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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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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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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면- 2


BY 액슬로즈 2003-07-18

 

그가 도서관에 나타나리라곤 생각도 못한 일이라 재란도 은숙도 놀란 눈으로 그냥 쳐다만 보았다.

곧장 고전 코너로 간 그는 한번 훑어 보고는 한 권을 빼들고 왔다.

 

그는 재란과 은숙을 한번 쳐다볼 뿐 별말은 없었고 말많은 은숙이조차 선듯 말을 붙이기가 그런지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올때와 같이 홀연히 그렇게 사라졌다.

은숙이 숨을 크게 내쉬었다.

 

[휴우...매력 만점에 분위기 한번 살벌하네. 먼저 말걸면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

야, 니한테도 저런 분위기가?]

[뭐...그렇다고 할 수도 아니라고 할 수도...저 오빠 원래가 말수가 적잖냐. 내비도]

[진수하고 같은 피면서도 어째 저리도 분위기가 틀릴까 몰라]

[삼촌과 조카잖냐. 신경꺼라]

 

*

은숙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수다.

[왜?... ... 진짜?... 응, 알았다. 쫌 있다 가께]

 

조금은 흥분된 음성으로 전화를 끊었다.

[야, 빨랑 끝내고 자갈밭으로 나오랜다. 다 모디가 한 잔 하자네]

[그래?]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함께 다닌 친구들이 마을에 몇명있었다.

공부를 잘한 종수...집안 형편이 여의찮아 울릉종합고등학교를 나와 그대로 울릉도에 주저앉은 복없는 친구.

인문계를 나왔으면서도 도시가 답답하다고 울릉도에 들어와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영태.

그리고 영태가 좋아 영태따라 울릉도에 안주한 영태 마누라 희정이...

그리고 진수...

네 사람은 한 쪽에 불을 피워놓고 앉아서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자갈밭엔 그들 외에도 관광객들의 텐트에서 비치는 불빛으로 인해 바닷가는 훤했다.

드문드문 나와서 밤바다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더러 눈에 띄었다.

 

[야밤에 또 뭔 바람이 불어서 술이고?]

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면서 은숙이 말했다.

희정이 먼저 술잔을 내밀었다.

[잠도 안오고 답답해서 나왔다 아이가. 한 잔 해라]

[야, 너그는 그만 좀 붙어 다니라. 맨날 그리 붙어 있으이 남자가 없다 아이가!]

진수가 한 소리 했다.

[니 같은 남자가 붙을가봐 안카나. 와, 질투나나?]

지지않고 은숙이 응수했다.

 

[하이고, 질투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니가 재란이 옆에 있으이 내가 재란이 하고 데이트 할라케도 몬한다 아이가]

[어미야, 니 재란이 좋아하나?]

[진수, 재란이 좋아하는 거 동네가 다 아는 사실아이가?]

종수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은숙이 코웃음쳤다.

[야야,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마래이. 니는 재란이하고 안 어울린다. 냉수마시고 빨랑 속차리라]

[야, 진수 쟤, 세상 여자들이 다 지 여잔줄 알고 사는 애 아이가. 고만 해라마]

재란은 웃으면서  제동을 걸었다.

 

소주를 마시고 덜 마른 오징어 즉, 피데기를 뜯어 고추장에 찍어 입안에 넣었다.

바짝 마른 오징어보다 먹기도 편하고  씹는 맛도 좋아 요즘은 피데기를 찾는 관광객이 많았다.

 

화제는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늘 그랬다.

아마 그 시절이 가장 즐거웠고 공통된 추억꺼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해도 해도 지루하지 않고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가 않았다.

 

몇 잔의 술을 마시고 무심코 고개를 든 재란은 다리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보았다.

어둠속에서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남자...보지 않아도 채 영이란 건 알 수 있었다.

가슴속이 답답해지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어? 삼촌아이가?]

진수 또한 알아 보았다.

[진짜? 야, 가서 오시라 그래라. 혼자 심심할낀데..]

진수의 어깨를 치며 은숙이 얼른 재촉했으나 진수는 고개를 저었다.

[야, 오란다고 올 삼촌도 아이다. 술이나 마시라]

 

재란은 보았다.

그가 자신들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턴 것을...

그리고...그가 자신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는 것도...

단지...그녀만의 착각인지 몰라도...

 

*

새벽 조깅 길.

채 영은 어김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함께 뛸 마음은 여전히 없는 듯 바다만 묵묵히 바라보고 있다가

재란이 가까이 오면 그제야 얼굴을 들었다.

 

[성인봉 올라 가봤니?]

뜬금없이 그가 물었다.

[울릉도서 나고 자랐으면서도 난 한번도 성인봉을 오르지 못했어...]

바다를 향해 담배 연기를 날리며 그가 조용히 독백처럼 내뱉었다.

반면 재란은 울릉도에 올때면 은숙이와 함께 빼놓지 않고 한번은 올라 가보곤 했다.

 

[그럼...오늘 가 볼래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대뜸 그녀가 말했다.

돌아보는 그를 향해 환하게 웃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