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그릇 더 먹을 수 없을까?”
“ 어제 하루 종일 굶고 처음 먹는 밥이 참 맛있구만!”
일기장을 읽어보는 사이 설거지를 한 듯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들이 미안한 듯 미소를 짓는 모습에
다시 침묵이 흐른다. 유기자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즉석밥을 몇 상자 주문했다.
한달 식비의 3분의 1을 양보하는 순간이다.
꼬르륵!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비워진지 오래 된 말라붙은 밥그릇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송노인의 눈빛에 슬픔이 묻어난다.
“ 에휴! 늙어서 오래 사는것도 죄인데 이놈의 뱃가죽은 늙지를 않는가벼!”
“ 귀찮게 데울 필요없어요! ”
“늙어서 오래 사는 주제에 밥이라도 적게 먹어야지!”
그러면서도 언제 그랬냐는 듯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가 상위에 오르기가 무섭게
깨끗하게 비워낸다.
숟가락을 내려놓기가 미안해 눈치를 살피면서도 여전히 허기진 모습이다.
“ 손주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노인네가 주책맞게 혼자 잘도 쳐먹고 있네!”
“ 그냥 밥 먹는거 자체가 맛있고 좋아!”
“ 오늘은 무료 급식소에 안가도 되겠네!”
“ 덕분에 아주 잘 먹었어요! ”
“ 인터뷰 하느라 고생했는데 줄게 없네!”
칠이 벗겨진 옷장을 열고 까만 봉지를 꺼내 사탕을 한주먹씩 나누어 주며 미소를 짓는다.
아무리 사양해도 막무가내로 주머니마다 억지로 집어 넣어 주며 토닥여준다.
“ 당뇨가 있어서 이런거 먹으면 안돼!”
“ 없는 주제에 건강하기라도 해야 되는데 망가진데가 많아!”
“ 이 사탕 손주분 주시고요 대신 할머니랑 같이 인터뷰하러 다녀도 될까요?”
“ 출연료 보내 드릴게요!‘
“ 저희가 이번에 기획한 특집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 담아 보려고 하는데요!”
“ 손주분 자존심 상하지 않게 잘 편집해 드릴게요!”
“ 우리 사는거야 뻔한데 무슨 특집까지 해?”
“ 다들 힘들고 죽지못해 살아!”
“ 사는게 너무 힘들어서 옆집 할망구가 번개탄 피워 놓고 가버렸지 뭐야?”
“ 오죽하면 구멍가게에서도 번개탄 산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겠어?”
“ 참 착하고 열심히 사는 노인네였는데 갑자기 가버렸어!”
어두침침한 방 한구석 약봉지들이 가득한 상자들이 제일 먼저 슬픈 인사를 나눈다.
관절염약
위장약
신경 안정제
수면제
마치 미니 약국을 떠올리게 하는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온갖 약들이 상자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작은 냉장고 안에는 음식이 다녀간 흔적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텅 비어 있다.
냉동실 한켠에 꽁꽁 언 곰탕이 든 페트병 두 개가 전부이다.
“ 아들 오면 준다고 그렇게 아껴 두더니 결국 그냥 가버렸어!”
“ 오지도 않을 아들을 뭘 그렇게 기다린건지 몰라!”
“ 아드님이 집을 나가신건가요?”
차가운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눈물을 글썽이며 멍하니 빈 방을 바라본다.
“ 그렇게 곱던 할망구가 영감하고 아들 잘못 만나 고생만 하다 갔지 뭐야?”
“ 왜 그렇게 이 동네 영감탱이들은 하나같이 노름하고 여자에 미쳤었나 몰라!”
“ 시집 와서 평생을 남편 바람나고 노름에 미친거 맘고생하다가 속병까지 얻었어!”
“ 술만 쳐먹으면 매일 때려 부수고 두들겨 패고 난리였어!”
“ 오죽하면 도망까지 갔었겠어?”
“ 그러다가 자식들 불쌍하다고 다시 들어와서 또 매맞고 살고 그랬어!”
“ 젊었을때는 노름에 기집질에 술주정으로 힘들게 하더니 늙어서는 중풍으로 고생시켰지!”
“ 지금 생각해도 그건 사람이 아니라 웬수야!”
“ 남편 중풍 수발드는것도 힘든데 자식들은 돈 한 푼 안대주고 맨날 사고만 쳤어!”
“ 자식들은 지금 뭐 하고 사는데요?”
