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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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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사랑 45


BY 제인 2003-11-26

다음날 아침 미연이 눈을 떠보니 장미가 옆에 없었다.

놀라서 마루로 나가보니 식탁에 아침밥이 차려져 있고 장미가 그 앞에 앉아 있는 것이었다.

어제 영준이 '함께 출근하라'는 말에 마음이 들떠 장미는 꼭두새벽에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미연을 기다렸다.

"엄마, 빨리 해."

미연은 영준의 레슨을 취소시키려고 생각했던 것을 접어야했다.

저렇게 레슨의 꿈에 부풀어있는 장미를 도저히 실망시킬 수가 없었다.

미연은 장미를 데리고 회사로 갔다.

영준은 장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장미는 "아저씨 안녕하세요?"하고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래, 잘 왔어. 그런데 잠깐 회의를 해야하는데 혼자 연습실에서 놀고 있을래? 괜찮겠니?"

"네, 괜찮아요."

장미는 피아노가 있는 연습실로 달려들어갔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어 프로듀서인 영준을 비롯한 소속 작곡가들이 모여 회의를 하게 되었다.

"이번에 새 음반 컨셉을 잡아야하는데, 데모 들어봤지? 그런데 그 노래부는 애 나이가 열여덟이야."

"걔 나이가 그거 밖엔 안되었었어? 그런데 목소리가 굉장히 성숙했던데?"

"게다가 얼굴도 완전히 꽃미남이야."

"얼굴하고 목소리하고 잘 안맞는 경우도 많지 뭐."

"내 말은...목소리에 맞추려고 노래를 너무 무겁게 만들지 않았으면 해서. 나이나 외모로 봐서 아무래도 대상연령을 낮춰야 할 것 같아."

"오히려 좀 무겁게 나가보면 어떨까, 형? 한동안 남자 가수들이 발라드를 안 내놓았기 때문에 괜찮을 거 같은데."

"앳띠고 예쁜 미소년 입에서 우수에찬 노래가 나온다...여자애들이 완전히 녹을거 같은데요?"

"하하...그래, 나이가 어린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지도 모르겠다."

"주제는 뭘로 잡을까?"

"목소리가 아무래도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그런 쪽에 맞을 거 같아."

"그건 너무 흔하잖아. 차라리 앞으로 만날 미지의 연인에 대한 그리움은 어때? 좀 색다르지 않아?"

"음...그래. 나이 어린 여성팬들이 그 그리움의 대상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환상에 빠지게 만드는 거야. 아주 좋은 생각인데? 그럼 일단 그런 방향으로 가보자구. 어때요, 여러분은?"

모두들 좋은 생각이라고 동의한다.

"그럼 여러분들은 그런 쪽으로 곡을 써오시구요, 미리 만든 것중에도 그런 컨셉에 부합되는 것이 있으면 가져다 주시고요. 일주일 후에 다시 만나서 또 이야기하죠."

미연은 가슴이 뛰었다.

음반 프로젝트에 함께 끼어 일을 하는 것은 생전 처음이었다.

영준은 회의가 끝나자 장미에게로 갔다.

피아노에 앉아서 놀고 있던 장미는 옆으로 비껴 앉으며 영준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자, 먼저 손가락을 이렇게 둥그스름하게...그렇지, 손목에 힘 빼고..."

두 사람은 싱글벙글거리며 재미있는 레슨 시간을 보낸다.

영준은 매일 아침 단 30분이라도 그렇게 가르칠 생각이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장미하고 친해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장미는 하루종일 엄마가 일하는 음반사에 있는 것이 즐거웠다.

연습실 근처를 서성거리며 다른 사람들이 노래 연습 하는 것을 구경하였다.

자기처럼은 아니지만 꽤 나이가 어려보이는 언니 오빠들이 출입하면서 노래를 배우고 있었다.

저 사람들이 나중에 가수가 되어 TV 에 나오나보다 하고 생각하니 더 신기했다.

미연은 장미가 싫증내지 않고 잘 노는 것을 보고 마음이 놓였다.

미연은 이번 음반을 낼 어린 남자 가수의 데모테입을 들어보았다.

