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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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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낙엽지는 겨울 오후 2


BY 러브레터 2017-09-11

요즘 하루 식사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매일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이 맛있는 도시락을 배달해 주시는 덕에 간신히 풀칠은 하지!”

! 그래도 한창 먹성이 좋을 나이에 그깟 도시락 하나로 배가 차나?“

녀석이 나이만 어리지 속은 애늙은이라 뭐 먹고 싶다는 말을 절대 안해!”

어쩌다가 누가 과일이라도 가져다 주면 할머니 다 드시라고 자기는 입에도 안대!”

공부만 해도 힘든데 돈 번다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 뭐야?”

언제 오토바이를 배웠는지 배달일을 시작했더라고! ”

그래도 공부는 일등이야!”

남들처럼 비싼 학원에도 못보내고 문제집도 죄다 야학에서 헌책 주는거 얻어다가 쓰는데도

오히려 부잣집 애들 가르치면서 다닌대!“

다른 집처럼 능력 있고 돈 많은 집에서 태어났으면 저렇게 고생도 안하고

지 하고싶은 공부 실컷 하면서 편하게 살았을텐데....“

에구! 불쌍한 녀석!“

망할것들이 죽었으면 죽었다고 사망 통지서라도 보내 오던가 해야 하는데 말이야!”

애 부모란 것들이 낳아 놓기만 하고 빚을 핑계로 뛰쳐 나가 버렸어!”

아들놈이 도박, 여자 , 술에 미친게 꼭 지 애비같았지!”

지 애비도 허구헛날 술 퍼 마시고 노름에 미쳐서 집안살림 거덜내는것도 모자라

기집질에 미쳐서 집 나가더니 길거리에서 노숙하다가 굶어 죽었지 뭐야?“

애비가 그런것만 보고 자라서 그런지 커갈수록 똑같이 따라하더라고!‘

그런 남편 만나 그런 환경에서 애를 키운 내가 죄인이지 뭐야?“

지금 이 꼬라지로 거지같이 사는것도 다 내가 남편 잘못 만나 그런거지 뭐!”

난 손주한테 지은 죄가 많아! ”

그 죄값 죽기전에 다 치를 수 있으려나 몰라!”

폐지 주우러 다니는것도 창피하고 힘드니까 하지 말라고 그러는데

한 푼이라도 벌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해야지 어쩌겠어?”

비 오고 눈 오는 날이 제일 무서워! ‘

무릎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거든!”

관절염약값도 무시를 못해!”

병원비, 약값이 비싸니 우리같은 늙은이들한테는 참는게 약일때도 있어!”

늙으면 그냥 빨리 죽는게 편한건지도 몰라!”

 

손가락 사이에 타 들어가는 담뱃재를 망각한 채 한참동안 창밖만 바라보며 한숨짓는다.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이 까맣게 그을려진 방바닥 위에 뚝 떨어진다.

 

어찌 보면 병들고 능력없는 늙은이가 너무 오래 사는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야!”

손주녀석한테 내가 짐만 되는게 아닌가 몰라!”

아무리 잘 해준다고 해도 다른 애들 엄마나 아빠만 하겠어?”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손주한테 부끄러운 일일지도 모르지!”

페지 줍는거 창피하다고 친구들 볼까봐 도망다니는 녀석을 원망 할 수는 없지!”

비싼 차 타고 다니면서 맛있는거 사 먹고 좋은 학원 다니면서 편하게 공부하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럽겠어?“

서랍마다 먹을건 없고 약봉지들만 차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지!”

 

서랍 한가득 빼곡이 들어찬 약봉지들 위로 근심이 가득 묻어난다.

송노인은 굽어진 다리를 펴지 못해 나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여전히 손주에게

미안한 마음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폐지 주우러 언제 나가시는데요?”

다리도 불편하신데 괜찮으세요?”

 

요즘은 줍는 사람이 많아서 늦게 나가면 없어!”

눈 뜨자마자 나가야지 안그러면 돈 벌기 힘들어!”

오늘 김씨네 가게에서 박스 모은거 주기로 했는데 가봐야돼!”

 

주름 가득한 손으로 간신히 벽을 붙잡고 일어서는 순간이 고통의 연속이다.

연거푸 신음소리를 내면서도 돈을 벌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일어서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직도 물어볼게 남았어?”

손주 오기전에 빨리 가서 받아다가 팔아서 한푼이라도 벌어야지!”

