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가서 불을 켰다.
아침에 나올때 그대로의 방......어질러져 있진 않지만......보여주고 싶지 않은 방이였다.
"이거 여기다 놓으면 되는거야......?"
뒤 따라 들어오며 상준이 말했다.
부엌이라고 할 수도 없는 좁은 공간.......며칠전에 온 비로 퀴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비오는 날 이면 쉽게 맡을 수 있는 아스팔트의 맨홀에서 나는 냄새.....그보단 약하지만....암튼 상준이 에게 보여주고 싶은 맘은 없었다.
"냉장고는 어딨어.....?방에 있어?"
쇼핑백에서 반찮을 꺼내며 묻는 상준이.....
또 한번 인상이 써졌다.
냉장고 라니......?
있을 턱이 없지......
살림이라고 말할 것도 없는 데.......
"됐어...나중에 내가 챙겨 넣을께.......나가자....."
"나가다니....?어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얘기해...."
"야 ...너 너무 박한것 아냐?늦은 밤 이긴 하지만.......차는 못주더라도 냉수는 줄 수 있잖아....힘겹게 올라 오느라 숨도 찬데......"
"끓여논 물이 없어서 그래......사다논 커피도 없구......미안하지만......어쩔 수 없어..."
"그렇게 힘들게 알바 하는데......돈 벌어서 다 뭐하는데.....기본적인 것도 없냐....?"
"......제 힘으로 돈 벌어보지 못한 사람은 이해 못할 거야.....밑 바닥 인생이 어떤지....."
"뭐 그렇게 거창하게 말하냐......?생활비와 방세는 아줌마가 대주잖아.....?알아본 바로는 너 알바 5개나 한다던데......."
생활비와 방세를 엄마가 되준다구.......?
흥.......
자조적으로 코 웃음 치는 날 보며 상준인 잠시 말이 없었다.
표정 변화 없는 내 얼굴을 내려다 보는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아줌마가 생활비 안주는 거야.....?그런거야....?"
"남 가정사에 참견하지마......말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해!!! 정말 그런거야....?방세나 생활비 이제껏 전혀 받은 적 없는거야....?그래서 이렇게 밤늦게 까지 알바 하고 것도 모자라서 집에서도 일하는 거야....?그런거야...?"
갑자기 언성을 높이는 상준이였다.
웃겼다.
엄마가 내 생활비와 방세를 안대주는게 왜 자기가 화낼 일이란 말인가.....?
말도 안되는 소리......
이해가 안되었다.
내 일에 참견말라는 반박의 말을 하려고 하는데 상준이 머릴 쓸어 올리며.....아니 거칠게 헝클어 트리듯이 쓸며 내게 말했다.
"여기로 이사후 아줌마 다녀 가신적 있어....?"
"그게 왜 궁굼한데....?내가 그랬지......네가 나 도와준건 고마운데.......우리집 일에 너무 나서지 말라구......기분 않좋다구 말한적 있잖아...."
"묻는 말에 대답이나 먼저해.......다녀간적 있어 없어.....?"
"......있어......"
"정말.....?몇번 다녀 갔어.....! 한달에 한번은 와 보셔....?"
".......응.....당연한거 아냐....?다큰 딸이 이런데 혼자 살고 있는데 안 와보는 엄마가 어딨다구 그래......물을걸 물어봐라......내가 아무리 ......"
"요즘 아줌마 머리 모양 ......어떤데....?말해봐..."
"......너 지금 뭐하자는 거야...?"
갑자기 화가 났다.
뭐야....뭐....
유도심문도 아니고........
소리치며 쏘는 날 보는 상준이 얼굴이 뭔가 살피는 표정이더니......이내 굳어 졌다.
"진짜 이해가 안간다.......어머니가 네게 건네 주라는 돈은 다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대체......니네 엄마라는 사람......정말 구제불능 인것 같다....."
"너 ....무슨 말이야........?울 엄마가 왜 구제불능 이야....?무슨 소리냐구....?"
따지듯 물고 늘어지는 내게 상준인 아무말 없이 화난 눈빛만 보였다.
답답했다.
왜 상준이 어머니가 내 방세며 생활비를 건네주는 건지.......엄마가 그돈을 어디에 썼을 지는 난 알고 있다.
아마도 아빠나 작은 오빠에게 빼앗겼을 테지......분명 그럴거다.
하지만.....그런 자세한 속도 모르고 엄말 나쁘게 말하는 상준이가 미웠다.
야속했고.......화가 났다.