“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라!”
“ 지 엄마 팔아서 잔뜩 빚만 지고 어디로 사라져 버렸어!”
“ 어쩌면 그렇게 하는 짓이 지 애비 젊었을때랑 똑같은지 기겁을 했다니까!”
“ 할망구가 멀쩡할 때 식당에서 일하면서 모아 둔 돈 몽땅 훔쳐다가 노름으로 날렸지!”
“ 그것도 모자라서 사채까지 썼지 뭐야!”
: 갑자기 시꺼먼 놈들이 잔뜩 쳐들어와서 아들 어디 있는지 대라는데 알 수가 있나?“
“ 남편빚에 아들빚에 죽어라 빚만 갚다가 힘드니까 가버린거지!”
“ 아드님은 할머니 돌아가셨을때도 안오셨나봐요?”
“ 빚쟁이 무서워서 못온거지!”
“ 천하에 죽일놈 같으니라구!”
“ 아 귀신은 뭐 하나 몰라!”
영정사진 속 신노인은 환하게 웃고 있다.
시름을 잊고 퍼음으로 자리한 안식처가 마음에 드는 듯 처음으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송노인은 가슴에 품고 온 사과와 귤 그리고 사탕 꾸러미들을 조심스럽게 올려 놓는다.
“ 아이고! 이 할망구 곶감 좋아하는데 잊어버렸네!”
“ 기자양반 곶감좀 사올 수 없어?”
“ 죽어서라도 실컷 먹게 해야지!”
유기자는 헐레벌떡 마트로 달려가 간단한 제사음식과 술을 사들고 와 상을 차린다.
“ 나 버리고 간 못된 할망구야! ”
“좋아하는 곶감 먹고 싶어도 못먹었지?”
송노인은 제일 큰 곶감 하나를 집어들고 신노인의 사진앞에 내밀며 한참동안 울먹였다.
“ 자네 사과도 좋아했잖아! ”
“ 여기 기자양반들이 사온것중에 제일 맛있게 생긴거로 가져왔어!”
“ 참! 자네 배도 좋아했는데 내가 돈이 없어 못사왔네 그래!”
“ 할망구야! 미안혀! 그래도 아들놈보단 낫잖여!”
“ 그 죽일놈이 자네 죽었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이더라고!”
“ 두 분이 어떻게 해서 친해지신거예요?”
“ 올라오다가 ‘우리집’ 식당 간판 봤지?”
“ 거기가 원래 유명한 식당이었어!”
“ 아까도 얘기했지만, 동네에서 거기 모르면 간첩이었거든!”
“ 나랑 저 할망구는 음식솜씨가 좋아서 사장이 꼼짝을 못했지!”
“ 우리 둘이 만든 음식 먹으려고 주말이면 줄을 섰어!”
“ 나보다 저 할망구가 더 솜씨가 좋아서 대학생들이나 회사 다니는 젊은 애들이
이모라고 부르면서 잘 따랐었지!“
“ 돈도 제법 벌었었는데 그러면 뭘해?”
“ 남편이란건 풍 맞아서 누워만 있고 아들놈은 지가 미리 월급 받아가서 노름하는걸!”
“ 참 불쌍한 노인네야! ”
“생전 옷 하나 제대로 못 사 입고 고생만 하다 갔으니 말이야!”
“ 죽어서도 편하게 눕지 못하는 팔자니 자네도 참 불쌍한 팔자야!”
마지막 술잔을 손에 든채 한참동안 신노인과의 마지막 추억속에 젖어든다.
가져갈 것 없는 어두침침한 방에 붉은 차압딱지와 부서진 유리창 파편들만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 잘 가시게! ”
“ 두고두고 오래 배부르게 먹으라고 두고 가네!”
‘ 이제 그만 억울한거 푸시고 편히 가시게나!“
아들아!
애미가 못나서 미안하다!
남들은 너를 못난 아들이라고 욕하지만 애미한테는 희망이었단다
네가 그렇게 방황하는것도 다 애미탓이라고 생각해
애미가 죽었다고 해서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 다!
절대로 너 때문에 선택한 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구나
네가 남들처럼 돈 많고 훌륭한 부모밑에서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살지는 않았겠지
다 이 애미가 못난 탓이니 미안하구나!
어려서부터 너에게 못보일 걸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 항상 죄스러웠어
하지만, 아들아!
네 아버지를 너무 원망만 하지는 말아라!
