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화장실이 다 집안에 있지만 예전에는 화장실이란 생활공간에서 가장 먼 곳, 그래서 대문간에 있었다. 일곱가구에 화장실은 단 두개였는데 아침이면 전쟁이 따로 없었다. 성구네에 하숙을 하는 언니들은 화장실 때문에 변비가 된다고 투덜거렸다. 집에도 화장실이 둘 뿐이어서 늘 복잡한데 공장에서는 눈치가 보여서 화장실을 자주 못 간다는 것이다. 나에게도 그 화장실은 좋은 곳이 못 되었다. 나의 경우는 아침에는 참고 있다가 차라리 학교에 가서 볼 일을 보는 쪽을 택한다. 일제시대에 지은 학교는 화장실도 전통적이고 깊어서 아찔했지만 구역질이 날 것 같은 집 보다 오히려 나았기 때문이다. 식구는 많고 화장실은 둘 뿐이니 푸세식 화장실은 금방 찼고 구더기가 득시글 거렸다. 그 보다 더 곤욕인 것은 이미 찰 대로 찬 화장실에 앉아서 볼 일을 보면 꼭 구덩이 속의 똥 덩어리가 내 엉덩이에 묻을 것만 같다는 데 있었다. 나는 최대한 엉덩이를 쳐 들고 고개를 높이 들어 정면을 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볼 일을 마치고 나올 때 까지 숨을 참는다.
아침에는 꾹 참고 학교에 가면 되지만 밤이나 일요일이나 방학처럼 집에서 밖에 해결이 안 되는 경우는 그렇게 참고 볼 일을 보는 수 밖에 없다. 어떤 때는 화장실에서 멀지 않는 수돗가에서 소변을 해결하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다음 날 아침이면 코가 개코인 국밥집 할머니가 (국밥집 할머니는 수돗가에서 가장 가깝고 다락이 따로 있고 방도 한칸이지만 아주 큰 데다가 쪽 마루도 있는 대문 가장 가까운 방에 살았다. ) 마당 한 가운데서 물바가지를 들고 어떤 년이 수돗가에 오줌을 뿌렸는지 잡히면 요절을 내리라는 엄포를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적은 없다. 미현이도 가끔은 수돗가에서 소변을 보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겁이 유난히 많은 나는 조금만 어두워도 심해에 빠진 듯 꼼짝을 못 하고 손만 살짝 잘 못 뻗어도 무엇인가가 뭉클 잡힐 듯이 두려워 어찌 할 바를 모른다. 그러니 밤에 화장실 가는 것이 참 싫은데 어쩌나, 그 날도 수돗가에서 소변을 보고 누가 볼 세라 얼른 팬티를 올리는데 대문간에 사람 그림자가 뵌다. 나는 얼마나 놀랐는지 소리도 못 지르고 얼어붙어 버렸다. 그런데 그림자는 대문에 기대어 꼼짝을 않는다. 얼핏 보니까 어깨를 좀 떨고 있는 것도 같아 보인다. 어찌 되었거나 귀신은 아니다. 내가 움직이면 상대방이 알아 챌 까봐 나는 마냥 쪼그리고 앉아서 어둠 속에서 상대방의 그림자만 바라보고 있다. 우는 것일까, 희미하게 훌쩍이는 것도 같아 보이더니 문득 어깨를 든다. 그리고 타박타박 이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숨도 쉬지 못 하고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은 채로 그저 조용히 내 곁을 지나가 주기를 바라면서 눈을 꼭 감는다. 그런데, 그림자가 다가와서 내 앞에 턱 섰다.
“미희구나. 밤 바람이 찬데 어서 들어가렴.”
“네, 네,,”
부들부들 떨면서 그림자를 올려다 본 나는 그제서야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성구네에 하숙을 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수경이 언니였다. 나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언니를 올려다 보았다. 언니는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도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순간 내 입안 깊은 곳에 있는 시커먼 충치 두개가 생각나서 깜짝 놀랐지만 어찌 되었거나 나는 그 그림자가 수경이 언니였다는 것이 마냥 좋았다.
사상공단은 주업종이 신발이었다. 신발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집약 산업이 아니라 공정 하나하나를 손으로 해결하는 노동집약산업이었다. 큰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굴뚝 산업”의 호황기였던 70년대에 신발과 섬유는 최고의 산업이라 사상공단은 밤을 낮처럼 살면서 일을 해도 늘 손이 모자랐다. 일자리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있었기에 농삿일에 신물이 난 농촌의 처녀총각들과 젊은 부부들이 너도나도 잘 살아보자고 사상공단으로 모여 들었다. 방이 하나라도 있는 집에는 그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세를 놓거나 하숙을 했다. 성구네도 마찬가지였다. 두 칸이라고 하여도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두개의 방으로 나뉘는 일본식 구조였는데 부엌위로는 다락이 하나 있었다. 성구 아버지가 건설붐을 타고 외국으로 돈을 벌러 가고 손 야무지고 부지런한 성구 어머니는 노는 방 둬서 뭐 하겠냐고 하숙을 시작했다. 안 쪽 방에는 남자, 부엌이 가까운 바깥쪽 방에는 여자들을 하숙을 들였다. 성구 어머니는 성구와 아직 어린 아기 민구를 데리고 여자들과 같이 잤다. 주인 아주머니에 아이들까지 함께 자니 불편해 죽겠다고 툴툴 거리는 언니들이 많았지만 미닫이 문 하나만 열면 남자들이 자고 있으니 언니처럼 안심이 되서 좋다고도 했다.
