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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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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완전범죄 (3)


BY 둘리나라 2007-09-16

 

Ⅲ그 남자. 그와 그녀를 말하다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게 별일 아니라는 듯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여보 걱정하지 마 용기를 내. 당신은 다시 일어 설 수 있을 거야.”


회사에 책상이 없어지며 동료의 측은한 시선을 뒤로하고 집에 왔을 때 등을 두드리며 술상을 마련했던 사람이었다. 두 달도 못 가 도망가 버릴 년이 입은 살아서 잘도 지껄였다.

어떻게 정리를 했기에 먼지만 달랑 남기고 떠날 수 있는지 아내의 용의주도함에 혀가 내둘러졌다. 텅 빈방에서 술병의 개수를 늘려가는 작업을 하는데 집주인이 찾아와 내일까지 방을 비워달라며 혀를 끌끌 찼다.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위 속에 저장되었던 소주들이 밖으로 한꺼번에 밀려나오기 시작했다. 변기에 고개를 쳐박고 돼지 멱따는 소리를 내며 뒤틀린 배를 움켜잡았다. 그랬더니 눈물 벌레들이 눈 밖으로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눈물샘에서 소금기를 먹고 자라던 벌레 수백 마리가 약속이나 한 듯이 쏟아져 나와 뺨 위를 지나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다. 텅 빈 집안에 눈물 벌레소리가 처량하게 울려 퍼져 무섭기까지 했다.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더니 꺼억 꺼억 벌레들이 하나씩 둘씩 시체가 되어 쓰러졌다. 어깨가 끊어질듯 아파왔다. 어지간히 힘을 줘서 장례식을 치렀나 보다.

상주의 예를 다하고 흐트러진 옷을 바로입고  거리로 나왔다.


어둠이 깊어가는 거리에 네온사인 간판들이 화려한 치장을 하고 사람들의 걸음을 붙잡고 있었다. 술에 취한 몇 명의 회사원이 2차를 부르짖으며 곁을 지나갔다. 마른 낙엽 냄새가 났다.

그들에게는 수분기가 빠져 손에 쥐면 바스러져 바람에 날아가 버리고 마는 가슴들만 있는 걸까. 사람의 냄새가 나지 않았다.

목을 걸걸하게 만들던 메마른 바람이 방향을 바꾸어 남자의 가슴으로 몰아쳤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어 담배를 찾았다. 라이터만 손에 잡힐 뿐 담뱃재도 없었다. 긴 한숨이 허공에 뿌려지며 입가에 쓸쓸한 웃음이 매달렸다. 끝이 보이지를 않았다.

어둠의 지배자여. 고유한 신의 영역이여. 절망의 애원이여. 담배의 짙은 연기여. 너를 찾으려 거리를 헤맨다. 뻥 뚫린 머릿속에는 니코틴의 도움이 간절히 필요했다.


얼마를 걸으니 여자의 뽀얀 분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게 했다. 스물 다섯 여섯쯤의 여자둘이 뭐가 그리도 즐거운지 호호거리며 걸어오고 있었다. 흐릿한 눈으로 보니 꼭 향수병 두 개가 다가오는 듯했다. 발정기의 남자들을 미치게라도 하려는지 머리에서 발끝까지 향수병을 뒤집어쓰고 매혹적인 향을 사방에 뿌려댔다.

달려가서 마개를 열어버릴까. 남자는 여자들의 빨간 입술을 바라보며 향수병 마개를 떠올렸다. 진한 살 냄새가 스쳐가며 다리의 중심에 힘이 들어갔다.


‘쓰벌, 이 상황에도 사내라고 그 짓거리할 생각이 나냐? 미친놈!’


걸음을 빨리해 골목에 들어서서 바지 위로 불쑥 솟아오른 멍청한 자신의 근육덩어리를 꼭 잡고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잠에서 깬 가로등이 불청객의 방문에 놀라 눈만 껌벅대고 바람은 ‘휘 이이’ 슬픈 휘파람 소리를 내며 골목을 돌아들었다.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살펴 꽁초를 주워서 불을 붙였다. 얼마 남지 않은 길이의 담배가 빨갛게 타들어가며 목으로 연기덩어리가 뚝 떨어졌다. 가슴이 진정이 되며 힘이 들어갔던 그곳에 조금씩 열이 식으며 근육이 풀어졌다.

