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난 알바를 했다.
엄마가 얻어준 반지하 방에서 난 첨으로 자유을 누렸다.
햇빛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방이였지만.......혼자서만 있을 수 있는게 너무 좋았다.
학기가 시작하면서 편의점 외에도 학교앞 카페와 식당에서 설겆이만 해주는 알바를 시작했다.
집에 오면 양말 뒤집기나 인형 눈알 달기 등등.......거의 쉬지 않고 일에만 매달려 있었다.
화실을 한번도 다니지 않고 들어간 디자인 학과.......화구 가격이 장난이 아니였다.
한달 들어가는 월세나 생활비 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갔다.
화구의 대부분이 수입품 .......국산은 품질면에서 수입보다 많이 떨어졌다.
과에서 사귄 정희와 은주......둘이 내게 곧잘 자기들의 화구 을 빌려 주지만.......남에게 신세지는 게 익숙지 않아서 인지 편치 않았다.
알바에 온 시간을 다 바치는 형편이라 친구를 제대로 사귀기가 힘들었는데 붙임성 있는 둘이 내게 의외로 친하게 다가와준게 고마웠다.
그렇지만....역시 빽빽한 알바로 함께 하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두달이 좀 흐른 5월 중순 이였다.
자정 12시에 끝이 나는 편의점 알바를 마치고 나오는 길이였다.
대학원생인 남형 에게 바톤 터치하고 나오면서 쓰레기 봉투를 들고 나섰다.
편의점 뒷편 골목길에 쓰레기 봉투를 놓고 버스정류장으로 뛰었다.
막차을 놓칠까봐.......늘 마음이 바빴다.
몇걸음 뛰었을까....?
내리막길을 막 뛰어서 내려 서는데 뒤에서 '빵빵'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적 드문 길이여서 순간 겁이 났다.
옆으로 비켜서며 길가 쪽으로 붙었다.
라이트 까지 비추며 다시 빵빵 거리는 차.......
뒤돌아 보고 싶었지만......충동을 억누르고 다시 길가로 바짝 붙었다.
가지도 못하고 길옆.....담에 바짝 몸을 붙였다.
좁은 골목이 아닌데.......왜 차를 이런식으로 모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얼굴이 저절로 찌뿌려 졌다.
"타.....바래다 줄께....?"
'띠용'
장난스러운 만화에서나 나옴직한 현상이.....내게 일어났다.
차가 내 앞으로 바짝 선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조수석 문이 열렸다.
문이 내 가슴에 바짝 다가왔다.
얼마나 심장이 곤두박질 치던지........잠시동안 심장이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들어왔을지도 ....그만큼 난 내게 벌어진 일에 대해 놀랐다.
"뭐해....?타 라잖아....?놀랐냐....?"
짙은 썬그라스을 쓰고 있는 남자.....
코발트빛 니트에 연한 하늘색 면바지......
누군지 감이 안 왔다.
놀라 얼떨떨해 있는 날 보며 남자가 킥 하며 웃었다.
요즘 학교에서 들리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한밤중에 차타고 다니면서 맘에 드는 여자가 있음 갑자기 다가와서 차문을 열며 '야타' 한다는 야타족들이 판을 친다고 하던데......내게 그런 일이 일어났나 보다.
내 어딜 봐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얼른 둘러보니 차안엔 다른 사람은 없는것 같았다.
아니 조수석을 제외한 다른 좌석은 안보였다.
스포츠 카 인가 보다.
땅에 바짝 붙어 있는 모양새을 하고 있었다.
무시하며 약간 몸을 틀어 비켜서는데 '빵빵'하는 클랙션 소리가 또 울렸다.
적막한 골목길인데......
막차 시간이 다 되어가는데......
난 내려왔던 편의점을 한번 올려봤다.
어쩌지......다시 뛰어 올라갈까.....?
전에도 한번 남형이 늦게 와서 편의점에서 있다가 새벽에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편의점으로 다시 올라갈 상황이 생길것 같아 난 열려져 있는 차문을 세게 닫고 가방을 등뒤로 돌려메고 전속력을 다해 뛸 자세를 잡았다.
