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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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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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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를 달다


BY 문해빈 2012-11-01

 

 

“엄마, 엄마도 여자잖아. 이젠 나이를 잊고, 아내라는 자리도, 엄마라는 무거운 이름도 내려놓고. 마음껏 날아 봐. 이혼을 하든, 계속 살든 그건 엄마 몫이잖아. 내가 이혼하라고 해서 속상하지. 내가 밉지? 남도 아닌 자식이 이혼을 하라고 해서 얄밉지? 엄마가 선택해. 그러나 이렇게 살지는 마. 그동안 이런 식으로 살아 온 것도 화가 나고 숨이 막혀 죽을 맛인데 앞으로도 또 계속 이런 식으로 살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 윤인혁이란 남자는 절대로 변하지 않아. 설령 그 여자하고 살림을 차려도 이혼은 절대 하지 않을 남자거든. 왠지 알지? 너무나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니까. 자신만이 전부니까.

 

 

 

 

그래서 엄마에게 다른 인생을 주고 싶어. 말로만 날지 말고 진짜 날아 가봐. 세상은 두렵지만 생각만큼 무서운 곳은 아니야. 엄마 나이에도 과감하게 뛰쳐나가 할 수 있는 게 많은 곳이야. 집이라는 울타리도 이젠 버려. 그래야만 하는 거야. 그게 이지영이란 여자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거든.”

 

 

연수는 지영이 남겨놓은 은은한 장미향을 맡으면서 침대로 향했다. 씻어야 하는데 그 힘도 없었다. 다행히 내일은 방송 녹화가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었는지 모른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연수가 선택한 곳은 욕실이 아닌 침대였다.

몇 번이나 머릿속으로는 욕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미 몸은 먼저 침대로 향했으며 눈꺼풀이 감겨 가고 있었다.

 

 

 

***

다음날!

 

 

말복이 지났지만 더위는 조금도 꺾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젠 봄과 가을은 이상 기온에 의해 사라져 갔으며 오직 여름과 겨울만이 한국을 지배할 것으로 보였다. 사계절이 있어 좋았고, 뚜렷한 계절 때문에 온갖 음식들이 다양하게 사람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 주었지만 이젠 급격히 변하고 있는 날씨로 인해 각 지방의 특산품들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면 과히 이상 기온은 틀림없었다.

이 더운 날 아침에 식탁에서는 보글보글 끓고 있는 된장찌개가 사람들의 입맛을 확 끌어당겼다. 여름에, 그것도 무더위 속에서 펄펄 끓어 넘치고 있는 된장찌개는 땀과 함께 보양식이 되어 갔다.

 

 

 

 

기본적인 두부와 호박, 그리고 잘게 썰어 넣은 청량고추의 맛이 입 안을 즐겁게 해 주었기에 연수는 밥에 올려 비벼 갔다. 함께 따라 온 생선찜과 갖가지 나물 반찬들은 비빔밥을 해 먹기에 딱 어울리는 음식들이었다. 아침부터 생선과 나물들로 비빔밥을 해 먹는 것이 버거울 수도 있지만 연수는 오랜 만에 집으로 온 탓인지 여러 가지 나물들을 밥에 올려 비비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지만 제 감정을 다 표현할 수는 없었다.

너무나 풍성한 반찬들, 눈으로 보기만 해도 행복한 식탁이었기에 먹으면서도 행복했고 식욕이 왕창 끌어당겨져 갔다.

 

 

그러나······

두 사람, 인혁과 혜수의 표정은 돌보다 더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혜수는 혼자 음식 맛에 빠져 있는 연수와 또 그 연수를 위해 온갖 음식들을 만들고 있는 엄마인 지영도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앞에 놓인 샐러드를 포크로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지만 입 안이 까칠했으며 무엇을 봐도 즐거운 마음이 들지 않았다. 아침부터 생선찜은 무엇이며 가장 싫어하는 나물 반찬들은 왜 만들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참기름 냄새가 식탁 주위를 맴돌고 있었기에 혜수는 더욱 머리가 아파 올 뿐이다.