그래도 널 태어나게 해 준 사람이잖니?
항상 그랬었지
아버지도 아버지 나름이라고 말이야
네 아버지도 어려서부터 사랑을 못받고 자라서 그래!
매일 할아버지한테 두들겨 맞고 자라서 눈칫밥만 늘었다고 하더라
네 아버지도 원래는 착한 사람이야
사람 하나 잘못 사귀어서 그렇게 망가진 것 뿐이야
젊었을때부터 노름 좋아하고 여자 좋아한거
그거 다 애미가 못나서 그렇게 된거야
그러니까 너무 아버지탓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너한테는 가난같은거 물려주고 싶지 않았었는데 미안하다!
하지만, 애미도 사는게 너무 힘들었어
네가 조금만이라도 날 이해해 주었으면 싶구나
네가 진 빚을 다 갚아 주고 가야 하는데 능력이 안되서 미안하다!
네가 오죽했으면 그렇게 빚을 지면서까지 돈을 구했겠니?
애미는 평생을 가난과 함께 살아 왔지만
자식인 너에게만은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는데
애미가 죄를 짓는 것 같아 정말 미안하구나!
네가 그렇게 노름에 미치고 빚을 지는것도
돈에 대한 원한이 사무쳐서이겠지
그런 널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아들아! 인생을 너무 낭비하면서 살지는 말아라!
정신차리고 살아야지!
머리는 똑똑한 아들이 마음 잡지 못하고 사는걸 볼때마다
애미의 가슴은 무너진다!
학교 다닐 때 집은 가난했어도 공부는 네가 제일 잘 했었잖니?
선생님도 넌 꼭 서울대에 갈거라고 집까지 찾아 오셨었는데 말이야.
친구대신 감옥까지 간 너를 면회갔을 때 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 물었었단다
다시는 그 어둡고 침침한 감옥에 잡혀가는 일은 없겠지 하면서 나왔는데
제집 드나들 듯이 잡혁가는 너를 보니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돈보다도 정이 부족해서 그렇게 방황만 한게 아닌가 싶다!
아들아!
너에게 애미의 제사를 모시라는 무거운 짐을 지게하고 싶지 않단다
아들아!
애미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너 때문에 애미가 세상을 포기하는건 아니란다.
능력없고 힘없는 늙은이가 너무 오래 사는것도 죄가 되기 때문이란다
아들아!
부디 가난을 원망만 하지 말고 살았으면 좋겠구나
가난은 죄가 아니란다
가난은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 있다는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부디 포기하지 말고 굳세게 살아라!
사랑한다! 아들아!
살아서 해주지 못한 말을 죽어가는 순간에야 실컷 털어놓아서 미안하구나!
아들아!
애미가 진심으로 사랑한다!
마지막 절을 하고 나서는 길,
등뒤로 매서운 칼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끝없이 펼쳐진 비탈길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 않다.
어제 내린 눈 때문에 질퍽해진 흙바닥길이 내내 신경쓰인다.
저기 멀리 신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분주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영상처럼 스쳐간다.
아무리 목놓아 불러봐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채 그저 앞으로만 씩씩하게 걸어갈뿐이다.
신주단지 모시듯 끌고 가던 낡은 손수레는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술주정뱅이 남편이 던진 소주병에 다친 다리르 절지 않은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니는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 이 노인네야! 뭐 그리 바쁜 일이 있다고 그렇게 서둘러?’
‘ 자네가 그렇게 신나서 걸어가는거 생전 터음 보는구만 그래!’
‘ 오지도 않을 아들내미 뭐 그리 먹이고 싶다고 곰탕을 냉장고에 꼭꼭 숨겨뒀어?’
‘자네도 곰탕 참 좋아했잖아! 그거 자네나 먹지 그랬어?’
‘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찬물에 밥 말아서 대충 먹고 한숨만 쉬다 갔구만!’
‘ 우리집에서 자네가 끓여준 곰탕이 최고였는데 말이야!’
‘ 주머니에 돈 없고 가난한 우리같은 가난뱅이들한텐 그 곰탕 한그릇이 최고였지!’
‘ 고기 한점이라도 더 들어 있을까 싶어 숟가락으로 휘휘 젓던 녀석들 다 뭐 하고 사나 몰라!’
‘ 이제 그 식당도 우리가 살던 동네도 다 사라질거라네!’