몇걸음 뛰었을까.....?
차가 날 앞질러 오더니 내 앞길을 막아 섰다.
정말 기막히고......이젠 너무 무서웠다.
두려움이 왈칵 몰려왔다.
이 시간에 여기 길목엔 왜 이리 지나다니는 행인이 이렇게 없는지......
원래 이렇게 오가는 사람이 없는 길이였나.....?
늘 막차에 늦을 까봐 숨을 헐떡이며 뛰다시피 하는 난 .....낯설은 사실에 가슴이 철렁하며.....겁이 났다.
"야....! 이여경.....? 너 뭐하냐....?달밤에 체조해...?"
이...여경....?
분명.....지금 들리는 이름은......내 이름이지.....?
순간적으로 고개가 위로 올려졌다.
썬그라스를 벗어 손에 들며 날 내려다 보는 얼굴.......
몇초쯤......은 언듯 기억이 나지 않다가.....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너무 놀라서.......
날 보며 기막힌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은.......놀랍게도 박상준 이였다.
그때 원룸을 나서면서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하고......졸업식 때도 말한번 제대로 나눠 보지도 못했던......그래서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아이......박상준 이였다.
근 4개월 을 못봤다.
졸업후.......첨 보는 얼굴 이였다.
"타라.....가면서 얘기 하자......피곤하잖아....."
상준이 조수석 문을 열어 주며 날 끌었다.
상준이 손에 끌려 먼저 차로 들어갔다.
내 쪽의 문을 닫아주고 돌아서 상준이 차에 올랐다.
차는 집 방향으로 향했다.
한강을 끼고 좀 달리면 나오는 해방촌......차가 올라가기에는 아주 좁은 골목길 이였다.
일명 산동네 라고 부르는 곳이다.
한참을 도는 골목.....개미골목 .....그 맨끝에 내가 사는 집이 나온다.
정말 산동네의 정상이다.
집에서 10분 정도만 오르면 약수터가 나오니까......공기하난 끝내준다.
전망도 좋고......
차가 올라갈수 있는 골목까지 상준인 갔다.
아직 불이 켜져 있는 카페를 가리키며 상준이 날 봤다.
아무말 없이 앞만 보고 있던 날 보며 상준이 말했다.
"많이 피곤해?잠깐만 앉았다 가면 안될까....?줄게 있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말에 난 창에서 시선을 돌려 상준일 봤다.
상준이 트렁크 쪽을 가리켰다.
"아주머니가 너 가져다 주라고 밑반찬 몇개 사주셨거든......"
설마......그럴리가......
믿기지 않은 얘기다.
엄마가 내게 가져다 주라고 밑반찬을 싸줘....?
지금까지 딱 한번 찾아 왔던 엄마가.......?
믿기지 않는 다는 내 얼굴을 봤는지 상준이 머쓱해 하며 다시 말했다.
"정말야.....볼래....?"
"됐어......내릴께...."
내켜하지 않는 걸음으로 상준이 가리키는 카페로 먼저 들어갔다.
카페라기 보다.......술집에 가까운 분위기.....
낮엔 간단한 점심과 커필 파는 곳으로.......밤엔 술을 주로 파는.....아가씨가 있는 그런 곳이였다.
뒤따라 들어오던 상준이 .......여기가 뭐하는 곳인줄 알았는지 날 다시 끌었다.
늦게 퇴근하는 남자들을 끌어 들이는 곳인줄 몰랐나 보다.
아무생각 없이 들어서던 나도......그제야 봤다.
앞가슴이 거의 드러나고......허벅지 위 까지 올라가는 몸에 딱 붙는 원피스를 입고 있는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우릴 보는 시선이 매섭다.
순간적으로 위축이 되었다.
상준이 손을 내 어깨로 두르며 날 감쌌다.
"재수없어......뭐 하자는 거야.....?"
"놀고들 있네.....?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들이......부등켜 안고..."
"야 소금 갖고와.....!!!개시도 안했는데 뭐하는거야?남 영업 망칠 일 있어!!재수없는 것들.....꺅!!!퉤퉤...!!"