그날 결국 상준인 내게 아무런 말도 않고 그냥 가버렸다.
밤새 내내 엄마 생각으로 날 잠 못들게 해놓고.....그냥 가버렸다.
다음날.......
편의점 알바에서 퇴출 당했다.
이상했다.
갑자기 아무런 통보도 없이 오늘만 하고 내일 부터는 나오지 말란다.
어제 새벽에 안좋은 사건이 있었다며.......여자 알바는 위험해서 더이상 못 쓰겠다는 주인 아줌마의 말.......이해가 안되었다.
5시간 짜리라 돈은 얼마 안되지만.......카페와 거리가 가까와 시간과 교통비를 절약 할 수 있는 잇점이 있었는데......많이 아쉬었다.
정말 이상했다.
왜......?
왜.....?라는 물음표가 머리속을 가득 채웠다.
정류장 앞에 상준이의 차가 있었다.
까만색의 티브론.......
내려 오는 날 진작부터 보고 있었는지 정류장으로 향하는데 차에서 내려 날 보고 있었다.
괜히 인상이 써졌다.
알바에서 짤려서 기분이 저조한데......상준이의 출현은 좋지 않았다.
"타.....데려다 줄께......"
"됐어....혼자 갈래...."
잠바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고 걸어내려 오고 있었는데 상준이 갑자기 팔 하나를 확 잡여 당기는 바람에 몸이 기우뚱 했다.
오가는 행인이 적어서 꼴싸나운 모습을 보이는데 챙피함은 없었지만......황당한 기분이다.
날 끌어 조수석에 앉히고 돌아서 운전석으로 들어왔다.
뭐라 항의라도 할려는 날 보며 상준인 눈을 부릅뜨며 내게 아무말 말라는 경고성 빛을 쏘았다.
김건모의 핑계가 나오고 있었다.
콧노래 부르듯이 흥얼 거리는 상준일 보며 난 알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정말 이상한 남자애다.
잘 알진 못하지만.........이상하다는 것은 알겠다.
알고 지내는 남자나 사겨본 경험이 없어서 비교 할 수는 없지만......박상준은 이상한 남자애라는 사실엔 이유가 없다.
차는 집으로 곧바로 안가고 한강변에 세워졌다.
"커피 한잔 마시고 가자......."
혼잣말 처럼 .....내게 아무런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리더니 자판기 커필 뽑아 왔다.
한잔을 내게 건네고......한잔은 자기손에.......
"나와봐.......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살이 얼마나 이쁜지 한번 바봐....."
진짜........
짜증이 났다.
편의점 알바 짤려서 기분이 안좋은데.........
내 속사정을 모르면서......무슨 ......
한가한 신선놀음을 할 수 있는 자기 처지 에서나 가능한 일을.......
계속 차 안에서 고집스럽게 앉아 있는 날 보며 상준이 조수석 문을 열었다.
아직 5월 초라 밤바람은 찼다.
입고 있는 홑껍데기 잠바 속으로 바람이 쓩쓩 들어왔다.
같은 집에 세들어 가는 ......같은 지하방.....앞쪽에 사는 섬유 공장 다니는 언니들이 자기들 회사에서 만들다가 불량 난 옷이라며 내게 건네준 잠바 였다.
꽃분홍의 잠바......은주가 아주 싫어해 학교에선 입지 못하고......알바 끝나고 집에 올때만 걸치는........아주 얇은 잠바다.
색깔도 그렇지만....쇠로 된 똑딱이 단추가 달려 있어.......모양이 아주 ....촌스럽다.
중국으로 수출을 하는 옷이라고 들은것 같다.
가로등 불빛이 대낮보다 더 환하게 비추는 이곳에서......이런 몰골을 하고 상준일 볼 수는 없었다.
푸른색 남방에 해지 청바지을 입고 있는 .......맵시 맨 상준이 옆에 서고 싶은 생각은 정말 죽어도 싫었다.
"커피 다 마셨으면 가자......피곤해..."
열려있는 문을 닫으며 내가 말했다.
상준인 다 마신 종이컵을 커다란 분리수거 쓰레기 통으로 골인을 시켜 넣고 차에 올랐다.
음악이 너무 시끄러웠다.
요번에 나온 김건모의 노랜 대체로 댄스가 많은것 같다.
흘러나오는 노래가 다 밤에 듣기엔 귀에 거슬렸다.
가사도 너무 원색적인것 같고......아무리 유행가 가사가 남녀간의 애정 스토리가 많다고 하지만.....이번건 배신 행위가 많은것 같다.
