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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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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헤라디여~!


BY 만석 2016-09-17

♪♪에헤라 디야~!

 

올해에는 막내 아들이 일본 출장 중이라, 청룡백호의 그림에 큰며느님을 세우고, 잔을 채우고 붓기를 여덟 번. 예전에는 그 숫자대로 상을 갈아 차렸다 하니, 우리의 조상님들은 기운도 좋으셨나 보다. 암튼 큰며느님의 수고로 이 시어미는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며 나물이나 다듬고, 탕거리나 장만하고.

 

이럴 땐 내 시어머님 같으면 주방의 주권을 뺏겼다고 통분을 금치 못하셨겠으나, 이 만석이는 홀가분하기만 하니 조상님들의 괴씸죄에 걸리지는 않았으려나 몰라. 아무튼 큰며느리의 몽땅 수고로 차례를 지내고 서둘러 아들 네 세 식구를 쫒아내는 게 오늘의 내 목표다(?). 있어봤자 그녀의 일거리만 늘 것이니 뻔하니 말이지.

 

이건 고모가 올 테니 한 접씨씩만 남겼다.”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며느님 눈치를 살핀다. 며느님이 챙기는 것보다 손 큰 시어미가 챙기는 게 더 유익해서 인지 며느님은 본채도 않는다. 허긴. 시누이 줄 거리를 아는 척 간섭하는 건 예가 아니지. 나는 명절에 오는 사위에게 선 보일만한 잘 생긴 걸 챙기는 데에 목적이 있다. 식구들끼리 먹는 데에야 아무러면 어떠리.

 

며칠 동안 신경도 쓰고 힘도 들었을 며느님은 서둘러 보내야 한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딸 내외가 들이닥치면 큰며느님이 또 힘이 들게 뻔하지 않은가. 성격상 설거지도 시누이에게 양보하지 않는 그녀의 완벽주의에 나도 매번 아연질색을 하걸랑. 좁은 개수대에 둘이 달라붙어서 설거지를 하지 못한다는 당연한 이유가 있음에도, 그건 큰며느님에게 눈치가 보인다.

 

경상도의 시댁에서 차로는 여덟 시간이라는데, 나는 여지껏 건들거리던 폼(form)을 접고 손이 바빠진다. 딸 내외는 탕국을 좋아하지만 더운 날씨 때문에 수시로 데웠더니, 국물이 걸죽해서 보기에 정갈한 멋이 없다.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했거늘. ‘백년손님이라는데. 우리의 조상님들은 어찌그리 작명(作名)도 잘 하셨을꼬. 사위는 백년이 지나도 손님이라니 맞는 말이다.

 

탕국은 시댁에서도 먹었을 것이니, 국을 엎어 매콤한 찌개를 해야겠다. 국물이 진하니 찌개맛도 진하겠다. 다음 달에 주재원으로 떠나는 사위를 따라 어바인(Evine)으로 가는 내외이기에 내 신경은 더 각별하다. 적어도 3~4년은 명절을 같이 보내지 못할 게 아닌가. 별 것도 아닌 오징어채를 즐겨먹는 내외를 위해 아침상에 올리지 않았던 오징어채도 볶아야지.

 

6:30pm에 도착예정이라고 네비가 알린다더니 7시가 지나도 들어오질 않는다. 차가 많이 막힌다는 문자가 수시로 도착하자, 늙은 키다리아저씨도 연방 대문을 들락날락. 말은 없어도 운전해서 오는 딸내외가 걱정이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비행기를 한 대 사야 하려나. 케케케 꼴에 꿈도 야무지네. 꿈이야 꾸지 못할 건 없지.

짐이 있어서 주차장으로 못 가고 대문 앞으로 먼저 가요.”

 

시댁에서 오는 사람들이 어쩐 짐이랴.’ 늘 그랬듯이 맞벌이 부부인 아들내외를 위해서 밑반찬이며 건강식을, 안사돈은 또 바리바리 실린 모양이다. 그래서 냉장고를 정리하고 빈칸을 마련하는 건 명절에 딸을 기다리는 이 어미의 연례행사다. 자고 갈 게 뻔하고 그동안 음식을 냉장고에 넎어서 보관을 해야 하니까. 오지랖 넓은 사돈댁은 내 냉장고 사정은 막무가내다.