숟가락으로 간을 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어림잡아 병째로 부은 모양이다. 어지간히 큰 딸이 좋긴 한 모양이다. 이런 날이 아니어도 큰 딸이 집으로 오면 다리가 내려앉을 정도로 갖가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이지영이란 여자다. 그때는 온 가족이 웃으면서 다 함께 즐겼기에 참기름 냄새도 좋았고, 생선 냄새도 역겹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역겹고 얼른 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지 모른다. 참기름 냄새도 싫고, 생선 냄새도 싫고, 그 중에서도 된장국인지 된장찌개 냄새는 가장 싫었다.

이 더운 아침에 무슨 된장찌개인지 혜수는 계속 뚱한 표정을 지은 채 샐러드를 먹는 시늉만 하고 있었다.

그 감정은······ 인혁도 마찬가지였기에 두 여자와는 한 마디도 주고받지 않았으며 가장 흔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인혁은 밥은 먹지도 않고 된장국만 계속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을 뿐이다. 먹다가 보니까 어느 새 그릇은 비워져 갔지만 말을 하지 않았다. 달리 할 말도 없었지만 그는 지금 화가 나 있음을 보이고 있었다. 화가 난 얼굴이다. 애써 표정을 관리하고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화난 얼굴이었으며 꾹꾹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지영만이 그런 남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이십년이란 세월을 함께 한 남자다. 어디 이십년인가? 손꼽아 계산을 해보면 삼십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이었다.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함께 했으니까 그 세월은, 강산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미운 정이 더 많이 쌓여 있었기에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는 마음은 뒤숭숭해질 정도로 착잡하기만 했다.

어젯밤!

인혁은 밤이 깊어가고 있었지만 안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출장을 가거나 공식적인 업무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각 방을 썼다.

 

 

 

어차피 한 침대에 잔다고 해도 따로 이불을 덮고 자는 무관심한 부부들이 윤인혁과 이지영이었다. 하나의 이불을 덮고 자면 이리 뒤척이고, 저리 뒤척이면서 서로의 수면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영이 하나의 이불을 더 가지고 와서 덮으면서 그대로 생활이 되어 간 것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두 개의 이불이 각자의 배를 덮어갔으며 몸부림도 마음껏 쳐 나갈 수 있어 자유로웠는지 모른다.

무슨 말이라고 하고 싶은데······.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은데·····.

두 사람은 침묵만 지켜 나갔다. 지영도 이젠 먼저 말을 하는 것이 싫었다. 늘 약자가 되었고, 먼저 기분을 맞추면서 이 가정을 지켜 왔는지 모른다.

 

쓸데없는 자존심까지 가지고 있는 동갑내기의 남자 비위를 맞추면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잘못은 자신이 해 왔음에도 쉽게 인정하는 법이 없었으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인지, 무엇이 진짜 자존심이 모르는 남자다. 그저 일에 미쳐 살고, 생활비만 주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남자다. 그 남자와 이제는 헤어져야 할 것만 같았다.

헤어질 때는 헤어지더라도 밥은 먹어야 하기에 밥상을 차렸다.

밥은 먹어야 하니까.

 

 

“언니는 잘 잤나봐.”

 

 

 

다른 사람과 달리 아침 시간부터 너무나 잘 먹고 있는 연수가 얄미워 보여 차가운 말투와 함께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넌?”

“잘 자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니야?”

 

 

 

연수는 계속 시비를 걸고 있는 혜수를 보다가 입가에 살짝 미소만 지었다.

그런 모습들이 혜수로선 더 기분이 나빴으며 자존심이 상했다. 늘 당당하고 잘난 언니다. 어릴 적부터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뻐 모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살아 왔다는 것을 가까이서 보았기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때는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인생의 모델이었으며 꿈의 로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싹 사라졌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어떻게 된 여자가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만큼 독해지고 정이 없어져 갔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강한 것인지, 독한 것인지 모르지만 예전만큼 정감 가는 윤연수가 아니었다. 잘나면 사람이 저런 식으로 변하는 것일까.

