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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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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로 잠드는 바람이여 -1-


BY 데미안 2012-06-18

 

1.

미팅이 있다며 신여사는 일단 돌아갔다.

설은 가만히 준수를 바라보았다.

그가 뉴욕으로 간다는 건 생각하고 있었던 바다.

하지만 갑작스럽다.

 

준수는 당황한 기색의 설을 보며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그의 손이 그녀의 볼을 쓸었다.

[너무 갑작스러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말이다, 설아.  어머니가 너를 사업에 끌어들이는 거 탐탁잖아. 내 욕심이고 내 이기심일진 몰라도 난 온전한 내 아내를 원해. 그리고...]

그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난 내 아이들에게도 온전한 엄마를 주고 싶어. 언제나 나를 반겨주고 안아주는 엄마...]

그의 말에 그녀의 얼굴이 발그래해졌다. 준수가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안다. 유년시절 그와 현수곁에는 항상 엄마대신 유모와 선생이 있었단다.  그렇다고 신여사가 자신들을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준수는  자신의 아이들에만은 엄마의 손길과 사랑을  충분히 느끼고 알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알지?]

[...네]

[네가 하고픈일 하되  그 속에 우리 아이들도 함께이길 바래]

[알아요. 그건 알지만 당신의 말에 어머님이 몹시 섭섭해 하신 거 알아요?]

[그래. 그러나 어쩔수없어. 내가 계속 미적이면  너를 어머니에게 빼앗겨]

[그렇지않아요. 어머님은 저를 옆에 둠으로해서 당신을 옆에 두고 싶어하시는 거예요]

[그것도 알아.  네가 나의 약점임을 아시는 분이야.  너를 빌미로 날 휘두르고 싶어시겠지]

[그게 싫어요?]

준수는  미소지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싫은건 아니야. 어머니께서 왜 그러시는지도 알아. 이제 나이가 드신거겠지. 그래서 아들들을 곁에 두고 싶어 하시지]

[알면서...어머님 맘 상하게 하고 싶어요? 곁에서 힘이 되어 줄 수도 있을텐데...?]

[넌 나와 있는 거 보다 어머니와 있는 게 더 좋아?]

저 소유욕...

그녀는 싱긋 웃으며 그의 찡그린 이마를 손가락으로 폈다.

[아니라는거 알면서...나에겐 당신이 항상 우선이예요. 사랑해요]

준수는 그녀가 웃으며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할때가 좋다.

가슴 정 중앙에 콱 박혀와 정신을 아릿하게 한다.

자신의 여자가 자신을 맹목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낄수 있다는 건 또다른 황홀감이었다.

안고 싶다.

그래서 온몸으로 그 또한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고 갈망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 마음에 준수의 손이 그녀의 얼굴을 감싸더니 가만히 입술을 겹쳤다.

따뜻하고 사랑이 담긴 키스였다.

오후 일정이 잡혀져 있지 않다면 그녀를 데려가 안아버리는건데...

 

[오늘은 뭐 할거야?  일정이 없다면 사무실에  있어도 좋고...]

그녀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오늘 나 바빠요. 엄마한테 들렀다가 시내 나가봐야 해요. 혜지를 만나기로 했어요]

그가 미간을 좁혔다.

[아마도...늦을수도 있을거예요. 괜찮죠?]

[싫은데?]

에?

[몇시에 만나기로 한거야?]

[6시...]

그가 더욱 미간을 좁혔다.

[너무 늦어. 당겨봐. 그리고 차만 마시고 와]

[그런게 어딨어요?]

그녀가 울상을 했다.

[있어. 최대한 빨리  만나서 최대한  빨리 헤어지고 내게 전화해. 데리러 갈테니깐. 알았지?]

잉, 정말...

[친구한테 전화해]

그녀가 얄밉다는 듯 그를 노려보자 그가 그런 그녀를 보며 눈썹을 쓰윽 세웠다.