‘자네 아들한테 곰탕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
‘지 엄마가 죽었는데도 코빼기도 안보여!’
생전 처음 입어 보는 빛깔 고운 한복에 신이 나 걸어가는 신노인의 뒷모습에
마지막 눈물의 작별인사를 나눈다.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신노인의 얼굴에 평온함이 묻어난다.
‘ 그래! 잘 가시게!’
‘ 손주녀석 대학 가면 나도 따라갈테니 자리 하나 비워놔!’
‘ 금방 따라갈거니까 너무 외로워 하지말고!’
질퍽한 골목길에 슬픈 발걸음을 옮기는 마음이 분주하다.
아침에 손주녀석이 학교는 무사히 잘 갔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어제 오토바이를 타다가 미끄러져 발목을 다쳤다고 하면서도
절뚝거리며 일하러 가는 모습이 안스러워 펑펑 울었다.
오늘 처음 월급을 타는 날이라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이 미안해 가슴이 아린다.
내려가도
내려가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산비탈길처럼
가난의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는다.
나날이 늘어가는건 잔인하게 이자가 붙은 더 무거운 가난일뿐이다.
아침에 나오기 전 파스를 새로 붙였는데도 영 신통치가 않다.
한 번 시작된 관절염의 고통은 가난의 아픔만큼이나 징그럽게 붙어 다닌다.
끝이 없는 이 길의 지루함만큼 끊임없이 이어지는 영세민의 서러움은 오늘도 게속된다.
새벽부터 시작된 단속반의 철거단속이 주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겉으로는 보다 나은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빈곤의 무게위에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을 하나 더 얹어 주는 일에 불과할뿐이다.
학생들이 곱게 그려 꾸며진 벽화길의 화사함이 무색하게 산산이 부서져 내리는 삶의 터전에는
그 어디에도 아름답고 따뜻한 분위기를 찾을 수 없다.
구석진 골목 어귀 마련된 농성장 텐트에는 철거로 집을 잃은 주민들이 모여
다음 투쟁을 준비하고 있다. 어제 철거 이주민 대표 한 명이 경찰서에 불려가 소식이 없다.
주민들의 생활안전 보장하라!
가난하면 입도 없냐
우리에게도 권리를 주장할 자유가 있다
부자들을 위한 재개발을 반대한다
강압적인 철거를 반대한다
보금자리 빼앗겨 버린 난민들의 인권을 책임져라
심한 몸싸움으로 벌써 여러명 병원에 실려간 탓에 텅 빈 자리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헐벗고 굶주린 이들에게는 늙음의 자유도 없이 가난과 치열하게 싸워야만 하는 세상이다.
가난도 죄라고 탓하며 쉴새 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는 농성장의 우울한 분위기에
오랫동안 침묵만 감돌 뿐이다.
마땅한 안주도 마련할 힘이 없어 며칠째 깡소주를 들이켠다.
이들의 얼굴에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자책감에 희망을 상실한 좌절감이 가득하다.
눈발이 휘날리는 산비탈길 위에 행복이 사라진지 이미 오래전이다.
“ 며칠째 농성중이세요?”
“ 저는 일주일째 단식투쟁중입니다!”
“ 없이 사는것도 서러운데 겨우 하나 있는 집 한칸도 자기들 마음대로 부숴버립니까?”
“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은 없어요!”
“ 생각해 보세요! 누가 가난하게 살고 싶겠어요!”
“ 여기 사는 저 사람들 다 사연이 있어요!”
“ 우리 옆집 사는 김씨 아저씨도 잘 나가던 사업가였어요!”
“ 옛날에 티비에도 나왔던 사람이라고요!”
“ 사람 잘못 만나 사기 당하고 보증 잘못 서서 하루 아참에 망한거죠!”
“ 한 번 물어보세요!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하게 사는지 한 번 물어보시라고요!”
“ 가난은 선택이 아니라구요!”
“ 기자님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 가난하게 살고 싶은지, 부자로 살고 싶은지!”
“ 다 부자로 살고 싶다고 하죠!”
“ 저 사람들의 공장에서 손가락 짤리고 발가락 다치고 이상한 병 걸리고
위대한 희생을 했기 때문에 나라가 발전할 수 있었던걸 왜 그렇게들 몰라주는겁니까?“
“ 왜 저들의 노고를 그렇게 처참하게 짓밟고 무시하고 몰라주는겁니까?”
“ 아무 통보도 없이 하루 아침에 부셔 버린다고 협박하면 얼마나 무섭겠습니까?”
