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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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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몽


BY 현정 2009-10-08

거진 2주만에 나가는 현장이다.

양평에서의 촬영은 마무리 되었고, 촬영장은 강원도 삼척의 한 바닷가로 옮겨져 있었다. 내 시나리오 속의 배경은 속초였지만 삼척시에서 적극적인 후원을 한 덕분에 장소는 삼척으로 옮겨졌다.

나는 차라리 삼척으로 옮겨진 것이 더 좋았다. 속초는 아직 껼끄럽다.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고, 또 아직 남편이었던자. 그리고 아이들의 아빠였던자가 그곳에 있기 때문에 스치는 바람결에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아이는 다시 24시간 어린이집에서 1주인간을 보내야 한다. 속초에서나 서울에서나 아이들과 규칙적으로 헤어지고 규칙적으로 만나는 삶을 꿈꾸지만 그것은 항상 꿈으로만 그치고 만다.

용준씨는 기자회견이 있던날 이후 단 한번도 전화도없고 찾아오지도 않았다.

아저씨를 기다리는 사랑이 소망이는 가끔 전화를 해보지만 항상 전화를 받을수 없다는 안내에 시무룩하게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엄마. 아저씨 나빠. 약속 안지켜. 같이 놀이공원가자고 하고, 아저씨. 나빠. 미워."

입을 삐죽거리고 제법 닭똥같은 눈물까지 뚝뚝 흘리는 소망이를 조금 더 큰 사랑이가 달랜다.

"자꾸 울면 아저씨 안오신다. 뚝.. "

이 아이들에게 박용준이란 사람이 얼마나 차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빠란 자와 떨어지고는 단 한번도 보고싶다는 말은 커녕 아빠라는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던 아이인데......

대성이는 최대한 시간을 쪼개서 아이들과 놀아주지만 아이들에게는 대성이는 그냥 오빠일 뿐인듯 보였다.

어른에게 갖추는 예의나 어려움을 두 아이가 대성이를 대하는 모습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박용준.

그사람이 우리에게 보여주던 모습이 정말 동정이었을까?

나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동정 아니면 뭐야?

꽁..

내머리를 내가 쥐어박았다.

꿈도 작작 꿔라.. 뭔 터무니 없는 상상을 하는거야.

넌 지금 이혼소송중이야. 이혼이 된것도 아니고. 그리고 그런 상상할 시간도 없어. 두 아이 데리고 이혼녀라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살아야 하는거야. 깨.. 몽...

"안아파요? 그렇게 세게 때리면.."

참.. 지금은 스테프차를 얻어타고 삼척가는 중이었지..

이 사람이 얼마나 웃겼을까? 혼잦말 하고 혼자 머리 쥐어밖고.. ㅎㅎ 완존 머리에 꽃만 꽂으면 되는 거네...

"은 수정씨. 보면 되게 엉뚱한데 있어요.."

"네???"

"은수정씨 보고 있으면 안에 거대항 불덩어리가 있는 사람같아요. 아직 터지기 전의 마그마를 안고 있는 화산처럼요.."

조감독 현태양씨.

검은 태양이라고 내가 놀리던 아주 젊은 심부름꾼..

감독을 꿈꾸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바로 영화판으로 들어가 몸으로 배우는 중이란다.

들리는 소리는 아버지가 우리나라 유명한 영화제작자라고 하는데 영화를 제대로 배우라고 바닥부터 체험하라고 하셨단다. 그 아버지 누군지 정말 존경스럽데. 제작자라면 돈이 아주 어마어마하게 많은 텐데..

태양군이 지금은 그나마 조감독이란 타이틀이라도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영화현장에서는 심부름꾼에 잡일꾼이다. 지금 이바닥에 들어온지 벌서 6년째인데도 이정도니 6년전 모습은 미루어 짐작이 될 지경이다.

현태양.

검은 태양처럼 지금 당장의 화려함이 아니라 안에 감추어진 거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는자.. 그런 느낌이다.

그런데 참 뭐라고? 나를 화산이라고?

"은수정씨보다 나이는 제가 한참 아래 조카벌이 되지만. 이 곳 현장밥은 제가 선배에요."

어라..

뭔 서론이 이리 길어?

"충고라고 생각하시지 말고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말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차가 시원스레 영동고속도록를 달리고 있었다. 시즌이 아니라 오가는 차는 별로 없고 가끔 활어차가 뿌려놓은 물기만이 이곳에 차가 다녔던 흔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영화는 복권이 아닙니다. 영화는 내몸보다 많은 양의 땀과 눈물, 그리고 영감, 마지막으로 1%의 운이 있어야 성공할수 있는 곳입니다. 은수정씨가 영화산업으로 뛰어든 이유가 단순히 돈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세요.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사람이 훨씬 많고 또 실패하면 도저히 끝을 알수없는 낭떠러지도 떨겨 버리는 곳이 이 바닥입니다. "

이게 무슨 말이지?

너무 어려워..

복잡한 머리는 항참을 엉크러진채 뒤로 가는 태양을 비고 있었다.

횡성휴게소에 차를 멈춘 태양씨는 한우 설렁탕을 주문했다. 아침에 서둘러 출발하느라 아침을 못먹긴 했어도 한우 설렁탕이라.. 좀 비싸다. 주머니 안에 돈을 조물락 조물락 만지며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주문한 태양이가 미웠다. 부잣집 아들 아니랄까봐 .. 이런데서 꼭 샌다닌까...

"여기요."

주문하고 바로 돈을 지불하는 태양이 옆에서 자포자기 한숨을 내쉬고 만원짜리 두장을 내밀었다.

"오늘은 제가 쏠게요. 횡성이 한우로 유명하다길래 먹고 싶어서 제가 들어왔으니 제가 사야죠."

태양이 말에 두번도 더 말안하고 나는 얼릉 돈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잘 먹을게요."

내가 왜이리 가증스럽지?

아줌마니까.

그래 아줌마.

한국에는 세종류의 사람이 살고있다. 남자, 여자 그리고 아줌마.

아줌나는 여자도 남자도 아니니 신인류다.

ㅎㅎ

분명 양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설렁탕 한 그릇에 밥까지 꾹꾹말아 깍두기 국물 쭉 넣고 박박 긁어 먹었다. 뚝배기는 그대로 다시 선반에 올려도 될만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이 참 간사한게.. 배부르니 기분이 좋아진다.

아까 태앙이가 했던말이 무엇인지. 내가 왜 기분나빠 했는지도 다 잊어버리고 그냥 기분이 좋다..

신고산이.. 우루루루루... 화물차 떠나는 소리에...

좋다..

배부르고 등따시면 쵝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