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레스토랑 빕스 였다.
토요일 오후 6시였고.....내겐 쉬는 토요일 진운 이제 막 3박4일간의 일본 출장을 다녀온 참이였다.
내게 오전에 일본에서 전화를 하고 빕스의 예약을 부탁하고.......지금 인천 공항에서 이리로 온거였다.
빕스는 전화 사전 예약이 한달전에 해야 하는데 그걸 진운 모르나 보다.
덕분에 난 4시부터 나와 먼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 놓고 있었다.
근처 비디오 방에서 시간 죽이고 있다가 나온 거였다.
정말.....혼자서 비디오 방이라니......
죽을 맛이였다.
근 일주일 만에 보는 데이트다.
며칠전 오화란과 만났던게 내게 앙금이 되어 남아 있었다.
보통은 친구끼린 ......그런 관계를 맺지 않는 법인데........그러고 나면 좋았던 관계도 어색해지고......서로 얼굴 보기가 쉽지 않을텐데.....
설마 그 편한 만남.....필요에 의해 만난다는 그 부류에 오화란이 있는 건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지만......기분이 찝찝했다.
밝은 기분은 아니였다.
그 뒤로 김선배에게 화란이라는 여자에 대해서 대강 얘길 들었는데.......아버지가 알아주는 사채업자 라고 했다.
어릴때 부터 공주처럼 받들여져 자라온 외동딸 이라고 했다.
위로 오빠만 둘있는데........아버지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자라서 인지 안하무인인 성품이라고 했다.
학교때도.....늘 말이 많은 아이라고 했다.
경진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라고도 했다.
가난한 사람들과 힘없는 사람이 젤 싫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다니던 사람이라고도 했다.
샐러드만 두 접시 가져다 먹고 말았다.
아까 비디오 방에서 마셨던 환타 탓에 속이 까끌거렸다.
"왜 안먹어....?여기 좋아하잖아....?"
".....별로....입맛이 없네....."
"피곤해?얼굴색도 안좋아 보이는것 같은데.......일이 힘들어...?"
"아니.....그냥 기분이 좀 가라 앉네..."
"마술에 걸린거야......?"
"그 탓도 있고...."
내말에 금방 얼굴색이 찌뿌려 지는 진우였다.
웃겼다.
내가 마술에 걸렸다는데......왜 인상을 쓰는 건지......
"아 모처럼.....한번 안아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오면서 강장제도 먹고 왔는데......다 무용지물이 되다니......"
"대단해....정말..."
'뭐가...?"
"어떻게 만날때 마다 안을려고 하는지........자는게 목적이 아니라면서.......하는짓이나 말투 보면 자기위해 날 만나는것 같아..."
쏘는 내 시선에 진운 큭큭 거렸다.
전에도.....요 앞전에도.....내가 키스 뿐이 못하게 하자......잠시 토라진 진우였다.
출장건도 있었지만......삐졌다는 표시로 전화가 없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회사에서 내준 차는 에쿠스 였다.
까만색의......어찌보면 진우에겐 산타모 보단 이 차가 더 이미지에 맞는것 같다.
전 부터 궁굼하긴 했었다.
확실한 연봉은 모르지만........그래도 꽤 된다는 연봉일 텐데......타고 다니는 산타모는 어찌보면 좀 오래된 차같았다.
다른면에선 완벽하다 싶을 만큼......세련미를 보이는데.....차는....아무리 좋게 봐주려고 해도 아니다.
산타모는 가족용 차라는 이미지가 강한데.......
한강 쪽으로 차를 몰았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르고.....윗 단추 몇개도 풀르고......편안하게 자리 하고 능숙하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 진우.....보기가 좋았다.
차안에 흘러나오는 브람스의 헝가리무곡 6번......에프엠 클래식 방송이다.
신나는 곡이다.
헝가리 집시들의 춤......허밍으로 따라 불렀다.
그런 날 힐끔 보며 진우가 낮게 웃었다.
"잠깐 내 오피스텔에 들를래......?가방도 가져다 놓고.......여직 한번도 안와 봤잖아..."
"자는 무드 까는거 아냐...?"
"마술에 걸렸다며.......그리고 난 소세지에 케첩 묻혀서 먹는 스타일은 아니라서...ㅎㅎ"
정말......
손에 잡히는 물건이 없는게 원통했다.
소세지에 케첩.......?
이 무슨.....
얼굴의 붉어짐은 필시 부끄럽고 창피하다는 뜻은 아닐거다.
어찌저런 속된 표현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진우의 오피스텔은 25층 고층이였다.
밑엔 상가가 즐비하게 있고......사우나며 헬스 까지......모든 편의 시설이 다 되어 있는 곳이였다.
아마 세가 꽤 비쌀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들어가는 현관에서 비밀번호를 눌러야 하고......엘리베이터 탈때도 ......집 앞에서도 번호를 눌러야 했다.
총 3번의 번호를 눌러야만 비로소 집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뭐 훔쳐 갈게 있다고.....
오피스텔이 아니라 빌라라는 말이 어울릴 법하다.
32평 이라고 하는데.......아파트 평수 보단 좀 작지만.......내가 보아온 일반의 오피스텔 보다는 훨씬 넓어 보였다.
탁트인 전망도 그렇고.......가구가 몇개 없는 심플 모던 집 꾸밈 이였다.
주방 한쪽에 커다랗게 자릴 차지하고 있는 지펠 냉장고에서 진운 생수병을 꺼내더니 병째 마시고 있었다.
들어오면서 셔츠는 벗어 버렸다.
속옷은 입지 않는지.......맨살의 상체가 보였다.
다년간 해온 운동의 결실인지.....군살 없이 쫙 빠진 상체 였다.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거실 벽에 걸려있는 수채화로 시선을 돌렸지만.....채 돌리기도 전에 날 보고 있던 진우의 시선에 걸렸다.
