리로 나서는 마음이 무겁다.
가게 입구부터 가득 쌓인 상자들을 바라보는 송노인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낡은 유모차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기울어지는것도 모른채
무게를 늘리기 위한 생존싸움에 열을 올린다.
“ 너무 많이 싣으신거 아니예요?”
“ 더 싣으면 위험할 것 같은데요!”
“ 괜찮아! 안무너져!”
“ 하나라도 더 싣어야 한푼이라도 더 벌지!”
“ 손주 운동화 사주려면 신문지 하나라도 더 주워 모아야돼!”
“ 이거 다 팔아도 운동화값도 안돼!”
“ 보고만 있지말고 뒤에서 좀 밀어줘!”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집 앞에서 군침을 연신 흘리면서도 일부러 못본척 바쁘게 지나간다.
“ 배 고프실텐데 국수 한그릇 드시고 가세요!”
“ 사드릴게요!”
“ 손주 오기전에 이거 빨리 팔고 와야 하는데 ..!”
“ 기자양반들이 사준다고 하면 먹고 가야지!”
기다렸다는 듯이 한걸음에 가게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는다.
혹시라도 유모차를 훔쳐갈까 두려운 마음에 유모차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이제 막 육수를 낸 커다란 양푼에 국수를 넣고 휘휘 젓는 시간도 기다리기 힘들어
연신 군침을 흘리는 송노인의 주름진 얼굴이 슬프다.
“ 손주가 이집 잔치국수를 참 좋아하는데 혼자 먹어서 미안하네!”
“ 여기도 재개발인가 때문에 헐려 버린다는데...”
“ 우리같은 서민들이 발 붙일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슬픈 일이야!”
오직 진실만을 담아 요리합니다.
국수 한그릇에 담긴 정성
사랑으로 받아 주세요!
벽면 가득한 낙서 한가운데 커다란 글씨로 적힌 문구가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