아직 열여덟이라는데 목소리는 20대 후반같았다.

어느 부분도 흔들림 하나 없이 매끄럽게 넘어가는 걸 보니 그동안 연습을 맹렬히 해 온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굉장하네? 이런 애를 어디서 데려왔지? 미래클럽에서?'

미래클럽을 생각하니 고수의 생일을 위해 예약하기로 한 것이 떠올랐다.

'참, 오늘 가다가 예약해야겠다. 그리고 고수한테 뭔가 선물을 해야할텐데...'

미연은 옷이나 악세사리, 또는 장식품같은 선물을 생각해내려했으나, 자신이 그런 쪽으로 둔한 편이라 뭘 사줘야할지 몰랐다.

한참 고민하고 있던 중 예전에 고수가 컴퓨터를 고쳐주던때가 생각났다.

'맞아, 그때 내가 만든 음악이 좋다고 완성하면 꼭 들려달라고 했었지. 그 곡을 완성해서 선물하면 어떨까? 내가 가진 재주가 그런 거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지.'

미연은 그 곡을 쳐보았다.

그 곡은 아직 후렴구를 만들지 않은 미완성 곡이었다.

완성해보려고 다양하게 시도를 해보던 중 갑자기 악상이 떠올랐다.

미연은 얼른 녹음버튼을 누르고 떠오르는 대로 그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를 하였다.

테입을 돌려서 들어보았다.

'아주 좋아. 이걸로 해야지.'

미연은 새 테입에다 깨끗하게 녹음해 두려고 디지털 피아노에 꽂혀있던 테입을 꺼내고 새 테입을 끼워넣었다.

그리고 다시 신중하게 연주를 해서 녹음을 했다.

미연은 이왕이면 가사까지 쓰고 싶었다.

가사 내용을 궁리하던 중 처음 고수를 만난 날 나누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 아무리 많은 일을 겪고 났어도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사랑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그랬지? 그래, 그런 사랑을 노래해 줄께. 후후...'

미연은 가사를 써내려갔다.

 

어느덧 오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미연은 그렇게 고수를 위해 만든 노래의 테입과 가사가 적힌 손으로 직접 쓴 악보를 가방에 챙겨넣었다.

미연은 장미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길에 미래 클럽에 들렸다.

"안녕하세요, 매니저님."

"미연씨, 어서와요. 아이구, 우리 장미도 왔구나."

매니저는 미래와 절친한 미연이 오면 항상 반겨주었다.

"부탁이 있는데요."

"얼마든지 말씀만 하십시요."

"이번 토요일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자리 좀 예약하고 싶어서요. 될까요?"

"그런 거야 무조건 되는 거죠. 몇분이나 오시는데요?"

"음...한 대여섯 명이요."

"누구 생일이예요? 생일이면 케잌 준비해야죠."

"예, 제 동생..."

"큼지막한 걸로 준비해 둘께요. 시간은요?"

"7시요."

미연은 예약을 한 뒤 내실쪽으로가서 그날 공연을 준비하고 있는 전속밴드의 연주자들을 만난다.

"안녕들 하세요?"

"우와, 작곡가님이 여길 어쩐일로 오셨나요?"

밴드단원들은 미연이 작곡가로 데뷔한 것을 축하하였다.

"저희들 곡도 좀 써주시면 안되나요? 하나만 써주시지..."하고 키보드를 치는 광식이 익살을 떨었다.

"호호...저도 생각은 굴뚝같아요....호호...참, 그런데요."

미연은 사람들에게 악보 복사해온 것을 나눠주며 부탁을 한다.

아까 자기가 기보한 그 악보였다.

"이번 토요일이 좀 특별한 사람의 생일이라서 제가 선물로 만든 음악인데, 그날 이 곡 연주좀 부탁드려요."

"이거, 미연씨가 작곡한 거예요?"

"네."

광식은 벌써 미연의 곡을 맘속으로 불러보았다.

"와, 이 곡 굉장히 좋은데요? 그런데 보컬은요? 가사도 있는데 누가 불러야하는 거 아녜요?"

