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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난리


BY 정자 2006-08-03

 

 

 

이사오는 것은 다른 곳에서 살던 집에서 나만 이동하는 것이 분명히 아닌데,

나와 네살 박이 아들과 돌이 막 지난 딸애를 업은 채 온 것이 이사라고 말고 없이

한 동안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었다. 어디서 도망오면 죄라도 확실히 저질러놓고 뒷감당 안되니까 나 몰라라 오는 것이지만 쫒겨 나는 것은 집앞에 쓸적 버린 종량제 쓰레기 봉투보다 더 심한 경우를 당한 것이다.

 

얼떨결에 얻은 집 근처동네엔 내 걸음으로 이 십분만 걸어가면 뚝방이 있었다.

표준어로 하다면 둑방이라지만, 사실 거기서 사는 사람들은 뚝방 언저리에 군데군데 잡초처럼 묻혀져 사느라 모두 그런 말보다 뚝방이라고 불렀다. 온 동네에

 생활 하수도관 부터 하천이란 하천은 모두 모이는 가장 낮은 저지대인 동네였다.

우리 동네는 그래서 누가 이사를 오면 여름 한 번 나고 곧장  도망치듯이 얼른 나 가요 인사도 없이 또 이사를 가버렸다. 눈치가 굼뜬 나는 방세가 싸다는 이유로  덜컥 이사를 와서 살아도 누구하나 이런 상황을 친절하게 알려주지 않았다. 비가 오면 모두들 썰물처럼 하나 둘 이불이며 옷가지들을 대충 싸서 높은 곳에 찡겨 못 내려오게 단단히 비닐 끈으로 묽어 놓기도 한 집도 있었고 어느 집은 가전제품을 아예 통째로 큰 비닐봉투에 담아서 여름 장마철 홍수예방을 하는 것을 보고도 나는 저들이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지 의심만 하였다 혹시 어디서 전쟁나면 얼른 피난 갈 준비를 하나보다 했고, 어디서 무슨 죄를 짓고 여기로 잠시 도망 온 사람들인가 했었다.

 

비가 오더니 장마철은 맘 먹고 몇 날 몇 칠 햇빛 한 번 비춰주는 법이 없었다. 눅눅하게 습도가 높아 방안에 제대로 된 세상을 만난   푸른 곰팡이는 벽지를 슬그머니 벽에서 떨어지게 하더니 힘없이 바닥에 밀어버린다. 비가 그렇게 오는데 차라리 홍수는 급작스럽게 둑이 터져 물이 급습하고 침략하지만 침수는 하수도 구멍에서 물이 콸콸 넘치더니 이내 골목길을 물길로 차서 낮은 문지방을 이미 넘어와 마당으로 들이닥치는 것이다. 짐이라고 온전한 것 없는 나의 방에도 슬금 슬금 물이 넘나드려고 하니 어린 아들이 그런다.

" 엄마? 빨리 아빠오라고 해 우리 구해 달라고 엉?"

어리 버리 뭐가 뭔지 모르고 첫번째 물난리를 그렇게 치루었고, 두 번째 물난리는 모두 다 알고 준비하자 식으로 맞아 들였으며 세 번째 홍수는 일 년마다 연중행사처럼 버티고 지냈다.

 

 이러니 울 동네 용감한 아줌마들은 웬만한 경보나 주의보에 별로 놀라지 않은 표정이다.