"왜 .....갑자기 동해....?"
배에 왕자를 세기며 그렇게 말하는 진우였다.
진짜 .....웃기고 있어....
인상을 쓰는 날 보며 진운 바지까지 벗어 버리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젠 벌써 10월 말이다.
더위는 완전히 사라지고.......가을도 벌써 중반이나 지나가 버렸다.
진우와 만나온지 벌써 5개월이 훌쩍 지났다.
얼마전에 서울에 올일이 다시 생겼다며 준우에게 멜이 왔다.
다음주쯤 온다며 .......준운 일본에서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너무 성격이 약해......우유부단한 성격탓에 그동안 다툼이 잦았는데.......서로 합의하에 헤어지기로 했다며......맘이 많이 우울하니까....저번 처럼 홀대하면 우릴 만나지 않고 바로 가버린다는 협박[?]까지 했다.
준우........
준우가 나와 진우가 사귀는걸 알면.......어떤 반응를 보일까.......?
궁굼도 하고.....걱정도 되었다.
서경인 영훈이와 사귀는걸 아직은 준우에게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아마 나와 같은 맘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운 절대 자기 오빨 우리와 알게 하고 싶지 않다고 예전부터 늘 말해 왔으니까......
우리에게 진운 해로운 마약과 같은 존재라고 했다.
그땐 그말이 우스웠는데......지금은 ......좀 착잡했다.
샤워를 하고 나온 진운.......머리칼을 수건으로 탁탁 털어내고 있었다.
감색 진바지를 입고......상체는 여전히 맨몸이다.
스킨향......쿨 워터의 향과 비슷하다.
우리나라 남자 화장품의 향은 모두 거기서 거기 같다.
민트향이 강하다......시원한 느낌.....
깨끗하게 씻고 나와서 인지 빕스에서 봤을땐 좀 지쳐 보였는데.......이젠 활기차[?]보였다.
둥그런 일인용 쇼파가 두개 놓여져 있었는데......노랑과 파랑......그중 파랑 쇼파에 내가 앉아 있었다.
책꼿이에 꼿힌 책중에 하날 들고 있었다.
인디언들의 생활 을 그린 내 영혼의 따뜻한 스프........전에 한번 읽었던 책이다.
"생각보다 책이 많네....?책 있는 시간도 없을것 같은데......"
옆자리에 앉는 진울 보며 내가 물었다.
내 물음에 답은 안하고......내 쇼팔 끌어다가 옆에다 딱 붙였다.
"책상에.....사진액자도 하나도 없고......좀 썰렁해 보이는 집이야..."
정말 그랬다.
장식장도 없고.....소품들도 없고......그흔한 사진 액자도 하나도 없었다.
삭막하기 까지 하다.
"집착은 싫거든.......소유도 싫고.....필요한 것만 있음되니까...."
"집착......소유......?욕심이 없다는 말이야....?"
"그것과는 다르지만.....암튼.....사물에 뜻을 두어서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하는건 시간낭비라고 생각해......성격상 맞지 않아......난 피곤한건 딱 질색이거든......."
"사람에 대해선......?사람에 대해서도 그래....?"
"그럴수도 있고.....안그럴수도 있지..."
"그게 뭐야....?"
"하나만 말하지.....내가 집착하고 싶고.......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너야.....원래 사람에게도 그런 신경 쓰는게 안맞는 난데......넌.....늘 내 신경을 잡아끌어 대니까......모른척 할 수가 없어.......피곤하지만.......그래도 그냥 버려두면 더 힘드니까......그냥 끌어 안고 있는거지...."
알수 없는 답이다.
피고하지만.....버려두면 더 힘드니까....끌어안고 있는다.
쇼파위의 날 들어 자기 무릎위에 올려다 놓고 진운 날 봤다.
동그란 쇼파라......무릎위에 앉아 있기가 불편했다.
인상을 쓰는 날 보며 진우가 입술를 내게 부딪쳐 왔다.
싸한 스킨 냄새와 샴푸냄새.......바디크렌져 냄새가.......내 후각을 마비 시키고 있었다.
라임향 인가....?
내가 쓰는 향과 비슷하다.
물기가 서려 있는 촉촉한 입술로 내 입술을 문질러 대고 있었다.
그 느낌이 정말 좋았다.
어린아기의 볼에 입술을 대고 있는 기분......포동포동한 살집 처럼 느껴졌다.
키스만 살짝 하고 날 놓아주었다.
아마도 내가 마술에 걸려있으니......앞으로 나가기가 어렵겠지...
많이 아쉬워 하는 진우의 얼굴을 보며 난 웃음이 났다.
저녁에 집으로 바래다 주면서 차에서 내리는 내게 진우가 열쇠을 내밀었다.
오피스텔 열쇠였다.
그동안 내가 달라고 할때까지 기다렸는데.....도무지 말을 하지 않아 ......주는 거라고 했다.
앞으로는 바쁜일은 별로 없을 거라 했다.
매장 근무에서 사무실로 이동 했다고 했다.
인사발령도 낫고 해서....자주 얼굴 볼수 있을거라는 말도 했다.
아무런 말도 없는 날 보며 진운 자길 자주 볼수 있게 됐는게 기쁘지 않냐고 했고.......난 그냥 웃어만 주었다.
정말 앞으로는 자주 볼수 있단 말이지......
지금 내가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진우에겐 내색을 않고 있지만.......정말.....기분이 좋았다.
자주 볼 수 있다는 말이......아까 출장 에서 사온 선물이라며 캐치아이가 박힌 목걸이 보다 더 좋은 선물이였다.
벨을 눌러 들어가는 모습까지 보고 돌아가는 진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