한사람의 인생이 찰나의 시간에도 변할 수 있다고 누군가가 귀띔이라도 해주었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닥에 떨어지는 담뱃재를 쳐다보며 그는 재보다 못한 자신의 처지를 깊은 한숨으로 뱉어냈다. 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그 남자는 실패자였고 어디에도 몸을 누일만한 곳이 없었다. 반겨줄 곳은 더더군다나 없었다.


당장 잘 곳이 필요했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털어 PC방에 들어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여자들과 얽히고설키는 관계를 맺게 된 것이.

채팅 창에서 몇 번 대화를 주고받으면 여자들은 자기의 속마음을 다 보여주고 관심 있게 들어주는 척하면 만나기를 먼저 원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여자들은 정에 굶주려 있었고 작은 관심에도 고마워하고 의심의 눈길을 단 한 번도 보내지 않았다. 사랑을 받고 싶어 하는 외로운 가슴을 가진 육체적 본능의 암컷이었다. 그러니 만나면 자연스럽게 육체의 대화로 이어졌고 생활이 쉽게 해결되었다. 용돈이며 옷이며 밥까지 여자들의 지갑에서 나왔다. 처음에는 그만큼 간단하게 모르는 사내에게 뱀 허물 벗듯 옷을 벗는지 황당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펀지가 물에 젖어가듯 모든 것이 익숙해졌다. 그리고 요령도 생겼다. 참 살기편한 하루하루였다.

힘들게 일하지 않아도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데 왜 땀 흘려 일하고 집에 가서는 아내에게 머슴취급을 받으며 빌빌거리는지 우스웠다.


“사내는 그저 물건 하나만 튼튼하믄 밥묵고 사는기라. 여자들 겉으로는 똑똑하고 도도한척해도 벗겨놓고 보면 똑같은 기라. 사흘에 피죽 한 그릇 못 먹은 힘쓰는 신랑하고 그 짓거리 하다가 진짜 힘 있는 놈 만나봐라 정신 뺑돌았뿐다 아이가. 어쨌거나 남자는 그기 좋아야 한다카이. 요즘은 삼십대도 고개 숙인 남자가 많다 안카나.”


술자리에서 친구가 웃으면서 농담처럼 했던 말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남자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뜨이며 살아가는 방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공생하고 즐기며 편하게 사는 걸 택했다.


이 진숙. 그녀는 배고픈 아이가 엄마의 젖을 보채듯 끊임없이 성(性)의 환희를 요구해왔다.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불이었다. 금방 온몸으로 불길이 솟아올라 활활 타버려 재만 남아 버릴 듯 자신을 활활 태웠다. 뜨거운 입김을 방안가득 채워가며 절정의 꼭대기에서 불씨를 남기고 사그라졌다.

물이었다. 퍼내도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우물처럼 온몸에 정욕의 물이 흘러넘쳤다. 손끝만 닿아도 흥분해 신음을 토해내며 미친 듯이 매달리며 색기가 줄줄 흐르는 촉촉이 젖은 눈을 사르르 감았다.

오르가슴의 오아시스는 언제나 사막 위에서 제 역할을 충실히 다 해냈다. 갈증도 적셔주며 휴식도 제공했다. 그녀에게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오로지 남녀의 결합으로 느끼는 희열이 전부였다.


그녀의 집에 온지 6개월이 다되어 갔다. 이제는 주인인지 손님인지 구분이 가지를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해주는 밥 먹고 놀고 있는 나와 회사에서 뼈 빠지게 일하고 저녁에나 들어와 얼굴 비치는 남편 중에 도대체 누가 진짜 그녀의 남편인지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처음 그녀의 남편과 인사를 하던 날.

의심의 눈초리가 순간적으로 스쳐가는 걸 놓치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쌓은 노련한 경험으로 태연하고 능청스럽게 속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같은 수컷의 본능이 살아나며  남편에게 조금은 미안함이 들었다.

핏기없는 그는 언제나 산송장처럼 아내를 바라보았고 이내 눈길을 거두어 들이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의 담뱃재는 신기하게도 언제나 밑으로 쳐져있었다. 연기조차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밑으로 가라앉았다. 불가사의한 현상이었다.