물난리를 겪으면서 벼라 별 고생을 다한다고 하더니, 언제 어디에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올지 안 올지 요즘처럼 성능좋은 슈퍼컴으로 예측하는 기상예보도 없었는데, 동네에서 유달리 관절염이 심했던 영태할멈이 비온다하면 정말 해가 쨍쨍해도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니 따로 오늘의 일기예보를 들을 필요도 없었다. 영태할멈이 가장 높은 옥상에 천막을 치라고  슬슬 당신 키보다 더 키가 큰 지팡이를 마치 지휘자처럼 올려라 내려라 진두지휘하면 동네  무쇠 솥이 옥상으로 실려 올려져 걸어놓고 지들이 아무리 많이 비가와도 옥상에 찰 만큼 오면 나라에다 전화 한 통 때려 배 한척 보내라고 혀! 하니 겁도 안 난다. 동네 여자들은 여름에 그 하고 많은 날들을 치고 박고 싸우다가도 비만 오면 의리로 다시 똘똘 뭉쳐 버린 의형제처럼 서로 짐을 싸주고 이고 지고 높은 데에 사다리 대어서 난리법석을 떠니 나도 모르게 그 자리를 한 곳에 턱 자리 잡고 애꿎은 하늘만 올려 다 보는 것이 나의 할 일이 되버렷다. 엄청 큰 구름이 그것도 시커멓게 한 무더기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부는 바람을 타고 빨리 올까 더디 가나 그런 것도 내 할 일이었고 아무래도 심상찮은 더운 바람이 몸에 부딪치는 느낌에 올 것이 드디어 도착 했구나 소리쳤다. 아니 거기는 너무 한 쪽으로 몰렸다고? 목소리도 푸욱 잠겨 큰 행사 준비 하는 기획자처럼 큰 소리 쳤었다. 본격적으로 어둔 하늘이 비를 질질 흘리기 시작하면 동네 아이들도 이 때만 기다렸다는 듯이 오는 비를 철철 맞고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은 웅덩이에 첨벙첨벙 바퀴 자국을 이리저리 물살 가르며 낄낄대면 애들 엄마들은 이 눔 들아 빠져 죽기 전에 얼른 올라오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맨발로 빠져 돌아다니는 한 아이는 내 신발 잃어 버렸다고 물에 떠내려갔다고 으앙 울고, 동네 회관에서 조금 있으면 비가 더 오니 얼른  학교로 대피하라는 방송이 수없이 틀어져도 죄다 옥상에 올라가  평상에 먹을 거를 늘어 놓느라 분주하였다.

 

 옥상 한 쪽에선 도로가에서 급하게 내달리는 차에 치여 죽은 노숙견인가 발바리를 주워 와서 오늘 이걸 잡아야 되? 말어? 하니 누군 두 번 죽인다고 지금 물난리에 사람들 목구멍에 그게 넘어 가겠냐고 하고,

하필 비오는 날 장례 치러 주는 게 사람이냐? 개냐? 먹어주는 것이 낫지, 그걸 어따가 묻어줘도 이 비에 물고기 밥이 되나 매한가지리고 설왕설래 하는 동안   이 참에 닭이나 개나 다 돈 주고 사먹어야 하는데 우리 장맛비 피하면서 몸보신 하라고 순직한 개란다. 그러니 서로 이러쿵 저러쿵 하는데도 비는 추적추적 가늘어졌다 세기가 강해졌다 하니 이거 진짜 학교로 대피해야 되는 거 아녀  영태 할멈이 지팡이를 찾으니, 떠벌이 아줌마가 한 마디 보태신다.

“ 학교까지 그 걸음으로 가다보면 이미 둥둥 떠서 헤엄치고 가겄수 내가 119에 전화 한 통 때리면 그 때 같이 배타고 가유? 할멈!

근디 불나면 전화하는데가 119인디 물난리나면 해군한테 전화해야 되는겨? 나 전화번호모르는디?"

영태할멈이 단 번에 대답하신다.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어?"

 

이번엔 심상치 않어! 우짜면 다른데도 잠겨 가지고 우덜한테 올 배가 있을 랑가? 하니 옆집 아저씨

“와요? 별게 다아 걱정이셔? 시방! 부침개나 붙여 봐유? 작년에는 뭔 부침게 붙여 먹었더라?”

