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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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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분수(5)


BY 둘리나라 2007-09-16

 

남편은 배도 타지 않고 하루 종일 술에 절어 지냈다. 마을에는 별의별 소문이 바람을 타고 골목마다 이야기를 만들며 겨울바람에 날리는 마른 낙엽처럼 스산하게 떠돌았다. 그렇게 착하던 도식이가 인간 폐인이 된 건 마누라가 딴 놈과 바람이 났거나, 마누라에게 숨겨둔 자식이 있었거나, 워낙 색골이라 감당을 못해 밤이 무서워서 이거나, 도식이가 고자라 마누라가 사람취급을 안 하기 때문일 거라고 쑥덕거렸다.

나중에는 맞아도 싸다는 결론을 자기네들끼리 내리고는 은근히 우리의 싸움을 구경하며 대리 만족을 취했다.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제일 재미있다고 하는 말이 달리 생겼겠는가. 나서서 싸움을 말리는 사람은 없어도 맞고 난 다음날이면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마을 전체가 나와 남편을 안주삼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씹어댔다.


“마누라가 큰 잘못을 저질러 맞을 짓을 했기에 도식이가 때리는 거다. 그러니 대꾸한번 못하고 때리는 대로 맞는 거지. 요즘 같은 세상에 맞고 살 여자가 어디 있어. 다 이유가 있지. 암!”


믿지 못할게 인간이라더니 영덕댁이 더 나를 욕하고 다녔다. 어려웠을 때 진심으로 나를 보살펴 주었기에 이모처럼 믿고 따랐는데 어이없게도 등 뒤에 비수를 꼽았다. 인간에 대한 배신은 다시는 당하지 않으리라 철통같이 다짐하고 마음에 자물쇠를 채웠는데 …….

폭력에 길들여져 사람들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살아갈 무렵.

마을에는 또다시 흥밋거리의 소문이 꼬리를 물고 집집마다 담을 넘었다. 사람들은 뒤에서 속닥거리며 앞에서는 아무도 내게 귀띔을 해주지 않았다. 남편과 영덕댁이 벌써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고 낮에는 그 집에서 노닥거리며 놀다가 밤에는 밀린 숙제를 하듯 집에 와 나를 때린다는 걸 나만 모르고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모가 그럴 수 있어? 난 이모에게 마음을 다 주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모라니 난 믿을 수가 없어.”

“야! 서방을 속이고 살아온 니 보다는 쪼매 덜한 거 아이가. 우짜겠노. 이왕 이리된 거 그만큼 속이 상하믄 어디로 가라모. 그라믄 되재.”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그녀는 자신의 정당성을 큰소리로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얘기하고 있었다.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 풀리지 않는 실타래를 가슴에 안고 있다 해도 지금처럼 기가 막히고 답답하지는 않으리라. 어떻게 이런 일이 또다시 나의 발목을 잡는단 말인가!


‘미친년 .이러고도 살고 싶니?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있니. 더는 나쁜 꼬락서니 보지 말고 눈감아버려. 그게 너를 위하는 길이야.’


삶을 포기하려고 머릿속을 정리하니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하고 편해졌다. 아무 미련 없이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영혼의 자유를 얻는 게 훨씬 쉬운 선택임을 조금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게는 그 또한 사치였다. 왜 신은 단 한 번도 내편이 되어주지를 않는지 이제는 저주의 말을 쏘아낼 힘도 남아있지 않은데 어쩌라고 어쩌라고……지지리도 복도 없는 년 뱃속에 작은 씨앗을 심으셨단 말인가!


“계집애니 영아라고 해!”


남편의 일방적인 통보로 아이의 이름은 ‘영아’가 되었다. 아이가 조그만 입을 오물거리며 젖을 빨 때는 온몸이 감전된 듯 저려왔다. 품에 안겨 졸린 눈을 비빌 때면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사랑스럽고 좋았다. 내 몸에서 이렇게 예쁜 아이가 나올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뺨을 만져 확인해 보고 숨소리를 들어 보았다. 뽀얗게 살이 올라 손가락을 빨며 잠이 든 모습은 천사가 따로 없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영아’는 살아갈 이유와 희망이 되어 주었다.


‘너를 위해서 나는, 이 엄마는 사는 거야.’