 

이런~. 세상에나. 여느 때보다 짐이 두 배로 많다. 이를 어쩌랴. 냉장고도 하나 더 주문해야겠네 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들어오는 막내딸이 두 팔로 나를 얼싸안고는,

옴마~!”를 외친다. 에구. 시집살이가 심했나 보다. ‘시집은 커도 시집이고 작아도 시집이라더니. 이제 세 번째 맞은 추석명절이 아직은 낮이 설 텐데 하는 게 이 친정어미의 야속지심이다.

 

냉장고가 좁아서 어쩌니?”

냉장고에 들어갈 거 많지 않아요. 이제 얼마동안 뵙지 못할 테니까, 친정에 가서 아빠엄마랑 저녁을 근사하게 먹으라고 이렇게 싸 주셨어요.”

.” 이를 어쩌나. 딸과 사위가 꺼내 놓은 반찬만으로도 식탁이 그득하다. 이래도 되는 건가?

 

도미전에 가오리전, 오징어순대에 우엉지지미. 코다리졸임에 연근졸임 두부전에 깻잎보쌈전. 또. 경상도 음식이라 생소한 것들이 많아 일일이 열거하지도 못하겠다.

이거 제상에 쓴 것들을 자시지 않고 몽땅 보내신 거 아녀?”

제사상 음식을 물리고 다시 이거 하느라고 난 설거지도 못하게 하시고 보내셨어요.”

 

안사돈의 고운 얼굴이 오버랲 되고,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구먼.

막내딸 보내시고 얼마나 적적하시겠냐. 자리 잡으면 얼른 두 어른부터 한 번 모셔라.”

이건 바깥사돈의 배려 깊은 마음이란다. 정말 눈물이 난다.

무슨. 시댁어른들 먼저 모셔야지.’

 

, 마당에 수련화분 하나 보내주셨어요. 막내딸 본 듯이 보시라고.”

. 우리 사돈하지 말고 언니’ ‘동생하시자고 그래라.”

아이들이 다녀오는 동안은 정말 그래도 좋을 것 같다.

“미국 가서는 1년이 2년 되고 2년이 4년 되고 아주 눌러 살게 되는 거 아녀?”

외동아들을 보내는 안사돈의 섭섭한 마음을 읽겠다.

 

사돈이 보내준 음식으로 상다리가 휘도록 상을 채우고 저녁을 먹고난 뒤,

옴마. 우리 조금만 잘게요.”

그래. 그래. 그럴 것 같아서 올케가 너희들 기다린다는 걸, 가라고 쫒아냈다.”

ㅋㅋㅋ ​나는 아마 연극의 연출을 맡았더라면 잘 할 것 같다. 하하하.

 

운전대를 서로 양보하며 장장 먼 거리를 달려왔으며, 시댁의 중압감은 또 얼마나 컸으리.

어디. 조금만 자나 두고 봐야지.”

내 농담이 진담으로 돌아갔다. 딸은 내쳐 다음 날도 늦잠을 자고 늦은 아점으로 배를 채운다,

아빠 시장하시겠다.”는 소리에 반눈을 감은 채 식사를 하더니 다시 잠자리로 돌아간다.

 

저녁을 준비하고 나서야 딸 내외는 방문을 연다. 딸의 연례행사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직 오빠 네 방문 직전이니까. 미리 준비해서 들고 온 선물을 들고 제 오빠 네를 들러 예를 갖추니, 에미가 보기에도 이 아니 좋은가. 형제애(兄弟愛)를 무엇보다 중()하게 강조하던 어미로서는 무엇에 비길 수 없이 흡족하다. 4남매 뭉치면 세상에 겁 낼 일이 없지 않겠는가 말이야.

 

보림아~!

고모가 하는 말이, 보림이가 벌써 돈맛을 알더라 혀서 한바탕 웃었어 야.

고모헌티 잘 보여야 헌다이~. 고모는 아기가 없응께 먼 훗날 국물이 찐할 것이다 ~.

 

                                                            에헤라디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