“ 우리도 가난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 합당한 절차를 밟고 주민들의 생활을 보장하는 협상을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빈 술잔에 채워진 소주를 단숨에 들이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뿐이다.
천막 한구석에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리며 누워 있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경찰과의 치열한 몸싸움으로 찢어진 피켓들을 새로 만드는 이들의
눈빛에는 살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세겨져 있다.
사정없이 부서지고 너덜너덜해진 포장마차를 바라보며 술잔울 단숨에 비우고
힘들게 입을 열었다.
“ 기자양반들 눈에는 그저 천조가리 대충 걸쳐 놓은 포장마차로 보이겠지!”
“ 우리 세 식구한테는 생명줄같은 거였어!”
“ 그것도 빚내서 간신히 차린건데 저렇게 되어버렸으니...!”
“ 이젠 삶의 희망도 없고 살아야 할 이유도 없어졌어!”
“ 제기랄! 여기 때려 부수고 지랄같은 아파트 지으면 우리한테 뭐가 남냐고?”
“ 쥐꼬리만한 보조금으로 어디 가서 뭘 하고 사냐고?”
“ 차라리 그렇게 때려 부수고 싶으면 우리한테도 살 수 있게 해주던가!”
“ 임대아파튼가 뭔가 그런거 지어서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한테 주면 안돼?”
“ 아직 갈 곳은 못정하신거예요?”
“ 다음달부터 철거에 들어간다고 뉴스에 나오던데요!”
“ 갈데가 있으면 왜 추운데 이러고들 있겠어?”
“ 우리같은 사람들이 어디 그렇게 금방 갈데를 구하기가 쉬운가?”
설움에 북받쳐 털썩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매서운 칼바람에 섞여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이 천지붕에 쌓여 털썩 내려앉고 말았다.
“ 기자양반도 우리집에 와서 호떡 자주 사가지 않았나?”
“ 맛있다고 신문에 기사도 내주고 그랬던거 같은데 이렇게 허무하게 없어지네!”
월급조차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가난한 신문사 수습기자 시절,
든든하진 않지만, 따뜻하게 배를 채울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호떡이었다.
지친 몸으로 골목 어귀에 들어설때면 호떡을 굽는 달콤한 냄새가 제일 먼저 반긴다.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키고 설킨 골목길을 헤매다가도 저 멀리서부터
코끝을 맴도는 달콤한 향기에 금세 길을 찾는다.
가로등에게조차 외면당한 채 고립된 곳에서 살아왔던 시간의 설움을 달래줄 수
있었던 유일한 안식처가 자본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하루 아침에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추억도 함께 사라져 버렸다.
피곤에 지쳐 잠시 앉아 푸념을 늘어놓아도 호떡은 변함없이 제 빛깔을 유지하며
맛있게 익어갔다.
그 소중한 기억들을 보상받지 못한채 허무하게 사라져 갔다.
“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사람 먹는거 가지고 장난치면 못써!”
“ 돈에 눈이 뒤집혀도 그렇지 어떻게 개만도 못한걸 사람 먹으라고 팔아?”
“ 그러고도 돈벌어 부자 되고 싶을까 싶어! ”
“ 난 아무리 없이 장사해도 절대로 속이면서까지 장사 안해!”
갓난아기를 다루듯 호떡반죽을 소중하게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을 글썽인다.
“ 하나를 만들어도 양심껏 맛있게 만들어야 밤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어!”
“ 이 천원짜리 호떡 하나 사먹으려고 하루 종일 폐지를 얼마나 주우러 다녔겠어?”
“ 자기 입 하나 건사하기도 힘든 노인양반들이 주머니에서....”
“ 간신히 꼬깃해진 천원짜리 한 장 꺼내서는 ....‘
“ 하나 달라고 하더니 벌벌 떨면서 다 먹지도 못하고 가위로 잘라서 맛만 보고 싸달라더라!”
“ 손주 줘야 한다고....말이야!”
“ 구부정한 허리 펴지 못하고 웬종일 일해도 호떡 하나 못사먹어!”
“ 제발 할머니도 드시면서 손주 챙기시라고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어!”
“ 식으면 맛없다고 가슴에 품고 불편한 다리로 뒤뚱거리고 가시는 모습 보면 가슴이 짠해!”
“ 하루 종일 폐지 주워봐야 만원도 못벌고 약값만 잔뜩 드는 불쌍한 양반들이야!”