 

2.

결국 한 시간을 당겨 혜지를 만났다.

설이 먼저 와서 기다린지 5분도 안되 혜지가 휭하니 바람을 일으키며 들어 서더니 다짜고짜 설을 노려보며 씩씩거렸다.

[너어...!]

그런데 곧 문이 열리고 보라색 코트를 멋지게 입은 지원이가 들어왔다.

[내가 불렀어]

아무것도 모르는 혜지였다. 설 또한 굳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건 이미 지난 일이고 그 일 때문에 준수와 자신이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엇으니...어쩌면 지원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말해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냉수를 들이키며 혜지가 입을 열었다. 지원은 팔짱을 끼고는 우습다는 표정으로 상황을 보고 있었다.

[이제 말하려고 하잖아. 미안해]

[미안하다고? 이모님 말씀이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네가 결혼을 했니 어쩌니 하는...!]

[결혼한거야?]

혜지의 말 중간에 지원이 불쑥 끼어들었다.

[홍보팀 언니가 비슷한 소리를 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소리 소문없이 결혼식이라니. 말이 안돼]

[뭬야?  지원이 넌 내가 모르는 뭔가를 알고 있는거야?]

휴...

설은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조심스레, 그러면서 수줍게 반지를 보여 주었다.

혜지와 지원의 눈길이 쏠렸다.

[이, 이게 뭐니?]

반지에서 눈을 떼지 않은 혜지가 물었다.

[딱 봐도 결혼 반지네. 그것도 장혜지, 너와는 격이 틀린 결혼 반지네 뭐. 모르겠니?]

옆에서 지원이 시샘어린 어조로 말했다.

씁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고 마음이 홀가분하기도 했다.

지원은 눈을 들어 설을 보았다.

[어쨌던 축하할 일이네?]

여전히 딱딱한 어조지만 설은 그것이 한지원이 할수있는 마음의 표현임을 알았다.

[고마워]

[이런게 어딨어! 결혼이라니! 무슨 결혼! 너한테 남자가 있기나 했어? 얼마전까지만해도 그런 내색조차 하지 않았는데 무슨 남자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한거니?  너 빨리 속시원히 말하지 못해?]

 

설에게 장황설명을 들은 혜지는 한동안 입만 쩍 벌린채 할말을 잃었다.

[김준수 사장님이 급하긴 급했나보네? 식도 올리기전에 혼인신고부터라?  사장님 답다]

[뭐? 야, 한지원. 너 그 남자 알아?]

혜지가 물었다. 지원이 콧방귀를 끼었다.

[흥. 내가 전에 모시전 사장님이야. 설이가 사무실에 들렀을때 그때 알게 된거고..]

[그럼 나만 모르고 있었단 말이야? 너희들 의리없게스리!]

[오버하지마. 나도 결혼한지 몰랐어]

지원은 새초롬하게 내뱉았다.

 

[사람 인연이라는게 참 묘하네. 한없이 꼬이다가도 또 어느 순간 술술 풀리는 걸 보면. 너 그 남자 소개시켜라? 그렇잖으면 나 결혼식 안 가는 수가 있어. 무슨 말인지 아냐?]

[그래, 알았어]

[너, 학...교는 다시 갈거지?]

지원이 어색한 표정으로 어색하게 설을 보며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소리?]

혜지가 고개를 갸웃뚱했다.

[으응. 혜지야. 교장 선생님이 오해가 풀렸다면서 사표는 없었던 걸로 하고 계속 학교에 남아달라고 연락왔었어]

설은 혜지에게 한지원이 그 메일의 주인공이란 소리를 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무리 혜지와는 비밀이 없는 친구지만 가끔은 몰라도 되는 일이 잇는 법이다. 

미안, 혜지야...

[뭐! 정말? 정말 잘됐다! 정말 다행이다, 윤설!]