 

 

지금도 도도하다 못해 미워서 죽을 맛이었다. 부모가 이혼을 한다고 하면 자식 된 도리로서 말려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은 어린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아무리 이혼율이 높고, 시대상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한 사람은 절대로 이혼 같은 것은 하지 않을 마음이었고, 또 한 사람은 잠시 흔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싸움은 말리라는 법칙도 모르는 모양이다. 교과서적인 여자는 엉뚱한 곳에서 잘난 척을 하고 있었으며 그게 혜수는 싫었다.

“그래도 잠은 푹 자야지. 넌 수험생이잖아.”

“퍽이나 생각해 주고 있네. 그런 사람이 이혼을 하라고 엄마의 마음을 흔들고 있어?”

“흔든 적 없어. 엄마가 결정한 거야.”

 

 

 

그 순간, 인혁의 무표정한 눈빛이 연수를 쳐다보며 잠시 움직였지만 이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여기서 감정을 다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런 인혁의 마음을 혜수는 알았을까. 갑자기 목소리가 커져 올라갔으며 다혈질적인 음성으로 변해있었다.

“내가 대학 못가면 그건 순전히 언니 탓이야.”

“억지 부리지 말라고 했지. 네 인생이야.”

 

 

“하여간 똑똑한 여자는 무서워. 어쩜 말을 이렇게도 정 없이 할 수 있는 것인지. 대단하다. 그러니까 언니 말은 부모님이 이혼하는 것과 내가 대학가는 것은 별개의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구나.”

연수는 말로 하려고 하다가 당연하다는 눈빛을 짓자, 혜수는 더 이상은 자리에 앉아 있기가 싫어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학교 갈게요.”

“네 앞에 놓여 진 거 다 먹고 가. 수험생이 배고프면 집중하기 힘들어.”

 

 

 

“이미 집중하긴 틀린 하루야. 내가 지금 이 집에서 나가 학교로 갈지, 다른 곳으로 갈지 그건 나도 몰라. 내 기분에 따라 살 거야.”

혜수는 점점 자신의 감정에 취해가면서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급기야는 악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진작 연수는 그런 혜수를 바라보며 웃고만 있을 뿐이다.

“그 웃음, 날 무시하는 거지?”

“아버지!”

 

 

 

연수는 혜수가 옆에서 약이 올라 뭐라고 하고 있었지만 진작 쳐다보고 있는 사람은 인혁이었다.

“아직도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하렴.”

인혁은 자신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르는 연수를 쳐다보는가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돌려 물을 마셨다.

 

 

 

 

“엄마, 이번 학기부터 복학하기로 했어요.”“······!”

 

 

 

복학이란 말에 물을 마시던 인혁이 연수의 얼굴을 뚜렷하게 쳐다보았다. 거의 눈을 마주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연수의 눈에 멈추었다.

그러나 인혁의 눈동자는 다시 움직였다. 연수가 아닌 지영을 향한 것이다. 보고 또 보았다. 생각보다 잘 잤는지 푸석하거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아니었다. 누구는 서재에 있는 간이침대에서 잔다고 어깨도 아프고, 다리에 쥐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아내라는 여자는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지 않아도 걱정을 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계획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배신이 느껴졌지만 이제 이런 말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딸과 아내는 야무지게 이혼을 진행할 것인가. 두 여자의 얼굴에서 낯선 이방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두 여자는 어느 새 이방인들이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복학! 엄마가 복학을 하다니. 그러니까 그 말은······ 엄마가 학교에, 대학교에 다닌단 말이지.”

혜수는 놀라움에 눈동자가 그 어느 때 보다 동그랗게 변해가고 있었으며 말도 평소와 달리 더듬거려 나갔다. 그러나 인혁의 눈빛만은 예외였다.

 

 

복학! 학교!

복학이라고 했다. 학교에 간다고 했다.