"연주만 해주세요. 가사는 그냥 글로 전하죠, 뭐."

미연은 밴드에게 악보를 맡겨두고 장미를 데리고 클럽에서 나간다.

 

토요일이 되었다.

미연과 고수, 형선, 병문, 그리고 전에 선물가게에서 함께 일하였던 경주라는 여학생과 경주의 친구가 한자리에 모였다.

"누나, 장미는 왜 안왔어?"

"오늘 조카들이랑 영화보러 갔어."

"내 생일인데 빠지다니."

"이런데 어린 애가 끼어 있으면 불편하기만 하지 뭐."

"오늘 짝이 딱 맞네."

여섯 사람은 짝을 맞춘 듯이 나란히 앉아 생일 저녁 식사를 하였다.

여느 때처럼 클럽에서는 공연이 있었다.

드디어 미연이 기다리던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밴드가 아닌 키보드 주자 혼자서 무대에 등장하더니 피아노앞에 앉았다.

미연은 아직 자기가 부탁한 노래를 할 시간이 아닌 줄 알고 '더 기다려야하나 보다'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매니저가 케익을 들고와 고수 앞에 놓고 불을 붙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명이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생일 축하곡이 짧게 흘러나왔다.

"어, 이거 뭐야?"하며 고수는 웃었다.

"빨리 꺼, 빨리..." 옆에서들 재촉하였다.

고수는 '훅' 하고 촛불을 껐다.

조명이 모두 꺼지면서 클럽안은 갑자기 칠흙처럼 깜깜해졌다.

컴컴한 무대에서 여가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미래였다.

손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미연은 깜짝 놀라 무대쪽을 돌아보았다.

점차로 밝아져가는 무대 위에는 미래가 앉아 있었다.

자기가 만든 곡을 광식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들 처음 들어보는 장미래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이걸 미래가 부르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인데...'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미래는 일어서서 마이크를 들고 이야기를 하였다.

"저번에는 이 자리에서 내 친구의 생일날 그 친구가 나를 위해 만든 곡을 그 친구를 위해 불렀었는데, 오늘은 또 그 친구의 친구 생일날, 그 친구가 만든 또 다른 노래를 그 친구의 친구를 위해 부르게 되었네요."

사람들은 '와~'하고 웃음을 터트리며 박수를 쳤다.

고수는 감동한 얼굴로 미연을 쳐다보았다.

"누나, 고마와."

그리고는 미연의 귀에다 입을 가까이 대고 속삭였다.

"누나 사랑해."

미연은 고수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자신도 사랑스러운 눈길을 보내었다.

함께 있던 다른 친구들이 떫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자 민망하여 미연과 고수는 멋적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형선과 병문은 경주와 친구가 함께 있어서 그런지 더욱 기분이 들떠있었다.

저녁을 먹으며 맥주를 시켜 서로 병을 부딪혀가며 마시고 있었다.

고수는 저번에도 그랬지만 술을 안마셨다.

술대신 포도쥬스를 시켜놓고 있었다.

병문은 고수가 그러는 것이 못마땅했다.

"그런데 왜 너는 술을 안마시냐? 참 이상도 하네, 사내자식이."

"난, 술 못먹어."

"술은 자꾸 마셔야 느는거야, 얼른 한잔 해."

"아이, 난 안된다니까."

고수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일어섰다.

미연은 그 틈을 타 잠시 미래에게 다녀오려고 자리를 떴다.

병문은 원래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하는 성격이었다.

형선에게 투덜거린다.

"야, 저 자식 술좀 한번 먹였으면 좋겠는데, 안그러냐? 저건 맨날 안주만 축낸다니까."

"에이, 싫다는데 어떻게 먹이냐?"

"오늘 생일이고 하니까 한 번 마셔야지. 잠깐...여기요."

병문은 웨이터를 불러 양주 한잔 만 달라고 부탁했다.

웨이터는 바에 가서 조그마한 잔에 양주를 따라서 가지고 왔다.

병문은 고수의 쥬스에다 부었다.

"야, 고수 온다."

형선이 다급한 소리로 알렸다.

