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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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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9


BY 제인 2003-11-29

고수가 유학을 떠난지 1년이 넘었다.

고수가 떠나기 이전부터 이미 전세계는 불황 국면에 접어들어 있었는데 그가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동남아 금융 스캔들이 터지면서 국내경제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갔다.

음반업계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소회사들중에 속하는 영준의 음반기획사는 특히나 위험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증시가 계속 추락하고 있는데다 국내 음반판매량이 현격히 줄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준은 미연과 헤어진 후 미연과 마찬가지로 상심이 컸다.

그날 영준의 사무실에서 그녀의 눈에서 쏟아져 내린 눈물이 그녀가 결혼식장에서 흘렸던 눈물처럼 가슴저미게 애처로와 보였다.

그렇게 눈물을 흘리면서도 왜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지 않는지, 그 눈물의 의미가 무얼 뜻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왜 그렇게 울어야 했을까...

영준은 일을 하다가도 그녀 생각이 나서 넋을 놓는 적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회사보다 큰 대형음반회사에 가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미연이 옆에 있었어도 잘 해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불황으로 회사가 점점 기울어 직원을 반 이상 줄여야했다.

음악을 만드는 일보다는 돌아오는 어음을 막는 일에 더 신경을 쓰느라 거의 밤잠을 설치다시피 살아왔다.

 

유선아는 개인 매니저를 두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해가며 스스로 인기관리를 해왔다.

하지만 영준은 그녀를 위한 음반기획을 하지 않고 있었다.

데뷔 앨범을 낸 후 2년 가까이 새로운 음반이 나오지 않자 매니저는 소속을 옮길 것을 자꾸 종용하였다.

하지만 선아는 아직도 영준을 사랑하여 계속 그의 곁에 머물고 싶었다.

아버지로 인해 당한 고통을 만회하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리라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위해 곡을 쓰지도 않고 기획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동안 노래는 잠시 접어두고 드라마 출연에 주력을 하였다.

하지만 본업이 가수인 그녀가 인기에 비해 가수활동이 저조하자 여러 다른 기획사에서 자꾸만 이적을 권유하였다.

그녀의 매니저는 그런 기회를 자꾸만 놓치자 화가나 영준의 후배인 이종현에게 재촉을 하였다.

이종현도 영준이 너무 선아에게 무심한 것이 못마땅하였다.

가뜩이나 불황인 이때 드라마를 통해 한창 주가가 올라있는 선아의 음반을 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급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리하여 영준에게 다그쳤다.

"형, 선아 언제까지 그냥 둘거예요? 앨범 낼때가 지난 거 아니예요?"

"......"

"지금 한창 회사 사정도 안좋은데, 이럴 때 선아 앨범내면 좋을 거 같은데."

영준도 후배의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역시 내키지가 않았다.

영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후배에게 이렇게 말을한다.

"네가 할래? 너한테 한번 맡겨볼테니, 네가 기획해봐."

"제가요?"

"그래, 여러 번 해봤잖아."

"그럼 곡은요? 형이 좀 써주실건가요?"

영준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도 네가 다 알아서 해. 너도 알겠지만 내가 요새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여력이 없어."

"그럼 제가 다 알아서 해볼께요. 형, 고마와요."

무거워진 어깨를 짊어지고 후배는 영준의 방을 나갔다.

전에도 기획을 맡아 앨범을 낸 적이 몇번 있었지만 이번처럼 유선아같이 인기있는 가수의 앨범을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종현은 가슴이 벅차왔다.

 

미연은 그동안 미래의 회사에서 내놓은 곡들 중 여러 개가 인기를 끌어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미래의 회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음반사중 하나였지만 그곳 역시 불황의 한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기획 하나하나가 살얼음판처럼 아슬거리는 상황이었다.

이 회사의 기획자는 대중들이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인해 의기소침해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밝은 노래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무게있는 선율의 발라드를 내놓는 것이 대중들에게 어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장미래의 다소 어둡고 낮은 음색이 통할 것 같았다.

장미래와 작곡가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었다.

"애절한 쪽으로 가는게 요즘 사람들 심리에 와닿을 거 같아."

"그런데, 너무 슬픈쪽으로 가지 말았으면 해요. 가뜩이나 사람들 기분이 가라앉아 있는데 너무 누르는 것도 안좋을 거 같아."하고 미래가 일견을 비췄다.