 

 

 

인혁은 잠시 두 눈을 감았다가 뜨고선 단 한사람인 지영을 또다시 쳐다보았다. 살면서 오늘처럼 아내의 얼굴을 많이 보는 것도, 가까이서 유심히 보는 것도 드물긴 했다는 것을 알았다. 입 주위에 팔자 주름이 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주름이 있었는지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그저 이지영이란 여자는 이지영이란 여자뿐이었으니까. 아내이었을 뿐이었으니까. 그 여자의 얼굴이 눈 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누구의 눈이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의 눈동자는 한 곳으로 고정되어 있었으며 표정 없이 서로를 향해 있었다. 그러나 더 뚜렷하게, 차갑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인혁이었다.

어제와 오늘, 사람을 참으로 기가 막히게 하는 여자였다. 너무 어이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생각나지 않았기에 짧은 한숨이 새어 나오고 있었지만 속으로 삼키는 탓에 그 한숨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인혁 자신뿐이었다.

이혼! 복학! 이혼, 복학, 이혼······ 학교······!

혼자 입술을 움직여 나갔지만 이것조차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다시 휴 하며 한숨을 내 쉬다가 눈동자를 돌려 연수를 쳐다보았다.

“학교는 누구의 생각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한데.”

 

 

 

어젯밤부터 침묵만 지키던 남자의 입에서 나온 조용하면서 나지막한 음성이었다. 조용한 음성, 가장 낮은 저음이란 것은 지금 이 순간 무던히도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 누구보다 지영이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좋든, 싫든 함께 한 세월은 어찌할 수 없었는지 모른다.

“엄마가 예전부터 학교를 많이 그리워 하셨잖아요. 늘 노래처럼 학교에 가고 싶다. 공부를 더 하고 싶다. 그건······ 아버지도 잘 아시죠? 엄마가 다른 것은 몰라도 학교에 대한 그리움은 많이 표현하셨잖아요.”

그건 아버지도 아시죠? 엄마가 많이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 한마디에 인혁은 또 힘들게 표정관리를 해야만 했으며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아내인 지영과 단독으로 얘기를 한다면 자신의 감정대로 쉽게 풀어 나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연수가 중간에 있음으로 오히려 모든 것들이 힘들어 졌고, 이상하게 꼬여만 갔다.

야무지다 못해 대나무 이상으로 꺾어지지 않는 아이다. 그 아이가 부모의 이혼을 적극적으로 원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되는 것일까. 아무리 아버지란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다고 이런 식으로 구석으로 몰아가다니. 인혁은 시간과 함께 허탈해짐을 느꼈다. 은수와 혜수는 그나마 자신을 좋아하는 감정을 내면서 애교도 부리고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했지만 연수는 단 한 번도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거기에 딸이 아빠를 향해 부릴 수 있는 애교는······없었다.

 

 

 

언제부터인지 그것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연수로부터 나긋한 애교를 받아 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딸은 엄마에게 이혼을 원했으며 사랑하지 않는 사람끼리 사는 것은 서로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과 함께 과감하게 이혼을 하라고 했다.

이젠 이혼을 넘어 학교로 가라고 한다.

이 아이의 계획은 무엇일까. 이 아이는 왜 그토록 아버지를 싫어하는 것일까.

“뭐야? 진짜 엄마가 학생이 된단 말이야? 대학생?”

혜수는 자신의 질문에 어느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해 주지 않는 것에 화가 났는지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시원하게 대답을 해 달라는 퉁명스런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그래. 이제부터 엄마도 대학생이 되는 거야. 대학생!”

“대학생?”

 

 

 

혜수의 눈동자는 좀처럼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한 번 동그랗게 변한 눈동자는 작아지지 않았다.

 

“응. 한 학기는 했으니까 2학기부터 공부를 하게 될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학교에 가면 이혼은 어떻게 되는 건데?”

혜수는 그 순간, 지영을 쳐다보았다. 정말 이혼할 거냐는 표정이었다.