“ 그렇게 고생한다고 자식들이랑 손주들이 알아나 주나?”
“ 죽일놈들이 은혜도 모르고 두들겨 패고 죽이고 개판이야!”
“ 이 동네도 맞고 사는 노인네들 많아!”
그렇게 정이 많고 정직하게 살아오던 그들에게 내려진 선물은 ‘철거’라는 핵폭탄이었다.
잔이 넘치도록 소주를 채워 한 잔을 내미는 그의 화상 입은 손을 보기가 부끄럽다.
전쟁보다 더 치열하고 죽을 힘을 다해 살아온 그에게 남겨진 잔인한 훈장이다.
단숨에 술잔을 기울이고 아픈 가슴을 쏟아낸다.
“ 처음부터 가난하게 사는 사람은 없어!”
“ 여기 있는 사람들 하나하나 인터뷰해 보면 알겠지만, 눈물하고 술 없이 듣기 힘들어!”
단식투쟁 불사한다!
대책없는 철거에 절대반대한다!
생존권 보장없는 깡패권력에 끝까지 투쟁을 결의한다!
우리에게도 살아야 할 권리가 있다!
“ 이 술잔이 마지막이야! ”
“포크레인으로 밀어버리면 그냥 같이 묻혀 버리려고!”
“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생존하기 위해 투쟁하는 우리들을...”
“ 병든 아들 병든, 남편, 아내 손 잡고 성당으로 교회로 오백원 얻으러 다니는
저 불쌍한 영혼들을 구할 수 있게 기자양반이 힘좀 써줘요!“
“ 저 불쌍한 노인네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 길거리에 버려지는 종이들, 대신 치워주고 입에 풀칠좀 하겠다는데...
그게 무슨 잘못이야?“
“ 노인네들 박스 주우러 다니는게 그렇게 꼴보기 싫은가?”
“ 잘 사는것들이 더 무섭고 못됐어!”
“ 더불어 잘 사는 세상도 모르나벼!”
소주병 밑바닥에 남은 소주 몇방울을 탈탈 털어 넣으며 긴 한숨을 채워 넣는다.
아랫골목 어귀에서 성당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분주하다.
어물쩡 하는 사이에 못받을까 두려운 마음에 발걸음이 더 빨라진다.
송노인은 아픈 다리를 부여잡으면서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는 모습이 위태위태하다.
총총걸음으로 수레를 끌고 가는 김노인과 마주쳤다.
“ 어디를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
“ 말시키지 마! 빨리 가야돼!”
“ 바쁘신가봐요! 잠깐 인터뷰 부탁드려도 될까요?”
“ 아 바쁘다니까 왜 귀찮게 난리야?”
“ 늦게 가면 돈 못받는단 말이야!”
“ 다음 스케줄에도 차질이 생긴다고!”
중요한 무언가를 가득 적은 듯 새까만 종이뭉치를 손에 꼭 쥔채 바쁜 발걸음을 옮긴다.
“ 성당에서 오늘 오백원씩 나눠 주거든!”
“ 그거 받으러 빨리 가야돼!”
“ 매일 받으러 가세요?”
“ 일주일에 한 번씩 나눠 줘!”
“ 교회하고 성당마다 나눠주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
“ 여기 자세하게 적혀 있어! 지금은 저 아래 성당에서 나눠 주고
그 다음에는 그 옆동네 교회에 받으러 가야돼!“
소중한 보물지도를 들여다 보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열변을 토하는 눈빛이 생기가 돈다.
“ 하루에 몇 군데 정도 다니세요?”
“ 한 네다섯군데 되지 아마?”
“ 어디 한 번 세볼까?”
손가락으로 꼼꼼하게 세어보는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하다.
“ 오늘은 무료급식에 간식까지 주는 날이네!”
“ 동사무소에서 천원도 나눠 주고 받을게 많은 날이야!”
“ 어떻게 그렇게 잘 아시는 거예요?”
“ 정보를 공유하시는 건가요?”
“ 오래 다니다 보면 다 알게 돼!”
“ 내가 제일 빠른 정보통이야!”
“ 그렇게 돈 받으러 다니는거 창피하지 않으세요?”
“ 뭐가 창피해?”
“ 하나도 창피하지 않아!”
“ 나이 먹어서 일할데도 없지!”