그 남자는 스스로 다짐을 했다.

당신의 복수를 해 주마하고. 그렇게도 아내에게 진정한 남자로 대우받고 싶었던 마음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안타까운 심정을 내가 대신해 주겠노라고.

아내의 몸 위에서 늠름한 남자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내가 대신 느껴주겠노라고. 철저히 성의 노예로 만들어 주겠다고. 그게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된다면 …… 힘을 잃은 당신의 중간다리에 조금이라도 자극이 된다면 기꺼이 하겠노라고!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 어찌 보면 자신의 파렴치한 행동을 정당화시키려는 일종의 최면술이었다.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불어보면 백이면 백 모두가 얼굴에 침을 뱉거나 돌을 던질 것은 자명한일이 아닌가. 남자는 타협을 한 세상에 싸움을 걸기 싫었다. 어차피 세상은 그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녀가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남자는 여자의 몸 위에서 춤을 추었다. 때로는 왈츠를, 때로는 탱고를, 가끔은 블루스를, 변화를 위해 살사를 추었다. 리듬을 타고 있노라면 그녀의 교성위로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더 격렬하게 열정적으로 움직이면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려왔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그녀는 남편이 늦는다며 수화기를 놓았다.


“우리……지금까지 안 들킨 거 같지? 정말 스릴 있다. 그 치? 자기랑 나랑은 완전 범죄를 하고 있는 거야. 호호.”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가슴을 울려대며 머릿속에 ‘완전범죄’라는 단어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빠르게 돌아다녔다.


‘사실 너를 이용하고 있는 거야. 너라는 여자를 사랑할 만큼 가슴이 따스하지 않거든. 생각해보면 우리는 서로서로 속고 속이고 있는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는 완전 범죄를 꿈꾸는 청맹과니 인지도 몰라.’


남자는 그녀의 몸 위에서 다시 본능의 움직임을 시작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땀이 등을 비집고 나와 신음을 해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쾌감의 절정에서 암컷의 발정을 쉼 없이 뿜어냈다.


언젠가 회사에서 새벽 등산을 간 적이 있었다.

어둠에 숨어 형체만을 겨우 드러낸 산에 하얗게 길이 나있었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도록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조심스럽게 걸었다. 새벽이슬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며 풀들에 팔이 부딪히고 발이 닿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기차소리가 났다.

산꼭대기에 올라갈 때까지 규칙적으로 이어지는 칙칙폭폭 소리는 세포마다 새로운 기운을 넣어주었다.

남자는 인간의 삶도 기차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놈은 기차가 달릴 수 있게 하는 레일이고 인간은 기차가 아닐까 라는……. 삶은 인생의 레일을 정확하게 깔아놓고 도착점까지 무사히 가기를 원하는데 인간이라는 기차는 가끔 탈선을 하고 사고를 낸다. 또 정해진 레일 위를 달리기보다 다른 레일 위를 달리기를 꿈꾼다. 혹 그쪽은 다른 종착역이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말이다.

그 남자의 기차는 탈선 중이었다. 남자는 알고 있었다.

여자의 쉴 새 없는 신음의 절반은 기차의 기적소리였다는 것을.

터널을 향해 달려가는 자신의 기차는 이미 끊어진 레일 위에 있다는 걸 너무도 완벽하게 알았기에, 발악하듯 그녀의 몸 위에서 칙칙폭폭 소리를 서럽게 질러댔다. 영원이 멈추지 않을 것처럼.


사랑을 얘기하며 클라이맥스에 미쳐가는 그녀의 눈에 땀이 떨어졌다.

벌레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가며 비명소리를 질렀다. 갑자기 남자의 귀가 찢어질듯 아파 왔다.


‘넌 사랑을 믿니?’

‘글쎄 난 인간의 본능만 믿어!’


마른 낙엽이 향수병이 담배가 재떨이가 뒤엉키며 서로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완전범죄를 꿈꾸는가 보다.

남자의 말초신경 곳곳에 송곳으로 절망이 구멍을 뚫으며, 삶의 어둠이 서서히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남편의 희미한 웃음이 귓가에 슬픈 메아리를 만들며 그녀의 얼굴 위를 스쳐갔다. 남자는 마지막 힘을 다해 기적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토요일 밤이 시간의 저편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게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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