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의좋은 남매처럼 ,,,,,,,
아니면 백설공주 (나) 와 일곱난장이 ( 그의 육남매와 어머니 ) 처럼
그렇게 사이좋게 알콩달콩 살수있으리란 착각에 빠졌었는지도 모른다 .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럴수 있을거란 착각으로 감행했던 세번째 결혼은
착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보니 언제 어디서나 바람을 막아주고 우산이
되리라 생각했던것은 나만의 생각이었고 오히려 내가 그와 그의 가족들을
보살피고 돌봐 주어야 하는 가난하고 힘든 집안의 육남매 맏며느리였다 .
92년 초여름 ,,,,,,,,,,,,
주택은행에 매월 10만원씩을 불입하던 주택부금을 38번째 납부하고 후평동의
세경 임대 아파트에 당첨이 됐다 .
그동안 불입한것은 계약금으로 들어가고 3개월에 한번씩 납부해야 하는 중도금을
붓기위해살고있던 전세집을 빼야했다 .
동네에서 제일 허술한 흙벽돌집인 시댁으로 들어갈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
실평수 겨우 13평 남짓한 다 쓰러져 가는 한옥에 오랫동안 비워지다 시피한 방에
가재도구를 들여놓고 침대위에 전기장판에 의지한채 서너달을 버티기로 하고
8월에 시댁으로 들어갔다 .
12월에 입주니까 몇달만 참으면 ,,,,, 남의집에 사글세를 주는것 보담이야 절약되리라
생각했다 .
이삿짐속에 반접이 넘게 남아있는 마늘을 보시더니 시어머니가 넌 무슨 젊은애가 마늘을
한접씩이나 사놓고 먹느냐며 웃으셨다 .
먹다가 남으면 김장하면 되잖아요 ? 했더니 그건 그렇지 라며 대꾸하셨다 .
라면을 끓이겠다고 남비에 물을 올려놓고 슈퍼에 가시면 겨우 한개나 , 두개를 사오셨고
빨래터에 가신다고 대야에 빨래감을 담아놓고 가셔선 빨래비누 달랑한장을 사선 들고오신다 .
당시 동네에선 물이좋아 때가 잘가는 빨래터가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진 모르겠다 .
그때에는 슈퍼에서 지금처럼 마늘을 까놓고 팔지않고 다섯통씩 묶어놓고 팔았는데
그걸 사다놓고 잡숫는게 나는 늘 못마땅했다 .
출하시기에 트럭한가득 마늘을 싣고 팔러 다닐때 한접쯤 사서 걸어놓고 먹으면 좋을것을
감질나게 몇통씩 사다놓고 먹으면 헤프고 비쌀텐데도 꼭 그리 하셨다 .
넷째 시동생은 방위를 받고 있었고 막내 시동생은 고등학생 이었는데 키가 180m가 넘고
덩치들이 좋아서 식욕이 왕성했다 .
김치가 하기 싫으시다며 단무지를 사다 김치 대신이라며 드셨고
아침이면 고등학생인 막내아들에게 도시락대신 천원을 쥐여주며 컵라면을 사먹으라
하시던 분이셨다 . 귀찮고 싸기 싫다며 ,,,,,,,,,,,,
내가 들어가고 새벽 5시30분에 방위병의 아침을 , 6시30분엔 고등학생의 아침을 먹이고
컵라면대신 넙적하고 커다란 네모 도시락을 건네주면 입이 함지박만 해졌다.
큰형수가 제일 좋단다 . 그때에는 그랬다 .
시어머니와 나의 아침까지 세번의 아침상을 차리고서야 하루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남편은
삼척의 전기공사 현장에서 일주일이나 열흘에 한번 오는게 고작이었다 .
저녁이면 두시동생들이 시간차로 집에 돌아오면서 형수만 보면 배가 더고픈것 같다고
하며 웃었고 나는 신이나서 많은양의 반찬들을 해놓고 챙겨주며 내일아침까지 줘야지
생각했어도 그들의 왕성한 식욕으로 저녁이면 동이나다 시피했다 .