친구의 애인을 뺏는........
마음이 평화롭지 못해서 인지......자꾸 신경이 분산스럽게 변해 가는 것 같았다.
체 다 마시지 못한 커피였다.
출발 시동을 걸기 전에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통에 컵을 버렸다.
흘깃 본 달 빛에 비추는 물살은 예뻤다.
금방 시선줬다가 돌렸지만.....눈에 잔뜩 걸렸다.
어제 세웠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괜찮다는 데도 상준이 따라 왔다.
후미진 골목을 보면서 '너무 위험해......'......그런말을 몇번 했다.
나혼자 였음 후다닥 뛰어서 벌써 저만큼 올라 갔을 텐데.......
빨리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과.....벼룩시장을 뒤져서 내일 부터라도 당장 알바를 구해야 겠다는 생각......모든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차 있었다.
그러면서도 상준이가 신경이 쓰였다.
얜......내일도 날 찾아 올건가.....?
편의점 알바 관뒀는데.......
"너 이사해라......여긴 너무 위험해......"
"무슨소리야...?"
"어제 .....아주머니께 말씀 드렸어......다른데로 이사 시키라구....."
"뭐....? 너 ......"
".....나 너 굉장히 좋아 하거든......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이런데서 사는것 싫구.....잠 도 못자고 고생하는것 더 싫고.....언제 무슨일 당할지도 모르는 이런 환경에 놓여져 있는건 더더욱 싫어.......그래서야..."
기막혔다.
내가 뭐라고 반박하려는 새도 없이 지 할말만 하는 상준이였다.
전에 내가 물었다.
'왜 날 좋아하냐구....'
그때 상준이 그랬다.
아무렇지 않다는 얼굴로......
'이뻐서.....'
간단 명료했다.
이뻐서 좋단다.
사실 객관적으로 봤을때......난 이쁜 얼굴이 아니다.
키만 삐죽이 컸고.....피부색도 흰편이 아닌 .....노리끼리 하다.
쌍거풀 진 큰 눈도 아니고.....오똑선 코도 아니다.....그냥 평범하게 생긴 얼굴.....
사실......따스함이 전혀 없는 찬 얼굴이다.
우리집 식구들은 모두 내 얼굴을 보면서 인정머리 없게 찬 얼굴이라고 한다.
그런 내가 이쁘다구.....?
그래서 좋아한다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그땐 기막혀서 아무런 말도 못했다.
집 까지 날 바래다 주면서 상준이 말했다.
"내일 이사짐 센터에서 사람들이 올꺼야.....포장이사니까 넌 신경쓸 필요 없어......짐은 아주머니가 와서 챙길테니까 학교 갔다 와서 이리로 와......."
그러면서 상준이 주머니에서 메모지 한장을 꺼냈다.
기막힌 상황이다.
어떻게 .....
이런일이......
쏘는 내 시선에 상준인 날 잠시 내려다 보더니 말했다.
"알지......전에 와 봤던 원룸......그리로 와......"
"야......!!박상준 너 뭐하자는 거야...?너 정말 왜이래...?"
한꺼번에 피가 위로 쏠리는 기분.......
후끈 달아오른 머리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은 기분.......
미치지 않고서는 제 정신일 수 없는 상황.......지금이 그랬다.
"너 뭐야....?네가 뭔데 내 일에 끼어 들어 이렇게 날 혼란스럽게 하는거야......?네가 뭔데...?대체 너 내게 왜 이러는 건데.....?왜 날 가만두지 않는 건데.......!!!!!"
정말 화가 났다.
소리라도 지르지 않음 미칠것만 같았다.
대체 박상준 이 왜 내게 이러는 건지.......
가슴이 답답하고......머리는 멍멍하고.......내몸에 내가 아닌 다른 누가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좁은 코트에 두명이 들어와 앉아 있는 기분.......딱 기분이였다.
" 아.....아랫집 학생이야.....?아니 지금 시간이 몇신데 밖에서 소리지르고 야단이야....?다들 자는데......배우러 다니는 학생이 지금 뭐하는 거야.....?"
갑자기 3층의 창문이 열리면서 주인 할머니가 소리쳤다.
상준이 갑자기 킥킥 거리며 웃었다.
지금 이게 웃을 상황인가...?
어이없어 하는 날 보며 상준이 말했다.
"짐은 이미 다 사 놨으니까....?들어가서 자기만 하면 될거야....?"
"뭐...?"