혜지가 펄쩍펄쩍 좋아라하며 설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런데, 혜지야..]

[응? 왜?]

[나...학교에 다시 나가지 않을 생각이야]

[뭐라구?]

혜지가  외쳤다. 지원의 눈도 뜻밖인지 동그래졌다.

설은 웃었다.

[다시 번복하기도 그렇고. 너, 미애 알지?]

[알지. 중앙 복지센타 에  있잖아. 걸어다니는 마리아...왜?]

[그곳 장애 학교에 나가기로 미애와 약속햇어. 내가 수화도 할줄 알잖아.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리고..]

나, 뉴욕으로 떠날지도 몰라...

설은 차마 그 말은 할수가 없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충격을 주면 혜지가 어떻게 나올지...겁도 났다.

[뭐...이 기회에 이것 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있고]

[너...그렇게 결심 굳힌거야?]

혜지는 섭섭한 기색을 감추지도 않고 물었다.

[미애한테 한 약속, 그거 지키고 싶어]

[하...진짜 오늘 여러번 놀란다. 너 없는 학교생활 정말 재미없는데...돌아오면 안될까?]

혜지의 넋두리에 설은 피식 웃으며 곱게 흘겨 보았다.

 

3.

그가 왔다.

커피숍 앞에 차를 세우고 그 추운 겨울에 차에 기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훤칠한 외모에  다소 사나운 표정으로 서 있는 그의 모습에 지나는 여자들과 남자들은 감히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헉! 저 남자니?]

커피숍 계단을 내려오면서 혜지가 놀란 눈으로  중얼거렸다.

차갑다 싶은 남자의 표정이 설을 발견하고는 순식간에 표정이 봄햇살처럼 누그러지는 걸 보았다.

[충격. 그 자체다. 저렇게 파워풀하고  동물적인 포스라니... 한지원, 저 남자 몇살이니?]

[서른...다섯이지 아마? 아니, 해가 바뀌었으니 서른 여섯?]

[그래?  나이는 좀 된다마는...저 분위기면  용서할수 있어]

혜지는 얼른 설의 뒤를 조르르 따라 갔다.

가까이서 본 준수의 모습은 더 위엄있었다.

쫙. 째려보듯 그가 자신을 보자 혜지는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강렬한 눈빛이다.

그런데 그 눈빛이 설에게 향하자 눈녹듯 부드러워졌다.

 

준수는 설의 허리에 손을 두르며 자신을 호기심어린 눈으로 보는 혜지의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그래...학교 앞에서 몇번 본 그 여자군...

그리고 준수는 뒤에서 천천히 걸어오는 한지원을 보더니 가벼이 한쪽 눈썹울 치켜올렸다.

한지원이?...하는 눈빛으로 준수가 설을 보자 그녀는 대꾸없이 그저 말갛게 그를 향해 웃었다.

그냥...모른척 해주세요...

 

[김준숩니다]

한지원에게서 눈길을 거둔 준수가 혜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혜지는 떨리는 심정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싶었는데 그가 순식간에 그 손을 놓았다.

[안...!]

[장혜지씨.  맞습니까?]

[어, 예...]

얼덜떨한 상태에서 혜지가 대답을 했다.

[결혼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다음에 정식으로 남편분과 함께 초대하지요. 오늘은 바빠서 설을 먼저 데려가야겠습니다]

[어, 네에...그러세요]

혜지는 멍했다.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를 정도로...

[전화할께. 미안해]

설이 말하기 무섭게 준수는 조수석 문을 열고 그녀를 거의 안다시피하며 태웠다.

[참]

돌아선 준수가 지원을 보았다.

지원의 눈이 흔들렸다. 긴장한 모습이다. 차마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한지원. 당분간 그렇게 긴장하는게 좋을거야...

[한비서]

[네?... 네 사장님]

습관은 무섭다. 얼떨결에 한지원이 사무적으로 대답을 한다.

