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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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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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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1/ 그녀가 드러나다 (1)


BY 盧哥而 2005-09-24

 

4부


 

그녀가 드러나다 (1)



 

민주가 행방을 감춘 날부터 닷새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된 나의 음주는 어젯밤 폭음을 절정으로 기어코 빨간 신호를 맞고 말았다.

아내의 메시지를 열어보고도 나는 내 몸을, 내 정신을 어떻게 추스를 수가 없었다.

나는 비몽사몽의 상태로 나락으로 떨어지듯 다시 잠에 깊이 빠져 들어갔다.

내가 다시 겨우 눈을 뜬 것은 영미의 전화를 받고서였다.

아마도 한참이나 신호가 울리고 나서야 그 핸드폰의 벨소리가 내 귀에 들렸던 것 같다.

핸드폰 뚜껑을 열고 통화버튼을 누르자 영미의 속사포 같은 말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사장님, 지금 어디 계세요? 오늘 점심 약속 잡은 거 아시죠? 명운 상사 김 상무님하고요. 거기 내년도 상품 카탈로그 건 때문에 오늘 꼭 만나야 된다고 하셨잖아요.’

나는 몽롱한 가운데서도 그 점심 약속이 떠올랐다. 우리 사무실 입장에서는 빅 쓰리 안에 드는 거래처였고 그 회사에서 매년 발행하는 상품 카탈로그의 기획과 제작은 벌써 몇 년째 우리 사무실에서 맡아서 해 온, 총액 2억 가까운 굵직한 일거리였다.

이미 그 쪽의 요구 사항대로 시안 작업도 끝냈고 형식적이지만 제작비 견적도 올려 이제 최종 금액의 네고만 남은 상태였었다. 그래서 거기 주무 책임자인 김 상무와 오늘 점심을 같이 하면서 봉투 하나 찔러 넣어 주어야 되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와 점심 약속은 우리 사무실 근처의 일식집이었고 시간은 12시 반이었다.

손목시계를 보니 시간은 이미 11시 반을 넘고 있었다.

고양이 세수라도 하고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출발을 한다면 약속시간에 대 갈 수도 있겠지만 내 몸이 도저히 따라 움직여 주지 않았다.

머리 속은 속대로 그저 몽롱하기만 할뿐 제대로 된 생각의 가닥이 전혀 잡히지 않은 채 계속 잠만 쏟아졌다.

나는 영미에게 겨우

‘영미씨, 오늘 약속 취소해줘. 빨리... 김 상무 출발하기 전에... 나 집에 갑자기 큰 일이 생겨서 시골 갔다고 해줘.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로 다시 약속을 잡아달라고 해...’

하고 되는대로 주절거리고 말았다.

‘사장님, 내일은 일요일이에요. 오늘 토요일이잖아요.’

아, 나는 이번 주 내내 요일이 지나는 것조차 의식 못하고 지냈던 것인가?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쯤으로 해... 그날 다른 스케쥴 잡힌 거 없지?’

하고 혹시나 싶어 물었다.

다행히 다음주 초 다른 약속 잡힌 일은 없었던 것 같다.

영미는 언제 쯤 사무실에 들어 올 거냐고 물었다. 토요일인데 직원들 시간되면 그냥 퇴근시켜도 괜찮겠냐고 하며...

원래 토요일은 오전 근무가 원칙이었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긴급한 작업이 있는 직원들은 토요일도 오후 늦게까지 일하는 게 우리 사무실의 관행이었다.

나는 사무실 내의 업무 진행상황도 따져보지 않고 그냥 다 퇴근시키라고 귀찮은 듯 대꾸해버렸다.

영미가 알겠다고 하고 김 상무에게 점심 약속 취소 전화를 하고 그 결과를 내게 다시 전화로 알리겠다고 하는 말을 채 다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나는 그 퀴퀴한 담요에 코를 박고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듯 그대로 다시 잠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잠이 든 나는 어젯밤 꾸었던 꿈을 연속으로 이어 꾸는 희한한 경험을 다하였다. 꿈속에서 민주가 계속 어떤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거나 강간을 당할 위기에 몰려있는 상황이 뒤죽박죽 뒤섞여 보여 졌다.

다시 전화를 해 온 영미와의 통화도 나는 그 꿈의 연속선상에서 했던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김 상무와의 점심 약속을 다행히 미뤘다는 영미와의 통화 내용이 민주가 강간당하는 꿈속의 일부로 내게 기억되어있을 정도로...


내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른 건 벌써 날이 어두워 진 다음이었다.

눈을 뜨면서 주변의 어둠에 흠칫 놀라 두리번거리던 내 눈에 여관방의 벽시계 바늘이 어렴풋이 보였다. 여덟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제야 몸을 좀 움직일 수 있었고 머릿속도 좀 개운하게 비어져 있었다.

나는 일어나 불을 켜고 핸드폰의 뚜껑부터 열어봤다.