요즘 들어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아이의 얼굴만 봐도 까닭 모를 방울들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강해야 했다. 엄마가 되었으니 모질고 독하게 이를 악물고 살아야 했다. 그런데 생각대로 되지 않으니 가난하고 못난 어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우는 일밖에 없었다. 남편은 아이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태어난 생명이니 죽일 수가 없어 그래도 아버지라고 술을 사고 남은 잔돈 부스러기를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다른 집 아이들처럼 예쁜 옷도 사주고 싶고 장난감도 사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만 마주치면 생글거리는 딸아이는 옹알이를 하며 품에 안겨들었다. 가슴이 미어지는 게 이런 거구나.

자꾸만 흐려지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서러움 한 덩이가 목에 걸렸다.

동네 어귀의 구멍가게에서 소주 한 병을 샀다.

바닷가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자꾸만 뒤로 쳐졌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바다는 짙은 외로움이 융단처럼 깔리고 있었다. 백사장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소주를 한 모금 마셨다. 목을 타고 뜨거운 불덩어리가 쑥 내려가며 숨이 막혔다. 오랜만에 마시는 술이라서 그런지 금방 취기가 올랐다. 아버지의 얼굴이 안타깝게 스쳐가고, 엄마의 얼굴이 괴롭게 스쳐가고, 남편과 영아와 영덕댁이 애처롭게 스쳐갔다.

두 모금 세 모금 입안에 소주의 독한 기운이 퍼지며 백사장이 희뿌옇게 흐려졌다. 허허로웠다. 가슴에 구멍이 나버렸는지 ‘휘 이이’ 바람 새는 소리가 파도소리와 어울려 귀신울음소리를 냈다.


“영아는 영덕댁과 내가 키울 테니 넌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 그게 네가 사는데 훨씬 편할 거니까. 영아도 커서 너 같은 년이 엄마란 걸 알면 얼마나 실망하겠냐. 안 그래?”

남편은 내게서 아이를 뺏어가려 했다. 간도 쓸개도 없는 년이라 동네 사람들에의 입방아에 오르며 손가락질을 받아도, 남편의 발길질에 몸과 마음이 갈가리 찢겨 만신창이가 되어도, 일방적인 성의 배설기구가 되는 수치심과 모욕감이 먹구름처럼 휘몰아 닥쳐도 영아만 생각하면 심호흡 한번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내게서 아이를 뺏어가려 하고 있다.  그 말은 죽음을 선택하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어둠 속에서 등대가 아이의 눈빛처럼 반짝거렸다.

난 왜 이 지겹고 끔찍한 삶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것일까. 떠날 마음만 있다면 살짝 영아를 안고 어둠 저편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가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도 아닌데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업연의 사슬을 억지로 만드는 건지 나를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담배에 불을 댕겨 물었다. 비린내가 입 안 가득 퍼지며 구역질이 났다. 아 지겨운 비린내. 어쩌면 나라는 년은 이 냄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운명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일순간 들었다.


“이사 가자. 내일 영덕 댁으로 옮길 거니까 짐 싸!”


남편은 오늘도 그녀의 방에서 밥을 먹었다.

이사를 들어가면서부터는 아예 드러내놓고 둘은 함께 생활을 했다.


“이제부터 형님이라고 불러. 그게 싫으면 어디로든 떠나. 잡을 사람 없으니까.”


참 지독히도 모진 사람이었다.

남편과 나는 전생에 어떤 관계였는지 궁금해졌다. 얼마나 내가 전생에 못되게 굴었으니 이렇게 가슴 아픈 일을 당하는데, 제대로 소리한 번 질러보지 못하고 주인에게 길든 개처럼 복종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더욱 이상한 건 남편을 보고 있으면 시려오는 가슴이었다.

발끝에서 머리까지 타고 오르는 아릿한 감정을 어쩌란 말인가. 이미 가슴시린 사랑을 알아버린 영혼은 죽어가는 육체를 그냥 쳐다만 보았다.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양분화 되어가는 영혼과 육체는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는 무뇌아를 만들어 놓았다.

나 김 연희는 남편인 강 도식을 떠나서는 죽음도 사치가 되는 절체절명의 길 위에 톱니바퀴를 내려다 놓은 것이었다.


두 사람이 먹다 남긴 밥과 반찬으로 허기를 겨우 면하고 남편과 영덕댁이 영아를 데리고 노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밖으로 나왔다.