 가만히 장작에 불붙이니 비오는 데도 활활 잘도 타오른다.  세 모퉁이를 잘 세운 철판 바람막이 덕분이다. 골목길 모퉁이부터  끄트머리까지 물이 차오르고, 검은 빗줄기가 천막을 요란하게 두드리니 서로 말 소리가 들리지도 않고 우리는 영문도 모르는 아이들 데리고 우두커니 앉아 있으려니 화가 우두커니 난다. 없이 사는 것은 우산 없이 오는 비 그대로 다 맞고 산다고 누가 그랬던가? 혹시 그 말이 우리 동네 사람들 모양새를 보고 한 말인지 모르겠다.어쩌다가 물걱정없이 생전 물난리를 모르고 살던 사람들 틈에 살다가 난데없이 순간 이동하여 전혀 예기치 못한 사람들과 한 옥상에서 오도 가니 못하고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야구게임구경하는 관중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된 것이다.

 

 하긴 떠벌이 아줌마가 틈틈이 나에게 그랬다. 이 동네엔 머리 숫자만 많은 아줌마들이나 판치고 십 원짜리 화투판이나 벌려 우르르 몰아 댕기고 맨 싸움이나 일삼아 하는 통에 이런 물난리를 민원으로 고발하여 제대로 하소연 할 줄 몰라 연중행사를 겪고 있다고 하였다. 맨 싸움은 떠벌이 아줌마가 일등일텐데 당신 말 들으면 남의 흉처럼 들렸다. 그렇지만 그 애길 울화가 치미는 것은 지들은 할 짓을 다 하면서 몸 파는 여자들이나  첩년이었던 주제들이 동네일에 뭘 다 상관한다고 하는 이장과 대판 싸움박질 하였지만 말보다도 더 빠르고  급한 성질 덕분에 주먹을 몇 번 휘두르고 쌍욕을 했다고 곧장 경찰서에 끌려가서 폭력으로 기껏 벌금처벌을 받고 난 후 떠벌이 아줌니가 나에게 몇 날 몇 칠을 두고두고 씹은 말이 있었다.

“어떤 놈이 지 엄니 뱃속에서 안 나온 놈이 있냐고?  눈깔을 뒤집어 까서 봐도 그런 놈 없어 있으면 그 놈 사람 아녀? 하다못해 짐승도 에미에비 있는디 어딜 여자를 지 놈들 좆만도 못하게 지 똥 싸고 뭉개고 자빠졌냐고? 야 니도 교회나가냐? 그럼 알겄다? 예수는 누가 낳았냐? 마리아 아녀? 마리아가 남자냐 여자냐? 엉?..아 여자 아녀? 니이미 부처도 여자가 힘주고 낳았으니께 이름을 제대로 남긴 겨 물러?”

 

세상에 맞고 사는  여자는 많이 봤어도 남자 제대로 한 번 팬 것도 아니고 그저 으르고 협박한 것이 폭행이 되어 벌금전과 늘은 떠벌이 아줌마가 나 보고 이런 역사적인 성인군자들 호적을 확인하자고 하시니 그 말씀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싸움의 원인이 해 마다 물난리 통에 여름을 나는 것이 무슨 연례행사냐며 이장에게 말을 해야 하긴 하는데. 불같고 욱하는 성격에 말한 번 제대로 못하였지만 우선 동네 이장이라도 육박전부터 먼저 치룬 것이다. 상해인지 폭행인지 벌금전과자인 떠벌이 아줌마한테 나는 하도 시달리다 보니 안 하면 나도 부모없는 자식이 될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세상 사람들 중에 여자가 안 나으면 오지도 못 할 곳이 바로 이 세상이라는 말에 난 그냥 힘이 불끈 나버렸고 그냥 이 만볼트 고압전기에 감전된 것보다 더 쎈  감동을 먹은 것이다. 그 동안 동네 머릿수만  채우던 아줌마만 많다고 무시하던 이장을 비롯 동장에게 한 장의 민원을 발송했었다. 당장 여길 수해복구 재해지역으로 인정 안하면  지역 주민 수십 명의 서명을 받아 청와대 대문 앞에 천막치고 부침개 구워먹으며 장마철을 지낼 거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보니 그럴듯한 단식투쟁이나 릴레이 일인 시위도 많았건만 하필이면 기껏 청와대 대문 앞에서 천막을 치고 다른 것도 아닌 부침개를 부쳐 먹는다는 으름장 아닌 협박도 안될텐데,이왕에 막갈리파티도 겸해서 한다고 핳 걸 그랬다. 아무튼 민원을 보여 주고 읽어주고 떠벌이 아줌마가 한 소리 더 붙이라고 한 것은 답이 올 때까지 답이 있을 때까지 계속 편지를 보낼 것이다! 라고 쓰라니 안 쓰면 난 또 맞아 죽을까 봐 그렇게 편지를 보내었다.