저녁을 먹고도 두어시간이 지나면 또 먹거리를 찿아 뒤적거리기에 라면을 사서 아예 박스채
들고 들어가자 어머님이 눈이 둥그레 지시며 넌 어쩜 쪼끄만게 그렇게 손이크냐며 웃으셨다.
어릴땐 장작이 달랑달랑한게 싫었다 .
연탄이 두줄밖에 안남으면 불안했다 . 치약이 , 비누가 , 라면이 필요하면 그때마다 슈퍼에
뛰어나가 하나씩만 사오시는 시어머님과 늘 준비해두고 살아야 직성이 풀리는 며느리 ,,,,,,,
우린 달라도 너무 달랐다 .
일주일에 딱한번 어쩌다 두번 예식장에가서 국수를 삶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시면 15000원을
받아오셨고 그걸로 일주일간 당신 용돈을 쓰셨는데 하루에 한갑이상 피워대는 솔담배가 500원
툭하면 심심하다시며 빌려다 보는 비디오 테잎이 2000원 그러다가 어느날은 " 얘야 어제
비디오 빌려다 보고 났더니 돈이없는데 담뱃값좀 보태라 내일 예식장에가야 또 돈이 생기지"
하시며웃으신다 . 참 편하신 분이구나 생각하면서도 답답했다 .
바로밑의 시동생 , 또 시동생에 시누이까지 아무도 결혼식을 못하고 그냥 살면서 아이를
낳았거나 가졌거나 였었는데 결혼식을 시켜줘야 한다거나 하는등의 부담이나 걱정이
전혀 없어보였다 .
어느날 시어머니가 진부의 시동생네 집에 다녀 오셨고 동서가 임신한지 육개월된 아이를
낙태를 했었고 낙태후에 한동안 임신하지 말라는 의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또 아이를
가졌다며 어쩔려고 그려냐며 걱정에찬 역정을 내셨다 .
육개월이나 된아이가 왜 낙태를 했었는지 왜 시간을 두고 임신을 해야만 하는지 나는 관심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
얼마후 시누이에 이어 셌째아들과 둘째아들이 경쟁하듯이 아이를 낳았다 .
시어머니는 시누이의 산모 수발을 가신다며 올때에는 셌째아들네 집에까지 들러서 오시마고
하셨고 나는 그런줄만 알았다 . 시누이의 수발을 들다가 셌째 며느리가 태기가 있어서 그리로
가신다는 연락에 그런줄만 알았는데 예정보다 빨리오셨다 .
시동생보다 여섯살이 연상인 동서가 데리고 들어온 일곱살짜리 딸까지 다섯식구가 있다보니
어디가서 드러누을곳도 없었다며 투덜대셨고 그저 그려려니 무심히 지나쳤다 .
시댁으로 들어올땐 사글세라도 아껴서 입주경비에 보탬이 될까 했었는데 예상은 점점
빗나가고있었다 . 월급 60만원에 10만원씩 갖다드리고 사소한 대소사나 제사등을 맡던것이
이젠 아예 통째로 맡아버린 꼴이 되었고 생활비가 계속 들어가다 보니 입주비용을 마련
할길이 막막했다 .
어느날 삼척현장에서 돌아온 그가 잔뜩취해 몸도 못가눌 정도가 되서 들어오더니 내게 돈을
이백만원만 해줄수 있냐고 묻는다 . 다그쳐 물었더니 처음 방을얻을때 주었던 육백만원중에
시누이 돈이 이백만원이 묻어왔는데 그걸갚아줘야 여동생이 결혼식을 한단다 .
그럼 당신은 처음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냐고 물었더니 자기도 몰랐고 그냥 그게 자기가
벌어다 준돈의 일부인지만 알고 있었는데 지금사 그렇게 얘길하시는데 아무튼 자기땜에
여동생이 결혼식을 못한다니 이렇게 무능한 오빠가 다있나 싶어서 공지천으로 빠져 죽으려고
갔었다면서 나한테 돈을 못해줄바엔 우리함께 빠져 죽잖다 .