 

하루에 얼마 정도 버시는데요?”

 

만원도 못벌어! ”

많이 벌어야 9천원이나 될라나?”

그나마 저 유모차가 있으니 그 정도 싣고 다니지 안그러면 라면값도 못벌어!”

요즘은 라면값도 비싸서 네 개값도 못벌때가 많아!”

옛날에는 라면이라도 쌌지만, 요즘은 어디 그런가?”

싼게 있어야 말이지! ”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 돈 없어 굶어 죽는거 아냐?”

 

신발장 한켠에 자리잡고 서 있는 낡은 유모차가 유일한 밥줄이기에 보물처럼 모시고 산다.

무거운 파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점점 밑으로 기울어져 가는 등받이가

 고달픈 삶의 무게만큼이나 힘겹게 느껴진다.

 

식사는 하셨어요?”

무거운 수레 끌고 다니시려면 많이 드셔야죠!

 

 

텅 빈 냉장고속

허기를 면할 그 어떤것도 보이지 않는다.

다녀간지 오래 된듯한 빈 도시락통에 담긴 말라붙은 김치조각이 전부다.

 

아무것도 안드시고 힘들지 않으세요?”

냉장고에 먹을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눈두덩이를 때에 절은 바짓자락으로 훔쳐 내리며 긴 한숨을 토해낸다.

 

그냥 찬물에다가 밥 말아서 먹고 말아!”

돈 못버는 늙은이가 아무거나 먹고 배 부르면 되는거지 뭐!”

손주가 배 부르게 먹지 못하니 그게 마음 아픈거지!”

나 죽으면 모른척 할까봐 손주한테 잘 해줘야돼!”

요즘 애들이 누가 구멍난 운동화를 신고 다녀? ”

손주녀석 운동화 하나 사주려면 벌어야지!”

요즘 애들 운동화가 왜 그렇게 비싼지 몰라!”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운동화는커녕 밥값도 못버니 큰일이야!”

늙은 할미가 운동화 사줄 능력도 안되니까 ..”

공부만 해도 힘들 나이에 아르바이트까지 하잖아!”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짓눈개비로 바뀌어 어두운 아침골목을 적셔온다.

더 이상 헤질 곳조차 없이 낡아버린 소매자락으로 연신 눈물을 훔치며

긴 한숨을 토해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부끄러워 한참동안 정지화면처럼 멈춰 서 있다.

노인들의 가난을 팔아 돈을 벌려는 잔인한 행동이 죄스러워 고개는 점점 아래로만 향한다.

 

꼬르륵!

 

정적을 깨는 공허한 울림에 자꾸만 눈물이 흘러 내린다.

돌림노래처럼 흘러 나오는 배꼽시계 소리를 내지 않으려 손으로 뱃살을 꼬집어 보아도

눈치 없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늙으니까 주책이지! ”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먹어서 기운이 없어!”

손주 녀석이 요즘 먹성이 좋아서 많이 먹거든!”

에휴! 한찬 클 나이에 배 부르게 못먹이니 능력없는 늙은이가 죽어야지!”

설탕물 잔뜩 타서 먹었는데도 왜 이렇게 배가 고픈가 몰라!”

그나마 설탕값도 비싸니까 이젠 사먹지도 못해!”

손주앞에서는 배가 고파도 일부러 배부른척 해!”

안그러면 착한 녀석이 자기 밥 먹었다고 거짓말하거든!”

능력없는 할미 때문에 밤새 힘들게 일하고도 밥 한끼 제대로 못먹으면 쓰나?”

종이값이 점점 떨어지고 있으니 힘만 들어서 큰일이야!”

기자양반들! 뭐 먹을거 없어?”

배가 고파서 말할 기운도 없어!”

 

이피디가 비상식량 보따리를 풀어 냄비에 물을 붓고 김치찌개를 끓인다.

눈물이 뚝뚝 떨어져 김치찌개 위에 조미료처럼 흩뿌려진다.

자취방 하루 식량을 기꺼이 양보해도 부끄러운 지금의 행동을 사죄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양이다.

신작가가 취재를 오기 전 미리 사둔 햄과 즉석밥을 기꺼이 내놓았다.

도미노 현상처럼 하나씩 각자의 가방에서 하루의 식량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전자렌지가 없어 물을 끓이고 즉석밥을 데워 공기에 담았다.

어느새 한상 가득 차려진 밥상을 바라보는 송노인의 눈가 가득 눈물이 맺힌다.