 

 민원을 접수한 동사무소에서 어디서 전화를 받았는지 득달같이 달려 온 이장부터 동장 얼굴에 수도공사가 뭔가 하는 사장까지 동네에 들이닥치니까

우리도 얼떨떨해서 이게 뭔 일이냐? 했다. 영은아! 니 뭐라고 썼길래 얼굴이 저렇게 하얀 사람들이 왔다냐? 하는데. 뭐라고 하긴 떠벌이 아줌마가 하라는 대로 그대로 보냈지요. 그들이 와서 그런다. 물에 집이 잠겨도 보상금을 지원 할 것이고, 여기에 낮은 하천에 복개공사를 해주고, 수해지역에 준하여 뭐도 주고 또 주고 그러는데. 느닷없이 떠벌이 아줌마가 그런다.

“긍께 그 공사 날짜가 언제라?”

 

 그게 하천이라  담당공사가 다 틀리다고 하면서 말이 길어지니 .

“니이미! 우덜이 물에 떠내려가면 어디에서 우리를 구할까 날아다니는 공군이여? 배로 싣고 나르는 해군이여? 그러다 우덜 물에 꼴까닥 하면 우리는 재해를 당한 재수 오지게 없는 거시기 뭐냐? 영은아~~ 우덜 보고 뭐라고 하냐? ”또 나에게 급하거나 궁하면 묻는데 난 얼른 수재민이라고 했다.

“ 수재민이라고 ! 응 그려 ..우덜은 국민이 아니고 수재민이 되는 겨! 우리가 언제 이 곳에서 살면서 수재민으로 해달라고 한 적 전혀 없당께? 이런데서 산다고 해마다  이런 좆같은 거 한 번 당신들도 겪어 보라구?”

그들 중에 얼마 전에 떠벌이 아줌마랑 같이 경찰서에 가서 본인은 무슨 백으로 벌금 한 푼없이 무혐의다 이렇게 풀려난 이장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 후 이장은 자신은 죄없다고 공공연히 떠벌이 아줌니 입장만 깡그리 뭉게던 사람  얼굴이 질려서 어깨가 축 쳐져 있엇다.

“ 이걸 말했더니 벌금을 칠십 만원을 내라고? 기막혀서 나 원 참 어떤 나라가 수재민한테 벌금 내라고 방망이 세 번만 두 둘 겨? 왜 잡아 가둬서 먹여 살리지? 긍께  당장 그 공사 날짜 안 받아 오면 우덜은 당장 청와대로 갈 거여? 수재민 되기 전에 학실히 우덜도 국민이 될 겨? 우덜이 잘못 했으면 내가 대표로 끌려가도 괜찮다구? 이렇게나 저렇게나 물에 빠져 뒈지는 것보다 훨 나을 겨? 안 그려유?”

