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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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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겹도록 그리운 사람


BY 조정숙 2000-08-19



***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겨울 아침 이면...
내 할아버지는
쪼르르....
네 손녀딸년들 깨워
마당가에 쪼그려 앉혀놓고
김이 모락 모락 피어오르는
세수물 떠다
한 년씩 얼굴을 씻겨 주셨다.
소매 둥둥 걷어 주시고....
코도 휭 풀게 하고...




못된 손녀딸 년 들이
투정 부리느라..
도시락 팽개치고 등교 하는날엔
내 할아버진 산길을 걸어와
도시락을 들고
복도를 서성이곤 하셨다.



읍내 5일장에 다녀 오시는 날엔
할아버지 두루마기 안 주머니엔
언제나.
껌 한통과 크라운 산도 과자가 들어 있었고
우리 넷은 그것을 기다리느라
창호지 뚫어 놓고
지나가는 발길을 세곤 했다.




방학 과제물 만들기는
당연히 할아버지 몫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땐가..
앞산 허리에서 찰흙을 퍼다만들어 주신
근사한 비둘기 공작으로 난 최우수 상을 받아
우쭐 대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조끼 등허리는
우리들이 문질러댄 콧물 자욱 으로
언제나 반질 반질 했고
종종...
자전거 앞뒤에 우리들을 태우곤
동네를 몇바퀴씩 돌아주곤 하셨다.




어느 손녀딸년이 아프기라도 한 날에는
밤중도 아랑곳 않고
10리 약방을 다녀 오시고
밤새 머리맡에 앉으셔서
장화 홍련전을 읽어 주셨다.



엄마젖이 떨어지면서 우리넷은
당연히 할아버지 팔베개를
서로 차지 하느라 싸웠고
그런 우리에게 할아버진
따뜻한 아랫목을 비워 주시곤 하셨다.



정작 자신은
단 한명의 자식도 낳아보시지 못했건만
조카를 양자로 들여
안아본 손녀딸년들이
내 할아버지 에겐 어떤 존재들이었을까?



9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신날
영정앞에서 몸부림 치던
네 손녀딸년들의 손을 어찌 놓고 떠나셨을까?




지금도 마루끝 거기쯤에서
대문을 들어서는 손녀딸년들을
환한 웃음 으로 반겨 주실것만 같은....내 할아버지



두번째 봄이오고
할아버지 묘소에도 화사한 봄꽃이 피어 나지만..
난 아직도
내 할아버지의 따뜻한 품속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할아버지 그곳에도 봄이 왔겠죠?"

오늘은 할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2000년 봄날에 세째 손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