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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5/ 그녀를 놓아버리다 (2)


BY 盧哥而 2005-10-20

 


그녀를 놓아버리다 (2)





민주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후 아내에게 영락없이 코가 꿰인 듯이, 그야말로 참담한 몰골로 지내는 나날이 한동안 계속되었다.

나는 나대로 아내에게 점점 멀어져 갔고 아내는 아내대로 내게서 그나마 남은 모든 정마저 떼어버리려는 듯 안간힘 쓰는 그런, 서로에게 고통스러운 나날의 연속이었다.

한 방에서 잠을 자고(물론 잠자리는 각기 따로) 한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아이들 앞에서 그 아이들이 눈치 못 채게 최대한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일상의 대화는 하고 있었지만 나나 아내나 솔직히 할 노릇이 아니었다.

나는 한시라도 빨리 아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이혼이라는 절차를 밟아주기를 고대했다. 그것은 내가 아내와 이혼을 하고 당장 민주를 찾아내 뭘 어쩌겠다는 것보다 이미 틀어진 아내와의 관계복원에 대한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 내 양심의 거리낌 때문이었다. 어쨌든 나는 아내에게 더 할 수 없는 죄인임에는 틀림없으니까...

그러나 아내는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것은 나에 대한 미련 때문이라기보다는 아이들이나 형제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던져질 파장과 그로인해 종내는 자신에게 닥칠 여러 문제들에 대해 신중에 신중을 기하려다보니 아직 확실한 자신이 서지 않아 그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나로서 이상한 것은 오히려 내 자신의 심경이었다.

아내가 눈치 채기 전까지 나는 만일 아내가 알아채고 ‘이혼’이라는 최후의 카드를 내밀 것에 대해 상당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사태가 그렇게 진전되고 말자 오히려 나는 담담해졌고 단지 이미 파탄이 난 상황을 아이들과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추는 데 전전긍긍하며 아내의 결정을 기다리는 동안의 처량한 내 몰골에 더 참담함을 느낄 뿐이었다.

그러나 발단의 책임이 있는 내가 나서 먼저 이러니 저러니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 달여의 기간이 흘러갔다.

그동안 아내와의 껄끄럽기 그지없는 동거(?)에 나는 지쳐가면서 한편으로 민주에 대한 생각도 어느 정도 정리가 돼가는 듯싶었다.

심부름센터에서 조사한 내용이나 박미숙에게 들었던 기절초풍할 민주의 추한 과거에 관한 이야기들도 차츰 내 안에서 삭혀지고 있었다.

그녀에 대한 추한 이야기들은 어느새 그녀에 대한 연민으로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나는 민주가 지금 어느 곳에서 어떤 또 다른 그녀의 불행과 맞닥뜨리고 있을지 그것이 걱정될 뿐이었다.


그 남자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민주가 내 눈앞에서 사라진 지 꼭 40일 째 되는 날이었다. (나는 언제인가부터인가 민주가 떠난 날부터의 날짜를 하루하루 세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그날따라 바쁜 업무를 오후 서너 시까지 정신없이 처리하고 한숨 돌려 자판기의 커피를 뽑아 건물 옥상에 올라가 있을 때였다. 일이 좀 한가할 때마다 그렇게 옥상에 올라가 혼자 있기 시작한 건 민주가 사라진 이후 내게 새롭게 생긴 버릇 중의 하나였다. 

건물의 옥상에서 물끄러미 길가를 내려다보며 종이컵의 커피를 다 마셔갈 즈음 바지 주머니 속의 핸드폰이 울렸다.

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무심히 핸드폰 창을 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문사장님이시죠?’

낯선 느낌의 굵직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나는 순간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 내 발신자 번호를 봤다. 전혀 모르는 핸드폰 번호였다.

나는 다시 핸드폰을 귀에 대고

‘그런데요. 누구신지...?’

‘저 몇 달 전, 김민주 일 때문에... 칸타타에서...’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때 민주의 가게에서 행패를 부렸던 그 남자였다!

나는 뭐라 대꾸해야할지, 무슨 말로 그와 통화를 시작해야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잠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의 말소리가 이내 거침없이 핸드폰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금 좀 뵐 수 없을까요? 가까운 곳에 있는데...’

‘좋습니다. 어딥니까? 내가 그리 가지요.’

