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는 날 끌고 영인이 고교 동창들이 모인다는 모임에 날 데려갔다.
고교 동창 모임이라니.......
내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잊고 싶은 기억이 뭐냐고 묻는 다면 젤 먼저 잊어버리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내 고교시절은 내겐 온통 아픔이였다.
그런 아픔 이였는데.....영인인 날 보고 싶어 하는 애들이 많다며 싫다는 날 반 강제로 끌고 갔다.
가는 내내 인상을 쓰는 날 보며 쯧쯧거리며 혀 까지 찼다.
홍대에 위치한 재즈 빠 였다.
'원더풀 투나잇'
입구쪽으로 스피커를 달아 났는지.....밖으로도 음악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재목이 생각나지 않는 여자의 노래소리.....사실 난 재즈엔 문외한 이다.
별로 즐겨듣는 음악이 아니기에......가수도 노래명도......아는게 거의 없다.
늘어지듯이 흐르는 음악이 맘에 안든다.
절대 내 취향이 아닌 음악이 재즈다.
하드락이나 펑크도 아니지만.........
장에 팔려가는 송아지 마냥......누가 뒤에서 잡아 끄는 것 처럼......무거운 발걸음 이였다.
"그만 인상펴시죠.....?뭐 마려운 강아지 처럼 보이거든요......"
"정말 내키지 않아......넌 늘 독재자 같아....."
"넌 좀 그래야돼......정시 퇴근하면.....늘 집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밤에 신나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좀 적당히 자기를 망가트릴 줄도 알아야 하는거야......인생의 단맛을 알면 쓴맛도 알아야지....."
"지금 하는 말.......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몰라....암튼 난 심각한건 딱 질색이야.......좀 편하게 ....가볍게 살아........몇톤인지 감을 잡을수 없는 무거운 추를 달고 사는 것 같은 너......나랑 적당히 반반씩 썩여보자고......알았지....?우리 이제 서로 사랑하는 사이잖아......?그렇지....?"
닭살표현......
넉살좋게 헤헤 거리는 영인일 보며 난 기막힌 웃음을 던졌다.
사랑하는 사이.......남녀 사이도 아닌데.......
그냥 좋은 사이라고 해도 될것을 ......영인인 늘 보면 표현이 과하다.
남들이 들으면 레즈라고 딱 오해 할 만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툭툭 던졌다.
가끔 사무실 직원들이 우릴 이상한 눈으로 본다는 낌새을 모르는지........영인인 내게 필요이상으로 친한척 다가온다.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렇다고 영인이 .....싫다는 말은 아니지만......
너무 빠르게 다가오는 게....익숙치 않은 내겐.......조금은 버거운 상대이긴 하다.
"어?이게 누구야.....?이여경 맞지....?"
나와 영인이 들어서자 여러명이 무리지어 앉아 있던 테이블에서 누군가가 일어서며 그렇게 말했다.
두세명을 제외하곤 모두들 정장 차림이였다.
퇴근후의 모임이여서 인지.......
"와......정말 오랜만이다......벌써 몇년이지.....?학교 졸업하고 첨인것 같은데......와....정말 반갑다......"
"나 누군지 알겠어....?영인이완 언제부터 연락이 된거야.....?"
"너무 반갑다 야.......학교 때완 좀 다른 분위기 이긴 하지만......그래도 첫눈에 알아보겠어.."
모두들 내게 한마디씩 했다.
비켜준 자리에 앉는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가 몇명.....여자가 몇명.....
실내가 좀 어두워 얼굴이 선명히 보이진 않고 있었지만......자리을 잡고 앉자 보니......기억이 새롭게 떠올랐다.
모두 영인이와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
스터디 모임 같았다.
몇은 아닌것 같지만.......
왠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억지로 껴입고 있는 기분........
많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나와 영인이가 들어올때 잠깐 화장실 다녀 온다며 자릴 비웠던 경미와 윤아.......날 보는 둘의 시선이.......불편했다.
영인이와의 사이도 왠지 껄끄러웠다.
예전에 셋이 삼총사라 불리며 아주 친했던것 같은데......그둘은 영인이에게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모양.......삐걱 거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인이 아무렇지 않은듯 넘기고 있지만........내가 느끼는 좌중의 불편함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런일이 첨이 아니란듯......다들 영인이 처럼 별일 아닌것처럼 행동하고 있지만......건성이 된 분위기가.......다들 불편케 하고 있었다.
내게 메론을 찍어 건네며 현수......강현수 ...였던것 같다.
이름은 생각이 나는데 성이 쉽게 생각이 안났다.
상준이와 친하게 지내던 단짝 남자애........안경을 벗었지만......예전 이미지가 많이 남아 있었다.
"늘 붙어 다니던 은서는 어떻게 됐어.....?요즘도 연락해....?"
"......응.....결혼해서 남편따라 대전에서 살고 있어....."
"결혼....?와 ....벌써....?"
많이 놀랍다는 얼굴......
괜히 웃음이 나왔다.
사실 나도 은서가 그렇게 빨리 결혼할 줄은 몰랐으니까....
"언제 했는데.....?아기도 있어....?"
"응.......벌써 3살이야......남자 아인데.....아주 귀여워...."