어이가 없었다 . 첨엔 자기돈이 천이랬다 , 육백이랬다 , 이젠 사백이래 ,,,,,, 도대체 뭔소린지 ,,,,,
그렇다면 첨서부터 우리둘을 앉혀놓고 그렇게 얘길했어야지 지금와서 그런소릴 하시는건
육백을갖고 일년도 안되서 천이백으로 늘려 간다니까 마치 내가 돈이 꽤나 있는줄알고
머리쓰시는것 같아 불쾌하고 또 나에게 직접 말씀하신게 아니니 난 못들은것으로 할테니
알아서 하고 나는 같이못죽는다고 하며 묵살해 버렸다.
며칠후에 ,,,,, " 엄마가 이웃에서 빛내서 해결했다고 나중에 갚아달래 " 하며 희색이 만면했다 .
동생들이 결혼할때마다 날 빛쟁이로 만들진 않을까 의심스러웠다 .
어느날 부식값이 떨어져서 쩔쩔매고 있는데 비디오 테잎을 빌려서 또 들고 들어 오시기에
속으로 화가났다 .
며칠만에 돌아온 그에게 차라리 생활비를 10만원씩 드리고 사글세10만원씩을 내고 사는게
나을뻔 했었다며 바가지를 긁으며 얼마나 속이 편하신분인지 라며 흉을봤다 .
잠자코 현장으로 돌아갔고 며칠후,,,,,,,,, 집으로 전화가왔다 .
골목입구의 상가앞으로 나오라고 ,,,,,,,,,,
아무생각없이 나갔더니 만취한 모습으로 트럭에 올라앉아 타라며 웃고있는데 혀가꼬여서
말도 안되고 있었다 . 이렇게 취해서 무슨운전이냐며 싫다고 했더니 가는데 까지 가다가
기름이 떨어지는데 가서 너랑나랑 둘이 쳐박혀 죽잖다 .
" 이거 회사 차잖아 ? 남의 재산을 갖고가서 왜죽어 그리고 죽으려면 혼자죽어 " 하며
돌아서는데언젠가 처럼 또 눈이 번들거렸다 .
홱 돌아서는데 차에서 뛰어내리더니 나를 향해 쫓아오기 시작하며 " 우리 오늘밤에 같이
죽는거야" 라며 이죽거린다 . 툭하면 같이 죽자니 ,,,,,,,,,,,,,,,,잡힌팔을 뿌리치고 상가안으로
뛰어 들어가 야채가게 아줌마에게 우리집으로 전화좀 해달라며 부탁하는데 거기까지 달려
들어와 내멱살을 잡더니 나를 질질 끌고 다녔다 . 동네방네 구경이났다 .
시어머니와 넷째 시동생이 뛰어나오고 힘이 장사인 시동생손에 끌려가면서 알람시계이후
손을 못댔던 나를 대신해 애매한 시동생이 몇대 맞았다 .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의 고성과 시동생의 화난목소리그리고 술취한 개의 괴성까지 합쳐진
악다구니를 들으면서 나는 또다시 집을 나가야 할까 ? 생각했다 .
내맘을 알아줄것 같았고 가장 내편일것 같아서 얘기 한것인데 저사람 참 못났구나 ?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올봄 4월쯤 이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4년내내 연애해서 결혼한
막내 여동생이 춘천에 대한 향수를 달래기위해 제부와 함께 온다는 연락이 왔을때 내얘길
듣고 나서 " 오면왔지 우리집엔 왜와 ? " 라는 대답에 어이없고 화가나서 그런 바보같은
소리가 어딨냐고 초등학생들이 놀면서 장난삼아 우리집에 왜왔니 하는것을 실제로
써먹냐고 어떻게 우리집에 왜라는 유치한 질문을 나한테 할수있는거냐고 싸웠던 기억이났다 .
도대체 나는 사람을 얼마나 알고 있는걸까 ?
아마도 사람들의 뇌가 궁금한 사람들이 많았었나보다 .
그래서 베르나르베르베르란 분이 뇌라는 책을 썼었는지도 모르겠다 .
아니 그분은 뇌 시상하부에서 아데르날린이 분비되면서 쾌감을 느끼고 그로 인한 엔돌핀의
효과에 대해서 자세히 썼던것 같기도 하다 . 아니면 그부분만 내귀에 쏙 들어왔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