 

아침에 손주가 밥도 제대로 못먹고 학교 갔는데 혼자 먹기 미안하네!”

제대로 된 밥상 받아 보는것도 얼마만인지......”

남들 다 먹는 밥 세끼도 제대로 모고 사니 사는게 사는게 아니야!”

손주가 배고플텐데 학교에서 공부는 잘 하고 있는지 몰러!”

 

몇 수저를 뜨지 못하고 금방 내려놓는 송노인의 주름진 손에 숟가락을 꼭 쥐어 주어도

눈물을 훔쳐내며 다시 상위에 내려놓는다.

 

죽어도 시원찮은 늙은이 혼자서 밥만 축내는것도 못쓰는거야!”

아까 설탕물 많이 먹어서 배불러!”

이 소세지 반찬 손주녀석이 제일 좋아하는 반찬인데 나 혼자 먹으면 쓰나?

 

 

즉석밥 씽크대 위에 놓고 갈게요, 데워서 드세요!”

반찬 몇가지 냉장고에 넣어 놓고 갈게요!”

손주 오면 장조림 해서 맛있게 드세요!”

 

소세지 묶음들을 들어 올리며 송노인을 안심시키려 애를 써 보지만 여전히 숟가락을

놓은채 고개를 가로젓는다.

 

소세지 많이 사 왔으니까 걱정 마시고 많이 드세요!”

할머니도 많이 드시고 건강하셔야죠!”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단칸방 낡은 보일러는 한 번도 온기를 전해주지 않는다.

재활용품 사이에서 골라 온 낡은 책상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책들이 형광등을 대신하듯

반짝거리며 윤이 난다.

 

 

할머니는 오늘도 보물처럼 끔찍하게 아끼는 낡은 유모차를 끌고 페지를 주우러 나가신다.

길건너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보물을 건졌다며 신나하시던 그 창피한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뭐가 그렇게도 좋으신 걸까?

이 책상도 길 건너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폐지를 주우러 가셨다가 주워 오신거다.

하필이면 우리반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녀석의 집에서 버린 책상이다.

월척을 낚은 듯이 신이 나서 얼굴 가득 환하게 웃으시는 할머니 앞에서

대놓고 싫은척을 할 수가 없어 너무 괴로웠다.

혹시라도 우리반 다른 녀석들한테 소문이 날까 두려워 절대로 집에 데려오지 않는다.

제발 쓰레기좀 그만 주워 오시라고 사정을 해도 소용이 없다.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 팔아봐야 힘만 들고 돈도 안되는 일을

할머니는 여전히 고집을 부리시며 낡은 저 유모차를 끌고 다니신다.

친구랑 시작한 아르바이트만 잘 해도 할머니가 그렇게 고생을 안하셔도 된다.

할머니보다 내가 훨씬 더 돈을 많이 번다.

하루에 만원도 안되는 돈을 벌기 위해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폐지를 줍는 할머니가 싫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더 아프기전에 한 푼이라도 돈을 벌어야 한다고 우기신다.

내가 보기엔 할머니가 저렇게 고집을 부리시며 폐지를 주우러 다니시는게

더 약값만 들게 하는 일이다.

그냥 집에 가만히 쉬시는게 돈을 버는 일이다.

아무리 화를 내고 사정을 해도 할머니는 들으려고 하지 않으신다.

가난은 왜 이렇게 나와 할머니를 사랑하는걸까?

자고 일어나면 더 벗어날 수 없도록 단단하게 묶어 버리는 가난이라는 올가미가 싫다.

서랍마다 꽉 차 있는 약봉지들이 할머니의 고생한 댓가인 것 같다.

주무시다가도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하시는 바람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깬다.

새벽마다 절룩이는 발로 일어나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 주시는 할머니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단 한 번도 나랑 같이 식사를 하신적이 없다.

내 앞에서는 배가 부르다고 거짓말을 하시고는 내가 안보는 사이 먹던 밥 몇숟가락으로

허기를 달래신다. 그래서, 난 일부러 밥을 남긴다.

반그릇씩 나누어 먹자고 아무리 할머니를 설득해도 언제나 배부른척 연극을 하신다.

매일 뉴스에서는 쌀이 팔리지 않아 불 태우고 쏟아 버린다고 나오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배가 고프다.

아무리 배고픔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매일 형들이 죽어가고 누나들이 죽어간다.