나는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그 남자가 와 있는 곳은 내 사무실이 있는 건물에서 한 블록 쯤 떨어져 있는 상가의 2층 커피숍이었다. 나는 그와 통화를 끝내자마자 한달음에 거기로 달려갔다. 혹시 그가 민주의 소식을 갖고 오지나 않았을까하는 간절한 희망으로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는 일부러 인 듯 구석진 자리의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내가 커피숍을 들어서는 순간 그와 나는 동시에 서로를 알아봤다.

뭐, 서로 반갑고 자시고 할 사이가 아닌 처지였지만 나는 그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다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오래간만이군요.’

‘그렇군요.’

그는 엉거주춤 몸을 일으켜 내 악수를 받았고 내가 맞은편에 앉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전에 처음 그를 봤던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에서나 그가 ‘칸타타’에서 행패를 부렸던 날 보았을 때보다 조명이 훨씬 밝은 곳이어서인지 아니면 상황이 달라서져서인지 그 남자의 인상은 내가 그동안 그에게 가지고 있었던 불량스러워 보인 이미지와 좀 달라보였다. 그저 평범한 소시민, 생활의 무게에 찌든 40대 한 소시민의 이미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그런 모습으로 내게 새롭게 비쳐졌다.

그가 내게 담배를 먼저 권했다.

나는 그전처럼 그의 담배갑에서 한 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고 그가 붙여주는 라이터에 담뱃불을 붙였다.

그 남자 역시 담배를 빼물어 불을 붙이고 그전처럼 ‘빡’소리가 날 만큼 첫 모금을 세게 빨아 당겼다 길게 연기를 만들어 흩뿜어냈다.

그리곤 좀 억지스럽게 나를 쏘아보는 듯한 눈초리를 만들며 입을 열었다.

‘민주가 없어졌더구만요...?’

그의 물음은 내게 어떤 책임을 묻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그의 물음에 딱히 대답할 말이 금방 생각나지 않아 좀 머뭇거렸다.

그러나 그가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사실 한참 전에 알았습니다만 나름대로 알아볼 데 좀 알아보느라...’

그의 말투는 여전히 내게 어떤 책임이 있다는 투였다.

그는 나보다 충분히 10년은 연하였다. 그러나 그는 내 앞에서 상당히 무례하게 보이는 자세와 말투를 취하고 있었는데 그건 그의 본심이라기보다 다분히 작위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이 나를 믿고 민주를 맡겼는데 내가 내 소임을 다하지 못해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식의, 그러니까 내가 네게 내 여자를 양보해 줬는데 왜 그런 일이 생기게끔 했으며 그래서 앞으로 어쩔거냐고 제법 따지겠다는 듯한...

나는 우선 그동안 궁금했던 그 남자의 정체와 민주와의 지난 관계를 정확히 아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울컥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되도록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민주가 없어진 건 어떻게 알았소?’

‘뭐, 민주에 관한 일이라면 하여간... 금방 알 수 있죠.’

그는 좀 우물거리는 듯 대답을 하면서 혹시라도 내게 무슨 꼬투리가 잡히는 게 아닌가 하고 머리 속으로 급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게 내 눈에 분명하게 보였다.

그의 그런 의외의 순진한 구석에서 나는 그가 역시 처음의 인상대로 그리 불량스러운 사람은 아니라고 다시 느껴졌다. 어쩌면 보통 이상으로 순진하고 마음이 여린 그런 사람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는 그날 밤 내게 민주에게 손을 뗄 것이라고, 또 민주에게 이제 그만 다시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겠노라고 확언을 하고 떠났으면서도 그동안 알게 모르게 민주의 주변을 맴돌았던 게 분명했다.

‘우리 솔직하게 터놓고 얘기합시다. 나, 당신에게 나쁜 감정 없어요.’

나는 우선 그와 동지적 입장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게 순서의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그에게서 미처 내가 알지 못하는 민주에 관한 이야기를 충분히 더 들을 수 있고, 민주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아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슬며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억지스럽게 나를 쏘아보듯 만든 미간을 펴고 치켜 뜬 눈꼬리를 슬그머니 풀었다.


그와 나는 근처 호프집으로 바로 자리를 옮겼다.

그, 박동석이라는 이름의 마흔 두 살의 남자, 민주를 십년 넘게 따라다녔고 잠깐이지만 민주와 동거생활을 하기도 했었다는 무명의 기타리스트, 떠돌이 악사(樂士)... 그에게서 들은 민주는 또 다른 여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