"맞아. 애절한 건 좋은데 아픔이나 이별보다는 희망쪽으로 가자. 사람들한테 희망을 좀 주자고."

미래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손뼉을 쳤다.

사람들은 "뭐예요?" 하고 물었다.

미래는 미연을 향해 몸을 구부리며 큰소리로 이야기하였다.

"미연아, 전에 네가 만든 그 곡 있잖아. 내가 전에 클럽에서 불렀던 그 노래..."

"그거 왜?"

"그 노래 너무 좋았는데. 그거 타이틀 하면 좋을 거 같아."

"그건 공개하지 않을건데..."

"얘는, 그런 노래를 왜? 나한테 줘, 그러지 말고."

그 노래는 미연이 전에 고수를 위해 만든 '다시 만날 사랑'이라는 노래였다.

고수의 생일날 미래가 불러주었던 바로 그 노래이다.

미연은 그 노래를 그날 고수에게만 들려주고 공개하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미래는 그 노래가 묻혀버리는 것이 아까왔다.

미래가 자꾸 조르자 미연은 "그럼 한 번 보던지..."한다.

기획자가 들어본다고 꼭 선곡이 되는 건 아니었기때문이었다.

"나 아직 그 악보 내 방에 가지고 있어. 내가 가져올께. 프로듀서님, 그거 한번 봐요. 그 노래 진짜 좋아."

"그래요? 미래씨가 좋다면 좋은 거지. 가져와요, 얼른."

미래는 자기 방으로 가서 예전에 미연이 복사해주었던 그 악보를 가져온다.

기획자는 그것을 받아들고는 고맙다고 하고 그날 회의를 마친다.

그 후 그는 다시 여러차례 곡을 재수집하고 난 후에 미연의 곡을 타이틀로 최종 결정하였다.

곡도 아주 좋을 뿐 아니라 제목인 '다시 만날 사랑'이라는 말이 희망적인 뉘앙스를 주어 컨셉에 가장 잘 부합된다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미연의 이름으로 타이틀곡이 나가기는 처음이라 모두들 축하해주었다.

 

미래의 음반은 회사에서 가장 큰 기획이어서 제작비를 많이 들인다.

일류 배우를 동원한 최고급 뮤직비디오, 방송출연, 각종 매체를 통한 광고와 포스터등등 할 것 없이 모든 홍보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에 제작비가 다른 가수의 두배이상 들었다.

이번 음반은 먼저 사람들 귀에 익게 만든후 앨범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때 출시를 하면 단일 매출액이 최고조에 달할 것을 예상하여 뮤직비디오 방송후 두주일정도 있다가 출시하기로 하였다.

영화계에서 하듯 출시당일의 실적을 이슈로 삼아 광고효과를 보려했던 것이다.

몇 달간의 녹음작업이 끝나고 음악전문프로에 뮤직비디오 방송날자가 6월 첫주로 잡혔고 음반 출시일은 6월 중순으로 잡혀있었다.

 

그때 명민이 2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왔다.

미래는 미연에게 명민을 만나러 함께 가자고 하였다.

"돌아왔구나. 졸업식은 했어?"하고 미연이 반갑게 인사했다.

"아니 못했어. 마지막 논문 제출하고는 바로 왔지. 회사에서 빨리 일시킬려고 얼마나 안달인데."

"졸업사진 못봐서 아쉽지만, 그래도 잘됐다."

"그리고...우리 결혼할까 해."

미연은 명민과 미래를 번갈아 쳐다보며 웃음을 지었다.

"나모르게 언제 그렇게 됐어? 미래야, 너 어쩜 나한테는 아무말 없이 그렇게 응큼을 떠니? 날은 잡았어? 언제할거야?"

그러자 미래가 농담을 시작한다.

"이번 앨범 나가는 거 보고...후후...성공하면 결혼식하는 거고 아니면 다음에."

"아니, 그런 법이 어딨어요?"

"어머, 누가 변호사 아니랠까봐 법부터 찾네?"

"미래씨, 나 늙으면 머리 벗겨져요. 결혼사진 빨리 찍어야 돼."

"그래요? 미연아 나 신랑 잘못 골랐나봐. 어떡해...?"

미연은 두 사람이 행복하게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고 흐믓했다.

명민은 갑자기 미연이 의식되었는지 자세를 가다듬더니 미연에게 물었다.