오늘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형이 자살을 했다.

그렇게 공부도 잘 하고 능력이 좋은 형이 왜 돈이 없어 빚을 져야 하고

왜 취직이 안되는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형이 불쌍하다.

가끔 형이 사는 자취방에 놀러 가면 제일 먼저 소주병이 한줄로 늘어서 반기곤 했다.

안주를 살 돈도 없어 깡소주만 들이키던 형을 볼때마다 가난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형이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때 며칠동안 엉엉 울었다.

아직도 형이 죽었다는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항상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신다.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에게는 공부하는게 제일 쉬운 일이고

공부하는게 돈 벌기가 제일 쉬운 일이라고 말이다.

저 길 건너 아이들처럼 비싼 돈을 주고 학원에 가지 못해도

악착같이 공부를 해서 서울대에 간 이 동네 형들과 누나들의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랫골목 마을회관에서는 밤마다 야학을 하며 학구열을 불태우고 있다.

공부라는 절박함에 짓눌려 잠을 잊은채 마을회관은 밤새도록 불빛이 꺼지지 않는다.

가난의 설움을 대신할 수 있는게 공부밖에 없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형은 술을 마시면 늘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고 말이다.

형이 보고싶을때마다 보관해둔 문자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형도 할머니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한다.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한테는 궁부하는게 돈 버는거라고 ..

난 그 말이 싫었다.

공부도 돈이 있어야 잘 한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다.

물론 가난한 우리 동네에서도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에 간 형과 누나들이 많다.

그 형들과 누나들은 정말 특별한 사람들이다.

그런 형들과 누나들은 가난한 달동네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정말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고 잘 될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정말 냉정했다.

낡은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편의점에서 이력서 뭉치들을 사들고 나오는 뒷모습을 볼때면

가슴이 아프다. 미래의 내 모습을 보는것만 같아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눈물이 났다.

누구보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던 사람들이었다.

어른들이 늘 말씀하시던것처럼 부모를 잘못 만나 고생한 죄밖에 없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났다면 고생하지 않고 살았을 거라고 울먹이면서 말씀하신다.

동네 수재로 소문난 형신이 형은 매일 아버지의 폭력과 술주정에 시달린다.

공부하고 있는 형의 뒤통수에 소주병을 집어 던져 하마터면 죽을뻔한 적도 있다.

형신이 형 엄마는 그런 아저씨의 폭력을 이기지 못해 형을 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형의 친엄마도 아니었다고 한다.

아저씨가 술집에서 사고치고 낳은 자식이라는 소문도 있다.

그런데도 형은 누구보다 착하고 똑똑해서 어른들의 칭찬이 대단했다.

할머니도 나보다 형신이 형을 더 칭찬하고 좋아해서 질투가 난적도 있다.

그렇게 좋은 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 버렸다.

형이 자살한게 아니라 아저씨가 술 먹고 홧김에 죽인거란 소문도 있다.

형이 그렇게 죽은 후 다시는 동네에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도 힘이 들때마다 형신이 형이 그리워진다.

과연 나를 낳아 놓고 버린 부모는 어떻게 생긴 인물들일까?

단 한 번도 얼굴을 본적이 없는 부모라는 이름의 그들이 원망스럽다.

하지만, 부모와 내 인연이 거기까지라면

더 이상 원망할 가치조차 없는것 같다.

술주정뱅이 아버지라면

툭 하면 두들겨 패는 아버지라면

자식을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않는 엄마라면

차라리 없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말씀대로라면 도대체 빚을 얼마나 지고 도망간걸까?

얼마전에는 아르바이트하는 가게에까지 깡패들이 찾아와 난리를 치고 간적이 있다.

작달막한 할머니의 키보다 더 높은 폐지들을 팔아도 하루에 만원도 벌지 못한다.

그 거지같은 일을 제발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길래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것일까?

할머니는 툭 하면 다 할머니 잘못이라고 가슴을 치시며 흐느끼신다.

그리고, 못난 부모밑에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씀하신다.

난 그런 할머니를 이해할 수 없다.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부모는 나를 버렸어도 할머니는 날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를 무조건 미워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난과 싸워야 한다는게 원망스러울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더 벗어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가난이라는 올가미가 싫다.

서랍마다 꽉 차 있는 약봉지들을 볼때마다 눈시울을 붉힌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열심히 일한만큼 돈을 많이 벌고 부자가 되는게 아니다.

