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2,160

현재-31


BY 까미유 2005-08-19

초겨울의 초입으로 들어선 요즘의 저녁은 쌀쌀한 기온이 한창이였다. 늘 들고 다니는 캐시미어의 가디건을 좀더 두꺼운 것으로 바꾸었다. 사계절 내내 난 늘 가디건을 챙겼다. 여름에 까지 칠부의 마사로 된 가디건을 챙겨 비오는 날에 입고 다녔는데 상준이 그런 날 보며 보수적인 고집스러움의 극치하고 했다.정말 이상했다. 왜 이렇게 한가지 물건에 집착이 강한지.....전에 영인이 내게 그랬다. 녹차를 마시던 무슨 물건을 사든 늘 사는 메이커로만 구입하는 날 보며 변화를 무서워 하는거.......한가지 일에 무서우리 만치 집착하는것 ....일종의 애정 결핍이라고 했다. 버림당할까.....배신 당할까.....외면당할까 무서워 늘 한가지에 몰두 하고 집착해서 믿어 버리는 그것밖에 모르는 고집스러운 집착....고도의 심한 애정결핍에서 나오는 행동중에 하나라고 했다.그래서 일까?기다리라는 뚜렷한 약속이 없었는데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상준일 기다려왔고 최마리가 나타났을때도 상준이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던 걸까?영인이의 애정 결핍 이라는 말은 맞는 정답이였다. 살아오면서 완전히 내것이였던것은 생명체가 없는 물건 들 뿐이였으니까........괜히 눈물이 날만큰 씁쓸해졌다.웬지 내가 너무 가엾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닥으로 눈물 하나가 툭하니 떨어졌다. 한방울 ,두방울......눈물 방울이 혼자 있는 방 바닥으로 조금씩의 간격을 두고 떨어졌다. 내안의 내부 장기가 하나씩 툭툭 떨어져 나가는 것처럼.......쓰라림과 아픔을 동반하고 있었다.

 

 

"눈이 왜그래?밤새 일했어? 눈 밑에 다트써클....와 ....."

아침에 탕비실에서 만난 성주였다. 어제 일요일 내내 괜히 울적해져서 눈물을 한말이나 뺀 나를 보며 야단이였다. 그렇게 우리가 탕비실은 여직원 전용이니까 들어오지 말라고 해도 갓 뺀 커피만을 마시는 자기의 까다로운 취향을 탓하지 말라며 회사 통틀어 탕비실에 들어오는 사람은 한성주 뿐이였다. 은근히 사내에 팬들이 많은 성준데 이 까다로운 커피취향으로 인기가 오르기도 떨어지기도 하는 성주였다.지금도 방금 내린 블루마운틴을 머그컵 가득 담아 들고 있다.

 

초코랫색 바탕에 금줄이 들어간 울 소재의 셔츠와 짙은 회색의 바지차림.....패션의 귀재 한성주는 사내의 인기남 이였다.경혜는 아무리 기분이 나쁘고 몸의 상태가 좋지 않아도 성주을 보면 눈의 떼가 없어진다며 아침마다 성주를 보는 재미에 가끔은 쉬는 토요일이나 일요일 까지 반납하고 회사에 나오고 싶다고 했다. 그전엔 성주에 대해 그냥 동경정도의 눈길만 보내더니 요즘엔 구애 작전까지 짤 만큼 한성주 잡기를 눈앞에 나타내었다. 이미 한성주의 관심이 다른데 가 있다는 것을 모른체......사내에선 성주의 눈길과 맘을 끌려고 애쓰는 여자들이 많았다. 좀 가슴 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상준이 로마로 출장을 가고 5일 흘렀다. 저녁에 영인이 집으로 오라고 날 불러 들였다. 상민씨도 유럽으로 출장을 갔기 때문에 날 불러 들인거였다. 다른 회사는 사장까진 몰라도 회장이 직접 움직이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데 우리회사는 회장과 사장의 출장이 잦았다. 둘다 아직 다른 회사의 대표들보다 젊다는게 이유라고 하는데.....암튼 이번 처럼 둘이 함께 자릴 비운적은 없었는데.....회사가 잘 돌아간다는 이유겠지. 우리 회사는 국내의 굴지의 재벌급 회산 아니다. 중소 기업에서 시작했는데 90년대 후반부터 타기 시작한 리모델링 붐을 타고 상류층에서만 불던 인테리어 부분에 일반층에 까지 번지면서 저렴한 가격에 고급스러운 장식이 먹혀 들면서 갑자기 매출이 늘어 신흥 기업으로 발전을 한거였다. 남들보다 탁월한 사물을 보는 눈썰미가 발달한 회장과 커뮤니케이션이 능통한 사장의 인간미 넘치는 조인계약이 맞물려 다른 회사보다 월등하게 신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된 것이다.