"그동안 영준이랑은 안 만났니?"

"아니."

명민은 잠시 머뭇하더니 다시 말을 꺼낸다.

"너 혹시 그 친구 아직도 사귀니? 그때 그 학생이었던..."

"유학갔어. 너 떠나고 반년 후에."

"그 친구 기다리고 있는거야?"

"응. 돌아오길 기다리기는 하는데, 내가 기다리는 건 그애가 마음이 변해서 돌아와주는거야. 나는 그 애를 감당할 수가 없었어. 그래서 가기 싫다는 유학 억지로 보냈어."

"그런데 왜 기다려? 그냥 잊으면 되잖아."

"약속을 했거든. 기다려 준다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그런 약속은 왜 했니?"

"모르겠어...그애 마음 상할까봐 두려웠어."

"미연아, 그렇게 우유부단하게 굴면 더 일이 꼬이는 법이야."하고 명민이 나무란다.

"그럴지도..."하고 미연은 풀죽은 목소리로 답한다.

"그 친구하고 계속 연락하고 지냈어?"

"그랬는데, 얼마 전부터 연락이 끊겼어. 공부가 바쁜지..."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명민은 무슨 말을 하려다 그만둔다.

잠시 생각을 하더니 미연에게 다시 묻는다.

"그 친구한테 마음있는 것도 아닌데 그럼 왜 영준이하고는 다시 안만나니? 너... 영준이 아직 사랑하고 있지 않아?"

"......"

"그렇지...?"

미연은 대답대신 한숨을 쉰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안될 거같아. 진희한테..."

"진희? 진희한테 죄책감 갖고 있었어?"

명민은 단호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미연아, 그럴 필요없어. 나, 미국에 있을 때 진희 만났어. 벌써 재혼해서 아들낳고 잘 살고 있어. 아예 거기 눌러붙어 살 생각인가 보더라."

"......"

미연은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인다.

명민은 미연의 그런 모습을 보자 안스러워 이맛살를 찌푸린다.

"너 여태까지 그러고 있는 동안, 진희는 별 생각없이 잘 지내고 있었어. 진희일은 잊어."

"하지만...나때문에 진희인생 망가진거.. 맞잖아."

"그건 네 인생도 마찬가지야. 꺼꾸로 진희가 네 인생 망친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라고. 솔직히 난...진희가 널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한건지도 의심스러워."

미연은 고개를 들고 명민의 얼굴을 쳐다본다.

"우리 첨에 학교 입학했을때 다들 너랑 사귀고 싶어했지. 너네 과 뿐 아니라 문과쪽 애들은 거의 다 너를 알고 있을 정도였어. 진희는 정말 너를 좋아했다기보다는 그런 너를 먼저 차지하고 싶어했던 거같아. 옆에서 보면서 그런 거 많이 느꼈거든. 그리고, 진희가 정말로 너를 사랑했다면, 설령 영준과의 일을 확실히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그냥 떠났겠니? 네게 아무런 확인도 안하고? 너랑 어떻게든 잘해보겠다는 그런 아무런 노력도 없이? 내 생각에 진희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을까봐 그게 더 걱정되었던 거야. 너를 잃는 것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남의 시선이 더 두려웠던 거라고."

"......."

"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군지 너 알잖아. 그 마음을 이젠 헤아려줘야할 때 아니니? 그리고, 너 자신에게도 좀 솔직해져봐."

미연은 다시 고개를 숙인다.

잠시 말이 없이 그러고 있더니 표정을 바꾸고 명민과 미래에게 다시 인사한다.

"너희들, 다시 한 번 축하해. 그리고 빨리 날 잡아. 더 늙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해야지."

"알아. 한 두달 안으로 치를 생각이야." 미래가 웃으며 대답했다.

미연은 두 사람을 남겨두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진희에 대한 소식을 듣고 나자 미연은 마음이 착찹해졌다.

재혼하여 잘 살고 있다는 소리에 안도감이 들기도 했지만 영준을 그렇게까지 가슴 아프게 하면서 서로 깊이 사랑하지도, 서로 솔직하지도 못했던 진희에게로 갔었던 것이 너무나도 한스럽게 느껴졌다.

미연은 상념에 젖은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 지하철 역으로 향해 갔다.

계단으로 한걸음 두걸음 내딛는데 길가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낯익은 멜로디였다.