우리는 가끔 아기를 돌봐 준다는 명목으로 성구네에 가서 놀기도 했는데 나는 특히 수경이 언니가 혼자서 그림을 그리면서 생활하는 다락을 좋아했다. 수경이 언니가 그리는 그림은 대부분 인물화였다. 사진을 놓고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림을 그려서 주문 받은 곳에 가져다 준 다음 받는 비용이 수경이 언니의 주수입원이었다. 가끔은 정물화나 풍경화도 그렸다. 풍경화도 사진을 놓고 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인물화 보다는 그림의 크기가 큰 경우가 많았다. 정물화는 다락 한 쪽에 여러 가지 야채나 과일 같은 것을 놓고 그리기도 하고 책을 펼쳐놓고 남이 그린 정물화를 베껴 그리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유명한 화가도 아니었고 그야말로 주문을 받아서 좀 사는 졸부의 집에나 걸어 둘 그림을 그리는 수경이 언니였지만 신발 공장 다니는 현자 언니나 숙희 언니, 다방에 나가는 윤경이 언니들이랑은 분명히 좀 달라 보였다.
나는 언니의 하나하나가 다 좋았다. 언니의 검고 긴 생머리, 숱이 많고 긴 속눈썹, 부드러운 표준어로 속삭이듯이 나직나직 얘기하는 말투까지. 다락의 낡은 벽지에 쥐 오줌 냄새와 함께 묻어나는 유화물감의 취할 듯한 냄새도 좋았다. 언니에게는 책도 많아서 좁은 다락방의 한쪽에 온통 책을 쌓아놓았다. 속되게 말해 언니는 노는 물이 달라 보였다. 무엇보다 내가 언니를 천상의 존재로 보게 된 사건이 있다. 그것도 밤이었다. 밤은 신비롭다. 그리고 은밀하다. 더구나, 어떤 비밀을 털어 놓지 못 해 안달 난 수다쟁이 같다.
그 날도 잠결에 소변이 마려워 수돗가에서 실례를 하려고 어슬렁어슬렁 마당을 거슬러 오던 나는 얼른 국밥집 할머니네 부엌 담벼락에 딱 들어붙었다. 목만 살짝 빼고 대문간을 보니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틀림없는 두개의 그림자가 대문간에 엉키어서 함께 서 있는 것이었다. 소변은 급해서 곧 쌀 것만 같은데 둘은 도저히 떨어 질 것 같아 보이지를 않는다. 그러더니, 한 쪽이 한 쪽을 밀어내면서 무어라고 속삭이는 것이었다. 상대방은 아쉬워 밀어내는 그림자를 잡아당기는데 이 쪽 그림자는 굳이 등을 떠민다. 상대방이 가는 양을 보고섰던 이 쪽 그림자는 잠시 망연히 서 있더니 기침을 심히 하면서 수돗가에 쪼그리고 앉는다. 손수건으로 입을 틀어막고 기침을 해 대는 양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좀 망설여 지기는 했지만 도저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된 내가 수돗가로 뛰쳐 나갔다. 그림자는 수경이 언니였고 좀 놀라는 눈치기는 했지만 나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소변을 봤다. 언니는 달빛아래에서 예의 그 상냥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보내는 듯 하더니 이내 기침을 시작했고, 무엇인가를 손수건위에 쏟아 내 놓았다. 나는 그런 것이 사람의 속으로부터 나왔다는데 놀라 까무러칠 뻔 했다. 그것은 피였다. 검붉은 피를 언니는 손수건 위에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얼굴이 왜 그렇게 유난히 하얘보였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지만 피가 속으로부터 나온 정확한 이유를 여전히 이해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날 밤 나는 본능처럼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 언니가 속으로부터 쏟아낸 피는 바로 언니의 그림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것, 그리하여 나는 피를 토하는 언니와 그림을 그리는 언니 사이의 강렬한 연관성을 내 머릿속에 새겼고 직설적으로 말해 “피=그림” 이라는 등식을 만들어냈다.
피를 토하는 언니, 그 피와 같이 빛나고 아름다운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언니. 언니는 우리 집의 누구와도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 천상의 존재였던 것이다. 다락방은 천상의 존재인 언니가 우리 집 같이 누추한 곳에서 그 중 가장 높은 곳으로서 언니가 기거하기에 적합한 장소였다. 그 무렵부터 시인 같은 것을 꿈 꾸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영 자신이 없었고 글 쓰는 일은 내가 참 즐기는 일이어서 어쩌면 가능 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나도 언니처럼 언젠가는 피를 토해야 하는 것일까. 그 생각을 하자 등에서 소름이 쓱 돋았다. 그것은 너무나 버겁고 어려운 일 일거라는 짐작을 아직 어린 나라고 아니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