“ 약값도 한두푼이 아니야!‘
“ 젊었을 때 공장에서 일하다가 폐병까지 걸려서 폐도 망가지고
무거운거 들다가 다리까지 다쳐서 뼈가 부서졌어!“
“ 늙으니까 관절염까지 와서 병원비도 많이 들어!”
“ 그러니 이렇게라도 얻으러 다녀야지 어쩌겠어?”
“ 폐지도 주우러 다녔었는데 요즘은 아침부터 부지런히 주우러 다녀도 만원도 벌기 힘들어!”
“ 종이값이 아주 곤두박질을 쳐버렸어!”
“ 길거리에 널브러진 지저분한 종이도 치워주고..”
“ 우리같은 서민들 돈도 벌게 해주고 얼마나 좋은 일이야?”
“ 그깟 종이 힘들게 주워서 돈도 안되긴 하지만, 그거라도 벌게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 안그래요? 기자양반?”
“ 돈 없는 불쌍한 서민들이 무슨 죄냐고?”
“ 세상이 부자들 눈에만 좋게 보이라고 있는게 아니잖아!”
“ 왜 있는 사람들이 더 이기적이고 욕심이 늘어가나 몰라!”
“ 자식들은 없으세요?”
“ 요즘 누가 자식 덕 보고 살아? 돈 안달라고 하면 다행이지!”
“ 나랑 같이 다니는 노인네는 자식한테 돈 다 뺏기고
자식 보증까지 서서 퇴직금까지 탈탈 털렸어!“
“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거 어디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몰라!“
“ 어제 우리 옆집 할머니가 아들빚 갚아주다가 포기하고 자살했어!”
“ 동네에서 나이팅게일로 불리던 착한 할머니였는데 너무 안타까워!”
“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라고 신주단지 모시듯 애지중지했는데 그렇게 되었지 뭐야?”
“ 젊었을 때 간호사도 하고 잘 나가던 사람이 술주정뱅이 남편 만나서 고생하더니
아들까지 커가면서 지 애비랑 똑같이 닮아가지 뭐야?“
“ 그 아들이 어렸을때는 공부도 잘 하고 똑똑해서 서울대도 일등으로 들어갔어!”
“ 그러면 뭐 해? ”
“ 취직을 못해서 매일 술만 먹다가 빚까지 지고 집을 나가 버렸어!”
“ 아들이 집 나가서 소식도 없는데 살아 있다고 연금도 못받아!”
“ 볼때마다 안쓰러웠는데 그렇게 가버렸어!”
“ 날도 추운데 차가운 바닥에서 편히 누워 있으려나 몰라!”
송노인은 걸음을 옮길때마다 비명을 지르고 싶을만큼 무릎의 통증이 살인적이어도
무조건 걸어야 한다.
주머니에 쑤셔 넣어 둔 진통제를 물도 없이 침을 입안 가득 모아 간신히 삼키고
고통과 사투를 벌인다.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은 탓에 내성이 생겨 웬만한 통증은 영 효과를 보지 못한다.
먼지만 가득한 주머니에 남은 진통제를 다시 쑤셔 넣는다.
저승길이 코앞인 나이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머니 가득 풍요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
가난은 그리 쉽게 이별을 통보하지 않는다.
아무리 먼저 이별하려 해도 절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없다.
꿈에서라도 즐기고 싶은 가난에서의 해방감은 그저 꿈에 불과할뿐이다.
새벽부터 서둘러 나와 줄을 서서 기다려도 벌써 한 정거장은 길게 늘어서 있다.
송노인은 손주 녀석이 알면 난리를 칠까봐 학교에 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간신히 찾아 온 발걸음이 헛수고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앞선다.
벌써 한 바퀴를 돌아 온 듯 불룩해진 주머니를 자랑이라도 하듯 일부러 흔들고 다니는 모습을
그저 부러운 눈으로 멍하니 쳐다볼 뿐이다.
옷을 한 번 펄럭거릴때마다 코를 찌르는 악취에 구토가 나올 것 같아 억지로 숨을 참으면서도
부러운 시선으로 쳐다본다. 천금을 얻은 듯 의기양양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한쪽 주머니를 더 채우기 위해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떳떳하게 줄을 선다.
우두둑!
주머니 실밥 터지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기양양하게 오백원을 향해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긴다. 여전히 배고픈 표정이다.
우두둑!
아까보다 더 많이 찢어진 주머니를 부여잡으면서도 시선은 긴 줄에 고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