'저 노래는....?'

미연은 몸을 돌려 음악이 흘러나오는 쪽을 돌아보았다.

길가에 있는 커다란 CD 점이었다.

미연은 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지금 이 노래 뭐예요? 좀 줘볼래요?"

점원은 CD를 카운터 밑에서 꺼내어 미연에게 내주었다.

"이거 오늘 나온 건데, 무지 히트예요. 오늘만 벌써 수십장 팔았어요."

카운터에다 쌓아놓고 팔 정도면 그 인기가 어느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CD 커버에는 유선아의 아름다운 사진이 있었다.

카운터와 유리창에 기다랗게 붙어있는 포스터와 똑같은 사진이었다.

'유선아?'

노래는 이미 끝나버렸다.

"그 노래 다시 한 번만 틀어줘봐요. 네?"

점원도 그 노래를 좋아하는지 얼른 다시 트랙을 뒤로 옮겨 방금전의 그 노래를 틀었다.

'이럴수가, 이럴수가...이건 내 곡이잖아?'

그 노래는 바로 미연이 작곡하였던 '다시 만날 사랑'이었다.

이주일 후면 미래의 새 앨범에 타이틀로 나와야 할 그 노래가 유선아의 타이틀 곡으로 벌써 시장에 나와있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이건 우연이 아니야. 우연일 수가 없어. 곡 전체가 완전히 똑같아.'

전주와 반주상태, 그리고 가사가 다를 뿐 곡의 본질은 완전히 미연의 곡이었다.

미연은 그 음반을 사서 뜯어 안의 책자를 들여다보았다.

'작곡 박영준 / 작사 유선아 / 편곡 이종현'

 

미래의 회사는 벌컥 뒤집혔다.

다음날 아침 사장은 미연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미연이 사무실로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미연씨,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저도 잘 모르겠어요."

"모르다니? 곡을 쓴 사람이 모르면 누가 알아? 양쪽에 다 팔아먹고 다니는 거야, 뭐야?"

옆에 나와있던 미래가 "그럴리가 있겠어요? 사장님, 좀 진정하세요. 진상이 어떻게 된건지 좀 알아보고 화를 내셔야지, 무턱대고 화먼저 내시면 어떻게 해요?"하고 미연의 편을 든다.

기획자도 어두운 얼굴로 미연을 째려보고 있었다.

"혹시 미연씨...표절한 거 아니죠?"

미연은 기가막혀서 털썩 주저앉아 고개를 흔들었다.

미래가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뭐예요? 아니, 왜 미연이를 의심해? 이노래 만든지가 언젠대? 표절은 그쪽에서 한 거라구. 아니, 당신은 알지도 못하면서 왜그래요?"

평소 전혀 화를 내는 적이 없는 미래가 그렇게 얼굴이 빨개져서 화를 내는 걸 보더니 기획자는 머슥해졌다.

"그, 그게 아니고...저쪽에서 먼저 나왔으니까..."

"우리야 홍보하는데 준비를 많이 했으니까 시간이 더 걸린거지. 저쪽에서 우리곡 훔쳐다가 얼른 만들어 냈을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그런 짓을 어떻게 해? 말도 안되지."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 났잖아요."

"그래도 박영준이 그런 사람이 아닌데...."

기획자는 박영준과 아는 사이였고 그의 인격을 잘 알고 있는 터라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건 그 사람이 기획한 게 아니던데? 여기봐요."

"기획 이종현....?"

"요새 박영준 그 친구, 자금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나보던데...그래서 아마 기획을 종현이한테 맡겼나봐."

"그런데, 작곡은 박영준이라고 되어 있는데? 작사는 유선아...편곡은 이종현...."

사장은 듣고 있다가 미연에게 아까보다는 진정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 노래 언제 만들었다고?"

"2년 전에요."

"중간에 어디 흘린 적 없고?"

"아뇨. 그때 미래클럽에서 미래가 한 번 불렀었고 그 다음엔 전혀 없었어요."

"그때 악보 누가 갖고 있었는데?"

"세션들이요."

"그 친구들하고 관련있는 거 아닐까?"

미래는 고개를 젓는다.

