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 만들기
오늘은 큰맘 먹고 두 손을 걷어붙였다. 옷가지를 정리할 참이다. 계절별 옷 정리를 겸해서, 오랫동안 입지 않는 옷을 좀 없애는 작업을 할 참이다. 누군가 그랬다지. ‘두 해 동안 입지 않은 옷은 과감히 버리라’고.
그러나 정작 버려지는 옷은 몇 벌 되지 않는다. 정리를 하고 훑어보니 모두 다시 제자리를 잡고 걸려 있다. 버리자고 걷어놓은 나부랭이는 빛이 바랜 속옷가지와 구멍이 나려고 자리한 양말짝이 고작이다.
이건 얼마 입지 않아서. 저건 고가(高價)에 구입한 것이어서 아깝지 아니한가. 이건 시방 입고 나가도 새 옷 같은데…. 그러고 보니 버리지 않을 이유는 다 있다. 이래서 저래서 버리지 못하는 옷이 태반이다. 옷이 주린 세대가 아니니 누구에게 내려 줄 사람도 없다.
그중에는 바느질을 할 줄 안다는 이유가 옷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요건 여기만 고치면 새 옷이 될 텐데.’, ‘이건 통만 줄이면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이 될 텐데.’ 과감하게 집어던지지 못하는 이유에 내 좋은(?) 기술이 한몫을 한다는 말씀이야.
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는 옷장을 좀 비우세요. 빈 곳이 있어야 새 것으로 채우게 되지요.” 옳거니. 맞는 말이다. 비단 옷 뿐이겠는가. 아무 거라도 ‘빈자리’가 있어야 사다 넣기도 하겠다.
나도 나지만 영감도 잘 버리는 성미가 아니다.
“이젠 잘 입고 나설 일도 없으니, 내 옷은 새로 장만하지 마시게” 영감의 옳은 항변이다.
“있는 옷도 다 입지 못하고 가겠다.”하니 것도 옳은 말이다.
어쩐다? 이왕에 칼을 빼어들었으니 과감하게 잘라? 막내 딸아이가 미국으로 옮기고 나서 그 살림살이가 내 집으로 이동을 했다. 이건 220V라서, 이건 북박이로 이미 있어서, 이건 너무 오래 사용을 해서 신물이 난다고 들어다 놓은 것들이 내 눈엔 멀쩡하니 버릴 수도 없구.
딸의 살림은 남의 것 같아서 내 맘대로 없앨 수도 없다. 겨우 추려놓은 건 오래 된 내 옷 몇 벌 뿐이다. 그러니 방 넷을 써도 두 늙은이 살기에 넓지 않다. 허허. 아무리 둘러보아도 버릴 건 ‘두 늙은이’뿐이네. 케케케.
보림아~!
아직 버려지기는 싫은디... 너무 억울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