 

상준이의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인상과 치밀한 사업 계획서와 끝까지 함께 간다는 믿음력.....주로 다른사람들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세계 곳곳의 장인들을 찾아 아이디어만 제공받고 디자인을 들여와 국내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그런 아이템이 성공 요인이였다. 여행을 하면서 늘 메모를 하는 상준이의 발은 세계 곳곳에 뻗어 있었다. 상준이 찾아내면 눈썰미 좋은 상민이 디자인을 가려낸다. 상품으로 만들었을때 얼마만큼 먹힐지 날카롭고 섬세한 눈으로 찍어내면 바로 성공 이였다. 덕분에 사내에서 함께 일하는 우리 디자인 팀은 회장의 눈에 들기위해 정말 피를 깍는 노력으로 디자인을 그려내고 있었다.

 

세계의 여러곳에서 발간되는 디자인 관련의 책은 모두 구독하고 있는 위의 두 보스들 덕에 디자인팀은 오로지 자기만의 생각과 감각으로 그림을 그려내야 했다. 회산 해외의 디자인 반과 사내의 디자인 또는 외부의 프리로 일하는 같은 계통의 디자인을 골고루 쓰고 있는데 그래서 인지 우리 디자인팀의 신경은 늘 곤두서 있었다. 그만큼 다른 직원들보다 높게 책정 되어 있는 급여가 있지만......버티기가 조금씩 힘이 들어 가고 있다. 벌써 한두사람은 사표를 내고 사직을 했다. 근데도 새로운 디자이너들을 뽑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세계 곳곳에 디자인만 전담하는 곳을 설립해놨다는 소리도 있었다.사실무근의 얘기지만....암튼 그런 얘길 들을때면 가슴속의 큰돌이 쿵 하고 밑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윤찬영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한유미가 이미 밀라노 가구 학원에 유학을 신청했다.모두들 발빠르게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고한 자리 매김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일전에 프랑스 연수후 상준이에게 유학의 뜻을 잠깐 비추었는데 말도 제대로 꺼내 보지도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거의 6년을 떨어져 지내고 이제 겨우 몇달 좋아 지내는데 다시 유학이라니......현실적으로 자긴 지금 회사에 들어와 이제 겨우 일을 배우는 단계라서 회사을 비울수 없는 실정이니 내 유학은 사실상 이제 겨우 제자릴 찾아 뿌리매김을 하는 우리에겐 너무 이른계획이라고 했다. 결혼을 하고서도 당분간 몇년은 떨어져 있을 생각이 전혀 없다며 내 입을 막아 버린 상준이였다. 내일인데......상준이에게 휘둘리는게 첨엔 자존심 상하고 화가 났는데.....나 또한 이제 겨우 만난 상준이와 몇년을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거엔 자신이 없었다. 가슴속 밑 바닥에 조그맣게 옹심이가 박혀 있었다. 3년 정도 지나면 그때가서 유학을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말을 덧 붙이긴 했지만........편치 않은 속이였다.