갑자기 당한 일이라 나와 상준인 차로 돌아 와서도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겉보기엔 보통의 카페처럼 보였는데........
그러고 보니 ......그 집을 필두로 길 전체가 다 그런 술집이였다.
난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여태 몰랐다.
생각해보면 정말 위험하고 무서운 거리가 아닌가....?
요즘엔....인신매매도 많이 일어나고 납치도 많은 세상인데......
너무 무섭다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상준이 차를 돌렸다.
놀라서 정신을 아직 다 수습하지 못한 날 돌아다 보면서......상준이 말했다.
"여기 차 세워 둘 주차장 같은곳 있어.....?차 세우고 바로 집으로 가자....."
"됐어.....혼자갈께.....그냥 내려 줘..."
내말에 아무런 대꾸도 않고 상준인 동네을 몇바퀴 돌다가 유료주차장 이라는 곳을 찾아내고는 그리로 들어갔다.
관리인이 퇴근하고 없는 주차장엔 몇대의 차만 주차되어 있었다.
상준이 차를 세우로 먼저 내렸다.
나도 따라 내렸다.
트렁크를 열고 상준이 두개의 쇼핑백을 꺼냈다.
"김치하고.......반찬 몇개야......가자....."
"하나 줘....내가 들고 갈께...."
"됐어.......너 집에 가면 양말 뒤집기 해야잖아.......팔이 얼마나 아프...."
놀라서 쏘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상준이 말을 멈췄다.
기막혔다.
내가 양말 뒤집기 일을 하고 있는걸 어떻게 알고 있는건지......
엄마도 모르는 일인데.......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 누구도 모르는 일인데......
"너 뭐야......?어떻게 된거야...?"
내가 물었다.
상준인 갑자기 맥빠진다는 얼굴을 하더니.......조심스런 시선으로 날 봤다.
순간적인 자신의 실수가 얼마나 원망이 될까........?
시선 피하지 않고 계속 쏘는 내 시선에 상준인 휴 하는 한숨을 뱉었다.
"가자.....일단 집으로 먼저 가자.....여기 오래 서 있음 안좋은 일이 생길것 같으니까...."
주변에 갑자기 많이 보이는 외국인들......그리고 그 외국인들 불러들이는 호객행위를 하는 여자들........시간이 점점 깊어 갈수록 늘어나고 있었다.
이태원 과의 거리가 얼마 안되는 곳이라는 게 퍼뜩 떠올랐다.
궁굼증을 한껏 안고 상준일 따랐다.
달라는 쇼핑백을 끝까지 혼자서 들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상준이였다.
정말 궁굼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갑자기 날 찾아 온것도.....
엄마가 보낼리 없는 밑반찬도.......내가 편의점에서 알바 하고 있다는 것도.....
내가 밤에 양말 뒤집기을 하고 있다는 것도.....내가 여기에 살고 있다는 것도......난 알려 준적 없는데......어떻게 상준인 알고 있는 걸까......?
어떻게......얜 알고 있는 걸까.....?
설마 은서 에게......?
내 생활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은서 뿐인데.......
의혹에 의혹이 계속 떠올랐다.
정말.....박상준 얜 어떻게 알고 있는걸까.....?
어떻게 날 찾아 온건지......정말 궁굼했다.....
"등 뚫리겠다......뼈 까지 뚫릴것 같아........그만 째리고 빨리좀 걷자......"
갑자기 들리는 말에 난 당황했다.
계속 내가 상준이 등을 쏘고 있었던건가.....?
생각에 잠겨 걷던 나 였기에......아마도 걸음이 늦을 것였다.
상준인 저 앞에 서 있었다.
들고온 쇼핑백의 부피가 컸다.
무거운지 잠깐 바닥에 놓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당황스러움 마음으로 발걸음을 황급히 움직이며 걸었다.
내가 다가서자 상준이 다시 쇼핑백을 들고 걸음을 떼었다.
저걸 들고 .....오르막길을 오르려면 꽤 힘이 들텐데.......
그냥 빈손으로 걸어올라 가기도 힘든데.......
괜히 신경이 맘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