그런 슬픈 사실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주무시다가도 끙끙대며 앓는 소리를 하시는 바람에 몇 번이고 잠에서 깬다.

할머니 몰래 바지를 걷어 다리를 본 순간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말라 비틀어지고 휘어진 다리로 폐지를 주우러 나가신다.

새벽마다 절룩이는 발로 일어나 나를 위해 아침상을 차려 주시는 할머니를 위해

더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몇 번씩이나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신다.

오늘 아침에도 학교에 가는 내 두 손을 꼭 잡고 말씀하셨다.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공부하는게 돈 버는거라고 말이다.

할머니의 젖은 눈을 바라보기가 죄송스럽다.

매일 나 때문에 우시는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

뉴스에서 자주 나오는 두들겨 패고 밥을 곪기고 죽이는 사람같지 않은 부모보다

조금은 능력없고 나이가 많아도 할머니가 더 좋다.

매일 속 썩이고 사고를 치고 다녀도 때리지 않고 너그럽게 사랑으로 감싸 주시는 할머니께

감사한 마음이 가득하다.

할머니는 절대로 소리를 지르시거나 때리지 않으신다.

장난으로라도 손찌검을 절대 안하신다.

그저 미안하고 능력없어 죄스럽다는 말씀만 반복하신다.

그전에는 세상은 절대 공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투덜댔었다.

그런 내가 요즘은 세상은 공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에게 지독한 가난을 주셨지만, 할머니의 따뜻한 사랑도 함께 주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할머니께서 나한테 너무 미안해 하시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머니 덕분에 이렇게 잘 살고 있다.

친구들 중에.도 자존심이 상해서 말은 안하지만 부모님한테 맞고 사는 애들이 많다.

시험을 못봤다고 온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도록 매를 맞고 학교에 온 친구도 있다.

그런 애들을 볼때면 차라리 부모 없는게 다행이다 싶을때도 있긴 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돈 잘 버는 아버지를 둔 덕에

지갑이 항상 두둑해서 애들한테 먹을걸 잘 사주는 애들을 볼때면 부럽다.

공부는 나보다 못해도 집이 잘 산다는 이유로 선생님한테 더 인정받는걸 볼때면

서러움이 북받쳐 눈물이 난다.

그럴때마다 더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세상은 그래도 공평하다고 주문처럼 중얼거려 본다.

나에겐 세상에서 누구보다 훌륭한 할머니가 계신다.

할머니는 항상 말씀하신다.

우리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한테는 공부하는게 돈버는거라고 말이다.

이 골목 형이나 누나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어 학교에 다닌다.

부잣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 수입이 좋은 형도 있다.

동생들까지 세 명이나 가르치고 있다.

이번에 그 집 큰 딸을 서울대에 보낸 덕에 보너스까지 받았다고 자랑을 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고생만 하던 형에게 공부만이 유일한 살 길이었다.

도박에 미쳐 빚을 잔뜩 진 아버지대신 빚을 갚아야 했던 형에게 가정교사는

절호의 기회였다.

할머니는 그런 형을 대견해 하시면서 나도 닮아 가길 바라신다.

혹시라도 형보다 안좋은 대학에 갈까봐 매일 걱정을 하신다.

오늘도 할머니는 가냘픈 목덜미에 힘을 주어 말씀하신다.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공부가 희망이고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말이다.

그런 할머니의 간절한 바램을 져버릴 수 없어 책을 잠시도 놓을 수가 없다.

오늘 이마의 주름살이 하나 더 늘었다.

작달막한 할머니의 키보다 더 높은 폐지들을 팔아도 하루에 만원도 벌지 못한다.

그 거지같은 일을 그만두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할머니는 오늘도 폐지를 주우러 거리를 헤매신다.

아침마다 꼬깃해진 지폐와 함께 손에 쥐어 주시는 쪽지 한 장에 눈물이 난다.

 

할미가 미안하다!

제대로 된 부모 밑에서 사랑받고 자라야 하는데..

우리 착한 손주한테 지은 죄가 너무 많아!

그 죄를 어떻게 다 갚을꼬?

우리 착한 손주만 생각하면 눈물밖에 안나

없이 살아도 절대로 남들한테 손가락질 당하는 일은 하면 안된다!