경주와 친구는 입을 막고 키득거리고 웃었다.

고수가 자리에 와 앉을 때 미연도 미래에게 갔다가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저녁 다 먹었는데 우리 일어서서 다른 데 가자."하고 고수가 말했다.

"그래, 춤추러 갈까?"하고 형선이 일어선다.

모두들 그러자며 일어서려 엉거추춤한다.

병문이 고수에게 "마시던 건 다 비우고 가자."하며 고수에게 남은 쥬스를 마시도록 권했다.

모두들 자기 잔에 들었던 것을 꿀꺽거리며 마셨고 고수도 아무생각없이 남아있던 쥬스잔을 들이켰다.

"엇, 맛이 왜 이래?"

"뭐가?"

"너, 여기다 뭐 넣었지?"

"아, 아냐..."

형선과 경주는 고개를 돌리고는 낄낄거리고 웃었다.

고수는 갸우뚱거리며 계산대를 향해 걸어갔다.

미연이 쫓아가며 고수에게 "계산 안해도 돼."하고 말한다.

"어, 누나가 다 했어? 왜? 내가 낼려고 했는데..."

"아니, 미래가 그냥 가라고 그랬어."

"인사도 안드렸는데..."

"괜찮아. 다음에 하지 뭐."

고수와 미연이 그러고 있는 사이 다른 일행은 벌써 미래클럽에서 나갔다.

미연과 고수도 쫓아나가 일행에게로 향했다.

고수는 기분이 이상해지는지 자꾸 머리를 짚었다.

"누나, 나 이상해...읍..."

고수는 쓰러질 듯 휘청거렸다.

미연은 깜짝놀라서 고수를 부축했다.

"고수야!"

고수는 길가 담벼락에 가서 기대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미연은 어쩔 줄을 몰라 손수건을 꺼내 들고 서성거렸다.

친구들은 저만큼 떨어져 앞서가고 있어 부를 수가 없었다.

고수는 식은 땀을 흘리며 정신을 잃을 것 처럼 보였다.

미연은 택시를 불러 세웠다.

"아저씨 좀 도와 주세요!"

운전사는 술이 취해 그러는 줄 알고 서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미연은 뒤의 차를 다시 세웠다.

이번에는 "아저씨, 제 동생이 아파요, 빨리 병원에 좀 데려다 주세요!"하고 소리쳤다.

운전사는 고수를 부축해서 차에 태우고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로 들어간 고수의 얼굴과 몸에는 온통 붉은 반점이 올라있었다.

고수는 헉헉거리고 있었다.

의사는 고수의 입에 산소마스크를 씌워 침대에 눕혔다.

"보호자이신가요? 무슨 일이 있었죠?"

"모르겠어요. 아무일도 없었는데 길을 가다 갑자기 이래요."

"술을 마셨나요?"

"아뇨. 술을 못마신다고 그랬는데요."

의사는 고수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술냄새가 나는 거 보니까 술을 마신 것 같은데요. 알콜에 민감한 체질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조심해야죠."

"지금 어떤데요? 괜찮아요?"

"토했나요?"

"네."

"그럼 일단 두고 보고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예요."

의사는 고수의 팔에 링거를 꽂아주고 응급실에서 나갔다.

고수는 헉헉거리던 호흡이 점점 가라앉더니 잠이 들었다.

미연은 병원에서 준 물수건을 적셔와 고수의 이마랑 손을 닦아주었다.

미연은 그렇게 응급실에서 고수 옆에 앉아 밤을 지샜다.

 

다음날 아침 고수가 깨어났다.

"누나, 나 어떻게 된거야?"

"너 술마셨니?"

"아니."

"의사가 술마신 거 같다고 그러던데? 너 술마시면 안된다더니 심한 알러지가 있어서 그랬구나."

"맞아, 어쩐지 어제 나올 때 쥬스맛이 이상하다 했더니 누가 내 쥬스에다 술을 탓나봐...병문이 자식일거야. 나쁜 자식, 사람을 아주 잡으려 드네."

미연은 고수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붉은 반점은 다 가라앉아 없어졌지만 고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얬다.