"와 이상하다.....괜히 가슴이 뛰는게......기분 참 요상타....."
현수의 말에 영인와 옆자리의 승도가 웃었다.
요상타.....라는 말의 어감이 웃음을 나오게 했다.
"넌 사귀는 사람 있어.....?영인인 확실한 사람 잡았는데......혹시 있어.....?"
"있으니까 관심두지마셔........네 그 문어다리에 여경일 끌어당길 생각 아예 접으라고 협박을 하고 싶으니까....."
"야 오영인 모르나 본데.......내 빨판의 흡인력이 얼마나 센지......당해본 사람들은 모두가 인정하는데.....너만 늘 몰라주더라.....은근히 너한테 삐진 거 알지......?"
둘의 장난에 여기저기서 큭큭 거렸다.
예전에도 강현수가 저랬나.....?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이런 분위기는 아니였던것 같았는데......
헝클어진 듯한 머리지만......좀만 신경써서 보면......꽤 신경쓴듯한 머리 모양이라는걸 알수 있었다.
정장 차림이 아니고 캐주얼 차림도......멋스럽게 세련되게 입고 있었다.
학교 다닐땐.....안경을 써서 인지 범생이 타입에 가까웠는데......이제보니......여자들이 많이 따를것 같은 얼굴이다.
예전 모습을 잘 모르니......지금과 비교를 할순 없지만......내 기억속의 강현수는 아닌것 같다.
"상준이 크리스마스날 나온다던데.......다음 모임은 그때로 잡자.......커플인 사람도 웬만하면 시간내서 나와.....외로운 솔로들도 괜히 방콕에서 악어춤 추면서 엑스레이 찍지 말고 나오고......괜히 애인 있는척 내숭까지 말고 알았지......?"
"상준이 아직 학기중 아냐......?"
"아냐......조기 졸업했잖아.....계열사에 들어가서 일 하는 중이거든......암튼 니들 상준이 보고 싶은 꼭 나와 알았어..?"
"당연하지.......회장의 말인데 누가 어기겠어....."
현수의 말에 몇몇이 맞장구를 치며 장난스럽게 말을 받았다.
상준이라는 말에 갑자기 가슴의 속도가 바빠졌다.
제자리 걸음을 걷듯이 일정하던 속도가......불규칙하게 변했다.
손으로 가슴을 한번 눌러 진정을 시키고 싶을 만큼......심장 박동수가 내 온몸을 흔들고 있었다.
영인이 시선이 잠깐 내게 향했다가 비켜갔다.
현수의 시선도......경미와 윤아의....그리고 몇몇의 시선도......날 잠시 보다가 위로 혹은 다른곳으로 향했다.
이미 내가 느낄 만큼의 시선들.....
왜일까....?
갑자기 조용해진 자리......
얼마의 시간........
왠지 목 주위가 갑갑하게 조여드는 것 같았다.
왜지.....?
왜 모두 날 잠깐씩 보고 지나 간거지....?
머리속이 혼란스러웠다.
"마시자....?뭐하냐....?모두 기도해?"
어색함을 깨듯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고.......자리는 또다시 말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나만 빼고......모두들 아까의 그 어색함을 잊은듯.......얘기들을 하고 있었다.
11시를 넘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몇은 더 남아서 있겠다고 했고......나와 영인인 일어났다.
현수가 우릴 따라 일어섰다.
윤아의 못마땅한 시선이 곧 따라 왔지만.......현수는 개의치 않고 자리에서 나왔다.
바래다 준다는 현수에게 영인이 택시를 탈거라고 했지만.......현수는 못들은척 했다.
"이여경......지금 혹시 피곤해.....?"
갑자기 현수가 내게 물었다.
영인이 시선이 금방 현수에게 나갔다.
"늦었어......할 얘기 있음 담에 만나서해......벌써 11시야..."
"영인이 넌 피곤하면 먼저 가라.......난 여경이와 잠깐 얘기좀 하고 갈께...."
"무슨 얘기.....?"
"비밀......"
"뭐...?"
아무렇지 않게......장난스럽게.....또는 아니게......말하는 현수에게 영인인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현수가 픽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입술 끝을 따라 올라가는 웃음이 왠지 시선을 잡아 끌었다.
"담에 따로 만나자......우리 낼 회사 출근하잖아......시간많은 학생인 너완 다르다 말야....빠른 시일내에 약속만들게......그렇게 하고 오늘은 여기서 안녕하자.....알았지 강현수...."
누나 처럼.....혹은 선배처럼 달래듯 말하는 영인이였다.
현수가 잠시 미간을 찌뿌리며 인상을 쓰더니 영인와 날 번갈아 한번씩 보고는 말했다.
"그럼 내일......내가 회사 앞으로 갈께.......7시 이후에 보자...."
"....야....아...."
"넌 바쁘면 안나와도 돼.......난 여경이만 보고 싶거든......"
"절대 안돼지.......내가 꼭 따라 나온다......좋아 낼 만나.......핸폰으로 전화 할께...."
마지못해 대답하는 영인일 보며 현순 킥킥 거렸다.
아무말 못하고 둘을 보면서 동공만 돌리고 있는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