"그 친구들 아직도 저의 클럽 전속이예요. 박영준씨네 하고는 전혀 상관도 없는데...그리고 그 친구들 그렇게 몰지각한 사람들 아니예요. 미연이 작곡한 건지 뻔히 알면서 그런 짓을 하겠어요?"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아이, 뭐 생각할 거 없어. 보나마나 그쪽에서 표절한거야. 소송해야지 뭐."

미연은 눈이 둥그레진다.

"소송이라뇨?"

"표절했으니까 소송해야지. 그럼 어떻게? 오늘 저녁에 뮤직비디오 방송되기로 했는데, 그거 나가면 그쪽에서 선수칠지도 모르니까 지금 당장 소송해야지.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야 없잖아?"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사장은 화를 삭이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이봐, 변호사 사무실에 얼른 연락해! 아, 그리고 오늘 방송 중지시켜!"

"소송을 꼭 해야해요?"하고 미연이 애처롭게 물었다.

사장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려다 미연에게 돌아서서 차갑게 말한다.

"미연씨 곡이니까 소송은 일차적으로 미연씨가 해야하는 거야. 만약 하기 싫다고 하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내가 미연씨 상대로 고소하는 수 밖엔 없다고!"

사장은 훽 돌아서서 사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미연은 소송이야기가 나오자 영준이 걱정이 되어 미래에게 다시 묻는다.

"미래야, 그럼 어떻게 되는거야?"

"우리한테 끼친 손해액을 배상해야지 뭐."

"얼마나?"

"이번 들은 제작비하고... 그뿐 아니지. 판매했을때 벌어들였을 예상수입까지 다 하면...엄청나지."

미연은 기가 탁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내가 어떻게...어떻게 영준씨를 상대로..."

미래도 속이 상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래도 어떻게 하겠어? 그러지 않으면 너가 걸려드는데...아휴..."

미연은 미래에게 "미안해..."하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한다.

"미안하긴, 어떻게 된 일인지 너도 모르면서 뭐가 미안하니?"

미연은 앉아서 왜 일이 이렇게 되었는지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때 미연은 영준의 디지털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그날 아침 신인가수에 대한 회의가 있었어....'

미연은 회의를 마친 후 연습실에서 신인가수의 곡을 만들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곧 고수의 생일이어서 그에게 선물로 줄 곡을 만들게 되었다.

후렴구의 악상이 떠올라 얼른 곡을 녹음해두었다.

그리고 미연은 새 테입으로 갈아끼워 다시 녹음을 했다.

따로 깨끗이 녹음하여 보관해두고 싶어서였다.

'그래... 새 테입에 녹음해놓고는 손으로 기보를 했지. 그러면 먼저번 테입은....빼서 어디다 놓았지?'

미연은 후배가 처음에 자기에게 주의를 주었던 것이 떠올랐다.

'꼭 표시해두셔야해요....'

그 테입은 아무 표시도 안한채 어딘가에 놓고는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이었다.

"미래야...그건 내 불찰이었던 거 같아."

"왜?"

"내가 그 노래를 녹음했었는데, 그 테입을 아무데나 놓고 나온거 같아. 내거라고 표시도 안해놓고..."

"어디서?"

"영준씨 음악실에서."

"그럼 그쪽에서 표절한 게 확실하네?"

"하지만 내가 잘못해서 그런거잖아."

"그런 게 어디있어? 누구 곡인지도 모르면서 자기가 작곡했다고 이름 석자를 내놓는 그런 경우가 어디있냐고? 박영준씨, 참 웃기는군....그런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세상에, 어쩜 그래? 유선아도 그렇지. 둘이서 곡쓰고 작사하고, 다시 한번 잘해보려고 그랬는지 어쨌는지 모르지만, 진짜 너무 웃긴다."

미연은 미래의 푸념을 듣고는 영준과 선아가 다시 결합하였나보다하고 생각했다.

'영준씨하고 유선아가 함께...그래....축하해 줄 일이야...하지만 영준씨가 왜 그랬을까? 자기가 쓰지도 않은 곡에다 왜 자기 이름을...? 뭔가 착오가 있었겠지....인쇄가 잘못된걸까?'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라던데 이런 소송까지 걸리고 나면 어쩌면....게다가 제소자가 바로 나라니...'

미연은 눈물이 쏟아졌다.

미래는 미연이 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미연의 어깨를 감싸주었다.

"미연아, 괜찮아. 살다보면 이런 일도 있는거지 뭐. 울지마."

하지만 미연은 벌써 엉엉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