미연은 고수와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자기집으로 갔다.

혼자 집으로 보내기가 불안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원래 고수가 놀러오는 날이기도했다.

미연은 방에 자리를 깔아주고 고수를 눕혔다.

"불쌍해라...술먹고 이렇게 되는 사람은 첨 봤어."

"아이, 우리 아버지도 젊었을때..."

고수는 '아차, 난 고아였지..'하는 생각이 나서 입을 다물었다.

미연은 방문을 열고 나가는 중이라 듣지를 못하였다.

미연이 끓여준 콩나물국과 따뜻한 밥을 먹고나자 고수의 얼굴이 좀 불그레해졌다.

그래도 아직 속이 안좋았다.

고수는 하루종일 미연의 방에서 누워지냈다.

몸은 많이 나아졌지만 고수는 미연의 이불속에 있자니 달콤한 느낌이 들어 그대로 누워있었다.

 

한편 병문과 형선은 지난 밤 고수와 미연이 함께 나이트 클럽에 가자고 하더니 중간에 사라진 것이 의심스러웠다.

게다가 고수는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고수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도 불통이었다.

응급실에 있는 중이라 핸드폰이 꺼져있던 것을 몰랐던 것이다.

병문은 형선의 집에서 함께 자고 느즈막히 일어났다.

"이 자식 좀 보게, 아줌마랑 둘이 쏙 빠져서 어디로 가서는 안들어오네?"

"둘이 너무하는 거 아냐?"

"그러게 말야. 친구들도 내팽개치고 둘이서만 말이지...쯧쯧."

아침 먹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형선의 집 밖에서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구세요?"

"형, 나 정수야, 고수형 동생."

"정수 왔구나."

"어제 형 생일이었는데 아무것도 못해줬다고 엄마가 음식싸서 보내줬어. 인삼하고 꿀도."

"인삼?"

"형들도 같이 먹어. 그런데 형은 어디갔어?"

"흠흠...." 형선은 목을 가다듬기만 했다.

병문은 난처한 얼굴을 하면서 정수에게 말한다.

"그게 말이지...어....느그 형이 어제 안들어 왔거든."

"어디 갔는데?"

"글쎄, 그게....에이, 느그 형 참 큰일이다."

"왜? 무슨 일 있어?"

"어떤 나이많은 아줌마랑 사랑에 빠져서는 글쎄..."

"뭐? 형이? 우하하...."

"아쭈, 얘가 왜 웃냐?"

"형이 무슨 아줌마랑 놀아? 우리 형이 얼마나 눈이 높은데."

"내가 지금 거짓말 하는 것이 아냐. 어젯밤도 아마 그 아줌마 집에서 잤을걸."

"잉? 그 아줌마랑 잠을 자?"

"그렇지 않고서야 어딜 갔겠어? 어제 함께 있다 둘이만 없어졌는데."

형선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병문이 너무 시시콜콜 일러바치는 것이 불안했다.

정수는 그 소리를 듣더니 더 생각도 않고 바로 집에 전화를 했다.

"엄마, 큰일났어. 형이..."

형선은 병문에게 다그쳤다.

"야, 너 그렇게 다 꼬나바치면 어떻게 해?"

"아니, 알릴 건 알려야지, 그냥 있냐? 아줌마랑 고수가 같이 자고 돌아다니는 게 잘하는 거야? 그건 불륜이지."

"그게 왜 불륜이야? 그 아줌마는 이혼했다던데? 남편도 없는데 뭐가 불륜이야?"

"에이, 그래도 안되지. 애엄마가 총각하고 그러면 쓰나?"

"너는 생각이 너무 꽉 막혔다."

"내가 꽉 막힌 게 아냐. 느그들이 이상한 거지. 어떻게 그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거야?"

정수가 전화를 끊었다.

"엄마 바로 온댔어."

"뭐?"

"허허, 느그 어머니도 성질 급하시구만. 그래 오셔서 고수 좀 데리고 가라고 그래. 집에가서 먼지나게 맞아야 그 놈이 정신을 차릴거야"

병문의 그런 소리에 형선은 인상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