떠벌이 아줌마 뒤엔 그 동안 물난리를 여러 해 연중행사처럼 치룬 수재민들이 든든하게 빙 둘러 쳐져 아주 휼륭한 조직처럼 보였다. 그중에 지팡이를 가운데 세워 오른손을 왼손에 포개고 점잖게 마주한 시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높은 분들이 얼굴이 뻘줌 하다. 어쩌다가 세상에 가장 낮은 저지대 사람들과 마주한 장소가 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들과 절대 마주칠 경우도 없을 그들만의 세상에 당당한 우리들 수재민들은 오히려 다른 날보다 햇빛이 더 찬란하게 빛나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그들은 돌아가더니 한 달인가 지나서 민원회신이 내게 왔다.

 

복개공사는 도의 예산확정이 되어 곧 들어갈 수 있으며, 집집마다 침수한 상태에 따라 재해복구비를 지급한다고 했다. 난 그대로 떠벌이 아줌마에게 읽어주니, 무신 말이 그렇게 어렵냐고 그런 게 공사를 한다는 겨, 아녀 하니 난 확실히 공사는 들어가고 돈도 준다고 다시 확인 시켜 줬었다.

떠벌이 아줌마는 그 돈 받으면 그 돈 그대로 돌려준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했더니,

“시이벌 벌금 칠 십만원 내야 안 잡아간다면서? 이래저래 그거라도 받으면 도로 내 놓으라고 한 거 별 다를 게 없제! 니이미 뭐 이런 개 같은 일이 다아 있다냐? 생전 법 근처하고 얼씬도 못 할 팔자라고 했는디”

그 후 수해를 입은 집엔 진짜 복구비용이 전달되었고, 떠벌이 아줌마는 그 돈으로 벌금을 내러 나랑 같이 은행에 가자고 했다. 무통장입금표를 써 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 꼭 받았다가 다시 뺏기는 것 같어 진짜 좆같네.."

나는 이 말을 떠벌이 아줌마에게 하지 못했다. 속상할까 싶어서..

 

그렇게 마지막 물난리를 옥상에서 개잡고 부침개 부쳐 먹고 그러는데, 어째 비가 시들시들 하더니 뚝 그친다. 그래도 또 모를 일이다. 안심하다가도 이 놈의 장맛비는 느닷없이 덤비는 성질에다 끈질기게 꾸준히 내리는데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섣불리 짐 내려놓고 옥상 천막  걷었는데 어디선가 언제 그렇게 몰려 왔는지  먹구름이 하루 온 종일 내린 것보다 더 쏟아져 다시 옥상으로 기어 올라 가면서 이 죽일 놈의 비 내가 물에 잠겨 죽든 누가 이기냐고 나온 시합에 다시 나간다고 그렇게 악을 박박 긁었다. 어떤 이는 아예 거기서 날을 새고 내려가자고 한다. 어둠 속에서 내리는  비는 4B연필로 흰 도화지에 죽죽 그은 선 굵기의 열 배만큼 굵고 길다. 그 비를 온 동네에 집집마다 하수구에서 또 역류하고 집 앞에 있는 작은 화단에 골목 모서리에 기대어  조용히 피고 있는 꽃들은 모조리 허리와 모가지가 꺾인다. 한 차례 쉬는 눈치의 빗발을 보다가 그러다 먼 산에서 흐리게 번지는 일출을 보았다. 해마다 새로운 한 해를 보내거나 한 해를 맞이하러 일부러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가장 낮은 저지대에도 번져오는 햇빛의 빛줄기를 보았다. 가장 완전한 원은 누구에게도 가장 공평하게 매일 뜨는 것이다.낮은 지대에서 가장 높다면 높은 그 옥상에서 구름들이 그렇게 두껍게 뭉쳐 안 보일 줄 알았던 햇빛이 구름을 뚫어 우리게게 보이는 것이다.사람들 얼굴이 어스푸레하게 윤곽이 환해 졌다.

또 뜨는 구나! 해가 또 떴어? 우리한테 보라구?

그 땐 정말 우리에게 또 해가 뜬다는 것은 가장 큰 희망이었다..

비가 그쳐도 아직 장마철은 끝나지 않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