방안에서는 간드러진 웃음이 시작되더니 뒤따라 신음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들으라는 듯 더 크게 발악을 하는 둘의 오르가슴은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포르노비디오였다. 대문 밖까지 따라오는 얄미운 신음은 달빛에 부셔지며 은빛 비늘이 되었다. 엄마와 전 남편이 두 사람의 쾌락의 신음위에 겹쳐지며 비위가 상했다. 생선처럼 벌떡거리는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비늘들이 가시가 되어 심장을 공격해왔다.

인적이 끊어진 백사장은 추수를 마친 가을 들판처럼 허전하고 을씨년스러웠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향해 천천히 담배연기를 내뿜어 보았다. 바닷바람에 흩어진 연기는 하늘로 높이 승천을 했다. 재만 남겨놓고 떠나는 길이 미련도 후회도 없기를 …….


“당신이라는 사람, 때릴 때는 언제고 나랑 그 짓이 하고 싶어요?”


탄식처럼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남편은 가소로운 표정으로 비꼬듯이 말했었다.


“웃기고 있네. 너랑 하고 싶으냐고? 넌 단지 나의 배설물을 받아들이는 욕구 충족의 대상이야. 넌 자존심도 없냐? 쓰벌. 맞아가면서도 너라는 인간은 내가 할 때 마다 다 느끼던데. 인간아,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주제를 알아야지. 야, 너 분수가 왜 분수인 줄 아냐?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순리인데 분수도 모르고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니 분수인 거야. 분수 좀 알아라. 분수! 흐흐흐.”


내 몸 위에서 배설 작업을 하던 남편이 분수 얘기를 했었다. 순간, 형광등 불빛아래 방안 전체에 물이 차며 세차게 천장으로 치솟아 올랐다. 분수에서 떨어지는 물이 벌거벗은 몸 구석구석 애무를 했다. 가슴시린 사랑이 산산이 깨져서 방울방울 감은 두 눈 사이로 떨어져 내렸다. 눈을 뜨기가 두려웠다. 눈을 뜨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는 분수를 보게 되는 것이 싫었다. 남편의 말대로 난 분수였으니 말이다.


‘이 남자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화장실의 변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머릿속은 너무나 이성적인 판단을 내려놓고서도 성(性)에 길들여진 어쩔 수없는 나는 한숨 같은 신음을 참지 못하고 연거푸 내뱉었다. 인간의 말초적인 본능에 진저리가나고 몸서리가 쳐져 입술에 피멍이 들도록 깨물었다. 그러나 몸속을 뚫고 가는 형언할 수없는 짜릿함에 등이 활처럼 휘어졌다. 주체가 안 되는 혼미한 신음이 최고조의 클라이맥스를 찡하게 울리며 조금씩 사그라졌다.

땀으로 젖은 육체가 잠시 나가있었던 영혼을 불러들이자 굴욕감과 치욕스러움이 일순간에 세포들을 차갑게 식게 만들었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엄마가, 전남편이 그리고 영덕댁이, 영아가, 지금의 남편이 알몸으로 분수 속에서 뛰어다니고 있었다.

코끝에서 비린내가 났다. 사자가 초원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물고 뛰고 있고, 내장이 없는 물고기가 꼬리를 힘차게 저어 헤엄을 치고, 바다 속에서 분수가 하늘을 향해 용암이 분출하듯이 솟구치고, 나는 식어가는 오르가슴을 두 팔로 안으며 터져 나오는 눈물과 하염없는 넋두리를 서럽게 서럽게 목이 쉬도록 쏟아냈었다.


스쳐가는 바람이 등을 다독거리며 소주병위에 앉아 위로의 말을 건넸다.


‘너만 외로운 것이 아니야. 사람은 누구나 외로운 거야. 그래도 넌 사랑을 알았잖니? 세상에는 사랑을 앞에 두고도 모르는 청맹과니들이 얼마나 많은데. 분수가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건 분수를 몰라서가 아니라 분수를 모르고 사는 지랄같은 세상에게 보내는 우문현답 같은 거란다. 용기를 내.’


소주병 안으로 들어간 바람은 취했는지 나오지를 않고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나는 바람이 전해주는 얘기를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모래위에 누워 병을 가슴에 안았다.

별도 달도 등대도 오랜만에 은근하게 취해 바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경청하고 있었다. 눈이 감기며 목이 아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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