 

요리솜씨가 부쩍 많이 는 영인이 닭봉칠리소스 요리와 여러가지 토핑이 올려진 피자.열대과일과 아삭함을 주는 샐러드에 요구르트 드레싱을 얹어 저녁을 만들었다. 요리을 배우면서 함께 배우는 테이블 세팅......기막힌 상차림 이였다. 어디서 구했는지 보는 것만으로 눈길를 사로잡는 예쁜 컵과 접시들.......투명한 크리스탈 컵에 비스듬히 한개씩 꼿아 놓아둔 데이지꽃...색색의 꽃들을 하나씩 3개로 묶어 테이블에 장식했다.

 

예쁜 프로방스의 정원이 그려져 있는 샐러드볼은 정말 자꾸 시선이 갔다.내 눈길을 눈치 쳈는지 영인 예쁘게 웃었다.

 

"맘에 들지.....?저번에 독일에 갔다 오면서 들여온거야......"

".......유럽에서 만든 도자기 인데도......웬지 토종 같이 투박함이 살아있네........만지는 감촉은 매끄러운데......보기엔 거칠것 같아......특이한 토기 공법인가봐...."

정말 그랬다.만져보면 하나도 거칠지 안은데 눈으로 보기엔 결들이 거칠것 같은 도자기 ...그러면서 예쁘고 자잘한 꽃그림 그려져 있는 프로방스의 시골전경이 무척 정감 어리게 그려져 있었다.주방팀 디자이너 들이 보면 조금씩 자극을 받을만한 것들이였다. 벌써 회사 홈피에 올라가 있을지도 모른다.

 

"가격면이 생각보다 세서 국내에 시판은 안될거야....."
세모창 처럼 날카롭고 긴 고기굽기용 포크를 들어 닭봉을 여러개 들어 접시에 옮기며 영인이 말했다.

 

"단가가 세다고....?"
"응......단가가 세기 보단......이 도자기를 만드는 장인이 아예 상품화를 시킬 생각이 없다는 게 문제지......이런 기법을 종이에 옮길만한 능력이 없다는거도 장애의 요인이지...."
"무슨 말야.......?알아 듣기 쉽게 말해봐...."
"아씨......너 말야.....여기가 회사냐?만나면 매번 이런 얘기나 하고.....놀자고 부른거지 일하자고 부른거 아니라고 내가 몇번을 얘기하냐...!!"

갑자기 영인이 내게 눈쌀을 찌뿌리며 소릴쳤다. 엉겁결에 당한 일이라 난 벙뜬 얼굴을 숨길수 없었다. 내게 눈을 부라리며 짐짓 화가 났다는 얼굴을 한 영인이 푸른빛이 도는 투명 유리컵에 당긴 화이트 와인을 들어 마시며 내게 입술을 쫑끗 거렸다.

 

"도자기 만드는 장인이 문맹인데다가 부인이 부엌살림 하다가 그릇을 깨먹을 때마다 하나씩 만들어 쓴데.....자기 만이 알고 있는 비법으로 아무런 상식이나 기술도 없이 그냥 빚어내는 건데 자긴 게을러서 그릇 만드는 것도 귀찮은데 무슨 밑그림이며 굽는 방법을 순선데로 가르쳐 달라는 거라며....많은 돈도 필요 없다는 앞뒤가 꽉막힌 70을 바라보는 노인이래.....이상 끝....더이상 질문은 노코멘트...."
내가 무어라 더 말을 끝낼까봐 영인이 빠르게 대답을 들려 주었다. 좀더 궁굼한게 많았지만.....영인이 시선이 너무 세 감당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궁굼증을 가슴에 묻을수 밖에 없었다.날 이긴듯 씨익 웃는 영인이 얼굴이 왜 저리 가증스럽게 보이는건지.......매운 칠리 소스를 가득 찍은 닭봉을 입으로 넣었다. 끓는 기름에 장작을 지핀 꼴이였다. 금방 물잔을 향해 손을 뻗는 날 보며 영인이 밉살스러운 막내동생 같은 얼굴로 깔깔 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