[다음주부터 본사 김현수사장님 비서실로 출근하시오.  기회를 주지]

마지막 말은 혼잣말처럼 들렸다.

[네에?......]

잘못 들은 것인가... 사표수리가 아니라 김현수 사장님 비서라고? 그것도 본사?.....아니겠지...

설을 태운 차가 저만치 멀어지는데도 지원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아...부럽다..윤설의 남자, 정말 고급이다. 정말 괜찮다~ 윤설. 나중에 두고보자. 내가 둘이 어떻게 만났는지 속속들이, 낱낱이, 빠짐없이 다 캐내고 말거야]

궁금했다. 둘 사이가 참으로 궁금해 죽을 지경으로 혜지는 두 주먹을 불끈쥐며 씨익 웃었다.

[야, 한지원. 가자]

패닉 상태에 있는 지원을 혜지가 툭. 쳤다.

[으응?...응, 그래...]

[아, 윤설은 좋겠다~~ 근데, 불쌍한 우리 선우는 어떡하냐? 이 소식을 알라나 몰라. 알면 상심이 아주아주 클텐데...안되겠다. 선우 불러내서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혜지는 지원의 팔을 잡아 끌었다.

[가자, 한지원. 오늘같은 날은 술을 퍼부어줘야 하는거야]

 

4.

[오랜만에 만났는데]

차안에서 설은 아쉽다는 듯 준수를 보며 투정했으나 준수는 그런 설의 귀를 살짝 잡아당겼다.

아써라,윤설...당분간은 안된다고 내가 그랬지?  네 시간은 내거다...

[밥 먹고 들어갈까?  뭐 사줄까?]

그녀가 운전석을 향해 몸을 반쯤 틀었다.

[말해봐요, 내 시간은 없는 거예요?]

[없긴...내가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너의 시간이다.  그러나 내가 사무실을 벗어나는 순간, 너의 시간은 없어.  온전히 나의 시간이야]

아주 당연한 듯 그가 말했다. 그녀는 기가 찬다는 표정으로 준수를 보았다.

독점...

[그런 눈, 하지마라, 윤설. 여기서 차 세우고 널 잡아 먹을지도 모르니깐]

뜨끔. 한 윤설이 금새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그가 씨익 웃었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그들이 집에 도착한 시간은 9시였다.

[그런데...!]

신발을 벗고 거실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설은 낮에 못다한 얘기를 하려고 그를 향해 몸을 돌리는 순간 그가 그런 그녀를 안아올리며 거칠게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비벼왔다.

힉...

목구멍으로 올라오던 말들이 그대로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놀랄 틈도 없이 준수는 그녀의 여린 입술을 위아래 사정없이 비비며 짓씹었다.

숨쉴틈이 없자 그녀가 헉헉거리며 고개를 저었으나 준수는 떨어질 생각이 없는지 이빨로 그녀의 아랫입숙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 사이로 그녀가 가파른 숨소리를 내뱉았다.

그의 동작이 거칠다.

그는 그녀를 소파 근처에 내려놓고는 순식간에 코트를 벗기고 니트티를 머리위로 벗겼다.

그 바람에 느슨하게 틀어올린 그녀의 머리가 풀려 휘리릭 흘러 내렸다.

브래지어만 걸친 가슴위로 찬기가 돌자 그녀가 부르르 덜었다.

그의 손이 등뒤로 오자 그녀가 한발작 물러섰다.

[씨,씻고...!]

숨가프다. 시작도 하기전에 심장이 벌렁거려 설은 가픈 숨을 몰아쉬었다.

[안돼. 나중에...나중에]

그의 음성이 잠겼다. 곧바로 그의 입술이 다시금 그녀 입술을 찾아 한껏 베어 문다.

그리고 그의 손이 어느새 브래지어를 풀고 탱글탱글 솟아오른 가슴을 한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녀의 떨리는 소리가 그의 입속으로 그대로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