“아빠는 이혼하지 않는다.”

 

 

 

한 순간에 나온 단호한 음성이었다.

“······!”

“······!”

“······!”

 

 

 

세 여자의 눈동자가 동시에 인혁을 향했지만 제각기 감정은 달랐으며 표정도 달랐다.

 

 

 

세 여자 중 유일하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혜수뿐이었다. 그러나 두 여자, 지영과 연수는 인혁을 쳐다보다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표정이 굳어갔다. 지영은 굳은 표정 속에서 연수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두 눈만 깜박거렸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었기에 지금 가장 힘이 되어 주고 있는 큰 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울타리였고, 평생도록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남자는 이미 타인이나 다름없었으며 편이 아니었으니까.

불리하면 임기응변에 강한 남자는 가장 적합한 단어들을 가져와 설명을 해 나갔다.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로써 모든 것을 무마시켜나가는 능력자였기에 지영은 또 그런가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 바람도, 무관심도.

 

 

 

가장 위험한 정신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도······. 그게 얼마나 위험한 실수인지 이 남자는 모르고 있었다. 그게 가장 나쁜 짓인데.

 

 

 

이젠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여기서 무엇이든 하나는 얻어야만 살 수 있다는 것을 지영도 모르진 않았다. 저 차갑고 이기적인 남자는 이 상황만 지나면 또다시 이지영이란 여자를 자신의 노예정도로 여기며 부리기만 할 것이다. 지영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살다가 죽기엔 너무 억울했고, 또 한 평생을 자신밖에 모르는 남자의 하녀로만 살다가 죽기는 싫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만 똑바로 쳐다보며 말도 안 되는 이혼을 하지 말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이고 있는 혜수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시려왔다. 아직 여리고 여린 딸이다. 거기에 수험생이다. 수험생에겐 정말이지 못할 짓이란 것을 알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지영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순간, 인혁은 지영의 복합적인 마음을 읽었는지 잠시의 틈도 주지 않기 위해 곧장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한 번 더 얘기하마. 나는 이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이혼 같은 거, 방금 이혼 같은 것이라고 했어? 이혼 같은 거, 이혼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고······.”

 

 

 

 

지영의 눈빛이 매섭게 변해갔고, 눈 밑으로는 미세한 신경들이 한 순간에 모여들면서 심하게 요동을 해 나갔으며 요동을 치는 신경들은 지영의 심장까지 건드리고 있었는지 정신없이 뛰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심장이 뛰고 있는 것은 사랑에 미쳤기 때문이 아니다. 한 때는 저 남자 때문에 미친 듯이 심장이 뛴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분노에 차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면서 그와 함께 심장도 그 반응에 따라 뛰고 있는 것이었다.

이젠 연수가 아닌 자신이 말을 해야만 할 거 같았다.

“엄마는 이혼할 거야. 이제 이 말은 오늘로서 끝이다. 두 번 다시 이혼을 한다는 말은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지영이 인혁을 향해 노려보았다. 이혼을 할 때는 하더라도 이왕이면 좋은 방법으로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적인 부부들은 절대 이혼을 두고서는 좋은 관계로 매듭을 지을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이혼하지 않는다. 내 인생에 이혼은 없다.”

인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영이 일어나려고 했지만 인혁이 먼저 일어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제는 서재에서 잔 남자가 지금은 안방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한 자세를 취하며 유유히 들어가고 있기에 지영으로선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며 연수와 혜수도 말없이 보고 있긴 마찬가지였다.

 

 

 

이혼 같은 거, 이혼 같은 거······.

참으로 잔인하게도 말을 한다. 그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저 남자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저 남자의 뇌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이혼을 하겠다는 아내의 간절함을 이런 식으로 묵살시키다니. 그저 장난으로 보이는 것일까.

 

 

 

 

문소리와 함께 문은 바람을 날리며 냉정하게 닫혔으며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 저 방으로 들어간 남자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지영은 문과 문을 두고 윤인혁이란 남자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