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촛대바위.
넓지 않은 백사장에 모래알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다.
영화 촬영 스태프에다 구경군에 기자까지...
태양군과 차에서 내려 기지고온 물건을 내리고 있는데 어디선가 대성이 목소리가 들렸다.
"대성아. 어. 얼굴이 좀 탔네.."
대성이를 발견한 내 목소리가 한톤 높게 나갔다.
"은수정씨는 대성이만 보면 그렇게 좋은가 봐요. 대성아.. 아구.. 목소리가 저기 하늘꼭대기까지 올라가네요."
어? 그랬나?
그런데 좀전에 목소리는 내가 봐도 좀 심하게 높은것 같았다.
대성이는 별 말 없이 눈인사를 건네로 짐을 들어 옮기는 것을 도왔다.
항상 현장에서 나는 걷도는 기름같았다. 그리고 박용준기자회견 이후 그런 현상은 더욱심해졌다.
내 뒤에서 수근수근 흘긋흘긋 대면서도 나와 눈이 마주치면 돌아서서 일하는 척 하는 것고, 대성이가 없으면 하루 종일 현장에서 입을 열 일도 거의 없었다.
" 뭐 간식거리 안사왔어요? "
짐을 다 옮긴고 대성이가 빈 트렁크 안을 보며 아주 아쉬워 하는 얼굴을 보였다.
현장 사람들은 항상 배고프다. 식사를 제때 하지도 못하고, 또 항상 먹을 것이 부족한 곳이기 때문에 먹을것에 대한 갈망을 더한것 같다.
"형님. 이거 안들어 주면 안줘요."
태양군이 뒷자석에서 단풍빵박스를 꺼내자 대성이가 폴짝 뛰며 태양이 옆으로 가서 갑자기 귀여운 곰인형인양 애교를 부린다.
"역시 우리 태양이야. 태양처럼 정렬정이고 태양처럼 뜨겁고... 우리태양.. 영원한 우리의 태양..."
대성이가 저런 아부성 맨트를 할줄 아는구나.. 너무 귀엽다.
빵 냄새가 나는지 한두명씩 스태프들이 모여들었다.
열 박스나 사왔지만 단풍빵이 사라지는 데는 고작 10초 정도의 시간만이 필요할 뿐이었다.
단풍빵을 입에 문 사람들 사이고 나는 천처히 촬영장을 돌아보았다.
아!..
오늘은 주인공 가족의 바닷가 여행 씬을 찍는구나..
엄마 아빠옆에서 모래장난을 하는 두 아이.
두 여자 아이는 고운 공주 옷을 입고 옷이 더러워질까 모래위에 앉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있으니 감독님 불호령이 떨어졌다.
아이의 엄마로 보이는 두 여자가 아이들에게 달려가 뭐라뭐라 하고 모래위에 주저 앉히지만 아이들 표정이 똥 밟은 표정이 되었고, 결국 감독님은 10분후 다시를 외쳤다.
사랑이 소망이는 바닷가에 데리고 가면 바로 모랫속으로 들어가 굴파고 성쌓고 잘 노는데.. 자기 키만한 모래성을 쌓는 사랑이 솜씨는 정말 훌륭한다...
두 아이엄마는 속이 타는듯 아이에게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지시를 하고 있었지만 두 아이는 전혀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두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홀린듯 끌린듯
"자 이거봐봐..."
나는 사랑이가 했던것 처럼 바닷물과 모래를 같이 두 손 가득 잡고 물을 똑똑 떨기며 모래성을 지었다. 뚝뚝 떨어지는 물은 기기묘묘한 모양의 바위에 되어 모래성 위에 떨어져 기하학적이 모래성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두 아이는 신기한듯 나를 따라서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모래를 펐다.
" 야.. 된다.. 된다... 예린아 내꺼봐... 이쁘지.."
" 언니봐. 내께 더 이쁘다..뭐.. 엄마.. 엄마.. 이거 내가 했다."
두 아이는 모래놀이에 푹 빠져 버렸다. 사랑이 소망이 처럼..
아참...
대성이 눈치에 얼른 나는 그 자리를 피했다. 어느새 감독님이 샷 들어갈 싸인을 하고 있었다. 두 아이가 자연스럽게 노는 모습에서 바로 촬영을 들어가려던 것이었다. 쪼로록 빠젼온 나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어.. 낮익은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설마..
그사람이?
두 아이와 함께 있는 엄마 아빠. 그리고 그들에게 다가가는 한 남자의 걸음걸이가 내가 아는 누군가와 많이 닮아있다. 박용준 그 사람이!!!
"저랑 같이 가실래요?"
어? 돌아보니 대성이가 있었다.
"숙소에 가서 필요한 것좀 가져오려고요. 같이 가실래요?"
대성이는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 등을 밀어 차에 태웠다. 내가 잘못본것인가? 내 눈은 계속 촬영장을 향하고 있었지만 사람들 숲에 가려 더이상 그 남자의 모습은 볼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