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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의 뇌진탕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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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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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소송


BY 헬레네 2008-12-16

벌금을 물고 나자 가게에 정나미가 떨어지기도 했었지만  하루에 겨우

4-5 시간을 자고 나면 쉴새없이 일에만 시달리는 데다가 잠자는 방이라곤

허술하기 짝이 없어서 옆방에서 소곤대는 소리도 들릴 정도였다 .

 

40이 다된듯한 아들과 할머니가 둘이 살고있는 한옥집은 우리가 방하나 또

어떤 여자가 방하나를 세얻어 살고 있었는데 마루를 지나 안방엔 할머니가

마루가 연결되어 붙어있는 방을 아들이 하나 우리가 하나를 쓰고 있었다 .

아이가 어쩌다 말만 몇마디 해도 " 시끄러워 " 라는 소리가 벽을 넘어왔다 .

 

어느날 할머니가 서울에 있는 딸네집에 가고 없는데 밤새도록 술을마시고

노래를 부르더니 마당에 나와서까지 소리를 질러대는 광기를 부렸다 .

한두번이 아니었던지 할머니가 다녀오셔서 우리아들이 어땠었냐며 내게 물어왔다 .

할머니 말에 의하면 강대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누나들도 서울에서 다 약사에

의사인데 유독 외아들인 저놈만 저렇다며 한숨을 쉬었다 .

새벽이면 알아듣지도 못할 클래식을 오랫동안 틀어놓고 시끄럽게 하기도 했다 .

 

가게나 방이나 맘에 들지않다보니 들어가나 나가나 맘이 복잡했다 .

때마침 후평동 2단지 아파트 앞에 새건물이 들어서고 있었는데 가게에 딸린

방이 두칸이었고 흉내만 냈지만 부엌에 화장실까지 있었다 .

주인집 눈치를 안볼수 있는 완벽한 독립가옥 이었다 .

 

가게를 내놓자마자 바로 팔렸는데 들어간돈 삼백을 그대로 받았으니 돈이 문제였다 .

월세야 어차피 방과 가게를 합친것과 엇비슷했는데 보증금만 삼백이니 나머지

물건값이 있어야 장사를 할것이  아닌가 ? 엄마에게 이러저러한 사정을 얘기하고

돈을 조금만 더해주십사고 부탁을 했더니 이백을 더해주시며 처음 삼백은 동생들

밥값이 지만 나중 이백은 갚아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

 

이사를 하면서 한두달 안에 온다던 이혼소송의 연락이 왜이리 지지부진 한가 알아보라고

남동생을 보냈더니 누락이 되어 있길레 화가나서 따지고 왔다며 씩씩 거렸다 .

이틀이 멀다하고 엄마를 찾아가 씨를말려 버리겠다는둥 2대독자인 아들간수 잘하라는둥

폭탄을 터트려 버린다는둥 했다던 그인간도 3개월이 지나자 많이 잠잠해졌다.

 

이사를 하면서 1차 재판이 있었고 영월지원으로 재판을 받으러 갔다 .

아침 10시까지 도착 할수가 없어서 전날 여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택시에서 내리는데

기다렸다는듯 쫒아오더니 마치 아무일이 없었던듯 내이름을 부르면서 웃고있었다 .

미치고 환장할 일이었다 . 실컷 때려 놓고도 누가 갑자가 찾아오면 늘 그렇게 행동했었다 .

마치 아무일 없었다는듯 ,,,,,,,,,,,,,,,

 

잠자코 법원으로 들어갔는데 판사가 내게 이혼소송을 하는 이유를 물었다 .

폭력과 , 학대와 , 가정환경 때문이라고 얘길 했더니 좀더 구체적으로 얘길하란다 .

어떻게 때렸으며 어떤대우를 받았었는지 가정환경은 어떤지를 ,,,,,,,,,,, 폭력에 대해

얘길했더니 아내를 때린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그인간은 자긴 절대로 때린적이 없다며

잡아땠다 . 내가 조목조목 열거를 하자 듣고있던 판사가 법은 증거주의이니 나를 때리는

것을 본사람이 와서 증언을 해주던지 또는 맞은것에 대한 진단서 등이 있어야 한다면서

다음 2차 재판때 까지 증인과 진단서를 제출하라고 하면서 한달후의 재판날을 일러주었다 .

진단서는 한번도 떼어 본적이 없었지만 내가 맞는것을 본사람은 부지기 수이니 자신있었다.

 

춘천으로 돌아온 다음날 ,,,,,,,

" 이웃에 살던 ** 엄마 에게서 전화가 왔다 . ** 엄마야 클났데이 그놈이 칼을 들고 다니면서

누구라도 우리 이혼법정에 와서 증언을 서주는 년놈은 이칼로 찔러 죽여 버린다믄서 누구 누구가

 내통하고 있는지 다 안다고 하매 눈에 불을 철철 흘리고 댕기는데  우리는 마 무스워서

지금 바깥에도 못나간데이 알라들도 함부로 바깥에 못 내보내겠데이 " 하길레 " 걱정마 그놈이

나한테나 혹은 지보다 약해 보이는 사람 한테나 그러지 지보다 쎈사람 한테는 그러지도 못해

 알잖아 지동생이와서 난동부리면 한번도 같이 못붙어보고 나하고 같이 도망다니던 인간인데

안심해 "  했더니 " 그렇긴 한데 그래도 내사 겁난데이 " 하고 전화를 끊었다 .