사람들은 가난한게 죄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해

가난하고 싶어서 가난한 사람은 없단다

그래도 할미가 옛날에 여대 다녔었어

가난 때문에 졸업을 못했지만 말이야

옛날에는 여자가 공부하는걸 별로 안좋아했어

그래서, 할미 오빠만 대학까지 제대로 보내고 법관까지 되게 했지

그러면 뭐해?

일찍 가버렸는걸

난 우리 손주가 할아버지처럼 법관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 대변해 주는 사람이 되어라!

가난한 사람한테는 공부가 제일 쉬운거야

할미가 못해줘서 정말 미안하다!

 

 

뚝뚝 눈물이 떨어진다.

할머니는 언제나 죄인처럼 사신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버리고 간 얼굴도 모르는 부모가 죄인이다.

할머니는 아무 잘못이 없다.

밤중에 할머니가 주무시는 사이 몰래 낡은 유모차를 버리려다가 들켜 야단을 맞았다.

처음으로 할머니한테 대들었다.

아침에 학교길에 폐지를 줍는 할머니와 마주치면 창피할때도 있다.

특히 돈 많은 부잣집 아들이라고 날 무시하는 녀석과 마주칠 때는 참 난처하다.

요즈음은 근처 교회와 성당에 오백원을 받으러 가신다고 들었다.

그것도 내가 본게 아니라 그 교회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말해 줘서 알게 되었다.

좋아하면서도 차마 고백을 못한 여자아이가 할머니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을 보고 말았다.

세린이

그 여자아이 이름이 세린이다.

세린이는 요즘 애들답지 않게 마음씨가 정말 비단결같이 곱다.

성당에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한다고 들었다.

신부님과 수녀님을 도와 주말마다 근처 노인분들에게 오백원을 나눠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하필이면 세린이가 주는 오백원을 할머니가 받고 만 것이다.

고맙다고 굽신거리면서 두 손으로 받으신다.

그 모습을 상상만 해도 창피하고 가슴이 아프다.

세린이는 성당에 같이 다니자고 이야기하지만, 난 그럴 수가 없다.

할머니와 마주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가 알까봐 몰래 받으러 다니시는 그 성당에서

봉사활동을 할 수가 없다.

가난이 무섭고 두렵다.

그리고, 가난이 죄라는걸 알아야 했다.

그 무서운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녀석을 졸라 오초바이를 배우고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일을 하면서 틈틈이 영어단어를 외우고 인강을 듣는다.

새벽까지 일을 하고 녹초가 되어도 공부방은 한 번도 빠진적이 없다.

다 나처럼 늦게까지 일을 하고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다.

뒤처지기 싫어서 잠을 포기하고 기를 쓰고 공부에 매달린다.

하나 차이로 나를 이기지 못해 못살게 구는 저 언덕위 부잣집 아들녀석이 골치 아프다.

언제나 한 개 차이로 나를 이기지 못한다.

듣기로는 어마어마한 돈을 주고 과외를 한다고 한다.

할머니와 난 기초 수급비로 겨우 20만원을 받고 방세도 제대로 못내고

난방도 하지 못해 고달프게 살고 있다.

20만원이 녀석에게는 한달 껌값도 안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싼것들로 도배를 하고

지갑에는 언제나 신사임당으로 꽉 차 있다.

내 지갑은 언제나 먼지만 가득 차 있다.

악착같이 오토바이를 배워 아르바이트를 시작한것도 녀석의 지갑을 보고

화가 나서인 이유도 있다.

녀석도 세린이를 좋아한다.

매일 비싼 선물로 세린이의 환심을 사려고 한다.

다행히도 세린이는 그런 녀석의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게 할머니 때문이 아닌것도 있다.

나도 세린이한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세린이도 부잣집 딸이다.

성당에서도 제일 헌금을 많이 한다고 들었다.

어쩌면 세린이 엄마가 할머니를 봤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세린이 엄마가 나눠주는 오백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할머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적도 있다.

너무 창피할때가 많았다.

그럴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한다.

난방도 되지 않는 캄캄한 방에 할머니가 안계신 날을 상상해 봤다.

너무 외롭고 무서웠다.

할머니는 가난하면 공부밖에 할게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법관이 돠라고 말씀하신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난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돈 많다고 무시하는 녀석들을 무너뜨리고 싶다.

그래서, 악착같이, 기를 쓰고 공부를 한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넘어져 다친 다리가 욱신거린다.

할머니 걱정하실까봐 차마 말하지 못했다.

내일이 월급날이다.

할머니가 좋아하시는 맛있는 곰탕을 사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