"......그냥 내가 하자는 데로 해......또 혈압 높이며 소리지르면 저 할머니 인상 안좋던데 뛰어 내려오면 어쩔거야....ㅋㅋ"
"야!!!너 진짜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내가 네 장난감 이야...?나 갖고 노는게 재밌어...?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이는 거냐구!!!"
"아!!학상...? 계속 그렇게 소리 지를 건감!엉!"
드르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쨍 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3층 뿐만 아니라 2층....아래층 창문이 모두 열리는 소리가 나는것 같았다.
난 얼결에 상준이 손을 잡고 약수터 쪽으로 올라갔다.
그냥 이대로 보낼 수는 없었다.
왜 이렇게 내 일에 사사건건 끼어 드는지 이유을 알아야 겠다.
그냥은.....아니였다.
약수터 빈 공터에 있는 벤취로 가서 앉았다.
씩씩 거리는 나와 달리 상준인 재미있어 하는 얼굴이였다.
"야....여기 우범지역 아냐? 달동네 십대들은 아주 무섭다던데....."
"너 돈많잖아.......돈주면 해코지 하는일 없을걸....?"
괜히 비꼬는 투가 되었다.
"그러게....난 가진게 많아서 쉽게 풀려 날 것 같은데......가진것 없고 이쁘지도 않은넌.....어쩌냐?줄게 아무것도 없는데....."
그러면서 장난스럽게 내 몸을 훝어내리는 상준이였다.
순간 메고 있던 가방을 벗어 상준이 에게 휘둘렀다.
킥킥 거리며 피하는 상준이가 진짜.....정말 얄미웠다.
약수터에 왔으니 약수물을 마셔야 하는거 아니냐며 상준이 바가지로 약수물을 한그릇 떠서 마셨다.
내게도 마시라고 권했지만 난 싫다고 했다.
자꾸 분위기를 풀어놓으려는 상준이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 잡았다.
상준이 약수물을 다 마시고 내게로 오는걸 보며 난 잠시 상준일 봤다.
아무런 표정 변화 없는 상준일 보며.......가슴이 답답했다.
"이유가 뭐야...?내게 이러는 이유.......저번처럼 이뻐서 라는.....말 같지도 않은 말 하지말고....진짜 내게 이러는 이유가 뭐야...?"
"이유..?"
"그래....?날 갖고 장난 하는 거 아니라면 무슨 이유가 있을것 아냐.....?"
".......난 장난 아닌데......내 말듣고 또 네가 화내면......그땐 어쩔껀데....?"
"그러니까 장난하지 말고 말하라구.......진짜 네가 날 이렇게 휘두르며 힘들게 하는 이유 그게 뭐냐구....!!!"
".....미래의 내 신부가 이런데서 힘들게 고생하며 사는게 싫어서 그래......너무 위험한 것도 맘에 안들고...."
"야 !박상준.....!!!!!너 정말......!!!.."
입에서 게 거품이라도 나올 만큼 난.....악을 썼다.
정말 졸도 해서 그냥 돌아가고 싶었다.
한두살 먹은 어린애도 아니고......철모르는 십대도 아니고......이게 지금 뭐하자는 얘긴지....
정말 돌아버리고 싶었다.
난 심각하다 못해 온몸의 피기 다 식어 버릴 만큼 하얗게 질려가고 있는데 상준인 날 보며 애꿎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흥분하지마.....몸에 해로우니까......."
쓰러지기 일보 직전인 날 보며 상준이 다가와 팔을 뻗었다.
그 손을 밀치며 난 내가 할수 있는 최대의 악으로 상준일 쏘았다.
"진정하고 내 말들어봐.....다 얘기해 줄테니까....."
다시 한번 손을 뻗어 날 벤취에 앉히려고 했다.
난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털썩 거리며 벤취에 앉았다.
꽉 쥔 주먹이 핏기가 없어 보였다.
"넌 내 얘기가 장난 같고 웃기겠지만.....난 진심이야......엄마가 약속했어..."
".........?"
"너랑 결혼만 시켜 주면 뭐든지 시키는 데로 하겠다구......진짜야.......또 흥분하려구 하지...야 너 그러지마......너무 자주 놀라고 그러면 심장마비 돼...."
정말......심장마비로 돌아가고 싶었다.
상준이 얘기에......난 이미 죽음의 문턱에 들어선것 같았다.
재 정말 대학생 맞아.....?
저렇게.....생각 지진아 처럼 말하는 애가 ......내가 아는 그 박상준 맞아....?
악!악!!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