잠결에 영미와 두 번째 통화한 게 마지막으로 찍혀있었다. 그리고 읽지 않은 메시지 하나가 새로 떠있었다.

보지 않아도 아내의 것일 것으로 짐작되어 나는 일단 핸드폰 뚜껑을 닫아두고 욕실로가 샤워부터 했다.

샤워를 마치고 다시 옷을 주워 입으며 속옷부터 겉옷까지 벌써 3일 째 그대로 인 것이 의식됐다. 양말은 사무실에 예비로 두었던 것으로 한번, 어제 새벽 일찍 집을 나와 사무실 근처 사우나에서 새로 산 것으로 한 번 더 갈아 신어 그런대로 덜 찝찝했으나 며칠 째 다시 입는 팬티와 런닝셔츠 그리고 와이셔츠는 아무래도 불쾌했고 보기에도 추레했다.

여관을 나오면서 카운터의 주인 노인네에게 뭔 잠을 그리 정신없이 오래 잤느냐, 그래서 혹시나 싶어 자기가 중간 중간 들어 와 나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는 핀잔을 들으며 반나절치의 여관비를 더 지불해야 했다.


나는 여관 앞에서 택시를 잡아타고서야 핸드폰을 열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짐작대로 아내가 보낸 것이었다.

‘10시에 마트 앞 ’사루비아‘에서 기다릴게요.’라고 간단히 찍혀 있었다.

나는 이제 아내가 폭발할 때가 된 것이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다.

요 며칠 동안 나의 정신없는 행동에 대한 아내 나름대로의 불만들, 거기다 지난 번 베이커리 본사에서 실시했던 연수교육을 가기 전후부터 왠지 모르게 내게 냉냉하게 대했던 원인이라고 짐작하고 있는 나의 미심쩍은 행동들에 대한 어떤 추궁... 뭐, 그런 것들을 한꺼번에 터뜨리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어젯밤 멀리도 가서 술에 취했던 것 같다. 우리 집 방향과는 정반대의 방향, 나로서는 한번 가보지도 않았던 지역이었다.

그래도 토요일이라 시내거리가 한적해서인지 나를 태운 택시는 우리 아파트 단지 근처까지 채 한 시간이 안 걸려 도착했다.

10시가 되려면 아직 3, 40분은 더 기다려야 할 시간이었다.

아내는 아마도 마트 안의 베이커리 매장에서의 일을 다 끝내고 나올 셈일 것이다.

아내가 만나자고 한 장소는, 마트가 끝날 시간에 맞춰 내가 아내를 에스코트하러 나갔다가 둘이서 분위기를 좀 잡고 싶은 날 몇 번인가 들러 커피를 마셨던 마트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만 카페였다.

나는 그 카페 ‘사루비아’에 먼저 들어가 아내를 기다리기로 했다.

카페 안에는 손님 두어 테이블뿐으로 썰렁하고 한적했다.

나는 창가 쪽 외진 테이블로 가 자리 잡았다.

자리 앉자 갑자기 시장기가 돌았다. 그러고 보니 나는 어제 저녁부터 끼니를 거르고 있었다. 어제 낮에 양품점 주인여자와 통화를 하기 위해서 일식집에서 생선지리에 공기밥 한 그릇을 먹은 것뿐으로 ‘칸타타’에서 박미숙과 마신 맥주 세병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낯선 동네의 포장마차에서 마신 소주 세병의 술로만 위장을 24시간 채우고 있었던 것이었다.

나는 뭔가 요기가 될 만한 것을 하나 시켜 먹을까 하다가 잔뜩 고인 울화를 터뜨리기 위해 나올 아내가 보았을 때 과히 좋은 그림은 아닐 것 같아 맥주만 한 병 시키고 말았다.

그 맥주 한 병을 잔에 따라 홀짝홀짝 마시며 시간을 끌었고 그 맥주 한 병을 다 마셨을 때 쯤 아내가 출입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내는 나를 금방 발견하고 다가와 말없이 내 맞은편에 앉았다.

나는 아내에게 인사로 어색하게 웃어줬다.

그러나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냉냉했고 눈가에는 내겐 아주 생소한, 나로선 아내에게서 처음 보는 차가운 웃음기가 감돌고 있었다.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주문을 받으러 웨이트레스에게 눈짓으로  내 앞의 빈 맥주병을 가르치며 ‘한 병 더’하고 딱딱하게 말해 줬다.

웨이트레스가 맥주 한 병과 컵을 하나 더 가져 올 때까지, 그 짧은 시간이 한참이나 되듯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내는 분명 내 눈을 쏘아보고 있었을 것이었으나 나는 차마 맞받을 수가 없어 먼데다 시선을 두고 피하고 있었다.

아내는 맥주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부었다. 그리고 내 빈 잔에는 따르지 않고 그대로 테이블 위에 맥주병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바로

‘그래, 김민주는 찾았어?!’하고 싸늘한 어투로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