 아예 증인에 대해선 누구한테도  얘기도 못꺼내고 2차 재판일은 다가오고 있었다 .

직계 가족은 안돼고 제 삼자가 누가와서 그런 위험하고 골치아픈 증언을 해줄것인가 ?

 

가게를 오픈하기 위해 시장조사를 다녔다 .

이번엔 지난번 같지 않게 좀더 철저하게 해보고 싶었다 .

다른집들과 업종이 겹치지도 않게  미움먹을 일도 없게 이것저것 따져 보다가 식당할때

자주 배달가던 양품점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그저 이웃여자들과 수다도 떨고 커피도 마시고 하는것이 여유로워 보여서 양품점을 하는

한빈이 엄마에게 자문을 구했다 .

 

8월에 오픈을 했었는데 가게는 그럭저럭 괞찮게 꾸려져 나갔다 .

단순하게 생각했던것 보다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

4-5일에 한번씩 남대문과 동대문을 오가며 어께가 빠지도록 가방가득 짐을들고 다니면서

밤을 세워가며 물건을해오면 물건이 들어온날은 하루종일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

한사람이 탈의실 하나가득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면 졸졸 따라다니며 입는것을 거들어

주고   벗어던진 옷들은 정리하기에 바빴다 . 밀려오는 잠을 주체를 못해 커피를 연달아

마시고 나면 내몸이 붕붕 떠다녔고 삼일 정도를 집에서 자고 나면 또 물건을 하러 가야했다 .

몸이 피로한건 괞찮은데 문제는 계절 재고와 외상수금 이었다 . 카드가 없던 시절이니 절반

이상이 외상인데 개중엔 진짜 쇠심줄보다 더 질긴 이들도 있었다 .

여름에 마로된 정장을 외상으로 입고가서 가을 바람이 불때 겨두랑이가 구겨지고 땀냄새가

풀풀 나는 것을 갖고와서 반품을 해버리고 발길을 끊는 싸가지도 있었고 겨울에 코트가

없는데 연말 모임에 입고 갈거라면서 사이즈 36인치를 특별주문해 놓고 찾으러 와선

봉급날을 기약하고 가더니 구정전에 와서 반품을 하겠다는 몰염치도 있었다 .

 

정신없이 바쁘던 8월의 어느날 ,,,,,,,,, 2차 재판이있었다 .

왠지 모르게 무서웠는데 엄마가 전화가 와서 독이 바짝 올랐으니 같이가자고 했다 .

법원 앞에서 마주치자 지난번 같지않게 엄마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

판사가 증인이 왜? 없냐고 묻기에 사실대로 얘길하면서 누가와서 증인을 서주려 하겠냐고

애원을 했고 우리엄마는 화가나서 구구절절 떠들어 대고 있었다 .

듣고 있던 판사가 3차재판을 일러주며 그날 다시 오라고 말했다 .

법원을 나오는데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내게 달려 들더니 강제로 나를 질질 끌고 가려고

하면서 내손으로 죽여버리지 이혼은 없어 라며 눈을 희번뜩였다 . 엄마가 달려 들더니 나를

떼어놓으며 법으로 하자고 소리치자 법좋아하네 라는 말과함께 주먹이 날아왔다 .

 

10년전엔  천하장사였던 아줌마가 이젠 늙었는지 주먹한방에 나둥그러 지면서 흙투성이가

 되었고 입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 " 날죽여라 이놈아 " 하며 매달리더니 다급한 목소리로

" **아 도망 가거래이 빨리 이놈한테 잡히지 말고 잡히믄 끝장 이데이 " 하며 죽자사자

붙들고 늘어지고 있었다 . 아무래도 오늘은 작정을 한것같은 행동에 공포가 스치며 도망을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 흙투성이 위에서 엄마의 하이얀 모시옷이 흙과 피로 얼룩지는데

나는 죽어라 뛰면서  도망을 쳤다 .

 

택시를 타고 제천까지 타고와서 버스를 갈아타고 앉았는데도 가슴이 좀체 진정이 안됐다 .

엄마가 얼마나 다쳤는지 어디를 다쳤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무서워서 전화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 늦은 저녁 11시 전화가 왔다 .

철암병원에서 진단서를 떼었는데 4주가 나왔단다 . 구속을 당하던지 아니면 구속대신

이혼에 합의하라고 도장을 찍어주라고 할테니까 걱정말란다 .  요번에 쫌 맞긴는 했지만

그새끼 요번엔 제대로 걸렸다며 의기양양 하셨다 .

얼마나 아팠을까 ?? 아~~ 우리엄마 또다시 딸의 행복을 위해서   이한몸 기꺼이 버리셨고

불굴의 의지로 온몸으로 맞서 이기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